몇 번이나 여러가지 증거를 들어가며 설명했지만 , 이 남자는 도저히 자신의 의견을 굽힐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그의 믿음은 거의 종교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건 논리나 상식보다도 위에 있는 듯 보였다.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 지구는 평평해."
"대체 왜 지구가 평평하다는 건데요?"


답답해하는 그녀의 질문에,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떨어져 봤으니까."
"네?"


남자는 끔찍한 기억을 되새긴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바다의 끝에서는 소리 역시 밑으로 흘러내려, 눈치 챌 순간에는 어느새 그 깊은 심연으로 잡아먹히지. 생각조차 앞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지평선의 끝단에서, 아주 느린 속도로 낙하하며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들여다보는 거야."
"아니, 그러면, 아저씨는 어떻게 살아있는데요?"


남자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대답했다.


"나는 회귀자니까."
"뭐요?"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반문하자, 남자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야기했다.


"앞으로 10초 뒤, 이 장소에 게이트가 열릴 거다."
"그게 무슨···."

"5, 4, 3, ···."
"저기요?"

"지금이다."


그 순간, 문득 바람이 불어오는가 싶더니, 그들이 서있던 바로 옆의 공간이 소음과 함께 갈라지기 시작했다.


"어?"
"지금까지의 상식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남자는 익숙하다는 듯, 게이트를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남자의 신형이 갈라진 공간 너머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새로운 세상에서는, 네가 믿어온 모든 법칙이 의미를 잃을테니."


앞으로 그녀의 목숨을 수십번이나 구해줄, 사소한 조언과 함께, 말이다.




#####




내가 사는 제52 지구에서는 지구가 평평한 게 "상식"이라고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