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두 글 중 첫 번째에서 넬리는 6장 제목 그대로 히스와 캐서린처럼 마음이 어긋났다고 했고, 나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동시에 다른 점도 볼 수 있었음.
먼저 두가지 결론을 밝히자면 아래와 같음.
첫 번째, 글 제목에 나온 그대로 넬리는 히스의 또 다른 안티테제이며.
두 번째, 어쩌면 지금의 넬리가 존재하는 지금의 세계야말로 그녀가 보았던 비참하게 늙어가는 미래가 아닌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던 세계였을 수도 있다는 것.
우선 두 번째 결론에 대하여 다루겠음. 위에서 말했다시피 지금의 세계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모든 캐시가 삭제되야만 끝이 났던 폭풍 같은 재앙이 벌어졌는데, 어째서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했었는지 생각할 수 있는가? 에 대하여 답을 하자면.
다들 알다시피, 6장에서 벌어진 일들, 약지의 워더링하이츠 개조와 모든 캐서린의 강림은 캐서린이 주도한 거였지만, 마왕 히스를 불러옴과 동시에 캐서린이 그런 일을 벌이도록 유도한 건 넬리 본인이었음.
히스와 캐시가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보내려던 걸 보내지 않고 불태운 사람도 히스를 질투하는 린튼이 아니라 넬리였으며.
당연히 그런 짓을 한 이유는 넬리가 캐서린보다 먼저 거울을 통해 평행 세계를 보았고, 히스와 캐시의 폭풍에 휘말려 비참하게 늙어간 자기 자신을 보았기에 자신도 그렇게 될까 하는 두려움과 죄 없는 자신까지 비참하게 만든 둘에 대한 증오가 생겨났기 때문이었음.
그런데 만약에... 넬리가 벌인 짓들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을까?
넬리가 캐서린에게 거울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캐서린이 모든 캐서린을 강림시키고자 힌들리와 린튼을 파산시키고 수 많은 사람들을 납치해 거울 실험에 희생시킬 일도, 더 나아가 모든 캐서린을 막기 위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자신의 존재를 삭제할 일이 없었을 것이며. 넬리도 마왕 히스클리프를 불러내지 않았기에 지금의 세계의 히스클리프가 위협받을 일도 없을 것이고.
그와 동시에 넬리가 두명이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불태우지 않고 제대로 전달해주었더라면, 그 두명이 단테의 단말기를 통해서 겨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것과 같이 그렇게나마 천천히 어긋난 마음을 맞추고 오해를 풀어가는 소통을 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러한 과정을 거쳐가다보면 대부분 비극으로 끝난 평행 세계들 중에서 2세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계가 하나 보였듯이, 그 세계보다도 더 나은 결말이 실현될 가능성이 지금의 세계에 존재했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 원작과는 다르게 림버스에서는 서로가 편지로나마 소통하고자 노력했으니까.
"세상엔 수천 송이의 장미꽃들이 있어도 나의 장미꽃은 단 하나야." - 데미안
6장 에필로그에서 데미안이 말한대로, 아무리 무수한 평행 세계가 존재하고 대부분이 비극으로 끝난다고 한들, 그건 그거고.
지금의 자신에게 중요한 건 자신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지금의 세계 뿐. 이건 이거지.
"이 별 사람들은 자신만의 정원을 꾸미기 위해 장미꽃 수천 송이를 가꾸면서도 정작 자신이 원하는 건 찾지 못하더라고." - 데미안
지금의 넬리가 자신만의 정원인 자신의 미래를 위해 원하는 장미꽃, 비참하게 늙어가지 않는 더 나은 미래는 다름 아닌 지금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고.
"깨달았기 때문이지, 내가 사랑하는 건 내가 두고 온 장미였다는 걸." - 단테
자신의 꽃을 두고 긴 여행을 떠나 도달한 큰 정원에서 똑같은 수천 송이의 장미들을 보고 주저앉은 이유에 대한 데미안의 질문에 답한 단테의 말대로, 넬리 본인은 자신의 세계가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음을 깨닫지 못한 채로 결국 그 가능성조차 제 손으로 박살을 내고 말았음.
가능성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가능성이 존재했던 거였지. 이제 되돌릴 수도 없으니까. 넬리 스스로 히스와 캐시의 소통을 단절시켜 나아질 가능성을 불태웠고, 더 나아가 모든 캐시가 삭제되는 비극을 자기 손으로 시작하고 말았으니.
여기까지가 두 번째 결론의 끝이고, 이제부터 첫 번째 결론, 넬리가 히스클리프의 또 다른 안티테제인 이유에 대하여 다루겠음.
맨 위의 시리즈 중 미덕 관련 추측에 따르면, 6장의 핵심 미덕은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 호드. 그리고 과거를 받아들이며, 미래를 창조하는 눈, 호크마라고 했음. 또한 중요 등장인물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소통 부재와 낮고 높은 자존감과 자존심, 독단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음.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넬리는 히스클리프의 안티테제인 마왕 히스와 비슷하게,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린 채 자기 미래일지도 모르는 두 사람의 미래를 박살내버리려는 독단과 엇나가는 캐서린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항상 곁에 있는데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는 소통 부재, 그리고 자신도 평행 세계의 자신처럼 비참하게 늙을까봐 두려워하는 낮은 자존감을 보여주었음.
즉, 넬리는 죄없이 폭풍에 휘말린 듯이 보이겠지만 결국은 그들과 닮은 면이 많다고 볼 수 있다는 것. 더 나아가 지금의 세계에서는 더 커다란 폭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음.
물론, 넬리가 그렇게까지 타락한 데에는 거울 기술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한몫했으니, 지금 이걸 보는 모두처럼 나도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는 심정임. 그저 안타까울 뿐. 심지어 로쟈가 6장 초반에 한 말이 넬리와도 맞아떨어지는 게 소름이 돋을 지경임.
"뭐가 되었든 고기 맛을 한번 본 적이 있다는 게 무서운 거야. 평생 모르고 살면 좋을텐데... 기어코 고기 맛을 보면, 알기 전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하니까." - 로쟈
지금이든, 마왕이든,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이라는 고기 맛을 잊지 못해 온갖 미친 짓을 벌이고 끝내 모든 그녀가 삭제되었음에도 단테와 데미안을 제외하면 지금 히스가 유일하게 그녀를 기억하고 있듯이.
지금의 넬리 또한 비참하게 늙은 평행 세계의 자신이라는 고기 맛을 본 이상, 알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으며, 맨 처음에 나온 링크에서 다루었듯 더욱 비참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보고 있음.
차자리 넬리가 거울을 보지 않고 평생 모르고 살았더라면... 더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불태워버릴 일도 없었을텐데.
하지만 넬리는 거울을 보았고, 비참한 미래를 확인하고 나서는 자신도 저렇게 늙을 거라면서 모든 걸 정해놓았고.
지금 자신의 미래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린 채로, 계약에 종속되어 폭풍을 피할 수도 없는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자신의 미래인지도 모른 채 두 사람의 미래를 박살내려고 들었다.
이는 주워진 고아라는 과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고, 다른 세계도 똑같을 거라고 모든 걸 정해놓은 채 자신들을 죽여 자신들의 미래를 박살내려는 마왕 히스클리프와 비슷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음.
충격을 먹고 날뛰었던 마왕 히스, 본래 히스와 같이, 거울을 통해 비참한 미래를 보고 충격을 먹은 넬리에게도 더 나아질 수 있는 희망인 호드와 불우한 과거를 받아들이고 미래를 창조하는 호크마가 필요했었던 것. 본래 히스클리프는 한번 뒤틀리고 나서야 끝내 극복하고 두 미덕을 깨우쳤으며 마왕 히스는 마지막에서야 자신을 틀렸음을 인정했지만, 넬리는 두 미덕이 없었기에 크나큰 죄를 짓고 말았으며, 여전히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이리 비참하게 만든 진정한 원흉인 N사에 붙어버렸음. 그렇기에 나는 제목에 쓰여진 대로 넬리가 마왕 히스클리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히스클리프의 또 다른 안티테제라고 생각하는 바임.
3줄 요약
넬리도 다른 인물들과 같은 두 미덕의 부재로 인해 스스로를 비참한 신세로 만들었다.
거울을 잔인하다고 까는 데미안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네
악! 이 거울을 봤다면 희망을 버려라! (안 버려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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