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약탈 떡밥으로 글 하나 올라온 것도 있고, 또 떡밥 나오는 거 같은데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다니까 글 적음.

1. 약탈은 하이 리스크 전략이다.

기본적으로 누가 내 물건 뺏어간다는데 그냥 '아 넵 여깄슴돠~' 하고 물건 바로 넙죽넙죽 줄 사람은 없음.

평상시에야 그냥 강도 만나면 몸 다칠까봐 핸드폰이나 지갑이 더 싸게 먹힌다고 주는 경우도 있지만, 재난 시에 물자 부족으로 약탈을 하겠다고 하면 당연하지만 상대도 순순히 그걸 넘겨줄 생각은 없을 거임.

기본적으로 그런 상황에서 상대는 이 물건을 빼앗기면 자기는 이제 굶어죽는다고 생각하고 죽을 각오로 저항해올 거임.

그런 상대를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하고 물건을 빼앗는다는 게 가능할까?

막말로 상대가 악바리로 저항하면서 네 배때지에 다이소 과도라도 하나 쑤셔서 내장 터지면 이제 너는 배낭을 뺏어도 패혈증으로 정말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일만 남은 거임. 약탈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수상하게 피범벅에 싸운 흔적 있고 배에 칼빵 맞고 실려온 사람을 그냥 치료해줄 병원이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도 없음.

생존주의를 한다면서 이런 리스크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건 어불성설이겠지. 오히려 평상시에 대비나 대응을 열심히 해둬서 본인이 물자 구한다고 밖에 싸돌아다니거나 약탈할 상황에 안 처하는 게 무조건 생존확률 면에선 베스트임.

2. 무정부 상태에서 범죄에 대한 보복은 심하다.

가끔 현대문명의 법제도 때문에 간과되곤 하는데, 원래 인간은 사회적으로 집단보복을 되게 잘 하는 생물이다.

왜 함무라비 법전이 그 눈 하나 실명시키면 똑같이 눈 하나 파내라는 걸로 획기적인 법전 소리를 들었는지 아냐? 옛날에 눈 하나 실명시키면 그 새끼 가족들까지 목 따서 죽여버리려고 쳐들어가고 그래서 그런 거임.... 도둑질하면 손 자르고 사형하고 그런 게 당연시되던 게 인류 역사의 태반이었다.

그리고 이런 게 아직 인간의 본성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아서, 경찰이나 법제도에 불신이 강한 나라에서 경찰서에 사람들이 쳐들어가서 범죄자 목매달아 죽이고 그런 사례들도 있음.

기본적으로 현대의 법들과 처벌제도는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선량한 피해자나 시민들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보다, 범죄자를 보호해주는 편으로 진화한 거임.

평상시에야 사람 죽여도 뭐 체포되고 구치소에서 재판 받고 무기징역이나 상황 봐가면서 판사 재량 따라서 몇 십년 정도 감옥 갇혀있다 나오면 끝이지만, 약탈이 판 치는 재난상황에서는? 그런 긴급사태 때 한가롭게 그런 일은 당연히 없을 거고, 6.25 전쟁 중 강도들이랑 약탈자 투성이인 상태였던 수복 직후 서울처럼 경찰들이 총 들고 순찰 돌면서 다 쏴죽일 가능성이 높다.

네가 일단 약탈해서 무사히 도망치는데 성공했다고 치자. 근데 고작 한 사람 약탈해서 먹고 살 게 얼마나 나오겠냐? 약탈을 애초에 처음 시작할 상황이면 너는 앞으로도 약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거다.

이제 피해자가 많아지고, 어쩌다가 목격자도 생기고, 소문이 퍼지면 이제 슬슬 좆된 거다.

어느 날, 그 날도 평범하게 약탈 끝내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누가 조용히 널 미행하겠지.

그 날 밤에 갑자기 현관문을 누가 크로우바로 열어제끼고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고, 그 사람들은 혼자서 칼 들고 저항해보는 널 제압한 다음에 갑자기 도끼들을 꺼내.

그리고 널 차례대로 돌아가며 도끼로 내리쳐서 천천히 죽이고는, 이제 네 방 안에 있던 물건들을 나눠가지고 돌아갈 거임. 복수랑 정의구현이라는 미명 아래 모였으니 그 사람들은 죄책감도 없이 잘 돌아와서 알아서 살아가겠지.

약탈할 때 증거 안 남기게 목격자나 약탈 피해자들을 죽이면 되지 않냐고? 일단 그런 피지컬이든 살상능력이든 갖췄는지는 둘째 치고, 이제 그럼 넌 진짜 찍히는 거임.

자기 가족이나 친구가 죽은 걸 알게 된 사람들은 이제 그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너 하나 죽이겠다고 진짜 지구 끝까지 쫓아갈 원동력을 얻게 될 거임. 만약에 어설프게나마 기능하는 군경이나 치안유지조직이 있다면 걔들 입장에서 너는 어떤 상황에서든 무조건 찾아 죽여야 하는 놈이 되는 거고.

옛날에 미국 서부개척시대에 무법자들 전성시대니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의 자유로운 생활이니 하는 무법자들이 말년에는 계속 자기 쫓아오는 현상금 사냥꾼이나 연방보안관들 피해서 산이나 숲으로 들어가서 개고생하다 죽거나, 범죄자 때려치고 신분세탁하고 평범하게 살려고 온갖 똥꼬쇼를 다 하던 게 다른 이유가 아님. 저런 형태의 삶은 오래 지속할 수가 없음.

어떤 형태의 재난 상황에서든 약탈자가 되어서 보복을 자초하는 건 결코 장기적으로 봤을 때 현명하지 못함.

이건 다른 범죄들도 마찬가지인데, 살인이나 강간, 절도 등의 행위도 보복을 위한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하는 꼴임.

근데 '내가 약탈자 조직 꾸려서 보복이고 뭐고 쪽수로 털고 다니면 되는 거 아님?' 할 수도 있을 거임.

3. 약탈자 조직은 네 통수를 후릴 거다.

네가 괴벨스 급의 개쩌는 카리스마가 있는 새끼가 아니면 재난 후에 형성된 약탈자 조직은 네 통수를 칠 위험 요소가 언제나 존재한다.

사유는 간단한 거여도 상관 없다. 자긴 식칼 쓰는데 네가 쓰는 스트롱암이 존나 좋아 보여서 그거 가지고 싶어서 등에다 칼 꼽을 수도 있고, 방금 턴 음식 나눠먹자니 아까워서 그냥 너 죽여버리고 지 혼자 다 쳐먹으려는 걸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남 등쳐먹고 죽이는데 저항감이 없는 약탈자 조직을 운영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그 리더가 된다는 건 아래 새끼들이 지금 상황에 좀 불만이 생기면 네 모가지를 따는 걸로 대동단결하려고 호시탐탐 언제나 노릴 거라는 뜻임.

더군다나 평소에 자기네들 배고프거나 뭔가 꼬우면 다 뺏고 죽이고 하는 걸로 뭉친 놈들인데, 그런 애들이 자기네 대장이니 뭐니 하는 놈 죽이는 걸 망설일 이유도 없음. 오히려 상황이 틀어져서 자기네들이 보복이나 처벌받을 상황이 다가오면 네가 다 시킨 거고 네가 잘못한 거라고 꼬리 자르기 합리화 시도할 수도 있음.

그러면 말단으로 들어가는 걸 생각해볼 수도 있을 거임. 아래서 떨어지는 꿀만 빨아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

여기서도 이제 약탈자 조직 특유의 통수 위험 스택은 계속 쌓일 수밖에 없다. 만약 네가 남들보다 일을 덜 한다? 이 새끼 죽이거나 쫓아내자는 얘기가 나올 거고, 네가 만약에 남들보다 좀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다? 다른 놈들이 작당하고 너 죽이고 그거 뺏을 생각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다른 조직원들한테 인정도 받고 친하게 지내려고 해본다고 치자. 그 조직 대빵이라는 애가 자기 조직 내에서 자기보다 영향력이 커지는 애가 나오는 걸 원치 않아서 널 숙청할 가능성도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인성이라는 게 물질적이나 상황적인 여유에 기반을 하는 면이 크다보니 언제나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보복당할 위험에 노출되고, 조직 전체를 먹여살리려면 정말 끝도 없이 약탈이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 약탈자 조직 내 새끼들의 인성이 고울 리가 없는 건 당연한 거다.

원래는 되게 착하고 친하고 그런 애도 약탈자 조직 내에서 계속 있다 보면 인성이 뒤틀려 터질 수밖에 없을 거고, 원래 성격이 지랄맞던 새끼들이면 그게 더해질 거임.

이런 새끼들이랑 같이 생사를 걸겠다는 건 걍 미친짓이다.

4. 약탈자는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탈자라는 건 기본적으로 남이 생산한 무언가를 빼앗아가는 거라서, 상황이 장기화 된다면 생존 전략에 있어서 더더욱 부적합해질 수밖에 없다.

바이킹이나 거란족, 왜구처럼 약탈에 생존을 어느 정도 걸던 놈들도 그건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했음. 기본적으로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고, 어업을 하는 식으로 식량을 생산해도 딸리거나, 그 해 농사 좆망하거나, 겨울 등에 물자가 부족해지는 상황에나 다른 나라나 다른 부족들로 레이드를 나가던 거임.

만약에 진짜 문명이 싸그리 붕괴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왔고, 네가 나름 성공적인 약탈자 조직을 꾸려서 잘 굴린다고 치자. 그 다음엔 뭐가 있을 거 같냐?

이제 약탈자들 피해서 사람들이 이주하거나, 네가 생존자들 다 털어먹고 죽이고 해서 털 사람들이 없어지면 이제 더 이상 약탈할 게 없어지는 거임.

평소에 약탈한 거 쌓아둔 창고에 먹을 거 그득할 땐 너 빨아주던 다른 애들도 슬슬 창고가 비기 시작하면 점점 성질이 급해질 거고, 나중엔 3에서 짚은 것처럼 이제 누가누가 먼저 뒤통수 치고 갈 길 갈지 눈치 보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음.

그런 상황 돼서 이제 농사 짓고 낚시 해서 먹고 살자 하면 그동안 꿀빤 기억이랑 칼질만 해도 먹을 거 생기던 거에 배불러하던 애들이 바로 할 거 같냐?

좆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이제 네 배때지 쑤시고, 먹을 거 나눠들고 그 뒤엔 서로 가진 거 뺏으려고 죽이다가 다 같이 죽거나, 그냥 굶어죽거나 둘 중 하나밖에 안 남는 거임.

누군가가 계속 생산자의 역할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약탈자의 삶이란 시한부 인생 같은 거임.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생산자로 돌아오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건데, 그럴 거면 그 동안 왜 굳이 그 말빨로 위험하게 약탈자의 길을 걷겠냐? 차라리 처음부터 사람들 모아다가 농사를 짓는 게 낫지.

이런 이유들로 나는 약탈은 생존주의자라면 애초에 고려할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남의 걸 빼앗지 않아도 되게 평상시에 물자를 비축하고, 생산수단이나 기술을 익히고, 사람을 조직할 능력이 있다면 그걸 생산적인 방향으로 쓰고, 다른 약탈자에게 털리지 않게 방비를 하는 편이 훨씬 맞는 방향의 접근이라고 생각함.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물론 현실이면 대부분의 재난상황에서 약탈자 조직을 만드니 사람들을 모아서 집단농장을 만드니 대부분 다 현실성 없고 너 하나 목숨이라도 재난상황 지나갈 때까지 간수하면 베스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