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171750
대략적 출처: http://astronautix.com/a/abriefhistoheharpproject.html
HARP 프로젝트는 1950년대 후반에 있었던 미국과 캐나다의 연구에서 그 기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연구의 중심이 되는 두 단체는 에어로피직스 윙과 제랄드 불의 CARDE(Canadian Armament Research and Development Establishment)와 미 육군과 찰스 머피의 탄도 연구소 BRL(Ballistic Research Laboratory)지요.
제랄드 불, 1964년.
CARDE에서, 제랄드 불은 미사일과 포 추진 체계에서 탄도학과 공기역학에 대해서 연구했습니다. 정부 출연 프로젝트같은 게 없을 때는 탄도학과 고속 포에 대한 소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대부분은 군사 분야에 대한 연구였지만 여러가지 종류의 포 추진 시스템이라던가 포발사형 라디오 수신기/전자장치같은 필수요소를 개발했습니다. 또 이때 포 발사 인공위성에 대한 계획을 연구하고, 그 외에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 육군은 이 양반을 CARDE에 파견된 인원들한테서 보고받고 면밀히 주시했지요.
미 탄도연구소도 마찬가지로 여러 대포 관련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특히 소구경 포를 이용해서 고고도 탐사를 하는 장치에 관한 연구를 중점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슬슬 제트기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고, 이 제트기가 날 고고도-초고고도의 대기에 대한 연구가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초창기에는 고고도에서 채프를 사출할 수 있는 다트 모양의 장치를 개발했고, 꽤나 성공적이었습니다. 이후 이걸로 5인치 포를 사용해서 약 80km 고도까지 다다를 수 있는 포탄을 만들었고, 이 포탄은 고고도 연구를 위해서 광범위하게(300번 정도 발사) 사용되어 이후 HARP 체계의 기반이 됩니다.
한편 제랄드 불은 CARDE에 일하면서 많은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일단 상사한테서 예산 따는것도 진절머리나고, 관료제에 대해서도 짜증이 치솟았지요. 또 성격상 직무상 비판이랑 개인적인 비난을 잘 구별도 못했고 말이죠. 결국 1961년 초에 불은 CARDE는 사임하고 프리랜서 컨설턴트가 됩니다. 뭐 명성은 있었으니 외국에서 러브콜을 보냈는데, 그 아내랑 자식도 있고, 조국애도 있었기 때문에 캐나다를 떠나기를 꺼렸었습니다. 결국 맥길 대학의 도널드 모델이라는 사람이 포 발사 인공위성으로 낚아서 초빙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불은 34세로 맥길 대학의 최연소 교수였고, 불은 연구비 받으면서 이런 초대형 대포에 관한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지요.
1961년 여름, 불과 모델은 HARP 계획의 초안을 만들고 자금 조달을 시작했습니다. 불의 반대파가 많았던 캐나다 방위 연구회(Canadian Defence Research Board)에선 곧바로 나가리되었지만, 8월에 CDDP(Canadian Department of Defence Production)에서 자금을 지원받게 되었지요. 이것저것 다해서 70만 달러를 지원받고 불과 모델은 맥길 대학의 연 부지가 있었던 바베이도스를 적임지로 고릅니다.
이렇게 HARP 계획이 시작되나 했더니 난관에 부닥치게 되는데....
3편에서 계속.
이거 분량 중간에 짤렸는데도 존나 많네 쉬불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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