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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이경규라는 새로운 개그스타가 탄생하다.

김팔십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11.13 17:57:00
조회 604 추천 3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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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7월 19일자 경향신문 기사.


1980년대에도 이경규는 유명했었다.


1981년 MBC 개그콘테스트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경규는

가짜 중국어 흉내내기, 눈알 굴리기등이 특기였으며,

'자~연 스럽게' 라는 말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80년대의 이경규는 이른바 핫한 스타와는 거리가 멀었다.



1987년 이경규, 이홍렬이 출연한 삼양 짜짜로니 광고.

(위 광고에도 이경규의 유행어 '자~연스럽게가 나온다.)

농심의 짜파게티가 워낙 막강했기에 짜짜로니는 당시 짜장라면계에서 2인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90년대가 열리며 이경규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MBC TV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등에 출연하면서

이경규 특유의 폭소탄을 터트리기 시작한 것.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는 1989년부터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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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2월 30일 동아일보 기사.


당시 주병진이 진행하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최고의 인기 프로였고

주병진의 후배였던 이경규가 이 프로그램에서 맹활약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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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계의 신사 주병진과 이경규가 서로를 끌어주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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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 역시 호랑나비 춤에 이어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낳은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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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노사연 역시 출연진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캐릭터로

일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대성공에 큰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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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7월 26일자 동아일보 기사.


위 기사를 통해 1981년에 데뷔한 이경규가 무려 10여년만에

MBC 일밤을 통해 드디어 햇빛을 보게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경규와 함께 환상의 콤비를 이루었던 주병진은 상당히 똑똑한 사람이었다.


80년대 특유의 슬랙스틱 코미디를 탈피하여 토크개그의 시대를 열었으며,

인기 최절정의 순간 사라지는 주병진 특유의 포장술 역시 잘 먹혀 들었다.


결국 주병진은 일밤 최고인기 시절임에도 진행자 자리에서

자진 사퇴하게 되었고, 일밤의 후임 진행자로 최수종이 낙점되었다.


(주병진은 당시 내의 제조회사인 '제임스 딘'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었기에 일밤진행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선 것.)


하지만 이경규의 인기는 여전했기에

주병진이 사퇴했다고 해서 이경규가 방출당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경규와 최수종의 조합 역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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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0월 11일 동아일보 기사.


위 기사를 통해 주병진은 사퇴했지만,

이경규는 여전히 일밤에 남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경규의 인기를 더욱 상승시킨

효자 코너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몰래카메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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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1월 22일 경향신문 기사.


몰래카메라는 아직 주병진이 일밤을 진행하던

91년 봄부터 시작되었는데, 몰래카메라가 방영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으며 MBC의 대표 오락코너로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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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규가 진행하던 일밤의 몰래카메라는 90년대초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예능이었고,

월요일이 되면 전국민이 어제 본 몰래카메라 이야기를 하던 때다.


몰래카메라는 일본 코미디 프로의 포맷을 모방한 것이었지만

몰래카메라를 통해 이경규의 인기는 더욱 상승곡선을 그리게 되었다.


당시 이경규의 인기에 있어 이문세가 진행하던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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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는 80년대 당시 가수로서 큰 인기를

누림과 동시에 라디오프로 별밤의 진행자인 별밤지기로도 유명했다.


당시는 인터넷, 온라인게임이 없었음은 물론 심지어 노래방 역시 대중화되지 않았던 때다.


아무래도 현재와 비교하면 놀거리가 현저하게 부족한 시절이었기에

당시 라디오는 티비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별밤은 청소년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 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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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9월 20일 한겨레신문 광고.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가 얼마나 인기 있었으면 동명의 영화까지 개봉할 정도였다.

현재는 부부인 최수종, 하희라가 주연.


당시 이경규는 별밤의 단골 게스트였다.

평일은 물론 매주 일요일 밤마다 방송되었던

별밤 공개방송에도 등장하여 이문세와 함께 별밤의 웃음을 책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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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6월 2일자 동아일보의 라디오 방송 소개.


91년 6월 2일은 별밤의 공개방송이 전파를 타는 일요일이었고,

위 김민우, 조갑경, 윤상등이 출연한 공개방송 역시 이경규가 출연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경규는 주병진, 이문세등의

탁월한 진행자들이 있어야만 그 진가를 발휘했던 것일까?


내 기억을 더듬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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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4월 7일 동아일보 기사.


1990년 4월, KBS 라디오는 진행자를 대거 교체했고,

새롭게 라디오 DJ로 투입된 사람중에는

라디오 진행경험이 없는 배우 박중훈도 있었다.


라디오 초짜인 박중훈이 배우로서의 인기를 등에업고

밤 10시에 방송되던 KBS 2FM의 '박중훈의 인기가요'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당시 이 프로에서 최고로 인기 있었던것이 바로 이경규가 등장하는 코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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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90년대는 박중훈의 시대였다. 위 사진은 초기시절 작품인 1989년작 영화 바이오맨의 한 장면.

감독은 심형래의 우뢰매를 만든 김청기 감독이며, 박중훈은 한동안

어린이날만 다가오면 티비에서 바이오맨을 틀어줄까봐 걱정이 되어 밤에 잠을 못잤다고 한다.


해당 코너는 시청자들이 보내오는 재미있는 개그 사연들을

박중훈과 이경규가 재미있게 읽어주는 코너였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피식~ 하고 웃음이 나올 정도로 정말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시청자들 딴에는 웃기다고 사연을 보낸 것인데,

이경규가 아주 냉정하게 (그러나 웃기게) 평가를 하는것이 포인트였다.


그리고 매주 방송마다 여러 청취자들의 실명을 부른 뒤,


"이 분들은 방송의 질을 떨어트리는 분들이니 앞으로는

절대로 사연을 보내지 마라"는 식의 개그를 했었는데

당시 이경규의 애드립과 개그가 상당히 웃겼던 기억이 난다.


박중훈 역시 웃느라 진행을 못할 정도였고,


박중훈이 후일 당시 이경규와의 진행을 떠올리면서


"당시에는 방송을 하는건지 우리끼리 장난을 하는건지

모를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진행을 했었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당시의 박중훈은 주병진, 최수종, 이문세등과 달리

방송 프로 진행자로서는 초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이경규는 초보 진행자 박중훈과 함께 '박중훈의 인기가요'의 인기를 견인한 것이며

여기에는 당시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었던 이경규 특유의 입담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일밤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1991년 10월부터 일밤의 메인 진행자를 맡았던 최수종은

MBC의 봄철 프로그램 개편을 통해 일밤을 떠나게 되었고,

일밤의 새로운 진행자로 별밤의 이문세가 전격 발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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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4월 10일 동아일보 기사.


약 1년반 동안 일밤을 진행하던 최수종이 떠나고 별밤지기가 일밤까지 맡게된 것이다.

이문세가 티비, 라디오 양쪽의 최고 인기프로를

모두 맡게 될 정도로 90년대초 이문세의 인기는 상당한 것이었다.


당시는 SM의 이수만 회장이 아직 방송 진행자로서 활동을 하던 90년대초였던 것.


그렇다면 최수종의 사퇴와 함께 이경규는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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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4월 11일 동아일보 기사.


최수종이 일밤을 떠나게 되면서 이경규 역시 일밤에서 마이크를 놓게 되었다.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일밤을 떠나 93년 당시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중 하나였던 MBC 특종 TV 연예로 자리를 옮기게 된 것이다.


90년대초는 일밤하면 이경규, 이경규하면 일밤이었다.

이경규의 일밤 사퇴는 결국 이경규 시대의 종말을 의미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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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 22일 한겨레신문 기사.


이경규가 최고의 스타가 되었던 해인 1991년에

데뷔를 한 개그맨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김국진이다.


김국진은 1991년 KBS 공채 개그맨 7기로 데뷔한 후

박수홍, 김수용, 김용만과 함께 '감자꼴 4인방'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이른바 '감자꼴 사태'가 터지면서

김국진은 도피하듯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고 1995년 MBC로 복귀한다.


김국진은 복귀와 동시에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개그맨이 되었다.

그리고 1995년에 김국진과 이경규가 일밤의 공동진행을 맡게 된 것이다.


이경규로서는 약 2년반만의 일밤 복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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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 26일자 동아일보 기사.


이경규가 김국진과 함께

일밤의 메인엠씨로 복귀하기 약 한달전에 나온 기사다.


데뷔 이후 10여년간 단역의 설움을 겪던 이경규가

이제는 토크 코미디의 왕이되었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위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어찌보면 1993년 일밤을 떠난후에도

이경규가 또다시 일밤에 출연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그랬을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혹시 정확히 아시는 분?)


위 기사속에 이경규가 쓴 책 '몰래카메라를 사랑하셨던 국민여러분'의

소개가 나와 있는데, 1998년에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책에다 뭐 이런것까지 다 써놨나.. 싶을 정도로 자신에게 있어

조금은 창피할수도 있는 이야기들까지 가감없이 적혀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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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 출간된 이경규저 '몰래카메라를 사랑하셨던 국민여러분' 표지.


결국 1995년에 일밤으로 복귀해 진행자가 된 이경규는

일밤의 양심냉장고 코너로 1995 MBC 코미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1997년에도 역시 일밤 이경규가 간다

코너를 통해 MBC 코미디대상을 수상하는등

이경규의 전성기는 9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이후부터 2018년 현재까지 이어진

이경규의 활약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제 예능 프로그램을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요즘은 이경규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잘은 모른다.


그리고 내가 어릴때 너무나도 재미있게 보았던 일밤의

영상들을 유투브를 통해 다시 보게되면 뭔가 현재와는

웃음코드가 잘 맞지않는 부분들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딱히 이경규의 팬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데뷔 40년이 다 되어가는 이경규는 무려 30여년간 방송계의

정상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어찌보면 기이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이정도로 롱런을 했다면 이경규를 두고

단순히 운이 좋았던 방송인이라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말로는 설명이 안되는 그 무엇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991년, 이경규가 원미경과 함께 출연한 동원참치 TV 광고.


이경규가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던 91년의 영상이다.


16초부터 원미경이 비디오 카메라로 이경규를 몰래찍는

씬이 등장하는 것은 1991년 당시 최고의 인기였던 일밤 몰래카메라를 패러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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