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2024년 1월 26일∼2월 12일

기억을 못하는 건지 기억에 없는 것인지,

어렸을 때 보지 못한 어탐을 지금에서야 보게 됐다.

먼저, 보게 된 계기는 현실로부터 도피였고,

보기 전 가졌던 인식은 가끔 본 디시콘(BMO) 이미지가 전부였다.

혹시 시간낭비일까 나무위키를 정독하고 재생한 1화.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노잼이면 빠르게 접자는 생각을 가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드벤처 타임은 너무나 재밌는 시간이었고 감사한 경험이었다.

그전까지 어떤 접점도 없던 갤러리를 방문해서 후기를 적고 있으니 말을 다한 셈이다.

물론 표적층이 어린이인 애니를 성인의 눈으로 보니 식상한 에피소드가 더러 있기도 했다.

소소한 재미가 있어도 이미 자극으로 범벅된 마음에 울림이 없다고 해야할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1화부터 고비를 겪은 셈이다.

'공포의 잠옷파티'를 본 뒤 적은 메모에 그때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작이 노잼이라 접을 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맹세 연출은 나쁘지 않았다>

아직 세계관이 쌓이기 전인 1화일 뿐인데,

뭐가 그렇게 엄격하고 비뚤어졌는지 읽기만해도 눈이 쓰리는 찐농도 200% 쿨찐의 평가!

하지만 다행히도 이 평가는 연달아 이어지는 에피소드에 반전됐다.

'울룩불룩 해독제'

<여기서부터 꿀잼 시작? 대혼돈 느낌에 등장인물 시니컬한 반응 취저>

'사랑의 포로'

<절정의 재미, 소시오패스 아이스킹, 미친 표현력>

'코가손 할머니의 모험'

<캐릭터성, 아기자기하나 사연있는, 뭐하나 버릴 게 없다>

이때부터 나는 '우'세계의 매력에 확실하게 빠져들었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어김없이 메모를 남겼다.

꿀잼과 노잼 에피소드를 반복하며 쌓인 메모는 그렇게 누적됐다.

문제는 어드벤처 타임이 아니라 나에게서 기인했다.

나는 어탐을 보는게 익숙해지면서 동시에 불안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현실에 벗어나면서도 현실이 신경쓰여 빨리 보기 위해 사용한 배속기능이 문제였다.

나는 2배속은 기본이고 때로는 3배속, 심하면 4배속까지 사용하며 에피소드를 뇌 속에 때려박았다.

만약 이 느낌으로 쭉 갔더라면 나는 어탐을 본 걸 후회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전환점이 될 에피소드가 나타났다.

시즌 7, 마셀린이 주역인 뱀파이어 이야기 시리즈의 마지막인 '먹구름' 편

해당 에피소드가 내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이유는 끝자락의 노래 때문이었다.

Everything Stays

기존의 시간만큼 쌓인 빌드업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의 시너지.

모든 걸 둘째치고, 나는 이 노래에 충격을 받아 정속으로 감상했고,

감상이 끝난 이후 지금까지 내가 놓친 노래들을 생각했다.

배속 기능을 사용했기에 노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탐에서 노래의 비중이 크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가사만 빠르게 살폈지 노래를 즐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난 노래 중 좋았던 노래(베이컨 팬케이크)도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마음에 꽂힌 적은 없었다.

단순히 취향 문제였을까? 이 노래만 좋게 들린 이유는 지난 노래들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닐까.

여러 핑계와 이유를 떠올리다 근원에 닿았다.

내가 그 노래들을 유치하다고 생각해서.

왜 유치하다고 생각했을까?

내 눈에 덮힌 고정관념 때문에.

유치함을 규정하는 건 나이기에.

해당 질문을 통해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를 전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 나오는 노래를 주의깊게 들을 수 있었다.

후기를 마무리하며 느낀 감정은 늦게 봐서 아쉽다였다.

만약 어렸을 때 봤으면 어땠을까? 사람들의 반응이 최고일때 함께했음 어땠을까. 

이 애니가 어린 나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물론 그때와 지금은 같은 걸 봐도 다르게 받아들이겠지만 입맛만 다실 뿐이다.

마지막으로, 비모 과거로 시작하는 네편을 본 뒤 피오나와 케이크를 2화째 보다가 말았다.

세계관이 넓은 만큼 아직 보지 못한 컨텐츠가 많지만 지금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도는 여기까지 인 것 같다. 

오래된 시리즈인 만큼, 끝난 축제에 지각한 관광객이 된 느낌을 받았다.

갤러리에 후기를 쓰는 건 흔적을 남기려는 심리일까, 참 곱씹을거리가 많고 여운이 진하게 남는다.

나중에 피오나와 케이크의 시즌이 쌓인다면 다시 찾을지 모르겠다.

감사하고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