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 친절하게 댓글 달아준 분 덕분에 세상은 넓고 에이엄은 다양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아포시섹슈얼이란 개념을 알게 되니까 이거 딱 나 아냐? 싶더라. 더 정확히는 리토섹슈얼에 가까운 것 같지만 성적 끌림에 따라 행동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은 일치해. 성적 끌림을 거의 느끼진 못해도 그걸 거부하고 있다는 데서 내는 성향과 잘 맞는 라벨인 거 같다. 

 문제는, 이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여기 와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는 점이야. 그 전에는 성욕이 절정에 다할 시기를 보내느라 확신도 없었고 해서 성소수자 동아리 가입하기도 꺼려졌다. 가 봤자 패션퀴어니 뭐니 하고 욕 먹지 않을까? 기실, 그리스도교(가톨릭)신자라 들어가도 뭔가 눈초리(?)를 받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그 때문에 안전함과 소속이란 욕구를 다른 동아리에서 채울 수밖에 없었던 거지.  

 게다가 성격도 전형적인 내향인이라 사람을 많이 만나거나 자주 연락하지도 않고, 그러다보니 연애와는 더더욱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연애를 하면서 자기가 무성애자란 걸 더욱 확고히 깨달은 사람들과는 달리, 고민을 시작한 시점부터 생각하면 정체화 작업이 본괘도~마무리 단계에 오기까지 십년도 더 걸렸다. 이제야 난 베이스가 보통 이성애자랑 약간 다르긴 한데 이건 뭐지? 라는 의문에 답을 찾아가는 느낌이야. 

 사실 굳이 라벨을 찾자면 에이플럭스로 정체화해도 상관 없는 게, 난 사춘기 때는 말하거나 생각하는게 안티섹슈얼스러웠어. 그러다 점점 지금의 지향성으로 성장 내지는 진화해간 거지. 일종의 오토코리인 줄 알았는데 가끔은 외부의 여성을 자극으로 느끼고 반응까진 하고, 그 자신의 반응을 거부하는데 그게 단순히 금욕주의적 가치관 때문만은 아닌 거 같다. 금욕주의 때문이었으면 자위도 하지 말았어야지. 

 남들은 이런 얘기를 해도 전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성욕을 억압한다, 이성애자인데 자신을 못받아들인다며 부인할까봐 두렵다. 사실 이게 고민을 시작한 계기인지라 만약에 나 자신을 무성애자로 정체화한다 해도 주변의 이런 시선을 견뎌내는 게 너무 두려워. 사실 긴가민가 하면 나는 나일 뿐, 생긴대로 살자고 다짐하고 살아가면 되는데 그러기엔 얘전에 데인 게 좀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