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튼, 조선은 너무 광적으로 내부단속에 집착했던 게 사실이네.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미친 행정력을 가지고 있었지.”

“그 정돈인가?”

“관리를 파견할 때. 연고지를 피하는 상피제도나, 무관들을 곳곳으로 뺑뺑이 돌리는 등. 그 복잡한 행정체계가 조선조 내내 돌아간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지.”

“그런데, 어째서 왜란 때 고려처럼 군대를 모으지 못한 건가?”

“그건 행정체계가 안 돌아가서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 자체가 잘못되어 그런 거네.”

“아~ 그 제승방략체제 말인가?”

“그것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그럼?”

“그 당시에도. 조선의 어마무시한 행정력으로 군대를 다 모으긴 했네.”

“그래? 그런데 왜?”

“그게 …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군대를 다 모으긴 했는데, 사령관을 다 중앙에서 파견하지 않았나?”

“그야 당연히….”

“말하자면, 전방 사단장을 갑자기 지방 예비군 사단으로 발령내고, 하루 만에 싸우라고 하면 그게 제대로 돌아가겠나? 지리도 익숙하지 않고, 작전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말이야.”

“아~ 이제 이해가 되네.”

“그게 편집증적으로 지방관이 힘을 가지는 걸 두려워해서 그렇게 된 거라네.”

“그럼 그 문제만 없었다면…?”

“적어도 보름 만에 한양이 털리는 일은 없었겠지.”

“그런데도 난 아쉬운 게 신립이 탄금대에서 전멸하는 일이네. 그건 어떻게 생각하는 거?”

“사람들은 신립이 기마전에 매몰되어 탄금대를 택했다고 말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 이야기야.”

“?”

“전사한 신립이나 이일은 북방 제승방략을 만든 사람들이네. 다시 말하면, 전방 작전계획만 죽어라 파던 사단장에게 예비군 사단을 맡긴 셈이지.”

“...”

“그런 상황에서 흔히 천혜의 요새라 불리는 조령을 지키다가, 일본군이 응전하지 않고 우회해서 한양을 직공 하면 어떻게 하는가? 그러니 신립 입장에선 한양을 지키기 위해 대회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네.”

“그렇군.”

“보통, 결과만 놓고 실패를 하면, 다른 선택을 했다면 성공했을 거로 생각하지만. 반대로 어쩌면 더 큰 실패를 막은 것일 수도 있었던 게 아니겠는가?”

김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비행기는 중국 헤이룽장성의 무단장시의 하이랑 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은 발해의 수도인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가 있던 곳이었다. 공항에 내리자 김 박사의 낯빛이 바뀌더니 입을 열었다.

“어이, 임!”

“거, 또 뭔 쉰 소리를 하려고….”

“사실 이번 발굴 아니 조사는 비공식적인 거라네.”

“무슨???”

“자네도 알지 않는가? 중국의 동북공정 말이야.”

“아 ….”

“지금 중국 정부가 비공식 발굴 중인 상경성 유적은 사진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네.”

“그럼, 어떻게 이번 답사가 결정된 건가?”

“그게, 대학원생 하나가 여행 왔다가 무단장시 외곽에 뭔가 발견했다는 제보를 해줘서 비밀리에 온 것이네. 공식적인 절차를 밟으면 보나 마나 들여다보지도 못 할 테니 말야.”

“오호! 왠지 흥미진진, 두근두근 하구만.”

“그러니 흔한 관광객인 것처럼 행동하란 말이네.”

“껄껄껄!”

“왜 그러나?”

“자네 행색을 보게. 그냥 등산복 입고 해외여행 나온 한국 아재의 표본이 구만, 뭘 그리 호들갑인가?”

“이 사람이….”

공항엔 현지인으로 보이는 가이드와 상경부 유적을 발견했다는 대학원생의 친구가 미리 나와 있었다. 우리가 탄 차는 발해의 흔적을 찾아, 무단장시 외곽으로 이동했다.

...

* 상경성은 756년 발해 문황 대흠무가 만든 궁궐로, 2009년 발견된 제2 궁전지가 전면 19칸에 이른다. 

당나라 장안성에서 가장 큰 함원전(含元殿)이 11칸인 것을 생각하면, 발해가 얼마나 큰 국가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 중국은 2006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당 발해국 상경용천부 유적 보호 조례’를 통과시킨 후 외부인의 출입과 연구를 통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