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창작] 방과 후 상왕 라이프 -55-

ㅇㅇ(14.48) 2021.07.16 18:17:07
조회 582 추천 17 댓글 5
														


이방과가 타라를 말 그대로 탈탈 털어버린 것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전하께서 건주좌위의 그 애송이 녀석을 혼쭐내시는 걸 보니 제 속이 다 후련했사옵니다! 하하하하!"


"왜 아니겠습니까? 제깟 놈이 건주좌위에서나 도련님이지, 감히 상국의 땅에서 위세를 부리려 들더니 제대로 임자 만난 셈이지요!"


"그놈이 바지에 오줌을 지린 거 다들 보셨지요? 꼴에 부끄러운 줄은 알았는지 바락바락 소리질러대는 꼴이 참 볼 만 했지요, 큭큭큭!"


다음날 열린 회담에서 수령들이 마치 경쟁하다시피 타라와 건주좌위의 무례함을 성토하기 바빴던 것이다. 그 모습들을 지켜보며 이방과는 그저 흐뭇하게 미소짓고 있을 뿐이었다.


'타라 그놈, 앞으로 한동안은 제대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생겼군. 흐흐흐!'


여진족들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르는 자들이었다. 한 번 얕보이는 순간 사방에서 물어뜯으려는 자들이 지천에 널려 있기에 한 치의 틈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장차 건주좌위를 승계받을 유력한 후계자 후보가 만인이 보는 앞에서 바지에 실례를 하는 것도 모자라 대상왕에게 멱살을 잡혀 쩔쩔매는 추태를 보였다? 이건 단순히 개망신당한 것을 넘어 타라의 지위까지 위협받게 만들 수도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방과는 자신이 타라의 인생을 사실상 망쳐줬다는 것에 더할 나위 없는 쾌감을 느꼈던 것이다.


'놈의 기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알 길이 없지만, 말끝마다 명나라가 자신들의 뒤에 있다며 은근히 협박이나 해대는 꼴이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제 실력도 아니고 고작 타국의 국력에 기대서 겁없이 날뛰는 하룻강아지는 편히 살 자격이 없지! 암, 그렇고 말고!'


이방과가 그의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사이에도 수령들의 대상왕 찬가는 멈출 줄을 몰랐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대상왕이시지요! 대상왕께서 그 타라란 자에게 활을 쏘시는데...와! 아예 손이 안 보이실 정도였지 않습니까? 제 생전에 그렇게 빠르면서도 정확한 궁술을 구사하는 자는 전하가 처음이옵니다!"


알타리 만호 이귀야가 말하자 다른 여진 수령들도 이에 질세라 저마다 각자의 방식들로 이방과의 활솜씨를 찬양하느라 바빴다.


"다들 과찬이 지나치구려. 내 활솜씨는 부왕이신 태조대왕의 궁술에 비하면 고작 잔재주에 불과할 뿐이니 말이오."


이방과가 겸양을 표했지만 여진 수령들은 고개를 저으며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전하께서는 어르신의 아드님이시니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작금의 천하에서 그 누가 감히 전하와 실력을 견줄 수 있겠사옵니까? 어르신께서 안 계신 지금은 오직 전하야말로 천하제일의 신궁이시옵니다!"


"허 참! 이 사람들이 아예 작정을 하고 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구만!"


이방과는 껄껄 웃었다. 일단 칭찬을 들어서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어제 그가 보였던 무력시위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지 이전보다 더 많은 부족들이 조선에 복속할 것을 청해온 것에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역시 여진족들에게는 백 마디의 말보다는 명궁이 쏘는 화살 한 대가 보다 효과적인 설득력을 갖고 있는 셈이었다.


'물론 아직 화라온이나 모련위를 비롯해 아직까지도 아조의 편에 서기를 주저하는 부족들도 많긴 하지만...그들도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흔들릴 터!'


이방과는 바야흐로 그가 품고 있던 대계를 여진족들 앞에 펼쳐보일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태조대왕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제는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꼈소이다. 아무리 시속이 변했다곤 하나 이 북방 땅에서 감히 날 능멸하려 드는 자가 튀어나올 줄 누가 알았겠소?"


이방과가 짐짓 진중한 어조로 말하자 수령들도 분개한 표정으로 동조했다.


"맞습니다! 이성계 어르신께서 계실 때만 해도 이런 무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애시당초 건주좌위 일족들이 누굽니까? 부족들 간 경쟁에서 밀려나 살 곳을 잃고 정처없이 방황하다가 어르신께 의탁했던 맹가첩목아의 후손들 아닙니까? 먹여주고 키워줬더니 이제는 감히 어르신의 아드님이신 대상왕께 도전하려 들다니, 이토록 뻔뻔한 놈들이 또 어딨겠습니까?"


"자고로 변발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 했습니다!"


'...너도 변발이다만?'


어떻게든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자폭을 넘어 거의 팀킬에 가까운 무리수를 둔 수령에게 내심 쓴웃음을 짓던 이방과는 곧 표정을 가다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들의 말이 옳소. 과거 태조대왕께서 팔준마를 휘몰고 호령하시면 두만강 남북의 뭇 부족들이 부복하여 그분의 명령을 받들었었소. 하나 작금은 태조께 대한 공경과 예의를 망각한 자들이 차차 늘어나고 있는 듯 하여 내 심히 민망할 지경이오!"


"송구하옵니다, 전하! 저희들은 결코 어르신의 위용을 잊지 않고 있나이다!"


이방과의 한탄에 사색이 된 여진 수령들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한편,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통역 없이는 조선인들과 소통이 안 되는 우지개 수령 바하투는 혼자서 똑바로 앉아 눈만 깜박거리고 있다가 맞은편에 앉아있는 성효옥에게 시선을 돌렸다.


성효옥은 최근 이방과의 명령에 따라 김수산으로부터 우지개어를 익히고 있었는데, 뛰어난 학자인 아버지 성삼문의 머리를 물려받은 것인지 고작 며칠 만에 기본적인 회화는 가능할 정도로 괄목할 만한 실력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성효옥이 통역을 해줘서야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된 바하투도 분개한 표정으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속사포처럼 뭔가를 떠들어댔다.


"우지개 수령이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냐?"


이방과가 질문하자 성효옥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홍라녀, 그러니까 저를 도와 대발해의 영광을 재현시키실 대상왕 전하와 그 부친이신 태조대왕을 업신여기는 자는 이 북방 땅 한 귀퉁이조차도 감히 발 딛고 설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있나이다."


"허어, 그랬느냐? 고맙다고 전해주거라."


"예, 전하."


성효옥의 통역을 통해 이방과의 말을 전해들은 바하투는 기쁜 얼굴로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우지개 수령의 말이 참으로 옳소! 무릇 사람이 은혜와 예의를 모르면 두 발로 걸을 뿐인 짐승과 다를 게 무엇이겠소? 하나 돌이켜보면 태조대왕께서 승하하신 이래 아조가 그대들을 등한시했던 것이 작금의 사태를 초래한 하나의 원인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오. 조선의 백성으로서의 권리는 주지 않고 충성과 복종의 의무만 강요하는데 어찌 마음이 흔들리는 자들이 생기지 않을 수 있었겠소?"


이방과가 애통한 목소리로 말하자 수령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말은 안 했지만 태종 이래로 자신들을 그저 복종과 교화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조선 조정의 작태에는 학을 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성계 사후 수십 년 만에 자신들을 이해해주는 '높으신 분'과 만났으니 그 심정을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있을까?


"건주위의 이만주, 건주좌위의 동산 모두 거슬러 올라가면 그 선조들이 태조의 최측근이었소이다. 아조가 태조대왕의 기풍을 유지해왔더라면 이들이 명나라의 주구로 전락하는 일도 없었지 않겠소?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구려."


"전하! 저희들이 있지 않사옵니까? 저희가 떠나간 자들의 몫까지 충성을 다하여 전하와 조선을 섬기겠사오니 이만 슬픔을 거두시옵소서!"


급기야 감정이 복받친 건지 수령들은 눈물을 흘리며 꺼이꺼이 통곡했다.


"고맙소. 그대들의 우국충정을 알게 되어 나 역시 기쁘기 그지없구려. 하나 사람이 한 번 실수한 것을 깨달았으면 이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하는 법! 나는 이 기회에 그대들과 함께 대업을 도모하고자 하네!"


"오오, 전하! 그렇다면...!"


수령들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이방과를 마주보았다. 이방과 역시 인자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수령들과 하나하나 시선을 마주쳐줬다.


"맞네. 원하는 자들은 얼마든지 아조의 백성들로..."


"그럼 마침내 여진국의 한(汗)으로 즉위하실 결심을 하신 것이로군요!"


"......"


그간 잊고 있었던 그놈의 '한' 소리가 또 튀어나온 것에 이방과는 순간 인상을 찌푸렸지만,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령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잘 생각하셨습니다!" 라거나 "아골타, 보고 있나?" 라는 둥 신이 나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아니, 전하! 이게 다 무슨 말이랍니까? 한이라니요?"


옆에서 듣고 있던 신숙주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질문을 했지만 이방과는 이마에 잔뜩 힘줄을 돋은 채 나직하게 한 마디만 내뱉었다.


"다들 닥쳐."


"......넵."


그 살벌한 기세에 잔뜩 들떠있었던 여진 수령들은 순식간에 범 앞에 선 강아지마냥 입을 꾹 다물고는 벌벌 떨기만 했다.


******


그로부터 한참 동안 이방과가 열변을 토한 뒤에야 수령들의 착각이 불식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대상왕 전하의 말씀대로라면...주상 전하께서 이성계 어르신의 계보를 이을 만한 보기 드문 영걸이란 말씀이십니까?"


골간 올적합 수령 이아시응가의 질문에 이방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그러자 작년에 한양에 입조했던 수령들 중 한 명인 동속로첩목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런 말씀드리긴 뭐하지만...소인이 작년에 주상 전하를 뵌 적이 있었는데 딱히 그런 인상은 못 받았었는데 말입니다. 물론 보령에 비해서는 키와 풍채가 제법 크시긴 했습니다만..."


동속로첩목아의 말에 이방과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하! 자네가 그 후로 쭉 주상을 봤더라면 그런 말은 못 했을걸세. 사실은 내가 주상의 무술사범을 도맡아 가르쳐드렸는데, 그 자질과 실력이 어찌나 뛰어나던지 가끔씩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셨다네! 내가 도성을 비운 사이에도 수련을 게을리 하시지 말라고 일러두었으니 다시 만날 때쯤이면 얼마나 더 강해져 있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군!"


애지중지하는 종증손인 동시에 뛰어난 제자인 이홍위를 자랑할 기회가 생긴 이방과는 그야말로 팔불출이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려는지 잔뜩 들뜬 표정으로 '홍위어천가'를 불러댔다.


하늘같이 섬기는 이방과가 이토록 칭찬할 정도니 여진 수령들도 귀가 솔깃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하오나 아무리 뛰어나시다 한들 아직 약관에 이르시지 못한 분이 아닙니까? 아무래도 대상왕 전하 쪽이 더..."


여전히 이방과를 한으로 추대하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수령들 중 하나인 이귀야가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하려 했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그의 옆에 앉아있던 장남이자 한양에서 시위군을 지냈던 이거을가개가 이방과의 말에 동의를 표했던 것이다.


"대상왕 전하께서 말씀하신대로입니다. 일전에 주상 전하께서 역적의 수괴를 친국하신 적이 있었는데 겨우 12살밖에 안 되신 분이 다 큰 어른을 호령 한 번에 제압하신 것도 모자라 직접 검을 들어 일검에 죄인의 목을 날려버리셨습니다."


"맞습니다. 저희도 그 자리에 있었기에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가히 태조대왕께서 현신하신 듯한 무위를 발휘하셨으니, 과연 주상 전하께서도 대상왕 전하와 더불어 천하를 호령하실 만한 분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이거을가개와 마찬가지로 홍달손을 친국하는 현장을 직접 목도했던 낭삼파, 동모다치, 이도로고 등이 거들었고, 하나같이 일치하는 아들들의 증언을 들은 각 부족의 수령들도 비로소 납득하는 눈치였다.


"하하, 이거 참! 한 분도 아니고 무려 두 분씩이나 되는 호걸이 조선에 계시다니 마음이 든든해지는군요!"


이귀야가 희색이 만연하여 너스레를 떨자 낭가가내가 동의를 표했다.


"아무래도 하늘에 계신 이성계 어르신께서 조선과 우리 여진이 화합을 이루라고 도와주시고 계신 모양입니다!"


물론 아직 이홍위가 무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방과가 보증했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양에서 지내다 온 아들들이 증언하기까지 했으니 수령들은 이방과와 이홍위 모두를 섬기기로 가닥을 잡은 듯 했다.


기회를 놓칠세라 이방과는 본론을 꺼냈다.


"아까 하려다 만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나와 주상은 그대들 여진족들을 조선의 백성들로 받아들이고자 하네. 하나 그대들도 알다시피 서로 떨어져 살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따라서 어느 정도 서로에게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다네."


"익숙해질 시간 말씀이시옵니까?"


동소로가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다른 수령들도 궁금한 기색으로 이방과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방과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예상조차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네. 자고로 정이란 것도 서로 가까이 살며 교류가 있어야 생겨나는 것 아니겠나? 이를 위해서 주상은 그대들 중 용맹한 이들을 따로 선발하여 가별초로 삼고자 하신다네."


"가, 가별초...!"


여진족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이름을 듣고 경악으로 눈이 커졌다. 이성계와 함께 천하를 진동시켰던 무적의 군단을 자신들과 함께 재건하겠다는데 어찌 놀라지 않았겠는가?


"차, 참말이시옵니까...?"


이귀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이방과는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농담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하는 법이네. 내 어찌 이런 중대한 대업을 가지고 흰소리를 하겠는가? 내가 이 북도 땅에 오게 된 것도 가별초를 재건하여 훈련시키라는 주상의 어명에 따른 것이었으니 말일세."


그제서야 여진족들은 그간의 이방과가 보였던 행보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함흥에서 대라를 불었던 것, 이곳 북청에서는 크게 사냥대회를 열어 부족별로 점수를 매기고 포상을 내렸던 것 모두 처음부터 가별초 재건을 위한 포석이었던 것이다.


"대상왕 전하께서 제게 따로 언질을 주신 것이 있습니다. 가별초를 배출한 부족의 수령은 그 강역의 크기에 따라 아조의 벼슬을 내려 관리로 삼고 녹봉을 하사할 것이며, 그 땅을 계속 다스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입니다."


신숙주가 첨언을 하자 수령들의 입꼬리는 더욱 크게 벌어졌다.


아들들이 새로운 가별초의 일원이 되어 지엄한 조선왕을 보필하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덩실덩실 춤을 출 일인데, 벼슬까지 내려준다지 않는가?


"저, 전하! 소인 이귀야, 가아 거을가개를 기꺼이 가별초로 바치겠나이다! 받아주시옵소서!"


"소, 소인 동소로가무! 가아 청주를 종군토록 하겠나이다! 하찮다 여기지 마시고 부디 소인의 충정을 받아주시옵소서!"


"소인은 아직 자식이 없으니 저라도 입단하겠사옵니다!"


수령들은 앞다퉈서 자식들을 가별초에 입단시키고자 했고, 심지어는 본인이 직접 입단하는 것을 희망하는 자도 있었을 정도였다. 분위기가 과열되어 있다고 여긴 이방과는 일단 손을 내저으며 이들을 진정시켰다.


"자, 자! 다들 침착하도록 하시오. 내 가별초를 재건하겠다고만 했지, 아직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지 않소? 더구나 주상을 호위할 친위대를 뽑는 것이니만큼 결코 가벼운 마음만으로 결정해서는 아니될 것이니 돌아가서 숙고할 시간들을 주도록 하겠소."


"망극하옵니다, 전하!"


하긴 자기들이 보기에도 너무 생각없이 달려들었다는 자각은 있었는지 수령들은 뻘쭘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


회의를 마치고 군막에서 나온 이방과가 신숙주와 함께 차후 계획을 상의하기 위해 숙소로 돌아가려고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전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이방과가 돌아보니 그곳에는 모련위 수령 낭발아한이 서 있었다.


"낭 수령. 무슨 일이오?"


회의 내내 입을 꾹 다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낭발아한이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을 신기하게 여긴 이방과는 궁금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낭발아한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 뒤 말을 이어갔다.


"좀 전에 전하께서 말씀하셨던 건에 대하여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만..."


이방과는 그가 공표하기 전까지는 가별초에 대한 언급을 엄금하도록 수령들에게 주의를 줬었기에 낭발아한 역시 두루뭉실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말해보시오."


이방과가 고개를 끄덕이자, 낭발아한은 주위를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리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이번 사냥대회 말입니다. 혹 '그 건'에 선발할 인원을 뽑는데도 반영되는 것이옵니까?"


"그렇소. 물론 정식으로 입단 심사를 따로 치르긴 하겠으나, 아무래도 대회에서 거둔 성적들도 평가에 반영되긴 할 테니 말이오."


이방과는 그제서야 낭발아한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건주위와 건주좌위 사이에 끼어있다시피 한 모련위는 필연적으로 두 부족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이번 회맹 때도 조선의 편에 설 지, 아니면 건주위의 편에 설 지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일부러 대회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최대한 눈에 안 띄게 행동하고 있었던 건데 이제 건주좌위까지 확실한 조선의 적으로 돌아선 이상 모련위는 양 옆으로 포위된 것이나 다름없는 형세에 놓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만주와 동산에게 붙기에는 이방과가 버티고 있으며 아예 가별초를 재건하고 부족 단위로 북방 땅을 집어삼키려는 조선이 너무도 위협적이었다. 게다가 일이 잘 풀려 조선에서 내려주는 벼슬을 받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건주위나 건주좌위가 섣불리 공격할 수 없게 만드는 억제기 역할도 해 줄 것이니 낭발아한은 결국 조선의 편에 서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타라를 가지고 놀다시피 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이방과의 무력을 목격하고 보다 강자의 편에 서려는 여진족 특유의 심리가 작용한 것도 컸겠지만.


"뭐, 너무 걱정하진 마시오. 대회 성적이 저조했던 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인데 입단 시험 때 좋은 성적을 거두면 될 일 아니겠소?"


이방과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낭발아한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전하, 혹 사냥대회의 성적을 만회할 수 있을 정도의 공을 세운다면 그것도 평가대상에 포함될 수 있겠는지요?"


이방과는 옆에 서 있던 신숙주와 잠시 시선을 마주치고는 다시금 낭발아한을 돌아보았다.


"공이라 하였소?"


"예, 전하. 필시 마음에 드실 것이옵니다."


이방과는 잠시 낭발아한의 표정을 주의깊게 살폈지만 무슨 꿍꿍이가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좋소. 어디 얼마나 근사한 걸로 준비했는지 한 번 봅시다."


이방과가 허락하자 낭발아한은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한 뒤, 뒤를 돌아보며 박수를 세 번 쳤다.


"이리 나오시오."


이방과와 신숙주가 그쪽을 바라보니 한 덩치 큰 여진족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성큼성큼 걷는 자세는 장부다운 기상이 넘쳐흐르는 것이 여간내기가 아닌 듯 해보였다.


사내는 이방과의 앞까지 걸어오더니 넙죽 엎드리며 큰절을 올렸다.


"범찰의 아들이자 건주우위의 적법한 후계자 불화독이 대상왕 전하께 인사드리옵니다!"


자동등록방지

추천 비추천

17

고정닉 11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자동등록방지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79 설문 가족과 완벽하게 손절해야 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24 - -
1021892 공지 신문고 [19] 정신세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6.11 3026 25
1022066 공지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 공지 [3] 정신세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6.11 680 6
1017257 공지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 갱신차단 목록 [77]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4.06.01 1577 16
675327 공지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 정보 모음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1.27 28640 17
728432 공지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 시트(23.08.04) [6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05.20 16942 31
1027250 일반 명원작가작가야...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55 32 2
1027249 일반 조선 여왕 대역 보고싶어 [3] 대붕이(61.108) 10:49 33 0
1027247 일반 ㄱㅇㄷ)지금까지 대역으로 나온거_수정_재차수정.재수정.hwp  [9] 눈꽃과이야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40 66 0
1027246 일반 초코마왕)아무리봐도 성공해봣자 융커들이랑 왕족들까지 참수형각아님?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36 72 0
1027245 일반 초코마왕) 통일 ㅋㅋㅋㅋㅋ 눈꽃과이야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33 96 0
1027244 일반 을미고종 / 작가가 포기 하지 않고 [2] 대붕이(221.168) 10:24 143 4
1027243 일반 여말선초 고려 재건 주제인 웹소 있음? 대붕이(211.224) 10:21 32 0
1027242 일반 초코마왕) 저 군부 애들 뭔 생각이지 [4] 가챠깡에손이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19 140 0
1027241 일반 ㅋㄷㅌ)와 이번 전투 변곡점인가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17 85 0
1027240 일반 뭐야 쿠데타 연참이야? [2] 풀로늄쌍화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17 83 0
1027239 일반 삼국지 대역 여러개 같이 보니 햇갈리네 [1] (18-701201)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12 38 0
1027238 일반 띵군)크아아악!! 나는 흑기와 경복궁이 좋은데!!! [2] 알룰로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9 141 4
1027237 일반 초코마왕) 프로이센 상남자식 비스마르크의 청혼 [1] jsj303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7 134 1
1027236 일반 뭐임 쿠데타 왜 2편올라옴? [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0:02 119 1
1027235 일반 띵군) 현지 본 다른 친왕들 반응 [2] 대붕이(121.159) 10:01 147 0
1027234 일반 띵군, 스포, 약후) 현지를 위한 의학적 조언 [1] NEWBNEW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9:52 156 4
1027233 일반 초콧대 이거 뭐지 통일?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9:52 88 1
1027232 일반 초코마왕)마지막에 나온 청혼이 가관이네요. [3] 노스아스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9:50 159 3
1027231 일반 ㄱㅇㄷ) 무기 관심 없는 입장에서 20세기 무기 개발은 시에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9:44 75 3
1027230 일반 띵군)대한 "그치만 괜히 이제와서 명나라 따라하긴 좀 그렇지?"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9:32 204 2
1027229 일반 띵군)"그치만 명나라 패배국가고..." [3] 와이번ㄷ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9:27 251 4
1027228 일반 띵군) 차갑고 카리스마 넘치는 냉미녀 공주 [1] 대붕이(121.159) 09:24 187 2
1027226 일반 추가령보다 철령으로 다니는게 편한가 대붕이(183.109) 09:17 36 0
1027225 일반 띵군)현지의 초능력:주변 사람을 순욱으로 만듦 [4]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9:14 206 4
1027224 일반 폭통) 조지원 각하 AI 팬아트 [6] 다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9:12 172 4
1027223 일반 명군)동궁이 좁아서 다 안들어간다고 [2] 전상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9:09 193 7
1027222 홍보 만약... 동로마 제국이 전간기까지 살았다면?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55 80 0
1027221 일반 띵군)폐주가 국혼전개 쓴 건 이거 노린것도 있지 않을까 [3] ㅇㅇ(220.84) 08:54 306 10
1027220 일반 편살) 루소는 유교적으로 거유는커녕 호로자식이라 [4] 헤트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53 143 0
1027219 일반 띵군)현지가 아빠를 많이 닮았네 [2] 대붕이(1.240) 08:51 210 6
1027218 일반 아래 글 보니까 웃기네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44 97 1
1027217 일반 띵) 제목이 시월드가 아니라 며느리월드인 이유가 있었구나 [1] 건전여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39 404 11
1027216 일반 ㄱㅇㄷ) 몬테규 가문과 캐퓰릿 가문은 서로 원수 였다. jsj303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33 102 4
1027215 일반 경제연산 정주행중인데 연산군 정통성이 그리 강했음? [19] 익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28 343 3
1027214 일반 띵) 웰컴 투 며느리월드 [2] 대붕이(211.114) 08:18 246 9
1027213 일반 ㄱㅇㄷ) 돌기와집 매력있어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15 92 2
1027212 일반 패튼이 중국전선에 파견된 대역 [2] ratatuilatt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6 61 2
1027211 일반 폴프메) 정주행 중인데 이게 다 고증임? [3]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8:05 152 3
1027210 일반 19세기 극초반 조선으로 청나라 딸 수 있음? [4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31 348 1
1027209 일반 (스포)(을미고종) 빌덕제 : 발키리 날 가져요 엉엉 [1] Scharnhorst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0 260 1
1027208 일반 (을미고종) 엄훠 전에는 해군을 보내주더니 Scharnhorst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56 171 1
1027207 일반 조혁시) 초반부 이선의 러시아행은 다른 대역 전개를 오마주한 걸 수도?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37 186 4
1026957 공의회 말머리 탭 투표 개시 [18] 정신세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3 819 16
1027146 공의회 완장 깡계제 부활에 관한 1차 투표 [3] 정신세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23 212 4
1027205 일반 ㄴㄷㅆ 시리즈 뭐 [6] 라이로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49 208 0
1027204 일반 왜 위나라는 인물들 인기가없음? [4] 대붕이(14.38) 03:23 194 0
1027203 일반 ㅋㄷㅌ) 나중에 박제순이 총리대신 될려나? [1]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22 146 0
1027202 일반 폴프메) 폴리투에서 여왕이 나올 수가 있나? [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3:00 359 1
1027201 일반 폴프메 보니까 띵군 생각나네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41 124 1
1027200 일반 삼국지만 유명한이유가 머임? [9] 대붕이(14.38) 02:31 246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