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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국민당 최후의 희망 쑨리런

아이신기오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03.05 20:56:32
조회 1168 추천 21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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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리런, 하츠 오브 아이언 4 기준 무려 성능이 6/4/3/2, 진짜 롬멜의 4/4/2/3 보다 더 높다)

오늘은 군벌이 아닌 하츠 오브 아이언 중국의 꿈과 희망이자 실제로도 명장이었으며 유일하게 중공군 명장 린뱌오가 두려워한

신1군 사령관, 쑨리런을 알아봅시다.

1900년 안후이 출생으로 신문화(유럽, 미국)에 적극적이면서도 유복한 집안 덕분에 일찍이 쑨리런은 서구권 문화에 익숙했다. 게다가 본인 머리도 좋은 편이라 1920년 칭화대 공학과에 입학, 1923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

준수한 외모에 취미가 야구라 체격도 좋아 칭화대는 물론 지역에서 유명했다고 전해진다.
(실력도 좋았는지 1921년 대학 대표로 극동야구대회 금메달까지 딴다)

졸업과 동시에 학장 추천으로 미국의 명문 공대, 퍼듀 대학교 유학길에 오른다. 토목공학을 전공했으며 우수한 성적을 받았지만, 갑작스럽게 진로를 바꿔버린다. 바로 중국에서 국민당 북벌이 발생한 것이다.


쑨리런은 애국자였다. 본인의 능력을 최대한 조국의 현 상황에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원했고, 곧바로 퍼듀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이번엔 버지니아 군사대학에 입학한다. 벌써 대학물만 3번째
(다만 1924~26년 동안 일리노이주 유수의 대기업, 시카고 철강공업 취직을 두고 고민에 빠지긴 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고민이라 뭐라 말하긴 힘들 듯)

귀국한 후 국민당 입당 및 국부군 입대 의사를 밝힌 그는, 장제스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대학물 3번에 미국 정규 군사대학 졸업생이니 인재가 매우 부족했던 장제스 입장에선 반가울 수밖에, 실제로 1927년 상등병 입대 후 얼마 못가 바로 연대장으로 고속 진급했다.

장제스의 총애는 1937년 정점을 찍는다. 당시 쑨리런은 불과 38살에 장제스 직속 독일식 사단, 신38사단의 사단장이었고, 37년 시작된 상하이 전투에서 신38사단은 토치카와 시가전 전술로 일본군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에 장제스는 매우 흡족했고 한동안 회의 때마다 쑨리런 같은 인물이 더 필요하다며 칭찬했다.

그러나 점차 분위기는 파국을 향했다.

쑨리런은 오랜 미국 생활로 개방적인 인물이었다. 생명을 존중했고 부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했으며 오히려 의견 개진을 권장했다. 상관의 잘못된 명령엔 항의하는 것도 의무라 강조했을 정도. 이는 당시 일본군으로 표현되는 아시아권 전반의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형태의 상명하복 군사 문화와 사뭇 달랐다.

실제로 쑨리런은 상하이 공방전에서 단순 돌격 대신, 철저히 지연전을 수행했다. 지뢰와 기관총으로 만든 토치카 수 십개를 폐허로 변한 상하이 시가지 곳곳에 조성한 후, 일본군 보병 스팸을 갈았다. 게다가 주변 고층건물에 정찰병을 파견하여 정찰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했다. 보고 배운대로 전형적인 미군 교리에 따라 움직인 셈이다.

반대로 장제스를 필두로 웜포아 인맥(군관학교 라인)은 정반대였다. 쑨리런은 반대했지만 장제스는 보급을 무시하고 무려 70만을 상하이에 때려박았으며 보급은 개판에 지휘 혼선만 빚었다. 정작 상하이 외곽의 콘크리트로 건설된 최신식 방어선, 오송 방어선을 담당할 병력은 70만 꼬라박으로 반쯤 유기되었다.

그러나 장제스의 총애 자체는 1947년까지 계속되었다. 마찰을 빚긴 했지만 성과는 확실했기 때문이다.

1942년, 남방작전으로 동남아 전선이 개막되자 영국과 미국은 중국의 원정군을 요청했다. 이에 5군 사령관 두위밍의 추천으로 쑨리런이 낙점되었고 이후 신38사단은 버마로 출병한다. 쑨리런의 유창한 영어 실력 등, 능력도 능력이었지만 두위밍은 사사건건 전략전술에 딴지를 거는 쑨리런을 이참에 치워버릴 요량으로 추천했다.

버마에서 쑨리런은 파병과 동시에 반쯤 병신된 영국군 패잔병과 중국군 1개 연대 병력, 도합 1100명으로 버마 북부 강변에서 일본군 7000명을 포위 섬멸해버리는 대전과를 세운다. 당시 일본군 1700이 전사하고 4000여명이 부상당한 반면 중국-영국군 연합은 전사 200이 고작이었다.

아직까지 쑨리런을 총애한 장제스는 아예 신1군(New First Army)으로 개칭하고 독자적인 작전권을 부여한다. 영미군은 이 신1군을 X군이라 불렀는데, 아무튼 '영어가 원어민 급으로 유창한' 쑨리런에 영미군 지휘관들은 매우 호감고닉으로 여겼고

실제로 1945년 중반부터 찔끔찔끔 중국에 넘겨준 셔먼 전차를 쑨리런의 신1군엔 1942년부터 줬다. 더불어 미군 M1 철모에 캐런드, M1A1 기관단총과 콜트 권총 등, 미군 물자를 대거 양도했으며, 장제스와 관계는 최악이었던 미국 스틸웰 군사고문단장이 쑨리런은 매우 총애했다. 동양의 롬멜이란 별명도 스틸웰이 붙여준 것이다.

1945년 종전까지 신1군은 버마 전선, 이후 45년 6월부터 광시성 전선에서 종군하며 일본군 상대로 숱한 승리를 거두는 신화를 써내렸다. 장제스는 비록 말은 지지리도 안 듣고 하라는대로 안하는 주제에 미국이랑 너무 친한 쑨리런은 점점 마음에 안 들었지만, 능력은 확실하니

국공내전 당시 만주 공세에 투입했다. 그 국부군의 사형 선고라 알려진 만주 전선 말이다.

만주의 신1군은 두위밍을 비롯한 국부군 타 부대의 비협조, 보급 부족, 명확하지 않은 전략 목표 3중고 속에서 유일하게 중공군의 공세에 맞서 승리를 거두었다. 두위밍의 5군이 개박살나서 공중분해된 것과 반대였다.

당시 중공군 린뱌오는 직접 대놓고 이렇게 말했다.

"우린 신1군 없는 국부군은 100만이 와도 두렵지 않다"
(이후로도 린뱌오는 신1군에 대해 사석에서 수시로 언급했다)

그러나 만주 전역 패배 책임은 쑨리런이 받았다. 두위밍이 책임을 모두 쑨리런에 뒤집어 씌워버렸다. 당시 장제스는 리쭝런과 정말 치열한 권력 다툼 속에 살짝 맛이 간 상태였기에 본인의 최측근인 두위밍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고

결국 쑨리런은 일선에서 물러나고 형식적인 감찰위원 직을 받는다.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956년, 장제스는 숱한 해외 인맥과 영어가 능숙하며 아직 50대인 쑨리런을 본인을 대체할 지도자로 미국과 CIA가 공작할 것이라 의심했다.

이후 실제로 쑨리런 가족 포함 주변 인물 300여명을 체포하여 심문하는 등 압박했지만, 물증은 없었다. 그러나 장제스는 쑨리런을 그대로 놓아줄 생각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쑨리런은 이후 무려 1988년까지 30년 넘게 가택연금으로 갇힌다. 물증은 전혀 없었지만, 당시 대만은 독재국가였고 혐의는 만들면 그만이었다.

당시 쑨리런의 해외 인맥들은 일제히 분노했다. 퍼듀 대학 동문들이 대표적이었으며 해외 군대 인맥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중엔 무려 아이젠하워도 있었다.

그러나 이 분노와 항의는 오히려 장제스의 의심만 강화 시켰다. 정말로 쑨리런이 본인을 대체할 인물로 낙점된 것이라 여겼다. 결국 후일 메이리다오 사건 당시 대만처럼 해외 항의를 일절 무시했다.

88년 장징궈 사망 후 기나긴 연금이 해제된다. 하지만 87세의 노인은 더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몸도 마음도 상한 상태였다. 이후 별다른 행적 없이 1990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뒤늦게 2001년 정부 재조사로 혐의가 조작됐음이 인정되었고

2011년 정부 공식 사과와 쑨리런의 집이 추모 기념관 및 국립 박물관으로 지정되는 등, 사후약방문 조치가 이뤄졌지만

안타깝게도 쑨리런의 아내 및 대부분의 동시대 친척들은 모두 노환과 병세로 세상을 떠났기에 본 명예회복을 직접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쑨리런의 일대기가 끝났다.

하츠 오브 아이언 중국의 꿈과 희망인 쑨리런은

모든 능력을 발휘하여 중국을 위해 노력했지만

돌아온 건 30년 넘게 이어진 가택연금이었다.

만약 쑨리런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던 1924~26년

이때 현실을 택했으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위에 언급되는 두위밍도 트롤로 묘사되지만 애도 명장임 그런데 넷이나 세간에서 왜 저평가되냐면



스틸웰때문임 스틸웰 요청으로 쑨리런이랑 같이 버마 파병 되었고



쑨리런이 아니꼬아도 명령 따라야지 하고 버마에서 죽치고 있던 반면에



애는 지 평판 무너지는거 감수하고 철군 감행해서 지 휘하 병력 정글지옥에서 꺼내온 애임



하지만 일본군의 반격 풍토병과 기아 그리고 정글속 비전투 손실로 인해 원정군 절반으로 줄어들어버렸고 이 소식을 들은 장제스가 대노해서 죽으라고 원난성으로 보냈


는데 그 병력 가지고 원난성이랑 남서부 군벌을 제압해서 국민당 후방 안정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함



그런데 왜 저 글에서는 트롤로 나오느냐?


참군인이였던 쑨리런은 위에서 내린 명령이 아무리 개같아도 우리는 군인인데 항명하면 쓰냐고


장제스에게 꼰질렀고 이에 두유밍이 원한을 가진거



만주에서 전투도 두위밍이 트롤한 걸로 나오는데



두위밍은 그 린뱌오를 상대로 산해관 뚫고 진저우 점령해서 화북 침공 막고 시펑전투에서 린뱌오 격퇴후 장춘시를 차지함 이에 린뱌오가



정면승부는 안되겠다는 판단하에 게릴라전으로 전환 후방을 초토화시켰고 계속 몰리고 몰린 두위밍은 통화에 고립됨



두위밍은 장제스에게 구원요청을 보내지만 그때 장제스가 미친건지 아니면 우리가 모른 사정이라도 있는건지 구원요청을 씹어버리고



두위밍은 장장 2개월동안 우주방어로 린뱌오 공세를 막아내야 했음



린뱌오가 마무리로 대대적인 공세로 시핑 점령후에 국부군 포위하자 두위밍은 후방방어 후퇴로 유인


린뱌오군을 작살내며 시핑 탈환함 이에 열받은 린뱌오가 시핑 공세를 계속 하지만 실패했고


6월에 장제스가 마침내 구원군을 보내 중공군은 후퇴함 이때 중공군 사망자 13000~40000 국민당군 3000에서 5천으로 교환비가 엄청난 대승이였음



이에 한숨 돌린 두위밍은 후반 안정화해야한다고 장제스에게 건의했지만



미국에게 중공이랑 평협하라고 강요받고 있던 장제스는 이 건의안을 무시 마셜이 정전협정을 주선하고 귀국하자마자 만주에 어택땅 찍으라고


명령 내림 그 뒤는 머 국부군이 중공군에게 증발하는 요심전역이 일어났고 그대로 국부천대로 이어지게 되는거



린뱌오가 두위밍을 까면서 쑨리런을 높인것도 두위밍에게 물먹었던 과거 +직접 붙지 않았던 쑨리런을 고평가해도 자신에게 해가 될게 없기때문임



두위밍이 졸장이였으면 중공에서 계속 포섭할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지



당대 세간이 두위밍을 향한 평임




화동 야전군 사령원이던 천이는 두위밍을 보고 싶어 하였다. 두위밍은 천이와의 면담을 거부하였다. 두위밍은 전범으로 10년 동안 개조를 받다가 1959년 12월 4일 특사로 풀려났다. 그후 여러 차례 저우언라이와 천이 등 중국 지도부 인사들과 접견했다. 12월 13일 두위밍은 저우언라이 및 천이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생도 두위밍은 스승을 볼 낯이 없습니다. 스승을 따라 혁명의 길로 가지 못하고 반혁명 대열에 섰습니다. 죄송합니다.” 황푸군관학교 시절 저우언라이는 정치부 주임이었다. 저우언라이는 자신의 생도였던 두위밍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생도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선생이 잘못 가르친 탓입니다.” 두위밍은 또 천이에게도 토로하였다. “내가 화이하이 전장에서 막 포로가 되었을 때 천 사령이 나를 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반동적 입장을 견지하여 만나기를 거부했습니다. 완고한 태도를 보였으니 죄가 무겁습니다.” 천이는 “과거의 일일 뿐이오.”하고 웃었다.




1960년 5월 저우언라이와 천이는 인민대회당에서 영국 원수 몽고메리를 만났다. 그때 두위밍을 청하여 함께 만났다. 저우언라이가 몽고메리에게 두위밍을 소개하자 몽고메리는 “두 장군, 당신의 백만대군은 어디로 갔습니까?” 하고 물었다. 두위밍은 천이를 가리키며 “모두 저 사람에게 보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두위밍은 석방된 뒤 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두위밍은 1981년 고질인 신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을 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타이완에 있는 동창, 친우, 동포들은 민족의 대의를 중하게 여겨 평화통일을 앞당겨 달라.” 중국 공산당은 두위밍의 추도식에서 이렇게 추도했다. “두위밍은 곡절 많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의 후반부는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인민의 혁명사업에 공헌했으며 인민들은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유명한 애국인사이다.” 두위밍은 전범 중 가장 먼저 석방되었다. 사망 뒤에는 베이징 교외의 빠바오산 애국혁명열사능에 묻혔다.



호이4에서 중화민국 장군 양대희망으로 여겨지는



쑨리런도 두위밍도 명장이긴 했음 다만 상사가 장제스 였을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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