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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 내 슬로바키아의 경제적 발전: 역사적 고찰 1)

kriegsmarin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8.21 00:2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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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마티아스 벨 대학교 (Univerzita Mateja Bela v Banskej Bystrici)

사회과학 및 상업과 경제학에 대한 체코 저널 (Czech Journal of Social Sciences, Business and Economics)

저자 Čajka Peter 외 2인, 2017년 1월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21295381_ECONOMIC_DEVELOPMENT_OF_SLOVAKIA_WITHIN_AUSTRIAN-HUNGARIAN_MONARCHY_A_HISTORICAL_REVIEW



초록

이 기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 내 슬로바키아 지역의 주요한 특정 기간의 경제적 발전에 대한 간략한 검토를 제공하고자 한다. 간략하지만 심층적인 분석은 사회, 정치, 경제와 같은 모든 결정적인 요소들을 고려하여, 이 요소들이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의 개혁 이후 19세기 초까지 지방 산업과 농업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던 영향을 고찰할 것이다. 관련 질적 및 양적 자료의 개입으로 인해 이 연구는이 지역의 정치적, 경제적 변혁에 의하여 변화한 지정학적인 역할, 지위 및 영향력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을 강조하였으며, 동시에 중부유럽에서 군주국이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지위를 부여하였다.

핵심어: 경제적 후진성, 경쟁력,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 슬로바키아 국내 시장

개요

제각기의 정치 체제는 특정한 환경에 존속한다. 그러므로, 제 사회의 정치 체제는 사회 체제의 하위 체계에 속하는 것이다. 경제와 특정 사회 체제를 만드는 모든 요소는 정치와 사회 체제의 연관성을 분석하는 출발점이 된다.오늘날 존재하는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사회 경제 체제의 개요와 기원을 설명하려면 그 이전과 이후에 전개된 경제, 정치, 사회 및 역사적 사건들의 광범위한 목록을 밝혀야 하며, 여전히 중부유럽의 지정학 분야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요소들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17세기와 18세기의 경제 상황 자체는 합스부르크 군주국 내 슬로바키아 지역의 전형적인 산업적 후진성과 농업이 지배적인 사회로 설명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영향을 끼쳤으며,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체 및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 수립과 같은 중부유럽에서의 수많은 획기적, 역사적 사건 및 정치적 결과와도 관련이 있었다.

1790-1890년의 슬로바키아의 경제적 관계

마리아 테레지아의 개혁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이원론 내부의 정치적 합의를 반영한 결과였다. 황제 요제프 2세(Joseph II)의 계획은 이 사실을 훨씬 덜 고려한 것이었고 합스부르크 국가의 모든 국가 체제에 헝가리를 제한적으로나마 느슨하게 편입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계몽주의 말기인 18세기 말엽부터 헝가리의 특수성과 근대 헝가리 국가를 정치적 권력의 독립적인 주체로서 강조하려는 시도가 다시 유행했을 때 그를 뒷받침하는 일부 반대의 경향을 관찰할 수 있었다. 헝가리 국가로서의 지위와 내용을 강조하려는 시도 외에도, (진정으로 심각한) 국가의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도 큰 역할을 차지했다. 당시 슬로바키아를 포함한 헝가리 왕국 전역은 체코나 오스트리아와 달리 비교적 안정된 사회구조를 가진 농산업-수공업의 특성을 훨씬 더 오래 유지했다. 일부 거물급에 속하는 가문 외에도 자유 중소 귀족의 수는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증가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비교적 많은 자유 시민 계급은 단일 군주국에서의 삶에 영향을 주었고 보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경향의 소유자가 되었다. 따라서 부르주아 계급이 아닌 그러한 사회정치적 환경이 현대 헝가리 정치의 뿌리를 대표하였던 것이다. 19세기 전반기에는 인구가 증가하여 거의 230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렇게 유리한 인구 증가 추세는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의 발전에 부합하거나 일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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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의 인구 증가 (1800~2020년), 단위 백만명


1867년에 공식 출범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원국가는 슬로바키아 민족주의 운동의 발전 여건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이로 인해 체코와 슬로바키아 간에 문화적 또는 정치적 상호 관계가 더 밀착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민족주의 운동의 활동 범위는 헝가리 왕국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었다. 1848~1849년의 혁명기에 범슬라브주의(Pan-Slavism)나 오스트리아-슬라브주의(Austro-Slavism)를 언급했던 모든 이상과 환상은 한때 휘청거렸던 신절대주의 오스트리아 제국 정치 체제의 전환과 회복기에 정치적으로 상당히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슬로바키아는 독립된 환경에 둘러쌓인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의미에서 주변부에 가까웠다. 여전히 국가 생활의 중심은 헝가리 왕국 수도 부다페스트(정치 및 문화 생활의 심장부)였다. 당시 헝가리의 입장에서는 제2의 군주정이었던 오스트리아의 빈과 함께 경쟁의 장을 마련하여 상업 및 생산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수공업과 제조업 생산, 원천자원, 수송능력, 우수한 자격을 갖춘 노동자의 잠재력, 19세기 전반 산업 변화의 과정 가운데 우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에서 산업혁명의 진화와 그 진로가 다음과 같이 상당히 불공평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슬로바키아의 낙후성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 당시 체코와 슬로바키아 안에서 경이로운 문화적 유산을 남긴 유대인과 독일인의 그것이 있지만 이것을 논의하자면 우리 논문이 중점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분야의 범위와 주제를 벗어날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슬로바키아 지역의 경제적 발전

산업화의 새로운 물결은 체코 지역에 비해 슬로바키아의 영역에는 훨씬 약하게 불어닥쳤다. 기술적,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생산량은 여전히 적었으며 길드 조합 및 수공업품을 생산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브라티슬라바Bratislava와 코시체Košice를 제외하고 슬로바키아 남서부에서 설탕 공장과 같이 주로 식자재 산업에 전념하거나 목재 생산, 펄프 및 제지 생산을 책임질 더 큰 규모의 제조업체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광산 개발과 야금 생산은 그 당시의 전통적인 위치를 유지했다. 포드브레조바Podbrezová의 현대적 생산 방식의 경우를 제외하면, 철 생산도 기존의 전통적 방식이 우세했다. 광물과 석탄 같이 풍부한 자원은 극히 일부에서만 사용되었고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개발이 이루어졌다. 추출된 철광석의 거의 1/3은 (예를 들어 비트코비체Vítkovice에 위치한) 체코의 제철소로 수출되었다. 그러나 귀금속의 추출과 생산은 미미해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현 슬로바키아 경제 전반의 중요한 특징인 기계공학에서 두각을 보인 기업은 당시에는 단 한 곳도 등장하지 않았다. 슬로바키아 전역에 퍼져 있는 소규모 생산의 경향으로 인해, 장래가 촉망되거나 유명한 산업 및 생산 지대는 형성되지 않고 있었다.

현대적인 교통 및 통신 체계의 개발이 지연되었다. 보다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철도의 건설은 이중군주국 수립 이후인 60년대 말에 시작되었다. 슬로바키아에는 1869년까지 총 160km의 철로가 건설되었다. 코시체에서 질리나Žilina로 가는 타트라 간선 철도는 보후민 모라비아 철도로 전환되어 1872년에 개통되었다. 부다페스트에서 즈볼렌Zvolen(조욤Zólyom, 헝가리어 지명)을 거쳐 브루트키Vrútky까지 이어지는 선로는 1872년 개통됐다. 트르나바Trnava와 트렌친Trenčín 사이의 선로 구간도 그 해에 완공되었다. 질리나에서 브라티슬라바로 향하는 철도는 1878년 포바지에 지역에서 개통되었다. 1980년까지 1500km의 철로가 건설되었으며 이는 헝가리 전체의 평균보다 훨씬 못미치는 수치이다. 이러한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헝가리는 사회적 빈곤에 시달리는 국가이다. 경제 발전의 여건이 취약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슬로바키아인의 인구 수용능력은 유리했지만,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19세기의 지난 마지막 30년 동안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뉴분트Danubeland(포두나이스코Podunajsko, 현 헝가리 국경과 접하는 곳이다.) 중부와 저지대 또는 단순히 해외로 이주해갔다.

저개발되고 소규모 생산에만 치중했던 슬로바키아 경제의 성격이 사회적 영향을 미쳤다. 슬로바키아인 노동계급은 저지대, 주로 부다페스트에 일자리를 찾아 들어갔고 노동 단체를 결성했다. 노동 운동은 1890년대까지 거의 존재하지 않았는데, 어쨌든 그 단어가 함축하는 조직적인 행동이라는 참된 의미에서 바라볼 때 그러하다는 것이다. 경제 분야의 중대한 변화는 19세기 중반의 사반세기 동안 합스부르크 제국의 헌법 제정 및 정치 체제의 변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1850년 헝가리와의 국경 폐쇄는 새로운 경제 정책의 첫 신호였다. 헝가리와 군주국 서부 사이의 관세 국경은 1850년까지 존재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체코-모라비아-슬로바키아 통합에 유리한 공동 시장을 만들 수 없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관세 금지주의에서 균형 잡힌 관세 보호로 선회했고 다른 국가에 대한 경제적 봉쇄의 장벽을 허물었다. 1850년 3월 26일 제정된 법률은 무역과 수공업 회의소를 만드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가능성이 뚜렷한 기회를 쫓는 이익사업단체로 활동했다. 더하여 다른 법적 조치, 세금과 재정 문제, 교통 문제, 즉 철도 건설에 대한 정치적 측면에 대해 논평하고 언급할 권리가 있었다.또한 국내외 시장조사를 통해 그 연구의 결과를 발표하고 전시회를 조직하며 기술 진보를 도모하고 새로운 형태의 기업 설립을 촉진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들 회의소의 중요성은 입법기관에서 별도의 대표가 임명되어 관련 업무를 관장한 사실로 입증된다. 1860년대 오스트리아-헝가리 대타협(Österreichisch-Ungarischer Ausgleich)이 있기 전까지는 슬로바키아와 헝가리 전역에서 이 회의소가 활발히 가동되었다. 19세기 말에는 전반적인 경제 호황 덕분에 경제 기반이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도 생산과 자본의 집중화 현상이 이루어졌다. 헝가리 왕국 정부의 적절한 경제 정책은 헝가리의 빠른 경제적 발전에 기여했는데, 헝가리는 이중군주국의 어느 구성국보다 경제 성장이 빨랐다. 군주국에서 철강업 생산은 로스차일드 가문(Rothschild family)의 영향권에 속하는 모두 6개의 카르텔로 집중되었다. 은행의 이윤은 1909년에서 1913년 사이에 41%나 증가했다. 독일의 압력에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부르주아 계급은 발칸 반도로 팽창하여 군주국 내부의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길 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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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1914년 헝가리 왕국의 철도 체계


전체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의 국민소득 총액은 1850년에서 1913년 사이에 6.5배 증가했다. 한편 헝가리의 국민소득은 같은 기간 동안 8.5배 증가했다. 이중군주국을 통틀어 헝가리 몫의 국민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서 36%로 증가했다. 당시 헝가리 왕국의 인구도 군주국 전체의 인구 비중에서 40%에 달했다. 보다 생산적인 경제의 효율성과 경제활동 증가는 생산량과 품질의 전반적인 성장에 영향을 미쳤다. 헝가리 국내 자본도 크게 성장했다. 자본 총량에서 1880년에는 1/3을 차지했고 1913년에는 2/3를 차지할 만큼 발전했다. 그러나 슬로바키아 산업과 자본은 이러한 경제 성장에 최소한으로 참여하였다. 슬로바키아는 1918년까지 헝가리에서 가장 산업화가 진행된 지역 중 하나로 볼 수 있었지만, 슬로바키아의 경제는 대부분 농업에 초점을 맞췄다. 한편으로는 현지 지역 원료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고도로 전문화된 현대기업의 등장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한편, 기업이 마을이나 교차지에 건설되지 않고 원자재가 추출되는 산지 근처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슬로바키아의 산업화는 부분적이지 않았다.

헝가리 왕국의 경제 중심지는 다뉴브 강 유역 인근, 주로 부다페스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부분의 산업체 기업이 위치한 또 다른 중심지는 브라티슬라바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왕실(kaiserlich und königlich)에 초콜릿를 납품하던 공장인 슈톨베르크(Stollwerck)사, 정유 공장 아폴로Apollo, 다이너마이트 노벨(Dynamit Nobel)사 공장, 헝가리 왕실 담배 공장 등이 위치했던 것을 언급할 가치가 있다. 코시체에는 프랑크 치커리(Franck chicory coffee) 공장, K. 폴레드냐크(K. Polednyak) 기계 공장, 도자기, 가구 산업체가 있었다. 담배와 섬유 공장이 있는 반스카 슈티아브니차Banská Štiavnica와, 목재 공장, 섬유 공장, 가구 공장이 있는 반스카 비스트리차Banská Bystrica, 제지 공장과 섬유 공장이 있는 루좀베로크Ružomberok, 옷감과 펄프 생산이 이루어지던 질리나와 같은 도시들은 어느 정도 산업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군주국 내 슬로바키아에서 전통적인 공예품 생산의 경향은 그외 나머지 40개 법정 (소)도시들에서 우세했다고 볼 수 있다. 통계적으로 슬로바키아 산업 생산의 약 1/5은 포조니Poszony(헝가리어 지명) 주에, 1/8은 세페쉬Szepes, 1/10은 조욤Zólyom 및 괴뫼르 키슈혼트Gömör és Kishont 주에 속했다. 아르버Árva, 샤로쉬Sáros 및 젬플린Zemplén 주는 산업 생산이 미미한 수준으로 가장 저개발된 지역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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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티슬라바 슈톨베르크 공장, 다이너마이트 노벨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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