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장소는 최고의 경관을 자랑할 정도로 -만약 그것을 볼 방법이 있다면- 높은 창문조차 없는 탑이었다.

솟아 오른 원뿔의 천장 아래에서 흑색의 갑주과 초승달을 떠올리게 하는 투구를 쓴 인영이 가부좌를 한 상태로 공중에 떠 있었다. 그 존재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빛줄기에 의하여 빛나고 있었고, 규칙적으로 짜여진 패턴으로 룬이 그의 주변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로부테 길리먼은 그를 부른, 은하계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 중 하나를 마주하였다.

"만나서 반갑소. 엘드라스 울쓰란, 아엘다리의 파시어여."

길리먼이 말했다. 그는 울쓰란이 있는 울쓰웨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은, 인류의 황제의 아들이군요. 내 아군이자, 내 적이기도 하고."

"내가 종종 당신네 종족과 적대하기는 하다만, 아무튼 이곳으로 와준 것에 감사를 표하오."

타원형의 방은 의자를 포함한 가구가 잘 갖춰져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그의 체구에 비해 너무 작았기 때문에 길리먼은 그곳에서 서 있었야 했다.

"저는 당신을 다시 되살리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울쓰란은 냉담하게 말했다. 그의 관심사에 이 만남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신을 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대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겠지요. 모든 남자는 때때로 가르침을 필요로 하는데, 당신은 그대의 부친이 이룩한 모든 예술에 의하여 남자 중의 남자일터니."

"나를 위하여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목적이 무엇이오?"

길리먼이 물었다.

"그건 본래 당신이 묻고자 했던 질문이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에 대한 대답을 드리지요. 당신이 완수해야 할 과제는 그대 스스로 맹세한, 인류의 구원자의 역할입니다."

울쓰란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제안이 당신을 모욕할 의도는 아니다만."

그는 제국의 고딕어로 바꾸어 말했다.

"이 대화는 당신네 말로 하고 싶군요. 그대가 우리의 언어를 구사하는 얼마 안되는 테라의 자손 중 하나로서 제법 잘하고 있더라도,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미묘한 부분이 있어 저의 귀를 거슬리게 하니까요."

"내 지식의 부족함이 있다면 사과하겠소."

길리먼이 말했다.

"별 말씀을."

울쓰란이 다시 앞을 응시하며 말했다.

"물론 이러한 실수는 그대의 것이다만, 언젠가는 숙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당신네 종족들 중 그 누구도, 아무리 강력한 이라고 하더라도, 절대 불가능하리라 생각한다만."

울쓰란은 공중에 있는 룬을 잡고 그것을 보고는 다시 움직이게 하였다. 태고부터 존재한 도시의 정적 속에서 그의 예복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전 새로운 시대를 마주하는 당신의 불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엘드라드가 말했다. 그가 구사하는 고딕어는 그 언어에 신선한 아름다움을 불어넣는 방식의 억양이었다.

"그대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당신이 짊어지고 있는 고난은 거대하며, 거의 저의 숙업만큼이나 위대하니까요. 저와 당신 모두 과거 소중하게 여긴 모든 것들이 어리석은 만행으로 인해 파멸하는 것을 보았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들의 비참함에 고통을 받고 있지요. 우리는 어떤 면에서 보자면, 비슷한 영혼일 터. 우리가 함께 느끼는 비탄을 인정하오니, 당신이 묻고자 하는 질문을 하시지요. 제 기꺼이 대답해 드릴테니."

-운명의 갑주(Armour of Fate) 中

"질문 있으면 대답해 줌."라는 한마디를 이렇게 길게 늘어 놓는 재주는 물론이고 귀쟁이 특유의 화법이나 문법조차 기묘하기 그지 없던 대화. 솔직히 길리먼의 내적 심리 묘사가 없다만 뭔 개소리야 하면서 어처구니가 털리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