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v 소리

란은 참호 안의 어두운 복도에서 레오드 볼드윈을 발견한다. 피스크 할렌, 그리고 나마히의 기수 중 하나인 키조(Kyzo)와 함께다.

“무슨 일인가?”

란이 묻자 볼드윈이 손짓을 보낸다. 복도를 따라 끝까지 가보니, 벽과 바닥, 천장이 산화된 적색으로 칠해진 락크리트 공간이 나온다. 아마도 사격 지점이었거나, 혹은 탄약고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텅 빈 눅눅한 공간이다.

“키조가 찾았습니다. 귀가 날카롭더군요.”

“모든 공간이 모두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돈의 자식 되는 분이여.”

볼드윈이 말하자 화이트 스카 군단병이 받는다.

“비밀 출입구를 찾고 있었습니다. 함정 문이라거나, 가짜 벽이라거나 하는.”

“그리고?”

란이 묻는다.

“그렇게 찾았다는군요.”

할렌이 말한다.

“뭘 찾았단 말인가?”

란이 다시 묻는다. 이 방은 그저 텅 빈 락크리트 공간에 지나지 않는가.

“들어보십시오.”

볼드윈이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댄 채 말한다.

란은 귀를 기울인다. 네 사람 모두, 적막이 어리도록 가만히 있는다. 다른 참호에서 방어 준비를 하는 전투 형제들이 쿵쿵 뛰어다니는 소리 외에 어떤 소리도 없다.

다음 순간, 그가 듣는다. 소리다.

속삭임이다.

란은 볼드윈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볼드윈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누구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란은 온 청력을 집중한다. 속삭임, 단어들의 뭉치, 하지만 순환 시스템의 웅웅대는 배경 소음처럼 중얼거림 정도로 들릴 따름이다.

란이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란은 벽에 더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인다.

“그냥 주변 소음인 것 같은데.”

“이쪽에는 활성화된 시스템이 없습니다.”

란의 의문에 할렌이 답한다.

“그러면 우리 아래에서 나는 소리겠지.”

란이 입을 연다.

“저 아래 도관이나 배수관들이 다른 곳에서 난 소리를 전했을 걸세.”

“목소리입니다.”

키조가 말한다.

“그러면 대체 어디서 나는 소리란 말인가?”

란이 묻는다.

“그냥 음향이 어디서 이상하게 튀고 있는 것은 아니고?”

화이트 스카 군단병이 사격대의 뒤쪽 벽을 가리켜 보인다.

란이 다가간다. 그의 손은 벽 위를 타고 만진다. 수직으로 선 두꺼운 페로-콘크리트 벽이다. 결코 숙임이 없다. 몸을 기울인 란은 귀를 붉은 벽에 누른다.

목소리다. 부드러운 소리는 아니지만, 저 멀리서 들려온다.

“이 반대편에는 뭐가 있나?”

란이 묻는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기가 하스가르드 참호지대의 북쪽 경계부니까요. 그 반대편은 단단한 기반암 지대입니다.”

볼드윈이 답한다.

“이 반대편에는 무엇도 없습니다.”

키조가 입을 연다.

“밖에 나가서 구조물 주위를 살펴보기까지 했습니다. 이 끝은 요새화된 채 엄폐된 부분입니다.”

란은 다시 귀를 기울인다. 꾸준하고 차분한, 고요하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란은 귀를 더 바짝 댄 채로 청력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전쟁의 목적을 규제하기 위해 이 방(Yi Bang)이라는 개념이 고안되었지. 이는 살인의 정당성을 공식화하는 방법이요, 살인을 최고 수위의 사법적 처벌로 정한 것이었다. 오직…”

란이 뒤로 홱 돌아선다. 그의 시선은 볼드윈을 향한다.

“저희와 같은 생각이신 모양이군요?”

볼드윈이 묻는다.

“저도 그렇고, 할렌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할렌이 말한다.

“알아들으셨을 겁니다.”

란은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어디서건 그 목소리를 알아들었으리라. 고요하고 체계적인 목소리, 그의 주군이자 아버지, 로갈 돈의 목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