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는 남으리라

가브 소프

‘폭격을 시작해라!’

잠깐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또 잠깐이.

그러나 여전히 스피어헤드-센츄리온 크라토즈의 명령이 수행되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포르키스의 함포 갑판은 의심스러울 정도로 조용했다. 메인 스크린의 오른쪽 하단에 있는 함선 도식에서는 배틀 크루저의 어뢰 발사관이 여전히 장전된 상태라고 표시되었다.

아이언 핸드의 지휘관은 그의 화기 통제 장교 크리사오르를 향해 인공 눈을 돌렸다. 크리사오르는 전력실 패널과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 속에서 노란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서전트, 왜 사격을 시작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우리의 사격 경로가 방해받아 재계산을 시도 중이었습니다.’

‘방해받았다고? 설명해라.’

‘우리의 동료입니다, 스피어헤드-센츄리온님. 샐러맨더의 선박이 근접 궤도로 이동해 프라에스테스의 지표면과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습니다. 우리가 사격을 시작하면 그들이 포격 경로에 놓일 겁니다.’

‘샐러맨더가 경로에 있다고? 아리’이는 저능아인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건가?’

‘지휘관님, 최근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완전히 유능하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항법 오류를 조정한다고 해서 허스파이어가 이렇게 가깝게 오지는 않을 겁니다. 선박의 개입이 고의적이라 결론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격을 일부러 막고 있다고? 알겠다. 참으로 육신은 나약하구나. 아리’이는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미친 거군. 어디 제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는지 보지.’

*

프리깃 선박 허스파이어에 탑승한 샐러맨더의 파이레 워든 아리’이는 동료 스페이스 마린 열 아홉 명과 자신의 생명을 의미 없는 행동으로 희생시켰을 가능성을 고려했다. 그의 부관인 시길마스터 아카’울라 역시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었다.

‘주군, 외람된 말씀이지만 아이언 핸드가 그냥 발포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스트반 이후 파이레 워든이 우리가 그와 남아있도록 요청했을 때 확실함을 제시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항법 제어대에서 서전트 헤마가 대답했다. '가장 비범한 장인조차도 그가 쉼없이 단조한 칼날이 마지막 망치질에 예기치 않게 산산조각 나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발포하지 않을 거네.’ 아리’이는 그들을 안심시키고는 속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적어도 아직은.

‘아이언 핸드에게는 형제애 같은 것이 없습니다, 주군. 적어도 저희가 이해하는 방식의 형제애는요. 녀석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 믿어서는 안 됩니다.’

‘큰 착각이네, 시길마스터.’ 아리’이가 대답했다. ‘아이언 핸드는 자신들의 규율에 대단히 헌신적이며, 이성과 합리성은 메두사의 아들들 사이에서 귀중히 여겨지지. 난 내 비합리적인 행동이 그들을 재고하게 만들었기를 바라고 있네. 우리가 아직 살아서 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난 좋은 징조로 보고 있지.’

허스파이어의 지휘실이 고요해졌다. 스페이스 마린 삼인방은 아이언 핸드의 반응을 기다리며 침묵했다.

날카로운 음이 그들의 주의를 센서실 제어장치로 돌렸다. 헤마가 가장 가까이 있었고, 그는 뒤돌아 콘솔의 키패드에 문의를 입력했다.

‘포르키스에서 온 건가?’ 아카’울라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타겟 고정 신호입니다.’

‘허세네.‘ 아리’이가 중앙 지휘 어레이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말했다. ‘센츄리온 크라토즈는 별도의 타겟 고정 없이 한 발의 포격만으로도 우리를 파괴할 충분한 화력을 가지고 있네. 크라토즈는 그저 그 사실을 분명히 하려는 것 뿐일세.’ 

‘포르키스의 무기 배터리에서 에너지 급증이 감지되었습니다.’

*

‘스피어헤드-센츄리온, 현재 시점에서 발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가드립니다.’

크라토즈는 부하의 항의를 무시하고 크리사오르를 교체하는 것을 고려했다. 그는 무기 서전트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다.

‘우현 무장에 모든 전력을 집중해라, 무기 장교. 표적 선박에 발포할 준비를 해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스피어헤드-센츄리온.’ 화면은 주 반응로 출력에서 우현 에너지 그리드로의 재분배를 나타내며 반짝였다. ‘하지만 허스파이어가 반격할 기회가 없다고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다는 점을 보고드립니다. 샐러맨더 선박들은 무장이 강화된 것으로 유명합니다.’

‘저들에게 우리의 쉴드를 뚫을 수 있는 무기란 없다.’

‘더 나아가 우리의 지상 표적은 정지해 있으며, 떠날 징후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 역시 보고드립니다. 샐러맨더에게 우리의 사격 범위에서 벗어나도록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눈을 인공 눈으로 교체한 크라토즈는 더 이상 노려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럴 때가 되면 그는 그런 표정이 그리웠다. 선을 넘을락 말락 하는 반항적인 어조에도 불구하고 크리사오르의 평가는 옳았다.

‘알겠다. 통신 장교, 허스파이어에 연락해라.’

크라토즈의 왼편에 있는 통신-링크 화면이 활성화되며 수 초 동안 화면이 지직거림으로 가득 찼다가 연결되었다. 흐릿한 흑백 이미지가 화면에 나타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선명해졌다. 회색조의 영상 속에서 아리’이의 새까만 피부는 평평하고 움직임이 없어 보였다. 그의 오른쪽 눈썹을 관통하는 장식 고리는 흰색 반지처럼 보였다. 눈은 밝은 회색으로 나타났지만 크라토즈는 그것이 실제로는 불길한 진홍색임을 알고 있었다. 아리’이가 말할 때에는 4밀리초의 지연이 있었다. 화면에 그의 하얀 이가 보였고, 저음이 스피커 그릴 아래에서 들려왔다. 

‘센츄리온 크라토즈, 자네 함선이 내 선박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는 좋은 이유가 있으리라 믿네.‘

‘고르곤의 이름으로, 대체 왜 내 길을 막고 있는 거요? 비켜서서 포르키스가 목표물에 포격할 수 있도록 하시오.‘

‘지금은 그럴 수 없네, 동맹이여. 아직 자네 행동이 정당하다는 확신이 없으니.’

‘확신이 안 든다고? 난 당신 함선에 수 기가톤의 파괴적인 무기를 겨누고 있소. 그게 바로 필요한 확신의 전부지. 당신 선박을 내 앞에서 치우시오!’

아리’이가 눈살을 찌푸리자 이마를 관통하는 장식이 흔들렸다.

‘오해하고 있군, 스피어헤드-센츄리온. 우리의 첫 만남 이후 여섯 달이 지난 지금 어쩌면 자네는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군. 그러니 다시 상기시켜주지. 나는 황제 폐하의 레기오네스 아스타르테스의 프라이토르네. 나는 캡틴의 지위에 있는 장교에게 내 행동을 설명하지 않아- 그 장교의 전투 명성이 얼마나 인상적이던 간에. 아니면 아이언 핸드는 더 이상 군단 간의 지휘 체계와 계급 의례를 중시하지 않는 건가? 자네의 프라이마크를 잃은 것이 자네 군단이 이름높았던 규율과 질서에 대한 준수까지 앗아간 것인가?‘

아리’이의 말은 크라토즈의 손등에 산성 물질로 새겨진 기하학적 무늬처럼 타올랐다. 의도적으로 악의가 담겼으나 동시에 완벽하게 정당했다. 크라토즈는 사과하는 의미로 왼손 손가락을 이마에 대었다.

‘내 잘못이오, 친족. 분노에 치우쳐 말했소. 고르곤께서 가르치셨듯, 육신은 나약하오. 감정의 변덕보다는 보다 합리적이고 침착한 지성이 승리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소? 프라이네스테에 관해 진행 중인 작전을 논의하기 위해 포르키스에 오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소.’

‘기쁘게 초대를 받아들이지. 우리 두 선박은 잠시 현재 위치를 유지할 것이네. 즉시 탑승 준비를 하지.’

크라토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통신 장교에게 연결을 끊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화면은 잠시 회색으로 변하더니 곧 텅 빈 상태가 되었고, 아리’이의 얼굴이 있었던 자리에는 이제 스피어헤드-센츄리온의 수척한 얼굴이 비쳐 보였다. 그의 눈 렌즈는 주름지고 초췌한 피부에서  순백의 원처럼 빛났다.

‘파이레 워든과 그 일행을 맞이할 준비를 해라.’ 크라토즈가 지휘부에게 지시한 후 낮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직접 만난다면 좀더 유순해질지도 모르지.’

포격 경로를 배째라고 선박으로 가로막아 버리는 샐맨... 타겟 고정? 아직은 허세지 하는 샐맨과 진짜 발포하려 했던 아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