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마이너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2부] 8:ii 어둠의 왕관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2.28 13:13:39
조회 987 추천 32 댓글 12
														




8:ii 어둠의 왕관



저것들은 무엇일까? 불꽃? 눈송이? 하얀 꽃? 고운 잿더미의 얼룩? 올 페르손은 구분할 수 없다. 너무 밝아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 화이트아웃이다. 공기에 빛나는 눈부신 백색은 눈이 멀 지경으로 강렬하다. 거의 하얀 입자들이 표류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춥다. 너무 춥다. 그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충격을 받는다. 뼈를 움켜쥐고, 영혼을 얼리고, 정신을 마비시키는 충격이다.


눈보라, 그렇다. 무에서 유로 빚어진 눈보라가 그들을 산허리에 가둔다. 북부 트라키아. 분명하다. 그들은 능선을 건너고 있었다. 그래, 위험한 결정이었다. 그들을 휩싼 눈보라가 눈부시게 시야를 가리고, 날것의 바위 위에 그들을 얼어붙게 했다. 그의 동료들은 보레아스(Boreas, 각주 1)의 딸이자 겨울 눈의 여신 키오네(Chione, 각주 2)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했었다.


아니다. 여긴 북부 트라키아가 아니다. 그 정도는 기억한다. 정말 오래전 벌어진 일 아니었던가. 이것은 재다. 하얀 재일 뿐이다. 이곳은 크라센틴(Krasentine, 각주 3) 능선이다. 방금 지평선 너머에서 이온 폭탄이 터졌고, 지금 휘날리는 잿더미는 폭발 섬광 속에 흩날린 불타버린 유기물일 뿐이다. 열기에 눈이 녹아내리고 피부가 까맣게 타 버린 그의 동료들은 신에게 멈춰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불신자들조차도-


아니다. 아니야. 크라센틴 능선도 아니다. 너무 춥다. 지독하게 춥다. 공허의 추위다.


올은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 자신의 정체성을 붙드는 것조차도 너무 어렵다. 빛이 너무도 눈부시고 총체적이기에. 그 눈부심은 소용돌이치는 하얀 얼룩이요, 눈보라가 그의 위를 부드러이 덮친다… 봄의 돌풍에 흩날리는 사과 꽃과 아몬드 꽃잎이다. 색종이요, 종이 테이프이며-


하지만 저 빛은 빛이 아니다. 아니, 오직 빛만으로 빚어진 빛이 아니다. 그것은 곧 의식이요, 우주에 속한 바다. 지금 그가 있는 곳에 무언가 있다. 그 무언가가 그의 심중에서 게걸스러우리만큼 밝게 빛난다. 저 빛이 그의 사고를 해체한다. 왼쪽 눈꺼풀의 오랜 경련이 느껴진다. 사이카닉 힘이 가까이에 있음을 알리는 믿음직한 신호다.


그는 무릎을 꿇는다. 정신을 차린 그는 이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는다. 크라센틴 능선 당시, 모두가 불신자였기에 부를 신조차 없었다. 트라키아에는 보레아스의 딸인 키오네가 존재하지 않았다. 보레아스의 딸 키오네는 그저 음유시인들의 발명품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여기, 신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다.


올의 육신이 부들부들 떨린다. 통제할 수 없다. 공포 그 이상이며, 경이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입에서 냄새와 맛이 느껴진다. 신성의 향(Osmogenesia). 고결한 특질. 올은 발작을 일으킬 것 같다고 생각한다. 불타는 맛, 시각적 장애까지-


아니다. 이것은 주관적이지 않다. 이것은 실존하는 진실이다. 발 아래의 먼지, 그를 둘러싼 공기, 그의 육을 구성한 원자 하나하나, 생각을 교환하는 시냅스 교환까지, 모든 곳에 존재한다. 절대적인 존재다. 그의 너머에 있는 동시에 그의 안에 거하며, 형언할 수 없는 절묘한 순간이다. 그와 신이 하나가 된 순간이다.


올은 본능적으로 목에 둘러진 작은 금빛 조각에 손을 뻗지만, 그것을 만진 순간, 그의 이해가 신성한 진리를 깨닫는다.


이것은 그의 신이 아니다.


아니, 신이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다. 누구도 요구한 바 없고,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누구도 기도하지 않았던 무언가다.


창조자가 아니다. 창조를 되돌리는 존재일 뿐이다. 창조의 원천이 아니다. 망각의 원천이다. 그가 느낄 수 있는 이 존재감, 이 의식은 무자비한 판단의 힘이요, 숭고한 분노의 힘이며, 잔인한 이성의 힘이다. 그리고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채, 올은 손과 무릎을 꿇고 앞으로 쓰러진다. 그의 더듬대는 손가락이 무너진 대지 위에서 무언가를 쥔다.


타래의 뭉치다.


올은 타래를 꽉 움켜쥔다. 그를 빛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안전지대로 인도해 줄 존재라도 되는 마냥. 하지만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이 지도가 되는 실타래의 목적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를 여기 이르게 하는 것. 미친 짓처럼 보이지만, 그가 원했던 곳이 바로 이 곳이다.


누구도 여기 있어하고 싶지 않아 할 것이기에 그렇다.


이것이 곧 묵시다.


"난 자네를 아네."


올이 입을 연다.


차갑고 하얀 불길이 그를 감싼다. 재, 혹은 눈, 혹은 꽃잎 조각이 그의 얼굴과 입술에 내려앉아 입 안으로 소용돌이친다.


"원한다면 날 불태워도 좋아. 하지만 난 자네를 아네."


눈부심의 고동이 서서히 사라진다. 온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역겨우리만큼 맹렬하다. 하지만 올이 다시 눈을 뜰 수 있도록, 하얀 불길이 성층권의 푸른 빛으로 희미해진다.


학장의 전당은 사라진 채다. 그가 볼 수 있는 한, 도시도 보이지 않는다. 신성한 빛이 교차된 세상을 초토화시킨 뒤, 수 킬로미터에 걸친 하얀 재로 뒤덮인 불탄 잔해가 남았을 뿐, 무엇도 남지 않은 채다. 하늘은 시커멓고, 사방으로 펼쳐진 지평선은 벼락의 흔적일 뿐이다. 하늘을 채찍질하고, 번쩍이고, 줄무늬를 그리고, 이글거리고, 온전한 침묵 속에 드리운 벼락이다. 마치 극지의 평원에 홀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주위를 감싸고 있다 갑자기 멈춘 광대한 태풍의 눈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별은 없다. 씻겨나간 풍광 위로 나른하고 하얀 연기가 드리운다. 차가운 공기 속에 잔잔한 재의 눈보라가 몰아치고, 청백색 에너지 조각들이 화산 불꽃처럼 반짝인다.


그리고 그로부터 6미터 떨어진 앞에, 거대한 인간의 형상이 서 있다. 두 팔을 옆구리에 둔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우리만큼 강렬한 힘이 그 형상으로부터 뿜어지고 있다. 고요한 번개처럼 백열하는, 음영으로 이루어진 실루엣이다.


"날 알겠나?"


올이 형상에게 외친다.


"나를 알아보겠느냐고?"


형상은 움직이지 않는다. 형상은 답하지 않는다.


올은 간신히 버텨선다. 하나 이상의 형상이 있음이 보인다. 다른 형체들은 모두 동일한 형태다. 희미하게 인광을 발하는 인간의 형태다. 그리고 그 다음 것이 처음 것으로부터 20미터 떨어진 곳에, 또 다른 형상이 그 너머 비슷한 거리에, 그리고 또 다른 하나가 그 왼쪽에 서는 등 줄줄이 이어진다. 일곱 형상이 약 60미터 너비의 느슨한 원을 그리고 있다.


그 뒤로, 거대한 검은 구체가 불타버린 대지 위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그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마치 대지 표면에 자리잡은, 광택이 나는 검은 달을 떠올리게 한다. 번쩍이는 표면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소리 없는 번개의 울림이 빛나는 껍질에 반사된다. 흐르는 검은색으로 덮인 이 구체가 모든 빛의 근원이다. 눈부시리만큼 검고 강렬해 직접 목도할 길이 없다. 눈을 아프게 하고, 망막에 인광체가 그러하듯 흐릿한 맹점을 남긴다. 구체로부터 백열이 쏟아진다. 올, 바싹 마른 폐허, 심지어 고요하게 빛나는 형상들조차 저 멀리 떨어진 곳에 딱딱하고 말라붙은 그림자를 드리울 뿐이다.


올은 주위를 둘러본다. 그의 조금 뒤로, 존과 리투, 그리고 아스타르테스 로켄의 육신이 잿빛 먼지 속에 널브러진 채다. 저들에게 향해 아직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지만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을 깨울 수 있다면, 저들이 일어나서 목도할 것은 이것일 테니까. 그들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없다. 누구도 깨어나 이 공포를 대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여기로부터 구해야 한다. 은하계의 모든 이가 이 공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누구도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을 보거나, 그가 겪고 있는 것을 경험해서는 안 된다.


올이 일어선다. 차가운 바람이 신음한다.


"자네가 날 구했지."


올이 입을 연다. 올은 지금 여기서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저 불길한 검은 구체 뿐임을 알기에, 거기에 대고 말한다. 그것이 곧 그를 삼켰던 의식이다.


"자네가 날 구했거나, 혹은 살려줬지. 자네도 나를 알지, 그렇지 않나? 내가 누구인지 자네도 알아."


불안정한 걸음으로, 그가 앞으로 나아간다.


"무슨 짓을 한 거야?"


그가 외친다.


어떤 대답도, 어떤 마음의 울림도 없다.


"어떻게 이런 꼴이 될 수 있지?"


더 다급하게, 구체를 향해 비틀대고 나아가며 올이 외친다.


"어떻게 이따위가 될 수 있어? 자네가? 그 광기와 빌어먹을 자존심이 자넬 이 지경으로 몰고 간 건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빛나는 형상이 위협이라도 하듯 웅웅거린다. 마치 움직일 듯한 기세다. 하지만 움직임은 없다. 올은 멈칫한다.


"무슨 짓을 할 셈인가? 나에게 벌이라도 주려고? 날 후려치려고?"


오직 침묵 뿐이다.


"먼 옛날 알던 이를 찾아서 여기까지 먼 길을 왔는데, 내가 이따위 걸 목도해야겠나! 말해봐!"


침묵. 바람이 한탄한다.


"말해보게! 자네가 모든 것을 파괴했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고! 이 지옥 같은 구멍을 관통하는 길을 통째로 불살랐지. 그런데 나에게 이른 순간 그 불길이 멈췄어! 나도 불태울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왜지? 뭐가 자넬 멈추게 했나? 날 알아봐서? 날 알기 때문에? 아니면 뭔가? 수치심 때문에? 말해보라고!"

+올라니우스.+


올이 얼어붙는다. 솔직히, 반응을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저 먼지투성이 바람 사이로 그의 이름이 들렸다. 그의 정신 가장자리를 갉아먹는 사이킥 발화다.


"그래, 날세. 들리네."

+올라니우스. 멈춰요.+


올은 순간 흔들린다. 이것은 그의 목소리가 아니다. 일전에 알던 그 목소리도 아니고, 그 후 변해버린 무언가의 목소리도 아니다. 아주 희미한, 다른 목소리다.


"악타이?"

+올라니우스. 가요. 가 버려요. 당장 떠나요. 하지 마요. 이 대면을 강요하지 마요.+

"살아있었소?"


그녀의 심언은 여전히 약하고, 고통으로 거의 소멸할 지경이다. 그는 그녀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갑작스럽고 깊은 절망감 속에서 그녀가 힘을 얻어 그에게 말하고 있음을 느낀다.


+간신히. 아직 버티고 있어요. 당신이 그렇듯이. 가요. 가 버려요. 저것. 저 어둠의 왕은 당신의 비난을 오래 참지 않을 거니까요.+

"어둠의 왕이라고?"


올은 작은 목소리로 신음한다.


"이게 어둠의 왕이라고? 그가 어둠의 왕이라고?"

+거의 끝났어요.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느껴져요. 조금만 더 있으면, 완성될 거예요.+

"하지만 루퍼칼이-"

+그렇게 생각했죠. 틀렸어요. 깨달았어야 했는데. 둘 중 누구라도 될 수 있음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더 강한 의지가-+


올은 다시 실수를 저지르기로 한다. 그의 가까이 있던 빛나는 형체가 다시 분노의 위협을 울린다.


+돌아가요, 올라니우스! 그는 그럴 거예요. 당신을 죽일 거라고요!+

"그럴 것 같지 않소."


올이 말한다.


"그는 멈췄소. 자기 궤적에서 멈췄다고. 아직 내게 기회가-"

+기회는 없어요. 그가 여기 멈춘 건 이유가 있어요. 그가 당신을 알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여기 있음에 놀랐을 뿐이라고요. 그랬죠. 그것 때문에 상황을 고려하려 멈췄지만, 그의 인내가 얼마나 갈까요? 당신이 그를 자극한다면, 그의 인내는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

"당신도 느낄 수 있소?"

+그의 정신. 그의 정신은 귀를 먹먹하게 만들어요. 올라니우스, 우리는 완전히 틀렸어요. 모든 것이 틀렸어요. 극단적이게도, 황제는 받아들였어요.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부정했던 것을 받아들였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악타이, 어떻게?"

+루퍼칼은 강해요. 황제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그 힘. 카오스의 그 힘은 황제가 예상한 이상이었어요. 그 힘이 카오스의 영역을 드리웠고요. 그래서 황제는 그것과 싸우기 위해 노력했어요. 혼돈을 뚫고, 호루스에게 다가가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 노력했다고요. 하지만 실패했어요. 충분히 강하지 않았죠. 그래서 그는 결단했어요. 선택을 내렸어요. 그는 스스로를 더 강하게 만들었어요.+

"워프?"


올이 묻는다.


+워프예요. 그는 워프를 마셨어요. 카오스와 싸우기 위해, 그 힘을 끌어들였어요. 하지만 너무 많이, 너무 깊이 마셔버렸죠.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가 이렇게 된 거예요. 그가 멈추기로 결심했던 바로 그 존재가 되어 버렸다고요.+

"어둠의 왕? 그 이름이 이런 뜻이었단 말이오?"

+신이죠. 그는 지금 그렇게 변하는 과정을 밟고 있어요.+

"아니. 난 그걸 받아들이기를 전심으로 거부하겠소. 이것은… 이것은 단지 또 다른 형상일 뿐이오. 또 다른 판본이겠지. 분노와 복수의 힘으로 뭉친. 또 다른 가면이고, 또 다른 교활한 위장으로-"

+그 이상이라고요.+


올은 빛나는 검은 구체를 응시한다. 그가 침을 꿀꺽 삼킨다.


"아니오."


그가 중얼거린다.


"아니오, 악타이. 이것은 그의 오만함을 담아낸 최신의 표현일 뿐이라고."

+그는 헤아릴 수조차 없이 강해요, 올라니우스.+

"그리고 옳기 위해 강해질 필요는 없지."


올라니우스가 쏘아붙인다. 그는 구체를 향해 비틀거리며 다시 다가간다.


"그리고 이것, 이것은 완전히 틀렸소. 고의적이거나, 혹은 의도적인 경우라 해도, 여전히 실수지. 억지로 서두른 끝에 그가 빚어낸 가장 최근의 실패라 해야겠소. 이건 명백히 비이성적이고, 내가 알던 이는 이성을 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소."

+멈춰요! 그는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그러길 바라오. 그가 내가 하는 이 말을 듣기 바라오. 그는 나에게 답할거요."

+올라니우스!+


마녀의 절규가 희미해진다. 하지만 그는 무시한다. 올은 구체를 올려다본다. 그 표면은 마치 윤을 낸 흑요석처럼 빛난다.


"날 알기 때문에 이 공격을 멈췄겠지!"


올이 소리친다.


"그래, 나를 안다면, 말하게! 그 정도 체면은 지키라고!"


바람이 한숨을 쉰다. 올은 눈 끝에서 무언가 번쩍이며 깜빡이는 것을 알아챈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가장 가까이에 있던 빛나는 형상이 깜빡이고 있다. 그 안의 빛이 고동치다 서서히 어두워진다. 구체를 에워싼 고리에 있는 모든 형상들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그 안의 빛이 타들어간다. 하나하나가 고장나기 직전의 조명 구체처럼 깜박인다. 그들로부터 뿜어지는 빛은 고통스러운 백색에서 뜨거운 불꽃으로, 모닥불의 주황색으로 희미해진다. 불씨 수준으로 빛이 희미해지고, 형상들의 실체가 드러난다. 빛에 가려져 있던 본모습이 마침내 드러난다. 화려한 갑주를 두른 거대한 전사들이다. 그을음과 타오른 흔적으로 검게 그을린 채,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올은 잔해와 분필 가루같은 먼지를 헤치고 가장 가까이의 형상으로 향한다. 인형처럼 굳은 채, 먼 곳을 바라보는 형상이다. 마치 선돌처럼, 그의 위에 우뚝 솟은 채다. 화로에 가까운 열기가 점점 식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커스토디안이군, 그는 깨닫는다. 그의 끔찍한 초인 중 하나다.


가까이 다가간 올은 걸음을 멈추고 살짝 몸을 움츠린다. 익어버린 살점 냄새가 난다. 커스토디안은 죽어 있다. 경계를 서는 파수꾼처럼 꼿꼿이 서 있지만, 생명은 없다. 한때 황금빛을 띠던 아퀼론 갑주는 검게 그을린 것을 넘어, 강렬한 열기 속에 불타 일그러진 채다. 불에 그을린 손은 여전히 창을 쥐고 있지만, 엉망진창으로 부러졌을 뿐이다. 얼굴의 절반은 사라지고, 나머지 절반은 불타버린 해골이다. 빈 구멍에서는 연기가 흐르고, 마지막 남은 불타버린 치아 사이로 증기처럼 흘러나온다. 불에 그을린 뼈에는 타다 남은 살점 조각이 들러붙어 있다.


"무슨 짓을 한 건가?"


올이 중얼거린다. 그는 비틀거리며 다음 형상에게 다가간다. 그 상태도 비슷하다. 부러진 차은 불타버린 손에 달라붙은 채다. 불탄 갑주 속에서 곧게 일어선 뼈는 반쯤 화장된 꼴이다. 시커먼 찌꺼기가 불탄 두개골을 덮고 있다. 아래쪽 턱뼈는 마치 비명을 지르듯 느슨하고 낮게 매달린 채, 익어버린 마지막 힘줄에 지탱된다.


세 번째 형상은 개중 조금 나아 보인다. 올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을음 자국 아래 반짝이는 오라마인트가 보인다. 얼굴에 가죽처럼 익어내린 피부가 남아 있다. 위에 표식도 남아 있다. 신기하게도, 무거운 흉갑에 붙은 어떤 조각이 온전히 남아 있다. 올은 그 위에 화려한 상감의 잔해를, 금빛 세공의 잔해를 본다. 어떤 상징이다. 마치 손으로 그린 것 같은 희미하게 빛나는 인장이 흉갑판의 그 부분에 표시된 채, 온전히 남아 있다.


올은 그 상징을 이해하려 애쓰며 응시한다.


파수대원의 눈이 번쩍 뜨인다.





각주 1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북풍의 신. 티탄 신족 아스트라이오스와 새벽의 여신 에오스 사이의 자식.


각주 2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눈의 여신. 보레아스가 아테네의 공주 오레이티이아를 납치해 낳은 딸.


각주 3 : 올라니우스가 싸웠던 전장 중 하나.

추천 비추천

32

고정닉 12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64 설문 비난 여론에도 뻔뻔하게 잘 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6/03 - -
258629 번역 퀴툴kweethul과 그의 악마들에 대한 번역글. [5] khid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7 691 13
258593 번역 [워햄만화]울트라 시험 [9]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7 6145 62
258585 번역 [헬스리치] 1부 5장: 하늘의 불꽃 (2) [4] 트루-카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7 505 21
258584 번역 [헬스리치] 1부 5장: 하늘의 불꽃 (1) [3] 트루-카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7 636 15
258581 번역 [워햄만화]실수했어요 [8]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7 5877 68
258575 번역 The Emperor's Gift, 늑대를 닮은 여인 -5- [3] 리만러스(222.110) 23.07.07 364 12
258559 번역 메카니쿰: 2.02 (3) - [깨어나다] [4] Fra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7 241 17
258558 번역 메카니쿰: 2.02 (2) - [화성의 용] [2] Fra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7 295 16
258557 번역 메카니쿰: 2.02 (1) - [스크랩코드] [7] Fra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7 270 14
258535 번역 블랙스톤 포트리스에서 나온 크룻 비행정 [8] 구글번역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7 1567 25
258531 번역 파묻힌 단검 - 막간 II (3) [3] 톨루엔환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7 240 16
258530 번역 파묻힌 단검 - 막간 II (2) [2] 톨루엔환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7 195 15
258529 번역 파묻힌 단검 - 막간 II (1) [4] 톨루엔환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7 323 14
258512 번역 리바이어던(Leviathan) 제 1 장 [17] 무능(Useles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7 886 14
258456 번역 오랜만의 헤러시 떨스데이 [5] bladeguard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6 920 13
258409 번역 [워햄만화]믿지 못할 이야기 [20]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6 4191 64
258391 번역 The First Heretic, 강하지점 대학살 -2- [5] 리만러스(222.110) 23.07.06 738 19
258383 번역 승천한 호루스 [4] 아잉스텔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6 1982 17
258376 번역 [앙그론 단편] 데쉬아 이후 (4) [1]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6 271 11
258375 번역 [앙그론 단편] 데쉬아 이후 (3) [1]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6 266 10
258370 번역 [워햄만화]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야기 [4]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6 2043 31
258360 번역 [워햄만화]투덜투덜 [6]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6 6052 62
258352 번역 [워햄만화]새 친구 [9]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6 6370 63
258348 번역 타이타니쿠스) 워마스터 중 전투 타이탄 [20]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6 2355 34
258334 번역 에이지 오브 지그마 지금까지의 이야기 [6] 오거아저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6 1186 29
258302 번역 렐름 오브 루인 게임 플레이 공개 [7] 오거아저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449 11
258297 번역 지뢰 만든 노동자 몸에서 부활한 루시우스 [19]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6085 40
258296 번역 판타지 제국 달력 가이드 [4] ㅇㅇ(222.251) 23.07.05 182 6
258292 번역 기계교 잡설 [14]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1970 32
258289 번역 [워햄만화]아재개그 [6]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1790 34
258286 번역 [워햄만화]길 잃은 영혼 [8]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6255 62
258283 번역 크룻의 유일신, 보크 이야기. [9] khid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1650 35
258269 번역 단편에서 나온 여러 크룻 설정들 [14]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2147 33
258263 번역 시체를 먹고 기억을 보는 크룻 [7]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3408 36
258258 번역 AOS)본리퍼 번역-매탄귀VS모르가스트 [1] Evermalic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269 13
258251 번역 크룻 단편 'A Forbidden Meal' 요약 [27] 만빡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1471 40
258171 번역 [장전노예]누가 오늘 선박살해자가 될 것이냐! [19]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5527 53
258167 번역 [워햄만화]이 달의 용사 [16]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6151 68
258166 번역 타이타니쿠스) 타이탄 매니플 [2]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1154 13
258162 번역 타이타니쿠스 - 충성파 레기오 [20]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2389 22
258159 번역 [워햄만화]사악한 것은 보지 말라 [6]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6574 59
258157 번역 The Emperor's Gift, 늑대를 닮은 여인 -4- [4] 리만러스(222.110) 23.07.05 359 14
258147 번역 [워햄만화]군단 키우기2 [13]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6401 58
258122 번역 [헬스리치] 1부 4장: 인비질라타 [3] 트루-카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561 15
258118 번역 [헬스리치] 1부 3장: 하이브 헬스리치 [3] 트루-카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592 16
258116 번역 메카니쿰: 2.01 (3) - [다크 메카니쿰의 시작] [5] Fra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355 20
258115 번역 메카니쿰: 2.01 (2) - [카반 장치] [3] Fra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267 12
258114 번역 메카니쿰: 2.01 (1) - [침범] [3] Fra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290 14
258102 번역 Tyrannic War 아둑시니 내려오다. 3 [4] 무능(Useles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204 13
258101 번역 Tyrannic War 아둑시니 내려오다. 2 [6] 무능(Useles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175 11
258100 번역 Tyrannic War 아둑시니 내려오다. 1 [4] 무능(Useles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5 367 15
258099 번역 코믹스) 마르네우스 칼가르 - 5 (完) [25] ㅇㅇ(121.166) 23.07.05 4244 53
258048 번역 [10th] 4차 타이라니드 전쟁 - 솔블레이드들 [4] [11] 스틸리젼(잡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4 1183 25
258032 번역 [워햄만화]굳건함! [11]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4 6261 71
258027 번역 [워햄만화]군단 키우기 [13]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4 7050 65
258015 번역 AOS)오시아크 본리퍼 3rd: 모텍 크로울러 로어 번역 [2] Evermalic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4 358 13
257951 번역 The First Heretic, 강하지점 대학살 -1- [4] 리만러스(222.110) 23.07.04 314 15
257941 번역 햄타지 짧썰) 제국 여기사 눈나 [3] Jul.D.E.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4 1501 21
257934 번역 [앙그론 단편] 데쉬아 이후 (2) [2]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4 475 16
257919 번역 [앙그론 단편] 데쉬아 이후 (1) [2]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4 520 15
257879 번역 [울프스베인] 14장 : 비요른의 시험 (2) [5]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4 415 15
257878 번역 [울프스베인] 14장 : 비요른의 시험 (1) [1]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4 411 15
257868 번역 코어북에서 소개하는 4대신 신자 [19] 오거아저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4 2182 49
257866 번역 코믹스에 나온 울마의 징집 방식에 대하여 [24] XIII(14.36) 23.07.04 3775 53
257858 번역 STC '패턴'이 만들어지는 과정 [6]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4 2684 28
257857 번역 나이트 가문 - 바이로니 가문 (2)(완) [5]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4 792 16
257853 번역 [루오해머]증원 [8]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4 2092 38
257818 번역 워해머 40000 10판 스타터셋 공개 [21] bladeguard12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3 1477 11
257817 번역 솔리테어가 구원받는 방법이 있었네 [6] 우동먹는유동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3 1609 16
257812 번역 [루오해머]안도 빡겜이오. 밖도 빡겜이니. [3]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3 2446 29
257808 번역 Cadian Honour - 2부 - 2 - 3 [2] Cpt_Tit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3 336 15
257807 번역 Cadian Honour - 2부 - 2 - 2 [2] Cpt_Tit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3 372 14
257806 번역 Cadian Honour - 2부 - 2 - 1 [2] Cpt_Tit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3 329 15
257799 번역 [루오해머]싸이커를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10]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3 2899 34
257784 번역 AOS)오시아크 배틀톰 단편 번역: 스토커 [2] Evermalic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3 167 9
257738 번역 AOS)본리퍼 번역-정체성 고민에 빠진 장군과 법률 검토하는 법 [5] Evermalic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3 547 15
257645 번역 나이트 가문 - 바이로니 가문 [10]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3 1092 17
257642 번역 [워햄만화] 특수요원 [11]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3 7151 72
257612 번역 이번 주 라이온, 스닉크롯, 파사이트 프리오더 예정 [6] 우동먹는유동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3 1275 13
257573 번역 진시드 적합성 검사는 얼마나 어렵길래 안하는가? [6] ㅇㅇ(114.199) 23.07.03 1504 24
257447 번역 코덱스에 뭐라고 적혀있길래 그리 신성시해? 라고 한다면. [7] 히페리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841 13
257446 번역 헬스리치)전설로 남은 그리말두스의 연설 [6] 트루-카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1429 24
257444 번역 코믹스) 마르네우스 칼가르 - 4 [19] ㅇㅇ(121.166) 23.07.02 4453 42
257435 번역 솔라 억실리아 (7): 문장류, 전술 표식 [2]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458 13
257433 번역 솔라 억실리아 (6): 전쟁 기계, '로드 마셜즈 오운', 사진 자료 [3]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1147 16
257428 번역 솔라 억실리아 (5): 전략 배열, 지휘 구조, 사진 자료 [3]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607 17
257426 번역 솔라 억실리아 (4): 전쟁 무구(개인 무장, 전술 지원, 중기갑 대포) [1]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752 14
257424 번역 솔라 억실리아 (3): 전략 조직 (핵심 위계 서열 구조, 군사 교리)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463 14
257423 번역 슬라네쉬가 무겁다! 오슬란에 대한 짧은 번역. [2] khid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211 2
257422 번역 솔라 억실리아 (2): 해방과 정복, 엑스케르투스 임페리알리스, 복무전통 [2]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671 15
257421 번역 솔라 억실리아 [1]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670 3
257420 번역 솔라 억실리아 (1): 기원 (새터나인 오르도, [4]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839 16
257416 번역 워해머 잡썰 하나 [6] 트루-카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836 11
257384 번역 워프 관련해서 오해하기 쉬운 것 하나 [14] 트루-카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2118 26
257340 번역 모탈 렐름을 되찾아라 - 시티 오브 지그마 공개 [5] 구글번역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1573 29
257336 번역 Cadian Honour - 2부 - 1 - 2 [4] Cpt_Tit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373 15
257333 번역 Cadian Honour - 2부 - 1 - 1 [2] Cpt_Titu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2 405 16
257306 번역 헤러시-늬우스 총정리 (워햄커뮤 반영 업뎃 완료) [9] 납니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1 1573 21
257245 번역 코믹스) 마르네우스 칼가르 - 3 [8] ㅇㅇ(121.166) 23.07.01 3380 42
257235 번역 탈론 오브 호루스)사이킥으로 회춘이 가능할까? [14] 트루-카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3.07.01 1755 27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