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iv 화신

올은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선다. 파수대원의 충혈되고 메마른 눈빛이 그를 내려다본다.

“올라니우스.”

그 형상이 입을 연다. 턱이 삐걱거리며 움직일 때마다 말라붙은 살점과 인대가 늘어난다. 형상의 목소리는 사막의 바위처럼, 용광로의 재처럼 건조하다.

“살아있었군…”

“그렇다, 올라니우스.”

“자네… 지금 말하는 것은 누구지? 자네가 맞나?”

“나는 프로콘술 카이칼투스 더스크다.”

형상이 입을 연다.

“아니라고 생각되네만.”

올은 두려움과 혐오감을 억누르며 내뱉는다.

“지금 말하는 건 그 존재가 아닐 거라 생각하네.”

“나의 왕께서는 나를 지금 그분의 형상으로 쓰시리라 명하신다.”

“제발.”

올이 입을 연다. 고개를 돌린 그는 침을 뱉어 목청을 다듬는다. 역겨운 악취가 느껴진다.

“직접 날 마주하게. 다른 이를 거쳐서 말하지 말라고.”

“다른 방법은 없다, 올라니우스. 나의 왕을 직시하는 일별이라도 너를 원자 단위로 분해할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올은 떨리는 몸을 멈추려 애쓴다. 끔찍한 공포가 그를 삼키고 있지만, 오랜 벗에 대한 분노가 그 공포 속에 완전히 잠식되는 것을 막는다.

“그럼 자-자네…”

올이 더듬거린다.

“그럼, 나와 이야기할 거란 뜻이군. 어쨌든 오랜만일세-”

“나의 왕께서는 감정 때문에 스스로의 나아감을 멈추신 것이 아니다, 올라니우스. 옛 친구를 추억하기 위해 멈추신 바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재앙의 순간에, 나의 왕께서 한가한 재회 속에 시간을 낭비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더냐.”

“그러면 어째서지?”

올이 묻는다.

“변칙을 인지하신 것인즉. 올라니우스, 나의 왕께서는 성화의 과정에 다가가고 계시다. 그분께서는 일전에 본인이 정량화했던 것 너머 물질들의 구조와 체계를 인식하실 수 있다. 그분의 의식은 증폭되며 확장되신다. 그 길에서 올 페르손을 발견하고 놀라시어 그 나아감이 멈춘 바 없다. 다만 그 마주함이 얼마나 지극히 드문 일인지 인식하셨기에 멈추신 것이다. 올라니우스, 당신이 이 무의 시간에, 무의 장소에 존재하는 것은… 가장 지극한 우주론적 조율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특별한 것이기도 하다. 천공의 지극한 동시성과 공명을 암시하는 것이며, 강력한 일행과 영향력의 개입을 암시하기도 하다.”

“그렇네.”

올라니우스가 대꾸한다.

“내가 여기까지 온 것에는 여러 강력한 동료들의 도움이 있었지.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부른 것은 운이라고 해야겠지. 혹은, 운명이라거나.”

“그런 개념을 믿는가, 올라니우스.”

말라붙은 목소리가 속삭인다.

“운명, 행운, 숙명… 모두 나의 왕께서 말씀하시는 우주적 과정을 암시하는 필멸자들의 부적절한 어휘일 뿐이다. 그분께서는 에르다의 흔적을, 그리고 다른 영속자들의 자취를, 거기 더해 제노 엘드라드 울쓰란의 손길을 느끼신다.”

“모두 역할을 다했지.”

올이 답한다.

“모두 나의 왕이 의지로 발하시는 일에 대해 간섭하려 들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시도는 했어야 했네.”

올이 입을 연다.

“그대는 변한 바 없다. 그대는 일전에도 나의 왕에게 어느 정도 헌신적인 반대를 기울였다면, 그 반대를 뒷받침할 수단을 가진 바 없었으니.”

“내가 자네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기에 그리 생각하나? 나는 내 생각으로, 내 신념으로 자네에게 반대할 수 있네. 자네가 눈 한번 깜빡여 날 말살할 수 있다 해서 자네가 옳은 것은 아니야. 절대 그런 바 없지. 단지 자네의 강함이 드러날 뿐이지.”

“그대는 융통성이 부재하고, 시각은 경직되어 있다.”

파수대원의 죽어버린 목소리가 답한다.

“만약 여기 나의 왕과 그대가 대면할 수 있도록 한 근간이 그대의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이라면, 그 본질은 쓸모없은즉. 그대의 생명을 걸고 보일 바는 무엇도 없다, 올라니우스. 그대에게 주어진 삶의 수에 비기면 실로 암울한 평결일지니. 그대는 어느 것도 행한 바가 없다.”

“너무 많은 것을 하려 드느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네만.”

올이 대답한다.

“내 왕께서는 그대의 궤변이 얼마나 지루했는지 잊으셨던 것으로 생각되노니. 그래서 저들은… 에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꾸민 다른 힘 있는 자들은… 그대가 최선의 대변인이 되리라 생각했던가? 그분께 다가갈 최고의 탄원자라고 생각했던가?”

올이 한숨을 쉰다.

“그 ‘탄원자’라는 단어는 거부하겠네. 그리고 그 ‘다른 힘 있는 자’ 중 하나는, 아마도 말카도르였던 것 같네만. 자네 편에 선 이들 중 하나지.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나?”

“그렇게 믿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길을 잃었었네. 그리고 전사 한 명과 마주쳤지. 로켄이라는 이름의, 그대의 인장관이 선택한 전사였네. 그리고 나서야 자네에게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었지.”

“말카도르.”

파수대원은 마치 그 이름의 가치를 저울질하듯 입을 연다.

“그리고 그의 지혜는 자네가 스스로의 것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신뢰하는 바였지. 의미가 느껴지지 않나?”

파수대원은 멈추고서 이 질문을 곱씹는 것처럼 보인다. 올은 기다리며 감각을 유지하려 애쓴다. 창백한 푸른 빛이 거의 신경증을 일으킬 지경이다. 마치 공작새의 무늬처럼, 옥색과 청색 섬광이 그의 시야 가장자리를 파고드는 중이다. 올처럼 장수한 이라 해도, 저 강대한 승천의 힘을 이렇게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왕의 섭정은 계략과 계략을 엮는 것을 즐기는 이다.”

프로콘술이 판결하듯 입을 연다.

“그는 영리한 여분과 대안의 층을 짜내기 위해 이리 행한 것인즉. 그는 항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이다. 나의 왕께서는 그에게 그런 유연함을 발휘할 기회를 허하셨으니.”

파수대원이 서서히 고개를 기울인다. 목 힘줄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 시선이 제 흉갑에 새겨진 표식을 바라본다.

“말카도르가 개입한다 해서 나의 왕이 놀라실 바도, 멈추실 바도 없다.”

“진심인가? 그는 지금 자네가 이리 행할 수 있도록 옥좌를 취했네. 왜 그가 여분과 대안을 필수로 여기고 단호히 임했는지 모르겠는가?”

“무슨 뜻이지?”

“내 말은, 그는 일이 잘못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려워했다는 걸세. 아무리 좋은 기회라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했다는 거지.”

올이 입을 연다.

“그래서 그는 다른 기회를 미리 확보해 둔 걸세. 아무리 작고 어려운 길이라고 해도, 다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애쓴 거지. 그리고 그가 옳았어.”

“무슨 뜻이지?”

파수대원이 반복한다.

“지금 모든 것이 잘못되었으니까.”

“사실이 아니다.”

올이 고개를 젓는다.

“잘못됐네. 자네도 확실히 알지 않나?”

“아니다.”

“자넨 지금 어둠의 왕의 화신이 되어가고 있어.”

올이 말한다.

“아니다. 그것은 그저 낡은 이름일 분. 비이성적인 궤변이며, 우주신론적인 미신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네.”

올이 좌절하며 대꾸한다.

“제발… 자넨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지금 이곳은 폐허다, 올라니우스.”

파수대원이 답한다.

“카오스의 손길이 닿은 비참한 현실이지(The Harrowing of Chaos). 호루스 루퍼칼이 우리 종족을 멸족하는 것을 막고자 나의 왕께서 여기 이르셨다. 그 이상 중요한 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