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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종의 황혼, 과잉의 새벽 (1) 권태

khid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05.12 17:26:03
조회 171 추천 6 댓글 6
														


1장 권태


아스라니는 노래를 멈추고 자라다 만 조각상을 노려보았다.

당연히 조각상은 말이 없었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게 뭔지 답하지 못했다. 한숨과 함께 조각은 원래의 빛나는 알갱이로 바스러져 갔다.

“뭐야, 아깝게 부숴버린 건가?” 사드마가 인사도 않고 들어왔지만, 아스라니에겐 답할 힘도 없었다.

“부족해. 사드마. 부족하다고!” 책상을 내리치기 무섭게 컵이 떨어졌고, 졸지에 청소자가 미끄러지듯 일하기 시작했다. 

“이래서는 남들 볼 염치도 없어.전시회가 다음 달인데, 나오는 게 공원 의자보다 나을 게 없으니!”

“내 조언 하나 하지.” 사드마는 아스라니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말했다. 길게 늘어진 검은 유리 같은 머리카락 사이에 푸른 눈이 번뜩였다. 

“같이 나가자고. 방 안에서 앓고 있어봤자 달라질 건 없다네.” 거기에 가벼운 미소도 잊지 않았다. “삶이란 즐기라고 있는 거야.”

“알겠네.” 그제야 아스라니는 세공기에서 손을 떼었다. “즐거움이란 중요한 것이지.”

“그렇다니까!” 과장된 몸짓와 함께 사드마는 친구를 일으켜 세웠다. 


“보게, 화창하지 않나?” 언제는 안 그랬나, 그리 되받아치고 싶었지만 아스라니는 내버려 두었다. 

사드마는 오랜-올해로 100년이 넘었다-우정을 쌓은 친구였고 동료였다. 

그리고 그의 말은 옳았다. 하늘은 다양한 톤의 파란색을 담아 맑다 못해 영롱할 지경이었다.

자연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을 섬세한 그 색상은 아엘다리 기술의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그 아래의 둥글고 긴 타원형 건물들, 섬세한 곡선을 그리는 다리와 탑들, 그들 모두가 새하얗고 깨끗했으며, 매순간 자연스레 채도가 바뀌어 

보는 이들을 질리지 않게 했다. 무엇보다 여기엔 아엘다리가 있었다. 어떤 조각보다 아름다운 육체. 누구나 건강하고 젊으며 행복했다. 

완벽이라는 신이 있다면, 정말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확실히 낫군.” 아스라니가 미소를 띄웠다. 

“고맙네, 사드마. 확실히 세상은 아름다워.”

“앞으로도 그럴 거야. 친구.” 거의 흔들릴 정도로 사드마가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뭐라도 마시러 가지 않겠나? 트초 행성의 과일 주스는 어떤가?”

“바이알 거리 명물 말이군. 거기 향담배가 괜찮다고 하던데.”

“내가 사지. 내 신용이 자네만 못하겠나?” 이제는 아스라니가 잡아 끌었다.


“새로운 신이 오십니다!” 녹색 옷의 여인이 둘의 눈을 붙잡았다. 갸름하고 앳된 얼굴에 연보랏빛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지나가는 이들에게 뭔가 이야기를 건네려 애를 썼다.

“저길 봐. 마침 아름다운 분이 계시군.” 사드마가 짓궂게 킥킥거렸다.

“그러게. 어디서 저런 풍부한 녹색 톤이 나온 걸까?”

“이보게! 자네 감수성이 무너진 건가? 가보자고.” 뭐라 말리기도 전에 사드마가 걸음을 재촉했다.

“안녕하십니까, 아름다운 아가씨.” 번들번들하게 변한 말투와 함께 사드마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스라니는 저러다 차이는 꼴을 충분히 본 터라,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새로운 신에 대해 들으셨나요?”

“어, 아니요.” 아스라니가 대신 답했다. “이 친구는 같이 어울릴 사람이 필요한 겁니다.”

“아.” 확실히 실망한 모양이었다. “그럼 들어보시겠어요?”

“물론이죠!” 사드마가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목청을 높였다. “시간은 넘쳐나니까요.”

“뭐, 저도 같이 하죠.” 아스라니는 돌아온 시선에 마지못해 대답하고 말았다.

“고맙습니다! 저는 일라나에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기쁜 모습임에도 사드마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새로운 신이라고 하셨죠?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그 전에 여러분은 행복하신가요?” 수수께끼를 내는 듯한 일라나의 말에 두 남자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행복하냐고?

“그야 행복하죠. 어떻게 아니겠어요?” 아스라니가 먼저 답했다.

“저는 아가씨가 앞에 있어서 행복-.”

“정말로요? 과연 그게 진심인가요?” 사드마의 말은 나오기 무섭게 잘려버렸다.

"무슨 소리죠?"

"저도 행복하다고 생각했죠." 갑자기 일라나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보세요. 저 사람들도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니에요."

"이해가 안되는 군요. 어떻게 행복할 수 없죠?" 사드마는 웃으며 되물었다.

"우린 아엘다리입니다. 이 은하계의 주인이자 온 생명의 지배자요. 우리의 문명이 일궈낸 업적에 비해낼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하지만 공허하죠?"

400년을 사는 동안, 단 한 문장이 그토록 깊게 마음에 울린 적이 없었다. 

"공허하다?" 아스라니가 중얼거렸다.

"당신의 말대로 우리는 많은 걸 이뤘어요. 훌륭하죠." 일라나는 건물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요? 평화, 풍요, 행복. 이뤄낼 수 있는 모든 걸 이룬다면, 그 다음엔 무엇이 기다리나요?"

"무엇이 기다린다는 겁니까?"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두 남자 다 그걸 알고 있었다.

"권태." 망치로 내리치듯 일라나는 말을 뱉었다. "우리에게 남은 건 지루함이에요. 더 이상 이뤄낼 게 남지 않은 지루함."

"당신은 새로운 신에 대해 말했죠." 이제는 완전히 진지해진 사드마가 말했다.

"네, 그래요!" 순식간에 일라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 힘이 넘치다 못해 거의 광적인 색채를 띄었다.

"처음엔 저도 믿지 않았죠. 하지만 그분들과 만나면서 세상이 새롭게 칠해지는 것 같았어요.

이전엔 지나치던 꽃 하나하나도 전혀 다르게 보이고, 맛보는 공기와 음식도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느낄 수 있었죠. 그게 바로 새로운 신의 인도 덕분이에요!"

"아, 일라나. 여전히 열심이군. 조금 지나치지만."

갑자기 들려온 낮고 차가운 목소리에 셋 모두 고개를 돌렸다. 창백한 은빛 머리칼에 호리호리한 체구의 남자가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눈은 살짝 위를 향해 치켜져 있어  뱀처럼 날카로운 인상을 풍겼다. 그도 일라나같은 녹색 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유달리 돋보이는 금색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우리 자매에게 귀기울여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실례지만, 자매라니요?" 사드마의 말투는 비꼬는 것을 숨기지 않았지만,  사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희는 <새벽의 인도자>의 회원들입니다. 아, 저는 나르쉬입니다."

나르쉬가 손을 내밀자 둘은 머뭇거리며 악수를 나누었다. 그 사이에도 둘을 훑어보는 나르쉬의 시선에 아스라니는 떨떠름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일라나. 새 형제가 올 거거든." 나르쉬가 일라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끌어당겼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으시면 녹옥 공원으로 와주시죠. 검색하시면 금방 찾으실 겁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둘은 사람들 사이로 섞여버렸다.

"어떻게 생각해?" 아스라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나르쉬 말이야? 좀 무례했지. 아니, 무례하군! 얘기하던 중에 그렇게 끌고 가다니-."

"그거 말고, 지루함 말이네."

"글쎄, 솔직히 조금은 이해가 되네." 사드마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지만 살다보면 그런 순간은 누구나 있어. 결국엔 새로운 걸 찾게 마련이지."

그래도 아스라니는 여전히 그 단어가 잊히지 않았다. 지루함. 

확실히 아엘다리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 지금도 은하 변경에서는 미개한 종족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지만, 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별들에서 아엘다리가 번성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리는 행복과 평화로 가득해보였다. 하지만 이젠 목적을 잃은 채 떠도는 무리들로 보일 뿐이었다. 무언가 부족한데도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가득해갔다. 사드마가 말했듯 어쩌면 새로운 뭔가를 찾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새로운 신이라니?

올려다 본 하늘은 어제와 같이 맑았고, 내일도 그럴 터였다.

그 사실이 그토록 갑갑하게 다가왔다.




덧붙이는 글:

레오 레뮤엘 문서에 나오는 엘다 문명의 몰락을 바탕으로 써볼 예정입니다.

일단 아드리안 스미스 갤에 올릴 예정이지만, 대략적인 평가가 궁금해 올립니다.

월~금 오후 6시 전까지 연재이나, 내일 갑작스런 일로 토요일에 (2)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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