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는 비요른을 이끌고 계곡을 내려갔다. 러스는 자기 셔츠에서 찢어낸 조각으로 비요른의 눈을 가렸고, 그의 팔을 잡은 채 계단으로 이끌었다.

러스는 원이 눈에 든 순간 비요른의 판단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다. 고티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돌로 빚어진 대지는 흡사 쟁기질이라도 한 것처럼 갈아엎어졌고, 피로 흠뻑 젖은 뒤였다. 기이한 무기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지만, 남아 있는 시신은 오직 룬 프리스트들의 것들 뿐이었다. 몇몇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리만큼 짓이겨져 있었다. 의식을 위한 옷이 찢기고, 땅바닥에 살점이 으깨진 채였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무엇인가가 그들을 빠르게 얼려버렸다.

크바의 시신은 그들 중 가장 온전했다. 눈을 뜨고 입을 벌린 그의 시신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녹아내리는 얼음 속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한여름의 불타는 더위 속에, 얼음이 녹아내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의 지근거리에 쌍둥이 수호자들이 누워 있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육신을 나눴던 그들은 이제 한 덩이가 되어 으깨진 채였다.

거대한 선돌은 검게 그을린 채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보다 창백한 지점이 엿보이는 것을 봐서는 부분적으로나마 대지에서 밀려난 것 같았다.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균열이 보였다. 거의 쪼개질 뻔한 것 같았다.

비요른이 공기의 냄새를 맡았다.

“지독하지 않더냐?”

러스가 입을 열었다.

“마법과 절망의 냄새다. 프로스페로의 냄새와 같지.”

러스가 고개를 저었다.

“다른 수가 보이지 않는구나. 위험하지만, 적들의 무기를 쓸 수밖에.”

“크바가 경고했었지요. 하지만 이제 그는 죽었습니다.”

“그래, 경고했지. 말카도르도, 콘스탄틴 발도르도 경고했다. 그들이 옳았지. 내가 필요한 것을 얻었지만, 값을 치러야 했다…”

순간 무언가 후회할 법한 말을 꺼낼뻔 했지만, 러스는 그 직전에 멈췄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다른 말을 뱉어냈다.

“이곳은 파괴되어야 한다. 오염되었고, 사악한 것들이 올라올 곳이다. 워프와 현실 사이의 장벽이 너무 얇아졌어.”

“불태우실 겁니까?”

비요른이 물었다.

“아니다, 아들아.”

러스가 대답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크락가르드는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시르티르로 이어지는 헬의 길은 폐쇄될 것이다. 다시 쓰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러스는 으르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일단 뒤로 제쳐두자꾸나. 할 일이 많다.”

러스는 얼음으로 뒤덮인 크바의 얼굴에 손을 댔다. 이제 녹아내린 물줄기가 흘러내리며 미끄러웠다.

“다음 겨울에."

크바는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