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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2부] 7:i 동행자들의 운명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2.15 13: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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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 미궁 속의 영웅들, 미로 속의 괴물들


7:i 동행자들의 운명



괴물은 항상 거기 존재하고, 늘 당신을 붙잡을 것이다.


올은 그들을 수천 광년의 거리와 수만 년에 걸친 시간 속에서 이끌고 보호 해 왔지만, 그 항해는 이곳, 버려진 도시를 둘러싼 무너져 내리는 흉벽에서 빗줄기를 맞으며 끝난다.


에레부스가 비를 헤치고 나온다. 그가 곧 이 비의 일부다. 그가 곧 이 폭풍의 일부다. 그가 곧 오래된 도시의 벽을 집어삼키는 원소력의 분노다.


올은 아직 버텨선 채다. 온몸은 흠뻑 젖었고, 물기 가득한 옷이 바람에 펄럭인다. 다른 이들은 그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그는 소용없음을 안다. 운명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으니까. 미궁에는 항상 무언가가 당신의 곁을 쫓는다. 올은 잘 알고 있다. 그의 상처가 그것을 증명한다. 칼스의 그 미궁에 발을 디딘 순간, 올은 여정을 떠나는 영웅들이 그렇듯 그들과 같은 어리석은 희망을 가졌다. 괴물이 자신을 발견하기 전, 타래를 따라 미궁의 중심까지 파고들 수 있기를.


하지만 시간과 거리가 무로 돌아간 이곳에서 그럴 수 있을 가능성은 없다. 모든 우여곡절 속에서 그를 쫓던 괴물이 마침내 그들을 따라잡았으니까. 그리고 이전의 모든 여정을 떠난 영웅들이 그러했듯, 올 역시 자신의 어리석은 희망이 헛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아니, 더 나쁘다. 그는 이아손도, 지크프리트도, 길가메즈(Gilgamez, 각주 1)도, 베어불프(Bearwulf, 각주 2)도, 올리테우스(Olyteus, 각주 3)도, 파지발(Parzival, 각주 4)도 아니니까. 그는 튼튼한 창과 청동 방패를 든 강인한 전사가 아니다. 최소한, 더는 아니다. 그는 그저 노인에 불과하다. 뼈까지 흠뻑 젖은 노인이고, 젖은 외투 안에서 이런 종류의 싸움에 어울리지 않는 돌칼을 더듬거리며 찾는 노인에 지나지 않는다.


에레부스는 말 그대로 지옥에서 올라온 짐승이나 다름없다. 놈은 완전무장을 갖춘 비와 분노로 빚어진 존재나 다름없다. 그리고 비와 분노를 제한 나머지를 빚은 것은 권능의 말이다. 사악한 말이요, 지옥의 말이다. 그 말들이 놈을 얽어매어 인간에 가까운 형체를 빚어낸 채다. 놈이 입을 벌려 말하려 한다. 올은 돌칼을 찾아-


그리고 리투가 저기 있다. 그들 중 가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며, 워드 베어러 군단병과 힘으로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그의 손에 쥐어진 강철 기둥이 한껏 뒤로 휘둘러진다.


에레부스가 말한다.


권능의 말, 워프에서 건져내 무기로 벼린 불경한 음소 덩어리, 그 말은 올을 향했지만, 리투가 그 길을 틀어막는다. 아스타르테스는 그 충격으로 뒤로 튕겨 나간다. 존은 튕겨난 리투에게 휘말러 쓰러지고, 리투의 손은 기둥을 놓친다. 무너져 내리는 벽의 주춧돌에 부딪힌 존은 일어서지 못한다.


에레부스는 이미 다시 올을 노리고 있다. 다른 말이 놈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모두 치명적인 말이다. 올은 돌칼을 들고 그에게 달려든다.


“안된다.”


에레부스가 입을 연다. 단 한마디. 안된다.


올은 그 순간 자신이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의 뻗쳐나간 손은 부들부들 떨리며 돌칼을 쥔 채다. 하지만 그의 다른 육신은 얼어붙은 채 상대의 요구에 복종하고 있다. 에레부스는 미소를 지으며 빗속을 뚫고 올의 목줄기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 순간, 크랭크가 에레부스를 후려친다. 황제의 유전-자식들보다도 바라는 것 없는 충성으로, 올의 이름을 외치며 저항을 노호한다. 양손으로 쥔 급조한 곤봉을 괴물의 얼굴과 가슴에 전력을 다해 휘두른다.


충격 속에 빗물이 튄다. 세라마이트 곤봉이 산산이 부서진다. 크랭크의 두 손목도 마찬가지다. 크랭크는 굳은 채 비틀거리며 충격으로 헐떡인다. 에레부스는 혀를 차고서 그대로 언령을 발해 크랭크의 뒤통수를 날려버린다. 영거리에서 발사된 산탄총이나 다름없는 힘이 크랭크의 두개골을 박살낸다. 머리 없는 시체가 쓰러지고, 올은 울부짖으려 한다. 하지만 여전히 얼어붙은 근육은 명령을 거부하며 비명을 지른다. 사지에서 젖산이 불타며 몸을 움켜쥔 힘을 떨쳐내려 발버둥친다.


그리고 그 움켜쥠은 이제 실체를 갖춘다. 워드 베어러 군단병의 거대한 손이 그의 목을 휘어잡는다.


에레부스가 올을 들어올린다. 목이 졸린 채, 올의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한다. 귓속에서 고동치는 맥박이 들린다. 올은 에레부스의 얼굴을 본다. 승리의 미소가 담겨 있는 죽은 눈동자. 광기로 새겨진 말들의 문신. 놈의 뺨과 코, 이마에 묻은 도젠트 크랭크의 피가 빗물에 씻겨 내려간다. 올은 자신의 얼굴에서 크랭크의 피가 뿌려져 있음을 안다. 공기가 부족해지며 어둠이 드리우고, 그를 움켜쥔 힘이 그의 뼈를-


착암기나 가할 수 있을 무거운 일격이 올을 해방시킨다. 올은 벽 위 통행로의 젖은 벽 위에 그대로 쓰러진다. 서보 부속을 뻗친 그라프트는 무효화 상자로 에레부스를 반복적이고도 집요하게 내려친다. 마치 증기 압착기처럼,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내리침이 멈추지 않는다. 그라프트는 전쟁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마치 울타리 기둥을 꽂는 듯이 거듭 일격을 가한다. 지칠 줄 모르는 농경용 서비터의 기능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주저함은 없다. 서비터는 주 조작기를 작동시켜 합금 상자로 에레부스를 거듭 후려치고 있다. 멈춤도, 고려도 없다. 크랭크의 사나운 일격과 달리, 이 일격은 필멸자의 힘 이상을 담고 있다. 그라프트는 대형 등급에 속하는 서비터다. 올은 그가 수확한 농작물 1톤을 한꺼번에 들어올리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다.


괴물이 뒤로 물러선다. 두 팔을 든 괴물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일격들을 막아낸다.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합금 상자가 으스러진다. 에레부스의 얼굴에 묻은 피 전부가 도젠트 크랭크의 것은 아니다.


“그라프트! 물러나!”


올이 소리친다.


“저는 선행을 행하고 있습니다, 병사 페르손.”


그라프트는 답하면서도 끝없이 산업 기능을 활용한 공격을 퍼붓는다.


“정상 작동 중.”


올은 자신에게 손이 닿는 것을 느낀다. 존이다. 존이 그를 일으켜서 뒤로 끌고 가려고 한다. 존이 무언가를 외치지만, 올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현기증이 치밀고, 몸은 흐느적거리며, 귀는 거듭 울린다.


“돌칼…”


올이 헐떡인다.


올은 에레부스가 그를 떨어뜨렸을 때 칼을 떨어뜨린 채다. 존을 밀어낸 올은 한 무릎을 꿇은 채 헐떡인다. 몇 미터 떨어진 젖은 돌 위에 돌칼이 놓여 있다.


다음 순간, 자이베스가 돌칼을 집어 든다. 튕겨나가 떨어질 뻔한 돌칼을 아슬아슬하게 그가 챙긴다.


무효화 상자는 반복되는 타격 속에 완전히 파괴되어 걸레나 다름없는 몰골이 된다. 그라프트는 대신 자신의 조작기로 공격을 시작한다. 에레부스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두 개의 주 조작기를 멈춰 세운다. 다음 순간 보조 조작기가 놈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들어 목 가리개를 움켜쥔다. 괴물은 이제 짜증이 치민다. 놈은 초인의 악력으로 그라프트의 주 조작기 하나를 찢어버린 뒤 빗속으로 던져버린다. 붙들리지 않은 손으로 보조 조작기를 움켜쥔다. 그대로 놈이 보조 조작기를 찢어내고 너덜너덜한 전선들을 끊어낸다. 괴물이 입을 열고, 그라프트의 면전에 직접 언령을 발하려 한다.


그리고 그의 관자놀이에 돌이 꽂힌다. 벌에 쏘인 정도 이상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에레부스는 화를 내며 머리를 획 돌린다. 두 번째 돌을 꿴 캇은 임시로 만든 돌팔매를 빙빙 돌린다.


그리고 두 번째 사격이 날아간다. 에레부스가 짖어낸 음절 한 마디에 날아들던 돌이 공중에 멈춘다. 빗속에 매달린 채 잠시 붙들린 돌이 가루로 부서진다. 흥미를 잃은 듯이, 에레부스는 그라프트를 들고 던져버린다.


무겁고 손상된 서비터가 벽 꼭대기에서 캇과 악타이를 향해 내던져진다. 캇은 움찔하고, 악타이는 손을 들어 올린다. 경련이 인다. 워드 베어러 군단병과 마녀의 중간에 멈춰선 그라프트는 그대로 거꾸로 뒤집힌 채 떠올라 있다. 악타이는 캇의 돌을 붙들던 에레부스처럼 쉽사리 사이카나의 힘으로 서비터를 붙든다. 올의 눈에 그라프트의 장갑판에 새겨진 금이, 파열된 파이프에서 뿜어지는 기름과 유압액이, 목의 지주대 하나가 부러진 그라프트의 고개가 그리는 기이한 각도가 들어온다.


에레부스는 50미터 떨어진 지점에 있는 눈먼 마녀를 응시한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그들 사이에 비를 맞은 채 매달려 있는 서비터를 향한다. 마치 위업을 인정하기라도 하듯, 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그리고, 놈의 입에서 또 다른 추악한 권능의 말이 뱉어진다.


그라프트는 말 그대로 폭발하듯 분해된다. 충격파 속에서 뒤엉킨 금속 파편들이 사방을 향해 튄다. 에레부스는 마치 축복을 내리듯 부드럽게 손을 든다. 그리고 그를 향해 날아오는 파편 중 그를 다치게 하거나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파편들이 파문을 일으키며 저 멀리 날아간다.


그리고 나머지 파편들은 썩 제대로 된 보호가 내려지지 못한다.


악타이는 뒷걸음질치며 역장을 발해 최악의 상황을 간신히 막아내지만, 충분히 빠르지 못하다. 맹렬히 회전하던 톱니바퀴에 캇의 머리가 걸리고, 캇은 그대로 넘어진다. 그라프트의 조각나 톱니처럼 들쭉날쭉해진 어깨 장갑판이 그대로 존의 얼굴을 후려치고, 존은 그대로 올에게 날아간다. 충성스러운 서비터의 단단한 파편 조각들이 장벽 정점의 바닥과 복도의 석재들을 깨뜨린다. 그라프트의 신체를 구성하던 프레임에서 튕긴 금속 파편들이 검은 돌을 마치 화살처럼 후려쳐 꿰뚫는다. 주요 사지에서 튕긴 막대 부분이 헤벳 자이베스의 가슴을 관통한다.


자이베스는 경악과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그의 흉골을 꿰뚫은 금속 막대를 내려다본다. 그의 손에서 떨어진 붉은 실타래는 통로를 가로질러 굴러다니며 구불구불한 흔적을 남기고선 가장자리 너머로 떨어진다. 다른 손에 돌칼을 쥔 채, 자이베스가 소리 없이 벽에서 뒤로 비틀거리다 넘어진다.


올은 자이베스가 떨어지는 것을, 그의 육신이 깊고 어두운 저 너머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본다. 올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미 벽 가장자리를 붙든 채, 간신히 납작 달라붙은 꼴이었으니까. 존은 올에게 날아든 이후 그를 쓰러뜨리고서 계속 굴러간다. 올은 넘어진 채 구르다가 존의 팔을 마치 기적처럼 붙드는 데 성공한다. 올은 존의 손목을 움켜쥔다. 존은 납작 엎드린 채 고개와 어깨까지 이미 벽 끄트머리 너머로 넘어간 채다. 점점 약해지는 움켜쥠만이 그를 추락으로부터 막아내고 있다. 비 때문에 손이 미끄럽다. 존의 발은 이리저리 걷어차며 발가락으로 붙들 지점을 필사적으로 찾는다. 올의 팔이 긴장감 속에서 전율한다. 존의 손목이 탈골되는 것이 느껴진다. 올은 자신이 친구의 무게에 끌려 서서히 낭떠러지 위로 미끄러지는 것을 느낀다. 존은 아래쪽의 깎아지른 절벽에 휘감긴 채 친구를 올려다본다. 얼굴은 피투성이고, 뺨과 코는 찢겼으며, 입과 턱은 파편에 너덜너덜해진 채다. 턱뼈는 완전히 부서진 것 같다.


그의 눈은 애원하고 있다.


무엇을 애원하는 건가? 구해달라고? 아니면 올에게 자신을 놓아달라고, 스스로를 지키라고 하는 눈인가?


“꽉 잡아!”


올이 신음하며 내뱉는다. 존은 다른 손을 뻗치지만, 올의 소매를 잡을 수조차 없다. 오히려 그 와중에 몸이 더 격렬하게 흔들려 움켜쥔 올의 손이 풀릴 것 같다.


존이 무언가를 말한다. 하지만 망가진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오직 소음과 피뿐이다. 다시 그가 입을 연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그냥 보내달라는 걸까? 올에게 그냥 추락하게 내버려 둬 달라고 하는 걸까?


아니, 뭔가 다른 뜻이다. 이것은-


에레부스는 올의 맞은편 벽 가장자리에 선 채, 그들을 내려다본다.


“흥미로운걸.”


에레부스가 중얼거린다. 그가 몸을 수그린다. 갑주 가장자리에 빗물이 흐른다. 에레부스는 올을 붙잡아 들어 올린다. 그리고 딸려 올라온 존 역시 움켜쥔다. 에레부스의 양손이 올과 존을 마치 경품을 틀어쥔 갈고리처럼 나란히 틀어쥔다.


가장자리에서 물러난 에레부스가 올을 통로로 내던진다. 에레부스는 그라마티쿠스와 시선을 마주한 채 그를 가까이 끌어당긴다.


“무슨 말을 하려던 거지?”


에레부스가 묻는다.


“그 망가진 입으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나? 말해 보게. 가르쳐 보라고.”


존은 콧방귀를 뀌며, 망가진 입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에레부스의 얼굴에 피를 내뱉는다. 에레부스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고선, 존을 높이 들어 올린 채 조심스럽게 손으로 뺨에 닿은 모욕을 닦아낸다.


그리고 그 순간, 존 그라마티쿠스는 아엘다리 절단기로 에레부스의 귀를 찌른다.


에레부스는 노호하며 뒤로 비틀거린다. 그가 머리에서 제노의 도구를 뽑아내려 더듬거린다. 에레부스의 관심에서 벗어난 존은 바닥에 나뒹군 채 헐떡이며 몸을 구부린다. 올이 그에게 다가와 일으켜 세우려 한다. 존의 머리는 뒤로 젖혀진다. 그 순간, 그들 옆의 리투가 다시 일어서 둘을 들고 끌고 나간다. 에레부스가 다시 그들을 향한다. 절단기를 빼낸 그가 다시 입을 연다. 세 사람 모두를 증발시켜 버릴 권능의 말을 뱉으려 한다.


그리고 그의 입은 열리기를 거부한다.


문신이 새겨진 괴물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번진다. 고개를 흔들며 다시 입을 열려 하는 그의 얼굴 위로 빗방울이 내려 뺨과 턱 위로 흘러내린다. 으르렁거리지만, 그의 입술은 떨어지기를 거부한다. 조용한 격노 속에서 그가 몸을 돌린다. 악타이가 벽 꼭대기를 따라 그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의식을 잃은 것인지 죽은 것인지 모를 캇이 저 뒤에 쓰러져 있다. 악타이의 들린 두 손에서 손가락들이 갈고리처럼 휘어진다. 그녀의 오롯한 의지력이 워드 베어러 군단병의 입을 틀어막고 있다.


+돌칼. 그 빌어먹을 칼을 가져와요.+


해골 깊은 곳에서 직접 악타이의 명령이 들려오는 것 같다. 리투 역시 그 명령을 들었는지 움찔하는 것이 느껴진다.


+돌칼을 가져오라고요, 페르손. 다시 회수해 와요. 지금 중요한 건 그거라고요.+

“빌어먹을-”


올이 말을 더듬는다.


+내가 붙들어 놓겠어요.+


리투가 올을 뒤로 끌어당긴다. 둘은 거의 존을 반쯤 업다시피 한 채다. 가장 가까이의 벽 계단은 그들 뒤 40미터 정도다. 에레부스는 그들이 달리기 시작하는 것을 본다. 악타이를 힐끗 바라본 에레부스가 그들 대신 그녀를 향해 다가간다.


에레부스가 파워 마울을 든다.


악타이는 자리를 지킨다. 마치 나무를 밀치듯 팔을 곧게 편 채, 손바닥의 뒷꿈치를 모아 손가락을 바깥족으로 펼친다. 이제 그녀가 발하는 사이카닉 힘은 너무도 강대하다. 그녀와 적을 향해 쏟아지던 빗줄기가 사방으로 굴절된다. 팽팽한 힘으로 조여진 발 아래 석조물이 갈라진다. 에레부스는 처음에는 쉬이 보이지 않는 공격을 뚫고 나아가지만, 점점 저항이 거세져 허리케인 속으로 고개를 숙인 채 나아가는 꼴이 된다. 하지만 에레부스는 침묵을 지키며 한 손에 마울을 쥔 채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


벽 계단까지 20미터 남았다. 올은 아래쪽 어둠 속으로 길게 뻗은 석제 계단이 벽과 수평을 이룬 채 깎인 것을 본다. 뛰어내리기에는 너무 멀다.


올은 뒤에서 사이카닉 기운이 발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올이 뒤를 바라본다. 악타이와 에레부스는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채 마주보고 있다. 악타이는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가 부자연스러운 소용돌이를 그리며 악타이 곁을 맴돈다. 워프의 벼락이 당겨낸 줄이 허공을 수놓는다. 괴물은 여전히 그녀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매 걸음마다 초인의 힘과 의지로 견뎌내며 나아간다. 천천히, 천천히, 거리를 좁힌다.


그녀에게 닿는 순간, 괴물은 악타이를 죽일 것이다. 이제 그녀에게 더 남은 것이 있을까? 힘이 남기는 했을까? 그를 막기 위해, 더 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을까?


마치 올의 생각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벽에서 사라져요. 당장 비키라고요 당장!+


올은 망설인다. 눈을 크게 뜬 올이 뒤를 돌아본다. 올의 허리에 팔을 감은 리투가 그를 단단히 붙든다. 반대편 어깨 위에는 너덜너덜해진 존의 육신을 짊어진 채다. 그 역시 악타이의 명령을 들은 뒤다.


올이 입을 열려 한다. 하지만 리투는 이미 행동에 들어간다.


둘을 단단히 쥔 채, 리투가 벽에서 뛰어내린다.


영원 같은 추락이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아마 12미터 정도였을 것이다. 리투는 벽 아래의 계단 위에 정확히 수직으로 발부터 내려앉는다. 검은 돌이 충격에 뒤흔들린다. 리투는 우려스러울 만큼 흔들리지만 균형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 안착한 순간 올은 거세게 리투의 갑주에 부딪힌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처럼 느껴진다.


리투가 그를 내려놓고, 올은 정신이 나간 듯 고개를 들어 위를 본다. 쏟아지는 폭우 사이로, 여전히 벽 위에 있는 두 형상이 보인다. 악타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다. 에레부스는 거의 근접한 채다.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에레부스의 마울은 곧바로 후려치리라.


하지만 존, 리투, 올은 더 이상 에레부스가 공격할 수 있는 범위에 있지 않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죽은 뒤다.


악타이가 한숨을 내쉰다. 다음 순간, 악타이가 제 힘을 재구성한다. 넓게 펼쳐진 저항의 방어막은 이제 날카로운 원초의 분노를 담은 창이 된다. 악타이의 의지가 한 곳에 집중한다.


풀려난 에레부스가 곧장 달려들며 마울을 휘두르려 든다. 하지만 그 일격과 함께, 악타이의 시냅스가 발사 명령을 내린다.


400미터에 달하는 오래된 벽의 정점이, 푸른 에너지로 휩싸인 거대한 기포로 화한다. 폭발의 힘이 벽을 따라 양방향으로 파문을 일으킨다. 돌이 산산이 조각나고, 흉벽이 폭발하고, 보도의 포장재가 공중으로 내던져진다. 리투는 거의 탄약 상자 크기에 가까운 석판과 파편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갑주를 두른 몸으로 존과 올을 감싼다.


충격파가 닥친다. 석조 건물이 무너지는 천둥 같은 굉음이 들린다.


도시의 장벽은 두껍고 드높은데다 아주 오래된 존재다. 빛이 사라진 순간, 그 장벽의 50미터 가까이가 완전히 붕괴된 꼴이 드러난다. 그 아래의 낡은 주거지와 건물들도 으깨진 채다. 거대한 규모의 검은 먼지가, 필연의 도시 위로 내리는 비 너머에 자욱하게 드리운다.





각주 1 : 길가메시로 추정. 돈 파트에서 번역된 철자와 배치되는데 돈이 배운 전승과 올라니우스가 접한 것이 다를 가능성이 있음.

각주 2 : 고대 브리튼 신화의 베오울프로 추정.

각주 3 : 오디세우스의 다른 표기.

각주 4 : 원탁의 기사에 등장하는 기사 퍼시벌(Percival)의 독일어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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