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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The First Heretic, 전장은 잠깐 침묵에 잠기고 -2-

리만러스(222.110) 2023.12.22 17:51:56
조회 225 추천 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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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겔 탈은 자신의 뼈가 원래대로 돌아가기까지 1시간을 넘게 조용히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악마에 빙의된 후 처음으로 헬멧을 벗었을 때의 해방감은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었다. 전장은 기계들이 뿜어내는 매연과 피비린내로 진동했지만 그는 맨살을 스치는 바람을 만끽하느라 개의치 않았다.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 익숙한 목소리가 물었다.


+기분은 좀 어떤가?+


에레부스가 물었다. 아르겔 탈은 몸을 돌려 그의 눈을 마주보았다.


"강하고, 순수하고, 정의로운 고양감이 온몸을 감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차갑고, 공허하고, 유린당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에레부스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아르겔 탈은 드물게 말을 길게 이었다.


"제 안에 깃든 악령이 약해진 것이 느껴집니다. 몸의 변화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알게 된 지금도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다시 변이가 일어난다는 점 때문에 불쾌하지만,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네들이 싸우는 모습을 봤네. 실로 축복받은 아들에 걸맞더군+


아르겔 탈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헬멧의 필터로 걸러진 공기보다는 탁하지만 직접 마시는 공기가 더 좋았다.


"전투 전에 실례를 범했습니다. 스승님, 용서하시지요."


에레부스는 미소를 짓지 않는 대신 따듯한 눈길을 보냈다.


+난 더 이상 스승이 아니라네. 자네는 더 이상 나에게 배울 것이 없어+


아르겔 탈은 눈길을 돌려 전장을 바라보았다. 수 천에 달하는 시체들의 바다였다. 파괴된 전차만 해도 수 백대가 넘었고, 건쉽들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전리품을 획득한 워드 베어러 군단원들이 곳곳에서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7개 배반자 군단원들이 저마다 체인소드로 적의 수급을 취하는 소리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저는 채플린 대신 전사의 길을 택한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 이미 숱하게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채플린이 되기엔 말주변이 비루하기 때문이지요."


에레부스는 자신의 옛 제자의 곁에 다가왔다. 그의 갑옷은 엉망진창이었다. 군데군데 그을리고 금이 가 있어 한눈에 보아도 방금 격렬한 전투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많은 면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부하들만 전장에 보내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가 아마 아스타르테스가 자신의 형제를 죽이려고 무기를 빼든 최초의 순간이 아닐까 하네만+


아르겔 탈 역시 그때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회색꽃의 도시에서 마지막으로 떠나오기 전 프라이마크께서는 경이 저를 용서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이 맞네+


에레부스의 대답에 아르겔 탈의 눈매가 좁혀졌다.


"저는 그 일로 경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생각도 없구요."


+그럼에도 나는 자네를 용서하네. 여전히 내 방식이 너무 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아마 둘 다 생각을 바꿀 일은 없을 게야. 허나, 자네는 그때의 반응이 옳았다고 생각하는가? 자신의 형제를, 군단의 채플린을 죽이려고 무기를 꺼낸 그 반응이?+


아르겔 탈은 채플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 그렇습니다. 여전히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상황만 도왔다면 난 경을 그 자리에서 죽였을 겁니다."


에레부스는 그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자네는 그때의 배신을 제외한다면 정말로 훌륭한 제자였네. 어쩌면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더. 총명했고, 충성스러웠으며, 강하면서도 사려가 깊고 의지가 굳건했지+


충성스러웠다라...


라움의 목소리는 마치 안개속에서 들리는 메아리처럼 미약했다. 아르겔 탈은 그런 라움의 의도를 알았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졌다.


"가끔은, 그 충성심이라는 것이 우리 안에 얼만큼 내재되어있는지 궁금합니다."


에레부스는 단번에 그 속뜻을 읽었다.


+각자의 군단은 저마다 받아들인 유전자 씨앗에 맞춰 변하지. 허나 워드 베어러 군단이 아우렐리안을 따르는 이유는 단순히 그런 충성심 때문만은 아니네. 우리는 그분이 옳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야. 단지 우리가 그래야 하기 때문이 아니고+


아르겔 탈은 그 대답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굳이 지금 해야 하는가?+


아르겔 탈은 자신의 옛스승을 향해 조소 어린 울음소리를 냈다.


"에레부스 경. 우리는 지금 두 군단을 절멸시켰고, 그들의 피는 여전히 우리 손에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곳은 인류 제국 내전의 시발점이오. 대화를 나누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때는 없단 말입니다."

그러자 희미한 미소가 그의 입에 걸렸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물어보게+


"이미 제가 무엇을 질문할 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서로 시간 낭비는 하지 않기로 하죠."


+프라이마크에 관해서겠지. 자네는 40여년 전에 본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은 게야. 딱히 이야기 해줄 것도 없네. 우리가 그때 깨달았던 것의 대부분은 로가의 서에 다 적혀 있으니까+


아르겔 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별로 대답을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리고 경이 그 책의 상당 부분을 집필했고요."


+기도문과 의식에 관련한 내용을 적었지. 코르 파에론 역시 마찬가지네.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고, 프라이마크께서 우리를 이끄셨던 만큼 우리도 프라이마크를 이끌었네+


아르겔 탈은 불쾌감에 질려 으르렁거렸다.


"더 자세히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러도록 하지. 잠시만 기다리게+


에레부스는 말을 마치더니 글라디우스를 꺼내 옆에서 꿈틀거리던 레이븐 가드의 목을 그었다. 할 일을 끝낸 그는 벨트에 달린 가죽 장식에 칼날을 닦았다.


+아르겔 탈, 자네는 그 거대한 눈 속을 탐험하는 것이 어떤지 모를 게야. 로가는 제정신이 아니었어. 황제에 대한 그 분의 믿음은 그 전부터 이미 산산조각 난 상태였고, 우주의 끝자락에서 알게 된 진실은 그 분을 고무시켰던 것만큼 고통을 가했네. 프라이마크께서는 결정을 내리지못해 몇 달 동안 괴로워하셨어. 때문에 코르 파에론이 함대를 대신 지휘했고, 우리가 했던 일이라고는 탐험하며 마주친 모든 곳에 우리의 분노를 쏟아내는 일 뿐이었지. 로가께서는 곧 우리에게 돌아오셨지만 군단은 더 이상 그 분의 복귀를 반기지 않았어. 사실, 아우렐리안께서는 당신이 알게 된 '공포'를 인류가 아직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셨다네+




말 하다 말고 목 자르는 에레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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