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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The First Heretic, 순례자의 종언 -2-

리만러스(222.110) 2024.02.06 15:17:29
조회 151 추천 1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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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쓰란은 언제나처럼 고요함과 침묵을 유지하며 싸웠다. 행동 하나하나가 교본에서 설명하는 그대로였다. 몸을 살짝 숙이거나 트는 것만으로 적들의 공격을 회피하여 체력소모를 최소화하고, 그의 손에서 회전하는 창은 최적의 효율로 라스건의 빔을 반사하거나 적들의 살을 잘라냈다.


그의 풋워크는 정갈하다 못해 금욕적인 수준의 정도를 유지해 마치 제자리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든 것들이 합쳐진 그의 움직임은 '완벽함'이라고 하는 개념이 현실화한 것 같았다.


결국 다시 한 번 피의 비가 통로를 적시고 나서야 적들은 후퇴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패주한 것이다. 시쓰란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붉은 안개 속 중심에 서있건만, 그의 갑옷엔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자세를 고쳐 잡은 시쓰란은 창을 앞으로 겨눴다.


가디언 스피어에 부착된 볼터가 철컥소리를 내더니 불꽃을 토해냈다. 폭발성 탄환이 유카 연대원들의 등을 꿰뚫으며 폭발했고 뒤돌아 도망치던 겁쟁이들의 신체는 육편으로 화해 흩어졌다. 한때 잘 정돈돼있던 통로는 도살장으로 변모했다.


시쓰란은 자리에 무릎을 꿇은 뒤 한번 창을 돌려 통로 바닥에 창을 꽂았다. 순식간에 재장전을 끝낸 황금빛 전사는 다시 일어섰다. 마침 라스빔이 쏘아지고 있길래 깔끔히 쳐내는 것은 잊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살육의 춤이 펼쳐지려고 했다.


+시스, 움직인다+


아퀼론이 복스 채널 너머로 그를 불렀다. 시쓰란은 레티널 디스플레이로 수신했다는 룬을 한번 켰다 끄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때 유카 연대의 지원군이 몰려왔다. 오랜지색 군복을 입고서 촐랑대는 모습이라니. 시쓰란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시체들의 벽을 가볍게 뛰어넘어 그들을 맞이했다. 다시 한 번, 피안개가 그를 감쌌다.


지원군의 운명은 그들이 도우려 했던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슬린 견갑과 피에 절은 할버드 날만이 시쓰란이 전투를 벌였다는 유이한 증거였다. 하찮은 것들. 커스토디안을 근접전으로, 총검으로 죽일 수 있다고 믿은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를 바라보니 마녀의 방에서 형제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3명이 들어갔는데 나온 것은 니랄루스와 아퀼론 2명 뿐이었다. 게다가 갑옷 이곳 저곳이 불에 타거나 깨져 있었다. 시쓰란은 곧 시선을 거두었으나, 무언의 질문을 눈치챈 아퀼론이 먼저 대답했다.


+칼힌은 전사했다. 서둘러야 해+


시쓰란은 아퀼론의 검을 바라보았다. 번들거리는 피가 칼 끝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Xi-Nu 73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재호흡기에서 벌레가 우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신경에 연결된 감각 기관이 '기능 종료'의 고통을 줄이고자 모든 기능을 다 발휘했지만 완전히 다 사라지지 않았다.


기능 종료는 바꿔 말하면 죽음이었다. 최후의 순간에 그는 기계적인 해석보다 인간적인 표현을 선택했다. 죽는다는 것, 죽음...참 드라마틱하다고 느껴서 그는 웃었다. 쿨럭이자 체내의 오일이 재호흡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기계교의 사제는 유일하게 남은 팔로 기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니면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서 저 여자의 시체를 해부할까?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사고 회로가 그 기회 비용에 대한 손실과 이득을 계산했다.


그래, 차라리 그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 않을 것이다. 그 기회 비용은 기각되었다. 그는 계속 기었다. 약 1미터쯤 안되는 거리를 계속 기어갔다. 사제는 자신이 목표물에 다가가기 전에 그의 기능이 종료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았다. 그 가능성이 자꾸 움직이라고 재촉했다.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유기물 부위가 실시간으로 파괴되고 있었다. 목표한 지점에 도달했을 때 그는 이미 시각을 잃어버린 후였다. 코지테이터가 종료될 때 처럼 잠깐 불빛이 반짝이더니 그대로 영원한 어둠이 드리워졌다.


깡, 그의 팔이 목표물에 닿았음이 느껴졌다. 그는 생명력을 잃은 자신의 피조물을 잡고 몸을 끌었다. 파괴된 로봇은 쓰러진 기계신의 현신이었고, Xi-Nu 73은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끌어안듯 그것을 팔로 감쌌다. 그의 발성 기관이 미약하게, 생애 마지막 말을 뱉어냈다.


+자, 이제 너의 임무가 모두 끝났음. 아주 명예롭게. 선구자들의 훈장을 기록하는 아카이브에 영원히 기록될 것+


그 말을 끝으로 기계교의 사제의 존재가 멈췄다. Xi-Nu 73은 그로부터 정확히 23초 뒤에 신체의 모든 기능이 정지했다. 만약 그가 자신이 '종료'되고도 약 30초 동안 생체 장기가 살아있었음을 알았다면 그다지 기뻐하지 않았을 것이다.




챔버는 곧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부츠가 바닥을 굴리는 소리가 통로를 가득 배웠다. 진홍색 아머를 입은 거인은 피로 물든 통로를 뒤로 하고 바쁜 걸음을 옮겼다. 챔버 문 앞에 선 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비키게. 나도 좀 지나가지+


자'판이 아르겔 탈 뒤에서 그를 밀자 진홍의 군주가 채플린을 노려본 뒤 방으로 들어섰다. Xi-Nu 73은 마치 아이처럼 몸을 웅크린 채 인카내딘 옆에 죽어있었다.


오토마톤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거대한 동체는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이 잘리고 찢겨지고 갈라져 있었다. 팔에 부착된 캐논도 잘게 조각나 안의 부품이 다 드러날 정도였다. 한때 기계가 자랑스럽게 달고 있던 군단 깃발과 망토, 군단원들이 붙여줬던 스크롤들도 모조리 찢겨져 조각나 있었다.


벽과 바닥도 별 다를 바 없었다. 보강된 철문과 벽, 그리고 옆의 조정실로 이어지는 격벽이 갈라지고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볼터 탄환의 폭발 흔적이리라. 아르겔 탈은 그 모든 것을 한번 슥 둘러보는 것으로 다 파악했고 곧 관심을 끊었다.


그는 시레니 옆에 무릎을 꿇었다. 흘러나온 피가 그녀의 붉은 가운을 더욱 붉게 물들였다. 마치 자신의 파워 아머를 연상케 하는 색이었다. 그녀의 상처는 단 한군데, 심장 부근에 커다란 자상이 나 있었다. 그 크기로 보건데 심장은 거의 남아있지 않을 듯했다.


피다.


그 존재감은 여전히 미약했지만 그에 반응한 아르겔 탈은 온몸이 분노로 차올랐다.


곧 피의 비가 내릴 지니. 사냥을 시작하거라.


변이가 시작되었다. 악마는 아르겔 탈의 마음 속에서 전투가 곧 일어날 것임을 느꼈고, 그들이 공유한 육체가 그에 맞춰 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르겔 탈은 곧 짐승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시레니가 움찔하자 그 숨소리는 감쪽같이 사그라들었다. 아직 살아있어. 내가 어떻게 그것을 몰랐지? 거의 다 파괴되어 형체도 갖추지 못한 그녀의 심장이 마지막 힘을 짜내고 있었다.


+시레니...+


아르겔 탈이자 라움이기도 한 거인이 으르렁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미약하여 목소리라고 말하기도 슬플 정도였다.


"이것...이것이 바로 내 악몽이었어요..."


지난 반 세기 동안 빛을 잃었던 눈동자가 거인을 바라보았다.


"어둠속에서...악마의 숨소리를 듣는 것 말이에요..."


거인의 발톱은 그녀를 보호하기라도 하는 듯 조심스럽게 감싸고 있었다. 허나 이미 여자의 육신은 파괴되어 회복의 단계를 멀리 벗어난 상태였다. 그녀의 피가 거인의 손가락을 타고 흘러 다시 그녀의 몸 위로 떨어졌다.


"그들이 대체...당신에게...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요...?"


시레니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리고 거인이 대답하기도 전에 생명의 끈을 놓고 말았다.


시레니 발란티온은 그렇게 아르겔 탈의 품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시레니는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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