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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The First Heretic, 순례자의 종언 -6-

리만러스(222.110) 2024.02.14 14:11:14
조회 189 추천 1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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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한동안 아르겔 탈은 이 작지만 치열했던 전투를 떠올리기 힘들었다. 라움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인가 생각했을 때도 있었고 때로는 죄책감 때문에 스스로가 기억 속에서 지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의 기억 속에 남은 것은 파편으로 변한 기억의 조각들과 메아리 치는 것처럼 어두운 소음 뿐이었다.


그것은 이를테면 어린 시절 가장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쓰는 것과 비슷했다. 오감을 모두 활용하여 그 기억이 진짜로 믿으려 하는 것과 같았다. 우리는 인간이었던 적이 없었다, 아르겔 탈은 이 말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 말이 진실이며 또한 거짓이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말노르, 그나마 그는 가끔씩 선명하게 떠오르고는 했다. 그가 언제 죽었더라? 우리는 얼마 동안 싸웠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았다.


쿠스토데스 니랄루스말노르의 머리를 베어냈으나 그는 쓰러지지 않았다. 투구같이 생긴 형상이 목이 있어야 할 곳에서 소리 없는 괴성을 질렀다. 아르겔 탈이 본 이들 중 가장 뛰어난 검사였던 니랄루스는 말도르를 완전히 끝장내기 위하여 몇 번이고 검을 내리쳐야만 했다.


그들의 결투는 이성을 가진 자가 결코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광적이고 정신없이 펼쳐졌다. 생각과 격식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 동안의 훈련과 실전 감각으로 다져진 본능만이 남았다. 칼날과 발톱이 은빛 섬광으로 화하며 서로를 노렸다. 세라마이트 조각이 그에 맞춰 공중에서 춤을 추었다. 고통의 찬 신음소리가 불편한 합창을 시작했고 산성 침과 땀, 종이 조각, 뼈, 고통, 자신감, 볼터 총구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 숨소리, 눈물이 뒤섞였다. 그리고 그 사이를 피와 더 많은 피가 채웠다.


그러다 마침내 첫 번째 전사자가 발생했다.


니랄루스는 분명히 검술의 달인이었으나, 말노르를 죽이는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빈틈을 내보이고 말았다. 토르갈과 시카르가 니랄루스의 등 뒤에서 덮쳤다. 발톱과 칼날이 온 몸을 짓이겼고, 날카로운 이빨은 목 뒤의 장갑판을 뜯어내고 척추뼈를 분리시켰다. 그래, 죽였으면 죽임 당하는 법이다.


커스토디안 가드가 쓰러지자 토르갈은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며 주위를 경계했다. 하지만 시카르는 커스토디안의 살점을 맛보는데 정신이 팔렸고, 그것이 운명을 결정지었다. 오큘리 임페라토르, 황제의 눈이라 불리는 아퀼론이 형제의 복수를 하기 위해 달려들어 핏방울조차 튀기지 않는 깔끔한 몸짓으로 시카르의 몸통을 조각내었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짧은 순간이었다.


그 다음 순간에 끼어든 것은 아르겔 탈이었다.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아르겔 탈은 여전히 그 때의 도약과 자신이 내지른 고함을 기억했다. 아퀼론의 목이 몸통에서 뜯겨나가는 소리 역시 귓가에 맴돌았다. 달랑 거리는 척추뼈를 매달고 육즙을 흘려대는 커스토디안의 머리통이 잊혀질 리 없었다. 그 직후 들렸던 웃음소리는 아르겔 탈 자신의 것이었을까. 그건 확실하지 않았다.


두 명의 커스토디안이 쓰러졌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여섯 명의 갈 보르박들은 악마의 힘이 핏줄 속에서 불타오르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 남은 커스토디안 가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르겔 탈이 기억하는 그 날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시쓰란은 투구를 벗어 맨 얼굴을 드러냈다. 그는 창을 단단히 쥐고 방어 자세를 취하는 대신 거꾸로 잡아 힘껏 던졌다. 갈 보르박들이 급히 산개했으나, 창은 빗나가지 않았다. 직격당한 갈 보박의 흉갑이 썩은 고목 나무처럼 산산히 부서졌다.


세라마이트 판을 가볍에 꿰뚫은 창날은 근육과 뼈를 갈아버리고 몸통 전부를 관통하여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 아스타르테스는 그 충격으로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쓰러졌다. 세 개의 폐와 두 개의 심장은 고기 조각으로 변하여 꿀렁거리는 피에 섞여 흘러 나왔다.


시쓰란은 다섯 명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는 자신이 맹세했던 침묵의 서약이 끝났음을 느끼고는 방금 전 자신이 죽인 전사를 향해 웃음을 터뜨렸다.


"자'펜, 난 항상 네놈이 역겨웠어."





완역까지 앞으로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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