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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테라 공성전 : 종말과 죽음 3부] 10:vi 더스크

말카도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3.04 11: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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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vi 더스크



호루스 루퍼칼이 형상의 이름을 말한다.


“더스크. 프로콘술 카이칼투스 더스크.”


마치 즐거워 보이기라도 하는 표정이다.


“다시 네놈이 끼어들어 참견하는구나. 이 일은 나와 아버지가 결론을 낼 일이다. 그 유산을 논해야 한단 말이다. 너 같은 작은 병사 나부랭이가 낄 일이 아니지.”

“나는 너를 거부한다.”


카이칼투스 더스크가 차갑고 분명한 목소리로 답한다.


“제국은 너를 거부한다.”

“그래서… 무엇으로 말이냐?”


루퍼칼이 묻는다.


하지만 카이칼투스는 흔들림 없이 자리를 고수한다. 카이칼투스는 빛나는 모범의 창을 들어 그와 마주한 괴물에게 겨눈다. 그는 불경한 옥좌에 목박혀 짓눌린 자신의 왕을 등 뒤에 둔 채로 굳건히 버텨 선다. 상처를 입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를 죽이려 드는 아들 사이를 그가 가로막는다.


하지만 카이칼투스는 괴물이 옳다는 것을 안다. 지금 그의 육신은 고통 속에 거의 흔들리다시피 떨고 있다. 그는 약하다. 그의 굴절 역장 생성기도 고장이다. 설령 그가 온전히 전성기 상태의 기량을 유지한다 해도, 이 싸움에 충분치는 못할 것이다.


카이칼투스에게 남은 것은 없다. 아무것도.






리투가 시원의 옥좌들이 늘어선 대열에 도착한다. 다시 그는 그림자 속에 몸을 감춘다. 추악하다. 조잡하고 미욱한 솜씨로 돌을 깎아낸 것에 불과하다. 저것들이 그리는 각도는-등받이, 앉을 곳, 팔걸이까지-모조리 잘못되고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이 공간 자체와 다를 것이 없다. 너무도 어둡고, 조용하고, 비참하다. 속삭임이 공기에 주름을 자아낸다. 하지만 죽음의 회당은 텅 비어 있다. 저 형상들은 그저 외로이 있을 뿐이다. 오직 리투, 인류의 주인, 그리고 야수 중의 야수가 있을 뿐.


그리고, 저기 헤타이론의 프로콘술이 있다.


커스토디안, 더스크가 어디선가 다시 살아남아 나타났다. 하지만 그런 그가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갔다. 저 머저리는 열린 공간에 나와 호루스와 맞서려 한다. 루퍼칼이 나아갈 길에 선 채, 상대를 노려보고 있다.


미친 짓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나? 리투는 생각한다.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가? 이 불가능한 괴물과 맞서는 것? 황제를 지키기 위해 황제의 앞에 나 자신을 던지는 것? 즉사하는 것?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리투, 미쳤나 싶을 정도로 용맹한 프로콘술, 그리고 만약 살아 있다면 루나 울프 군단의 로켄까지… 그들 모두, 그저 인간일 뿐이다. 한낱 얼룩에 불과하다. 차원이 다르고, 확실히 압도당하며, 이 상황 속에서는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하다. 그들이 이렇게 오래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기적이나 다름없다. 이것은 워프의 전쟁이다. 인간의 한계를 훨씬 능가하는, 우주적 속성을 띤 더 높은 층위의 힘들이 격돌하는 전장이다. 문명의 역사 속에서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이다. 인류의 주인과 함께 이른 세 전사는 무의미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세 전사 모두, 여기에서는 미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사건의 저편에 떠다니는 먼지에 불과하다. 구경꾼으로서 여기 있는 것조차 행운이다. 그들은 여기 있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 그들이 설 곳도, 수행할 역할도 없다. 리투는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은 것인지까지도 의문이다. 이 장소가 띠는 인외의 본성과 비틀린 비물질계의 집중된 힘, 그 모든 것이 이들을 이 환경에서 존재할수 없게 만들어야 정상이다. 중성자별의 표면, 초신성의 중심, 은하계에서 인류의 생명이 존재할 수 없게 하는 극도로 적대적인 어느 장소보다도 더 그들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들은 여기 이르는 순간, 모두 멸절당했어야 정상이다.


이 궁정보다 필멸의 삶에 적대적인 공간은 없기에.


그들이 구경꾼으로나마 여기 존재할 수 있으려면, 인간을 구성하는 유기체를 지탱하고 비물질계의 집중된 힘이 그들을 소멸시킬 수 없도록 막아내는 어떤 힘이나 특질히 이 궁정에 있어야 만 한다.


리투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호루스가 그 핵심일 것이라고. 처음 발견된 이의 인간성이 유물로나마 아직 그 어두운 공포 안에 남아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핵심임이 분명하다. 호루스가 육화된 카오스의 도구로서 스스로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리투와 프로콘술이 아직 살아 있는 것 역시, 단지 호루스가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약점일까?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결함일까?


약점일 수 있다. 하지만 리투나 카이칼투스가 사용할 수 있는 약점이 아니다. 그런 약점을 이용하려면 그들보다 더 우월해야만 한다. 더 위대한 존재이며, 루퍼칼의 우주적인 역량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기능하는 이여야만 한다.


리투는 그저 스페이스 마린일 뿐이다. 그는 이런 싸움에 투입될 수 있게 빚어진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이 경기장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어떤 아스타르테스보다 날카로운 전술적 통찰력이 있다.


카이칼투스 더스크는 루퍼칼의 주의를 찰나나마 분산시켰다. 그는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무기, 용기를 사용했다. 리투는 그와 함께 맞서 싸우다 죽을 수도, 혹은 주의가 분산된 틈을 타 처음 발견된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를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


리투는 옥좌들이 그리는 그림자 사이로 미끄러지며 황제를 향해 나아간다. 인류의 주인은 죽은 듯 눈을 감은 채다. 일그러지고 흐느적거리는 거대한 형상이 피범벅이다. 마치 녹은 쇳덩이로 빚은 듯 보이는 기이한 오각성이 황제를 돌로 만든 옥좌에 못박아 놓고 있다. 리투는 그 중 하나를 뽑으려 한다. 황제의 오른쪽 허벅지에 단단히 박혀 있는 별이다. 갑주를 둘렀음에도, 그 별을 잡자 손이 불타는 것처럼 느껴진다. 만물의 애도를 뽑은 리투는 검을 지렛대로 삼으려 한다. 황제는 움찔도 하지 않는다.


리투가 전력을 다하며 으르렁거린다. 그의 노력 끝에 첫 오각성이 뽑혀 나간다. 달궈진 강철 고리처럼 바닥에 튕기며 쨍그랑 소리가 난다. 상처에서 차갑고 끈적한 피가 약하게 흘러내린다. 리투는 미친 듯이 왼쪽 허벅지에 박힌 별을 비튼다. 시간이 없다.


워마스터에 맞선 카이칼투스의 저항은 오래 가지 못할 것이기에.






“호루스 루퍼칼, 너는 속았다.”


카이칼투스 더스크가 말한다. 그의 창을 쥔 손이 떨린다.


“비켜라.”


워마스터가 으르렁거린다.


“거부한다.”


헤타이론이 대꾸한다.


“오직 그분의-”

“내 아비에게 남은 의지 따위는 없다! 네놈이 서 있는 것조차 신기하군! 당장 비켜라.”

“거부한다.”


카이칼투스가 답한다. 물론, 호루스는 그의 허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호루스는 쉬이 그를 짓밟고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관중들은 이 잔인한 경기를 즐기는 중이다. 카이칼투스는 저들의 울부짖음을, 환성을 들을 수 있다. 파멸한 필멸의 영혼을 끌어내는 고통스러운 고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회다. 헛된 애원을 들을 기회요, 희망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인간적인 특성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연민에 애걸하는 것을 들을 기회다. 그 진심을 마시고 용기를 간직할 기회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아무 소용 없음을 깨닫는 최후의 순간, 폭발하는 달콤한 고통을 맛볼 기회다. 카이칼투스는 워마스터가 미소를 감추려 애쓰는 것을, 엄숙한 음색을 유지하려 애쓰는 기색을 본다. 워마스터는 지금 관중을 향해 교활한 눈짓을 보내고 있다.


“너는 속았다, 내 아들아.”


카이칼투스 더스크가 말한다.


워마스터의 시선이, 갑자기 그에게 향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강렬해진다.


“뭐라고 했지?”

“나는 네가 속았다고 했다.”


카이칼투스가 반복한다. 그의 팔이 떨리고 있다. 얼마나 창을 들고 버틸 수 있을지, 혹은 버텨 서 있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카오스는 너를 꼭두각시로 삼았다. 오래된 넷은 너를 새로운 황제로 세울 필요가 없다. 저들은 그런 필멸의 사안을 인식하지조차 못한다. 저들은 단지 인류의 승천을 막기 위해, 일전의 황제를 죽이고자 할 뿐이다. 너는-”


치켜세운 발톱이 카이칼투스를 가리킨다.


“너는 ‘내 아들’이라고 했다. 네놈은 네 것이 아닌 목소리로 말하고 있구나.”

“나는 내가 아는 유일한 목소리로서 말한다.”


카이칼투스 더스크가 말한다.


“그것은 내가 말하는 유일한 목소리요, 내가 듣는 유일한 목소리다. 나는 나의 목소리로서 말한다, 처음 발견된 호루스여. 여기 귀를 기울여라. 들을지어다, 아득히 멀어진 아들아. 너는 속았-”

“내가 지금 듣는 목소리는 오직 기만자의 목소리일 뿐이다.”


호루스가 대꾸하며 카이칼투스 더스크를 그 자리에서 그대로 지워버린다.


워마스터의 흉갑에 달린 거대한 눈이 핏빛 광선을 발한다. 5초, 6초나 되었을까. 그 빛이 타오르며 프로콘술의 전신을 삼킨다. 그리고, 섬광은 사라진다.






리투는 자기 뒤의 프로콘술을 불태우는 사악한 빛의 울부짖음을 듣는다. 그 열기의 역류가 느껴진다. 리투는 두 번째 오각성을 뽑아 내던져 황제의 다른 허벅지를 풀어준다. 그가 옥좌의 가장자리를 따라 오른다. 황제의 어깨를 관통한 세 번째 별을 뽑기 위해서다.


거대한 형상은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 갈라진 입술과 코에서 피가 줄지어 흐른다. 얼굴에 장막처럼 드리운 검은 장발에 피가 엉긴다. 왼팔은 지독한 상처를 입고 어깨부터 뼈가 드러난 채다. 살점이 소매처럼 벗겨진 채 달라붙고, 구겨진 갑주가 손목을 감싼다. 황제의 천사 아들이 그러하듯, 모든 생명이 빠져나간 것처럼 보인다. 지금 불경한 옥좌에서 황제가 곧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세 번째 오각성이 꽂혀 있어서다. 별을 뽑아내면서 상처를 입은 손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리투는 세 번째 별을 뽑으려 한다. 하지만 별은 움찔조차 하지 않는다.


“일어나소서!”


리투가 힘껏 별을 잡아당기며 쉿쉿거린다.


“일어나소서, 황제시여! 일어나소서, 위대한 이여! 일어나셔야 하외다! 너무 늦기 전에 일어나소서! 당신의 악마 아들이 거의 다가왔나이다!”


다시 만물의 애도를 지렛대 삼아, 뜨거운 강철이나 다름없는 오각성을 당긴다. 힘을 너무 세게 주었는지, 자루 바로 근처의 칼날이 깨져 파편이 튕긴다.


“일어나소서!”


리투가 소리친다.


“일어나소서! 에르다가 저를 보냈나이다! 에르다는 당신이 서기를 바라나이다! 당신이 서셔야만 하나이다!”


만물의 애도의 칼날 부분이, 압력 속에서 휘기 시작한다.






프로콘술이 들고 있던 모범의 창은 엄청난 열기를 받아 연기를 뿜는 채, 궁정의 바닥에 쨍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하지만 카이칼투스 더스크는 아직 서 있다. 엄청난 열기 속에 그의 갑주는 거의 붉게 달아오를 지경이고, 그의 육신 곳곳에는 물집이 솟는다. 피부가 거의 다 익어버릴 지경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아직 서 있다. 그리고, 아직 살아있기까지 하다.


루퍼칼의 눈이 깊게 찌푸려진다. 군중은 침묵에 잠긴다.


“불가능한데.”


워마스터가 중얼거린다.


“오-오직 그-그분의 의-의지로-로서…”


카이칼투스의 부서지고 부어오른 입술에서, 불분명한 말이 새어 나온다.


워마스터의 얼굴이 순간 붉어진다. 마침내,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마주하기라도 한 듯이. 다음 순간, 워마스터는 흔들리는 커스토디안의 흉갑에서 상징을 본다. 손가락으로 문지르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조잡한 인장이다. 갑주가 과열된 이후에야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난 것 같다. 그리고 그 인장은 빛나고 있다.


“인장관의 마술이군.”


호루스는 경멸하듯 쏘아붙인다. 그리고 그는 프로콘술의 이름을 외우기 시작한다. 처음 본 순간, 바로 이 공기 속에서 훔쳐낸 이름들이다. 그는 그 모든 이름을 외우기 시작한다. 카이칼투스의 갑주 안에 미세하게 새겨진 610개의 이름이다.


“카이칼투스 더스크 오낫비테 알비아 살마이 레반틴 사르코살 쿠즈코 바르비에리 귈로리 카자본(Caecaltus Dusk Onatvite Albia Salmay Levantine Sarcosal Cuzco Barbieri Guillory Cazabon)…


20개째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카이칼투스는 곧 쓰러지기라도 할 것처럼 휘청인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워마스터의 흉갑에 붙은 눈이 다시 폭발한다. 더 집중된 핏빛 광선이 카이칼투스를 뒤덮는다. 이번에는 고대의 인장 기술도 견뎌내지 못한다. 눈부신 에너지의 광선에 휩싸인 카이칼투스 더스크가 부들부들 떨며 휘어진다. 다음 순간, 그의 전신이 황금빛 파편으로 부서지며 사방으로 날아간다. 뜨겁게 녹은 채 연기가 피어오르는 오라마이트 파편이 갑판 위로 흩어진다. 그리고 가장 온전한 조각, 무거운 아퀼론 갑주의 흉갑이 바닥에 떨어진다.


카이칼투스 더스크를 구성하던 유기물은 무엇도 살아남지 못한다.






”일어나소서!“


리투가 울부짖는다. 뒤에서 또 다른 끔찍한 기성이 들린다. 에너지의 폭발이다. 뜨거운 재의 조각들이 그와 옥좌, 그리고 황제에게 쏟아져 내린다. 세 번째 오각성은 조금씩 흔들리지만, 아직 뽑힐 기미가 없다. 리투는 황제의 피로 손, 팔, 가슴까지 모조리 피투성이가 된다.


”에르다가 저를 보냈나이다!“


리투가 외친다.


”에르다는 당신께서 일어서시기를-“


그리고 리투가 허공에 매달린다. 다리가 흔들리고, 상반신이 끔찍한 압력에 짓눌린다. 처음 발견된 이, 괴물이 그에게 이르렀다. 괴물은 그를 빌어먹을 발톱으로 붙들어 옥좌에서 떼어냈다. 날카로운 발톱이 리투의 육신을 휘감고 닫힌다.


리투를 번쩍 들어 올린 호루스는 마치 영문 모를 표본을 살피듯 리투를 살핀다.


”네놈은 뭐지?“


워마스터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묻는다.


탈론에 쥐어진 채, 리투는 무력하게 몸부림칠 뿐이다. 그의 시선이 아래쪽의 핏빛으로 물든 얼굴을 본다. 이제, 그는 공포가 무엇인지 안다.


”이름을 찾을 수 없군.“


호루스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들어맞는 혈연도 없고. 그저 제조번호뿐인가. LE 2라. 하지만 네놈은 이름을 말했지. 에르다. 그년이 네놈을 여기 보냈나? 그년이, 여기서 벌어지는 일에 낄 수 있다 여겼나?“

”에르다는-“


리투가 헐떡인다.


”아무것도 못 하겠지.“


호루스가 대꾸한다.


”그년은 죽었다. 사도 에레부스가 저 사막에서 그년을 어떻게 죽였는지 이미 다 고했다. 이미 그년은 차게 식은 시체에 불과하다, 스페이스 마린. 그리고 네놈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데 실패했다. 모든 것에서 말이다.“


리투의 고뇌에 찬 중얼거림을 들은 관중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고개를 저은 호루스는 그대로 발톱을 튕겨 리투를 내던진다. 워마스터는 군단병이 어디로 떨어졌는지 볼 생각조차 없다.






리투는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내던져진다. 진탕을 일으켰는지 멍하다. 모든 소리는 밋밋하고 흐릿하게 들린다. 슬픔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무뎌지고 무감각해진다.


리투는 눈을 뜬다.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주변을 둘러싼 어둠이 보일 뿐이다. 그는 움직일 수 없다. 다음 순간, 리투는 자기 주변을 둘러싼 형상들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드높은 하얀 아치가 저 머리 위로 뻗친다. 매끄러운 설화석고로 빚어진 형상이다. 그의 오른쪽에는 깎아지른 벽이 있다. 빛나는 금속을 연상시킨다.


냄새가 난다. 이제껏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다. 물질이 만들어내는 어떤 냄새와도 들어맞지 않는, 아주 풍성하고 물리게 하는 냄새다. 깊은 공허, 그을린 고기, 뜨거운 금속, 멜타 연기가 뒤섞인 것 같은 독특한 악취가 치민다. 광기의 향기요, 멸망의 악취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냄새가 풍긴다.


그의 집중력이 회복된다. 흐릿하던 주변의 형상들이 다시 형체를 되찾는다. 금속으로 빚어진 벽은 벽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워져 있는 도끼날의 측면이다. 거의 산의 절벽만큼이나 높은 도끼날이다. 아치 역시 설화석고로 빚어진 아치가 아니다. 달빛처럼 하얀, 맹금류의 그것과 유사한 발톱이 그려내는 곡선이다. 비늘 달린 발가락 끝에서 그 위까지 치솟아 있다. 그 곡선이 1킬로미터 위에 있다. 그렇기에, 그 아래 누운 리투에게 보인 것이다.


그 발톱은 무언가에 이어져 있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 믿을 수 없이 광대한 것들이 보인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그중 일부, 오직 땅에 가까이 있는 것들 뿐이다. 리투는 지금 잔칫상에서 버려진 뼈처럼, 그 거대한 존재들 사이에 떨어져 있다. 그는 그들 가운데, 그들의 발치에 누워 있는 것이다.


네 놈이다.


한 놈이, 천 킬로미터 너머에 있는 고개를 아래로 숙여 그를 생기 없는 무심한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비명을 지를 순간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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