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레네의 푸르름은 죽음에 삼켜져 사라졌다. 남은 것은 검은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과, 깨진 지표에서 가끔씩 뿜어지는 마그마의 지옥 같은 불빛 뿐이었다.

키레네는 죽었다. 그리고 궤도 함대는 행성에 여전히 광범위한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창문을 통해 불타는 세상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고, 대신 그는 그보다 키가 작은 그레이 나이트의 그랜드 마스터 콰녹스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콰녹스의 은빛 갑옷은 반짝였고, 양 팔에 매달린 긴 양피지의 띠가 인상적으로 펄럭였다. 그의 손에는, 특별 서신이 들려 있었고, 그의 옆에는 튜브 꽂힌 로브를 두른 성직자가 큰 소리로 서신을 읽고 있었다.

"하여 테라의 황금 옥좌에 계신 최고 주권자의 법령에 따라, 가브리엘 안젤로스 대위는 키레네의 파괴를 요청하는 의롭고 근민한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다. 이에 따라, 행성을 더럽히는 이단 행위에 있어 그가 무죄임을 공고한다."

가브리엘은 서신을 받아들였다.

"잘 했소, 키레네의 마지막 아들이여."

콰녹스가 말했다.

"일어나서 당신의 형제들과 다시 동등한 대접을 받으시오."

블러드 레이븐들이 캡틴을 일으켜 세우자 방 안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콰녹스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성직자를 데리고 방을 나갔다. 블러드 레이븐은 그들이 떠나기를 기다렸다.

가브리엘은 그의 결백을 축하하는 자리가 끝이 나 형제들이 죽은 세계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담소를 나누기 위해 흩어질 때까지도 굳은 표정을 유지했었다. 이사도르는 캡틴의 곁에 남아 있었다.

"조심하게."

이사도르가 서신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너무 세게 쥐고 있어서 양피지가 구겨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손에서 힘을 뺐지만, 표정은 여전히 굳은 채였다.

"자네가 알아야 할 일이 있는데."

이사도르가 말했다.

"우리는 내일 궤도를 떠날 걸세. 머신 스피릿에 문제가 없다면."

"일 주일은 여기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가브리엘이 그의 슬픔을 잠시 잊은 듯 말했다.

"함대는 여기 남겠지만 우리는 헬워치 전단을 호위하기로 했네. 오크 함대가 타르타로스 성계에 도달했고, 제국은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네."

"타르타로스라, 왜 그 이름이 낯이 익지?"

가브리엘이 말했다.

"그 곳은 순례 세계라네. 공포의 눈 근처에서 여러 차례 흑성전을 견뎌낸 곳이자, 아주 중요한 성자가 있는 곳이지."

가브리엘이 미소지었다.

"맞아. 거기 좋은 도서관이 있던가?"

"그렇다던걸."

이사도르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우리 챕터의 도서관에 절실히 필요한 책이 몇 권 있지."

"좋아. 오크의 위협을 일소하고 나면 찾아볼 수 있겠군. 2주 정도가 지나면."

가브리엘이 키레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작은 전쟁이 휴식처럼 느껴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