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났다.

 하이 킹의 담마즈 크론의 양피지를 넘기는 두툼한 손가락의 움직임이 경쾌했다.

 다위와 움기와 엘기가 힘을 모아 다고라키와 카자키둠, 우르크와 그로비들을 물리쳤다. 실로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움기의 신, 돌아온 다위의 친구 지그마가 자신을 에버초즌으로 자처하던 카자키둠 디더릭의 골통을 깨부수는 순간 왕은 더는 움기를 움기(어설픈 이)로 부르지 말아야겠다고, 더 적합한 이름으로 자랑스런 동맹을 기려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빌어먹을 엘기들은 볼텍스를 해체하고 내전으로 힘을 낭비하는 우행을 저질렀으나 다위와 엘기의 연합군이 무너지기 전에 달려와 전선에 힘을 보탰으니 수염 전쟁의 원한도 청산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벨레가르 아이언해머와 다위 홀드들은 발라-아즈릴-운골(카락 여덟 봉우리)에서 그로비 스카스닉을 몰아내고 더러운 다코라키 스카스닉도 박살냈다.

 참으로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하지만 승리를 자축하며 홀드의 모든 맥주통을 비우고 있을 다른 다위들과 달리, 하이킹은 책임이라는게 있었다.

 하이 킹의 붉은 피로 원한이 하나 하나 지워져갔다.

 “헨고 발두손의 죽음과 97개의 그롬릴 광석을 잃은 것에 대해 500개의 다고라키의 머리. 카락 바른 지하를 잃은 것에 대해 2000개의 다고라키의 가죽. 카락 아즈갈의 마지막 주민들에 대한 잔인한 학살에 대해 900개의 가죽과 꼬리...”

 하이 킹은 그의 정맥에서 새어나온 붉은 잉크로 세로 줄을 그었다. 발라-아즈릴-운골에서 죽인 다코라키의 수는 이보다 수십 배는 됐으니까.

 “카락 아크라의 광부들 학살에 대해 50개의 다코라키 가죽... 룬로드 크라니그와 그의 일곱 제자의 죽음, 인내의 룬 소실에 대해 900개의 꼬리....”

 이킷 클로의 두개골은 지금 홀드의 잔치에 조리돌림당하고 있을 것이었다. 다시 한번 빨간 줄.

 “크룩 아이언핸드를 살해한 것에 대해, 카락 여덟 봉우리의 불법적 점거에 대하여, 카락 아줄 전투에 대하여, 수천 다위들의 죽음에 대하여...."

 잠시 목을 다듬은 하이 킹 토그림은 깃펜을 정맥에 흘러나오는 피에 푹 적시다니 아주 굵은 빨간 줄을 그었다. 퀵의 대가리는 지금도 그의 방패에 붙어 있으니까.

 "퀵의 머리."

 이어서 비록 스카스닉의 머리를 가지지는 못했으나 그로비의 1만 수급을 획득했기에 스카스닉에 대한 원한이 지워지고, 타락한 형제들이 우르크의 초록 물결에 분쇄됐다는 소식에 이들 또한 담마즈 크론에서 지워졌다.

 계속되는 원한의 청산에 하이 킹은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나른해진 걸 수도 있었으나, 하이 킹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역대 하이 킹 중 가장 많은 원한을 청산한 이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경쾌하게 원한을 지워나가던 하이 킹의 두터운 손이 다음 대목에서 손길이 멈췄다.

 "고르팡 롯것 토벌에 앞서 지원군 500명을 보내기로 한 약속을 저버린 벨레가르 아이언해머에 대해....."

 토그림은 잠시 망설였으나 다시 정맥에서 흘러나온 피에 펜을 적시고 원한을 지워버리며 중얼거렸다.

 "고르팡 롯것의 머리."

 참으로 엉뚱한 원한 청산이었으나, 승리한 다위에게 더 이상의 분쟁과 원한은 불필요했다.

 같은 이유로 지원군 50명만 보냈는데 그 지원군이 50명이 지시를 따르지 못했던 원한도 우르크를 죽였으니 됐다고 지워버리는 하이 킹.

 그렇게 원한을 계속 지워나갔으나, 하이 킹 토그림은 이내 자신이 왜 나른하고 기분이 좋은지 알게 되었다. 그는 너무나도 많은 피를 흘린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 다위 역사상 최초로 원한 지우다가 과다출혈로 죽은 하이 킹이라니. 얼마나 행복하고 위엄 있는 죽음인가.

 토그림이 마지막으로 지운 원한은 이것이었다.

 "수염 전쟁의 원한에 대하여, 변ㄱ....아니, 울쑤안 침몰...."

 새로 즉위한 하이 킹, 벨레가르 아이언해머는 카락 여덟 봉우리의 궁정에서 안그룬드 클랜의 담마즈 크론의 원한을 하이 킹의 담마즈 크론에 옮겨적고 있었다.

 토그림과는 다른 이유로, 분노에 차 힘차고 경쾌하게 책장을 넘기는 그의 눈에 빨간 줄이 쳐진 원한이 눈에 들어왔다.

  "고르팡 롯것 토벌에 앞서 지원군 500명을 보내기로 한 약속을 저버린 벨레가르 아이언해머의 원한."

 벨레가르는 쌍욕을 퍼붓더니 빨간 줄을 하나 긋고서 밑에 새 원한을 적어넣었다.

 "카락 여덟 봉우리의 진정한 군주이자 안그룬드 클랜의 주인, 하이 킹 벨레가르를 무엄하게 담마즈 크론에 올리고 모욕까지 준 토그림 그루지베어러에 대하여."

 그 원한에 빨간 줄을 그으며 벨레가르가 중얼거렸다.

 "토그림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