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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지 스크랩] 레판토 승리와 묵주기도의 힘

99(118.130) 2021.03.08 10: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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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지 스크랩] 레판토 승리와 묵주기도의 힘

  13세기부터 점차 세력을 키우던 오스만투르크족은 15세기부터 동로마 제국을 정복하여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하였다. 16-17세기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이 되었으며, 그와 더불어 이슬람 세력도 급성장하여 유럽 그리스도교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들은 제국의 세력을 확장시키고, 모든 그리스도인을 무슬림 노예로 삼으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그에따라 유럽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투르크 세력에게 패배란 없었으며, 전투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맹과 힘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무슬림들로부터 사랑과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1570년 이슬람 군대의 수장인 알리 파차는 베네치아령인 키프로스 섬의 최고권자인 니콜로단돌로에게 거짓으로 항복하며 그를 속여 키프로스섬을 차지했다. 그리고는 니콜로의 목을 잘라 바구니에 담아서 베네치아의 총독인 마르코 안토니오 브라디간에게 보냈다. 이 사건으로 두 수장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고 6개월 후 알리 파차는 니콜로에게 썼던 것과 똑같은 수법으로 브라디간을 속였다. 브라디간의 코 와 두귀를 자르라고 알리 파차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2주 후 브라디간의 피부를 모두 벗겨 죽였다. 그리고는 몸을 4등분하고 짚으로 싼 다음 거리를 행진하여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져갔다.

  성 비오 5세 교황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유럽을 밝히는 단 하나의 밝은 빛이 있었는데, 바로 교황 성 비오 5세였다. 묵주기도의 형성과 보급에 혁혁한 공을 세운 도미니꼬 수도회의 수도자였던 그는 묵주기도가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때 이미 늙고 병든 몸이었지만 명석한 두뇌와 거룩한 삶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는 아주 소박하게 식사하고, 아주 간단한 옷차림으로 맨발로 걷기를 즐겼으며, 밤이면 무릎을 꿇고서 아주 오랜 시간을 묵상기도에 바쳤다. 또한 그는 순결하신 성모님께 대한 신심과 거룩한 삶의 표지로 흰색 옷을 입었는데, 그의 후임자들에 의해 그대로 이어졌다.

  성 교황 비오 5세가 직면하고 있던 가장 큰 문제는 유럽을 분열시키고 있는 프로테스탄트와 무슬림 투르크 세력의 위협이었다. 그 두 세력을 정복하는 것은 사람의 힘을 동원하는 전쟁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과 자비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 전쟁은 눈에 보이는 전투가 아니라 영적인 전투라는 사실도 그는 알았다. 성 교황 비오 5세는 이듬해 1571년에 무슬림의 공격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리고 그 공격을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적군이 유럽을 진입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투르크 함대와 견줄 정도로 큰 함대를 만들어 투르크 함대를 바다로 유인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뒷받침된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었다.

  1571년 봄이 다가오자 교황 비오 5세가 투르크 세력에 맞서자고 유럽 왕정과 정부에 탄원한지 거의 5년이 되고 있었으며, 교황의 그 같은 노력은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고 끝나는 것 같았다. 여러 그리스도교 국가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관심에만 주력하면서 그런 것에는 협조할 뜻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교황 비오 5세는 눈앞에 닥친 위기를 직시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기도를 촉구하였다.

  1571년 3월 7일, 레판토 해전이 일어나기 정확히 7개월 전인 그 날, 스페인과 베네치아와 교황청은 동맹을 결성하고, 투르크 함대와 맞설 함대에 소형 배와 군인을 제공하기로 하였다. 교황 비오 5세는 이에 맞서 덧붙여 기도와 단식도 요청하면서, 특히 묵주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1571년 한여름이 되자 투르크 함대는 아드리아해에 있는 베네치아 섬을 공격하기 시작할 뿐 아니라 이탈리아를 공격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냈다. 교황 비오 5세를 비롯한 많은 이들은 로마, 베니스, 나폴리, 제노바, 프로방스, 시칠리 그리고 스페인이 공격당하면 유럽의 그리스도교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교황 비오 5세는 동맹국 함대가 남족 파트라스만으로 출항하여 오스만 무슬림 함대를 찾을 것을 명령했으며, 동맹국 함대가 그리스의 레판토 항구에 닻을 내렸다는 보고를  받았다.

  한편 그 무렵 투르크 함대는 지중해로 진군하여 로마를 차지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로마를 잘 익어 과즙이 풍부한 “붉은 사과” 라고 불렀다.

돈 후안, 그리스도교 수장

  교황 비오 5세는 스페인 국왕 필립 2세의 이복 동생인 24세의 청년 돈 후앙을 거룩한 동맹국의 함대 사령관에 추천했다. 돈 후앙은 용맹하고 정직하고 뛰어난 지휘력으로 명성을 얻고 있었다. 교황은 돈 후앙에게, 신앙생활에 불성실한 사람을 부하로 뽑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충고해주었다. 또한 거룩한 동맹 함대에서 하느님을 모독하는 어떤 말이나 행동 또는 의심을 품는 것을 강한 벌로 다스리도록 했다. 이 전투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한 마음으로 일치한 상황에서만 이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무렵 성모님께서 가르멜 수녀회의 카타리나 수녀(가경자)에게 발현하셨는데, 그녀는 예전에 돈 후앙의 가정 교사였었다. 성모님께서는 가타리나 수녀에게, 그리스도교 동맹국이 승리하기 어려우니 그녀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에 따라 카타리나 수녀는 자신의 몸을 피가 나도록 때리며 그 고통을 그리스도교 동맹국의 승리를 위한 희생으로 바쳤다.

  1571년 늦여름 그리스도교 함대는 투르크 함대가 있는 지점으로 방향을  잡았다. 유럽 전체가 숨을 죽이고 그 상황을 주시했으며, 신앙인들은 묵주기도를 바쳤다. 그리스도교 함대에 승선한 군인들은 수적으로는 우세했지만 완벽한 훈련을 받지 못했으며 잔인무도한 기세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하느님께서 그들의 편이셨고, 묵주기도가 그들의 무기였다! 바람의 방향을 비롯한 모든 상황조건은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었다.

1571년 10월 7일

  교황 비오 5세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승전을 간구했으며, 신자들은 로마에 있는 도미니꼬 수도회 본부에 있는 미네르바 성 마리아 성당에서 쉼없이 묵주기도를 바쳤다. 그 성당은 정확하게 7개월 전인 3월7일에 그리스도교 동맹이 결성된 곳이기도 했다. 교황은 동맹국의 모든 군사들에게 감사를 표했으며, 교회가 줄 수 있는 모든 은사를 수여했다.

  1571년 10월7일 주일, 드디어 레판토에서 그리스도교 함대와 투르크 함대의 결전의 날이 밝았다. “바다를 물들이고 태양을 흐리게 했던 가장 빛나고 섬뜩한 전쟁 중의 하나” 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스도교 함대와 부속 보트에는 십자고상이 달려 있었고, 모든 군인은 묵주를 가지고 있었다. 결전의 날 아침 그들은 함께 묵주기도를 바쳤다. 반면 투르크 함대는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자신만만한 기세로 결전의 날을 맞았다.

  10월 5일과 6일 양일간에 걸쳐 짙은 안개가 그리스도교 함대를 에워쌌으며, 7일의 날씨도 그들에게 유리하게 시작되지는 않았다. 돈 후앙 지휘관은 자신이 가장 먼저 발사하겠다는 뜻을 부하들에게 전달했다. 그리스도교 함대의 선두선이 먼저 레판토로 들어섰을 때 거기엔 알리 파차의 명령을 받은 갤리선들이 완전히 진을 친 채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초록과 금색으로 장식된, 알리 파차의 깃발도 돛대 위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그 깃발은 이슬람 경전인 코린의 말씀이 바탕에 새겨져 있고, 금색 자수로 이슬람의 신 알라 이름이 28,900번 새겨져 화려하게 장식된 것이었다. 그것은 투르크 제국 황제의 깃발이었으며, 이슬람의 보물 중 하나였다. 그것은 이슬람의 시조 무함마드가 집접 고안한 것이었다. 이런 까닭에 그 깃발은 절대로 적군의 손에 빼앗겨서는 안되었다.

  돈 후앙은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면서 교황 비오 5세가 직접 축복하여 수여한 깃발 레알레를 자신이 탄 배의 닻에 꽂아 펄럭이게 하라고 명령했다. 깃발에 새겨진 커다란 십자가가 제대로 드러나도록!

  그런데 투르크 함대의 군사들은  자신의 적군 함대에 가까이 다가올수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징을 비롯한 온갖 기구를 동원하여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적군의 혼을 빼놓겠다는 심산이었다. 반면 돈 후앙이 이끄는 그리스도교 함대의 병사들은 깃발만을  펄럭이며 쥐죽은 듯 조용했다. 동맹국 측에서는 아직 시발탄을 쏘지 않은 상태였다. 돈 후앙은 작은 배를 타고서 손에는 십자가를 쥐고서 부하들을 일일히 찾아다니며 격려했다.

  “그대는 십자가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여기 왔다. 그러므로 이기든 죽든, 오늘 그대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하여라. 이기든 죽든, 그대의 이름은 길이 남을 것이다.”

  그런 다음 돈 후앙은 레알레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러자 큰 함대와 작은 배에 타고 있던 부하 군사들도 모두 그처럼 레알레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서 하느님께 마음을 다하여 기도했다.

하느님의 도우심

  알리 파파와 그의 부하들은 그리스도교 동맹군들에게서 세 가지 점에 놀랐고 있었다. 그 첫째는 그리스도교 연합군의 전방 1마일 앞에 놓인 무장 갤리선 여섯 대였다. 그처럼 높은 갤리선을 전투 현장에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투르크 군은 그 갤리선을 보급품을 제공하는 상선으로 착각하여 공격에서 제외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 결국 투르크군의 갤리선 70척이 동맹군의 그 갤리선에 의해 가라앉게 됨으로써 그것은 투르크 군에게 재앙의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투르크군에 유리했던  바람의 방향이 동맹군에게 유리한 쪽으로 갑자기 바뀐 것이다. 그 호기를 이용하여 돈 후앙의 군사들은 재빨리 적군을 공격했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신 게 틀림없었다!

  투르크군이 동맹군에게서 놀란 두 번째 사항은 갤리선에서 무거운 철재 장대가 없어서 적군에게 아주 가까이 접근하여 공격하기 쉽다는 점이었다. 세 번째 사항은 동맹군 함대에 그물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었는데, 적군을 무찌른 후 승선하기 쉽도록 고안된 것이었다.
  
  전쟁에서 최고 명령권자는 직접적으로 전투에 나서지 않지만 돈 후앙과 알리 파차는 전장의 한가운데서 서로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돈 후앙은 거룩한 깃발과 멀지 않은 곳에서 실제 크기의 십자가를 높이 들어올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알리 파차와 그의 부하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스도가 저기 있다. 저자와 그의 추종자들을 몰살시켜라. 알라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모조리 죽이자 !”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무기를 십자가를 향해 동시에 날렸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십자가 위 예수님의 다리에 가서 박혔는데, 그 순간 갑자기 에수님의 두 다리가 양쪽으로 움직였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성전에 가면 그 기적의 십자가를 볼 수 있다.)

  돈 후앙은 알리 파차를 향하여 직접 발사하면서 동맹군의 침묵을 깨뜨렸다. 세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돈 주앙이 탄 배는 알리 파차의 깃발이 펄럭이는 배를 함락시켰다. 동맹군과 투르크군 사이에는 깊은 증오심이 흐르고 있어 두 군 모두 적군을 포로로 잡기보다는 죽이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다보니 시체가 갑판 을 뒤덮을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전세는 동맹군 쪽으로 기울어갔다. 알리 파차의 깃발은 돛대에서 뜯겨졌다. 반면 동맹군의 그리스도인들은 승리의 환호성을 내지르며 교황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승리의 나팔소리는 물살을 가르며 퍼져나갔다.

  오후 4시가 되면서 동맹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투르크군 함대는 무너지고, 12.000명이 넘는 동맹군의 노예 군인들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 전쟁에서 동맹군 전사자는 7,000명이었지만 투르크군은 30,000명을 잃었다. 동맹군은 배 300척을 파괴하거나 포획했지만, 잃은 것은 20척에 불과했다.

  유럽이 얻은 승리는 엄청나게 컸다. 이 승리를 계기로 유럽은 오스만투르크의 팽창을 막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이슬람의 유럽 침투를 저지하게 되었다. 아울러 ”세계를 움직이는 추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으며,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교황의 목격한 환시

  10월 7일 교황 비오 5세는 추기경들과  업무에 관한 얘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창문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거기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동안 그의 두 눈은 열린 창 너머의 무엇인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 그는 레판토 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거기서 승전보를 듣게 될 것이라는 환시를 목격했다. 환시가 끝나고 창문을 닫으면서 교황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지금은 다른 업무로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신 하느님 앞에 나아가서 감사드립시다.”

10월7일 묵주기도의 모후 기념일 제정

  동맹군의 승전보가 로마에 전해진 것은 그날로부터 19일이 지난 26일이었으며, 그날 교황 비오 5세는 공적으로 동맹군의 승리를 선언했다. 이어서 그는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마리아’ 라는 칭호를 로레토 호칭 기도에 첨가했다. 1572년 교황 비오 5세 (1566-1572년 재위, 1712년 5월 22일 교황 클레멘스 11세에 의해 시성)는 10월7일을 ‘승리의 성모 기념일’ 로 선포했다. 그리고 이듬해 교황 그레고리오 13세(1572-1585년 재위)는  그날을 ‘묵주기도의 모후 기념일’로 명칭을 바꾸면서 10월 첫주일로 고정시켰다. 교황 클레멘스 11세(1700-1721년 재위)는 레판토 해전 승리일인 10월 7일을  ‘ 묵주기도의 모후 기념일’로 고정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 전체가 이를 지키도록 지시했다. 교황 레오 13세는 “지극히 거룩하신 묵주기도의 모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라는 기도문을 로레토 호칭 기도에 첨가했다.

  “우리를 승리로 이끈 것은 권력도, 무기도, 지도자도 아니다. 바로 묵주기도의 모후이시다.”라는 당시의 베네치아의 고위관리의 말대로 묵주기도의 모후께서 이 큰 일을 이루어주셨다.

– 로잘리에 A. 터톤
– 마리아 1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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