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명5는 700시간 넘게 팠어도 6는 사놓고 최근에야 몇판 끄적여본 문린이임

지리교육과출신이라 문화역사지리시간이랑 답사때 서원 내부의 건물 배치에 대한 이야기는 배웠었는데

정작 서원의 입지에 대한 내용은 잘 몰랐음(이것도 배웠는데 까먹은걸수도 있고, 진짜 교수님이 안가르쳐준걸수도 있고)

그냥 어렴풋이 서원들이 산좋고 물좋은곳에 입지한다는 얘기는 듣긴 했는데, 이걸 학문적인 설명이라고 하긴 좀 뭐하자너 ㅋㅋ

문명 6를 처음 시작했을때도 선덕 칼픽하고 게임에서 서원 효과 보면서 뭐 이딴 쓸데없는걸 고증했나 하는 생각을 했었음

근데 요번에 동생이 교양 한국사 시간에 역사답사 다녀와서 레포트 쓴다길래 드라이브차 같이 소수서원 갖다오면서 서원 입지 주제로 써보라고 했거든

그래서 갔다오고 레포트쓴다고 동생이 짧은 논문 가져와서 보고있길래 나도 같이 읽어보니까

서원 자리라는게 그냥 막연하게 "산좋고 물좋은곳이 공부 잘되겠노 ㅎㅎ"이러면서 세운거라기보단

좀 더 복합적인 요인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서 문붕이들한테도 짧게나마 소개시켜주고싶어서 끄적여봄

(영주 소수서원의 전경)

(안동 병산서원의 강당인 입교당에서 내려본 주변 풍경)

위 사진처럼 지금까지 남아있는 서원들

그러니까 한국사 시간에 질리도록 들었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모두 겪고도 살아남은 서원들은

대부분 저렇게 내가 앞서 말한 산 좋고 물 좋고 바람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음

근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서원의 기능은 과거시험 치는 선비들을 가르치는 중등 혹은 전문교육기관 역할이었단 말이야?

상식적으로 생각했을때 이런 역할을 주로 하는 교육기관이 저렇게 산속 촌골짜기에 쳐박혀있는건 조금 특이한 그림이지않음?

오늘날 과거시험이랑 비슷한 고시나 9급 7급시험 준비하는 사람들이 가는 학원가나

아니면 중등교육기관이라는 역할에 비춰서 중고등학교들은 보통 사람들 이 많이 사는 주거지역 근처에 입지하는게 보통이니까 ㅇㅇ

결정적으로 조선시대때 서원이랑 거의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던 국가교육기관인 향교는 보통 읍내에 위치했음

서양으로 시각을 넓여봐도 고대 그리스의 아카데미아는 아테네 교외에 위치했었고

중세의 교육은 보통 교회에서 이루어졌었고

르네상스시대에 출현했던 김나지움도 뚜렷하게 주거지역 외에 다른 곳에 입지를 했다는 얘기가 없더라고

예외적으로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베네딕트 수도원같은 유럽의 수도원들은 서원처럼 의도적으로 지역 중심지를 벗어난 입지를 선호하긴 했음

서원에서도 선현의 제사기능을 담당했음을 생각하면 뭔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수도원이 일반적인 중등교육을 담당하던 주요 교육기관이라고 보긴 힘드니까 패스

그렇다면 서원은 동서고금의 다른 주요 교육기관들이랑 다르게 왜 삼국지의 마속마냥 산속으로 들어가려고 했을까?

(퇴계 이황이 세운 도산서당에서 출발한 안동 도산서원)

이 궁금증에 대한 첫번째 실마리는 도산서원의 입지와 건물배치를 분석한 한 논문에서 찾을 수 있었음

논문에서는 서원의 입지를 결정짓는 요인에는 크게 인문적 요인과 자연적 요인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음

인문적 요인에는 해당 서원이 모시고자 하는 특정 레전드 학자와 관련이 있는 장소여야 한다는 것

자연적 요인에는 교육과 학문수양을 위해 한적한 곳이어야 하며,

중앙의 행정력으로부터 자유로우나 지역 지식인들을 모아 정치적 기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향촌 사회와 가까운 곳을 꼽았음

정치적 기지 역할이야 한국사 시간에 사림파 훈구파와의 대립이랑 나중에 나오는 붕당얘기랑 이어지니 넘어가고

정작 우리가 궁금해하는 교육과 학문수양을 위한 한적한 곳이어야 한다는 입지요건에 대한 근거로 논문은 아래의 이야기를 싣고있음

"가까운 곳에 아름다운 산수가 없으면 정서를 함양하지 못한다.·산수라는 것은 정신을 즐겁게 하고 성정(性情)을 맑게 해준다. 거주지에 이러한 산수가 없으면 사람들이 거칠어진다. ··· 산수란 멀리서 대하면 사 람으로 하여금 큰 포부를 갖게 하여 인물을 만들어 내고 가까이 대하면 심 지(心志)를 깨끗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한다." 이중환 <택리지>

"산천이 수려하고 한적한 들과 고요한 물가에 머무르며 번화한 환경의 유혹에서 벗어나 덕을 쌓고 인을 익히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퇴계 이황<상심방백서>

뭔가 근거가 좀 빈약하다고 느낀다면 나도 같은생각임

택리지의 경우엔 서원이 최초로 세워졌던 시기보다 훨씬 후에 만들어진 책이라 당시 사람들이 저런 생각을 가졌구나 정도만 알 수 있고

상심방백서의 경우엔 당시 풍기군수로 재임했던 이황이 명종에게 사액을 요청(쉽게 말하면"명종오니쨩 현판이랑 예산지원해줘잉")하는 글이지만

여기서도 천원아저씨가 "산좋고 물좋고 한적한 곳에서 공부해야 공부가 잘댐 ㅇㅇ"이라는 생각을 가졌다는건 알겠는데

정작 왜 저런데서 공부해야 공부가 잘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있다는거지

물론 우리가 전공강의를 듣는것도 아니고 그냥 "쓴새끼가 그랬으니 그런가보다" 하고 치워도 상관없긴 하지만

그 근거에 대한 이야기는 저 위에 사람들이 언급도 안했고 지금까지 내 글에 등장하지도 않았던 곳에서 나오게 되더라고

배가 너무 고파서 뭐 좀 먹고와서 2편 이어서 써볼게

참고문헌: 김연호. (2008). 도산서당(陶山書堂)의 입지(立地)와 도산서원(陶山書院)의 배치(配置)에 대한 고찰. 퇴계학논집, 3, 189-229.

*첨에 쓸때 실수로 상심방백서를 퇴계 이황이 아니라 주세붕이 썼다고 잘못썼는데 읽어보다가 틀려서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