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여러 번 까발려진 연출이긴 한데,

이걸 처음부터 끝까지 분석하는게 없어서 정리함

해당 화는 야마다가 도서관 내 음식물 반입 금지 안내문을 보고 시작되는데,

여기서 이미 작가는 극도로 계산된, 하지만 번역 과정에서 소실된 연출을 집어넣음.

1쪽에는 인물의 생각을 나타내는 사각형 생각풍선이 4개 등장한다.

이 작품은 연재 초창기부터 쭉 이치카와의 독백만 저 생각풍선을 통해 전달했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맨 마지막 컷 생각풍선의 글씨체가 딴 생각풍선들 글씨체랑 다르다는 거.

처음 세 생각풍선은 뭔가 붓글씨같은 고풍스런 글씨체인데, 마지막 글씨체는 동글동글하고 단순한 걸 보아하니

여기는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생각하는 A랑 붓글씨로 생각하는 B가 있음.

이건 엄청나게 대단한 연출인데, 왜냐하면 매우 간단한 방법으로 독자가 알아채기 힘든 판을 깐다는 것도 있지만

이 만화는 29화에 걸쳐서 오직 이치카와 한 명의 독백만 보여줬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미

"생각풍선은 이치카와 독백만 보여준다" 하고 고정관념이 심어져 있기 때문.

[야... 야...!! 무슨 말 좀 해봐!!]

이후 해당 화가 전개되면서 동글동글한 생각풍선, A는 이치카와라는 걸 만화가 대놓고 보여줌.

그렇다면 맨 첫장의 말풍선 3개는 야마다 생각이라는 걸 간접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작가는 엄청난 함정 연출을 설치한다.

이 에피소드의 하이라이트인 선생님께 과자 먹는 걸 들킬까봐 이치카와가 야마다의 주먹을 쥐는 연출이 그건데,

보면 이게 5페이지에 걸쳐서 이치카와의 독백을 늘여놓아서 뻥하고 터트리는 연출인데,

이 만화는 지금까지 독백이 남주꺼만 보여줬고, 얘가 이미 야마다 좋아한다는 걸 이전 화에서 보여줬으니까

이게 언뜻 보기에는 이치카와가 자기 연심을 되네는 걸로 보임.

허나 원문 글씨체를 보면 저건 동글동글하고 단순한 A가 아니고 고풍스러운 B라는 걸 알 수 있는데,

그렇다는 건 저 생각을 하는건 야마다라는 것이고, 바로 저 순간이 야마다가 자기 연심을 자각한 그 순간이라는 거.

작가는 일부러 5페이지에 걸쳐 이치카와의 독백을 이어지게 만들어서

저 마지막 [좋아한다] 역시 이치카와 생각이라고 여기게 함정을 친 거임.

그러면 왜 이런 식으로 함정을 쳤느냐?

왜냐하면 눈치 빠른 독자가 이 함정을 눈치챈 순간, 독자 역시 야마다의 연심을 눈치채면서 황홀감을 느끼거든.

29화에 걸친 빌드업 끝에 작가는 야마다가 이치카와를 좋아한다는 그 순간의 설렘을 철저히 감출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독자 또한 자각하지 못했던 (야마다의) 사랑을 알아채는 순간의 감정을,

남들로부터 꼬옥 숨겨진 마음을 눈치채는 진귀한 감정을 야마다와 동시에 체험하게 됨.

이후 다행히 선생님은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갔는데,

이치카와한테 숨길 필요도 없는데 야마다는 당황한 듯이 자기 손을 뒤로 감춘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이치카와의 온기에 녹아내린 야마다의 하트가 있으니까.

이게 바로 해당 화의 제목, '나는 녹였다' 의 숨겨진 의미.

마지막으로 작가는 과자 금지령 조까고 도서관에서 냠냠거리는 야마다로 해당 화를 마무리하는데,

여기서 알아차린 독자에게 한 번 더 웃음 포인트를 준다.

[이걸로 됐어. 끝이다...... 뭐든지간에........]

저 독백 부분 글씨체 보면 저거 야마다 생각임.

그러니까 저건 이치카와가 "아 이제 야마다 도서관에서 못보겠네" 하는게 아니고

야마다가 "초콜릿 다 먹었다. 이걸로 깨끗해졌네." 하는 거.

(+ 지금까지의 관계가 끝나고 난 이치카와의 동정을 노리겠다는 선언으로도 해석)

저 괄호친 내용은 이 수준에서는 추측에 불과하지만

[지금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해도 좋아. 이렇게나 너에게 마음을 빼앗긴 걸]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차회예고 글씨체를 통해 야마다는 이치카와를 노리는게 맞다고 확정함.

그러면 자신의 마음을 다잡은 야마다는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느냐?

이치카와 라인하냐고 대놓고 물어보는 패기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