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영상 편집기법이나 줄거리, 감상 같은 건 다른 갤러들이 많이 남겨주시기도 했고 나도 비슷하게 느꼈으니까 그런 것들은 딱히 쓸 게 없고...

밀리터리 관련으로 작가의 사소한 디테일 같은 걸 엿 본 것 같아서 그냥 그 부분만 짧게 써봄

1) 스피어헤드 전대(Squadron)의 명칭에 대한 이야기와 이 미친 전대의 활약상을 숫자 비교로 잠깐 가늠해보기

스쿼드론이라는 단어는 육/해/공 어디에서 쓰냐에 따라 그 규모가 미묘하게 달라짐. 이 단어는 역사적으로 기병 부대 규모를 표현하는 단어인데 대대일 때도 있고 중대를 뜻할 때도 있음. 해군의 경우 기동전대, 기지전대 이런 식으로 대령이 지휘하는 규모의 부대를 말하고, 공군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대령급. 서구권의 경우 공군 스쿼드론은 중령급이 지휘함. 공군 스쿼드론은 대개 12기에서 24기 정도의 기체를 지휘함.

에이티식스가 타는 저거노트나 레긴레이브 같은 것들은 기본적으로 기갑병기와 전투기의 특성을 적당히 나눠갖고 있기 때문에 아마 육군이나 공군의 것, 그 중에서도 육군의 '기병/기계화/기갑중대'에 대응된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거 같음. 결정적으로 애니 후반부에 편제표 잠깐 나오는데 거기서도 중대규모라고 명확히 표기해놨고.

2쿨 7화, 나흐체러르가 출격할 때 잠깐 나오는 화면. 명확하게 I 하나를 노르트리히트 전대 위에 써둠으로써 노르트리히트(舊 스피어헤드) 전대가 중대급 규모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건 이거고, 스피어헤드 전대가 미쳤다고 생각이 든 게 2회차 복습할 때였음. 맨 처음에 그 5번째 핸들러 자살하기 전 대사가 '전차 대대랑 근접엽병(용기병) 대대 요격하러 가라' 였는데 스피어헤드는 고작 중대다. 레기온의 중대 규모가 공화국 전대랑 같은 규모라고 놓는다면, 삼각편제 기준으로 스피어헤드 전대와 적 기체의 수는 1:6 이상인거임(=못해도 레기온 140+대는 넘게 몰려왔다는 이야기). 1개 대대 안에 최소 중대 3개가 들어가니까.

근데 거기서 스피어헤드 전대가 전부 다 작살나도 모자랄 판에 레기온 2개 대대가 졌음. 부대 전원이 미친 놈들이구나...라고 다시 생각이 들더라.

2) 대략적인 지휘계통과 부대규모 엿보기

대충 보니 공화국은 방면군 - 전구 - 전대로 이어지는 거 같은데 막상 1화 종이쪼가리 보면 command : 1st Division이라고 1사단이 떡 하니 적혀있다. 아마 방면군(XXXX) - 전구(XXX) - 사단(XX) - (생략) - 전대(중대, I) 이런 식인듯? 근데 막상 공화국이 작살날 때 위에 중령인가 대령인 상관도 있는 거 보면 공화국도 꼴에 군대라고 전대랑 사단 사이에 대대(II)가 있긴 한가보다. 준장님은 직위가 정확하게 안 나와서 모르겠는데 느낌상 사단장, 여단장 같은 지휘관은 아닌 거 같고 참모본부에서 00참모 뭐 이런거 하고 계신 거 같음. 그나저나 레나가 애구나 싶었던 게 준장님 대할 때. 아무리 아빠 친구라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 보고 헠했음. 근데 걍 받아주는 거 보고 '준장 생각보다 나쁜 새끼는 아닌갑네?' 싶었지. 예상대로 막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었고...

연방의 경우 편제표를 대놓고 보여준다.

여기서 연방이 진짜 병력이 뒤지게 많구나 싶었던 걸 체감했던 게, 177기갑사단 위에 있는 게 서방 방면군(군단 규모, XXX)인데 군단 밑에 사단이 최소 3개가 넘는다. 보이는 셋은 죄다 기갑사단임. 더 골 때리는 건 사단 밑에 전선 서는 여단이 3개, 포병 여단 하나, 지원 여단이 하나. 사단 규모만 해도 뒤지게 큰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심지어 전선에 서는 여단들 밑에 죄다 '연대'임. 물론 육상자위대의 예시를 생각하면 저 연대가 말만 연대고 실제로는 증강된 대대 규모일 거 같긴 하지만* 그렇다 쳐도 이 정도의 부대 규모는 현실의 미군 기갑사단에서나 볼 수 있는 사이즈임. 연방 스게~

2쿨 중반에 모르포 포격 쳐맞고 전방기지 4개 날아가는데 거기서 좀 의아했던게 8기갑군단, 5보병군단이라는 단어였음. 왜냐면 보통 방면군(XXXX) 예하에 군단(XXX) 이런 식이라 저 위 짤처럼 서방 방면군이 야전군(XXXX)이 아니라 군단(XXX) 규모로 표기되면 이게 좀 안 맞기 때문. 근데 생각을 바꿔보니까 의문이 풀림. 서방 방면군은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처럼 서부 전선 전체를 총괄하는 방면군이 아니라 레기온과 맞닿은 부분의 서부 전선만 관할한다고 생각하면 얘들도 딱히 군단 규모여도 상관은 없던 거지.

쨌든 연방 졸라 크다... 진짜 얼마나 큰지 감도 안 옴. 이 정도 육군 규모면 공군도 어마어마 했을 거 같은데 공군 다 작살난 거 보니까 레기온도 진짜 뒤지게 많긴 했나보다. 하기사 연방이 제국 위에 재건된 나라인데 그 제국에서 찍어낸 레기온도 장난 아니긴 하겠지.

* 육자대 유일의 기갑사단인 7기갑은 연대 밑에 중대 5개라 말만 연대고 실제론 대대가 좀 커진 수준에 가깝다. 영미권에도 비슷하게 부대 이름은 00연대인데 막상 까보면 대대 규모인 경우가 가끔 있음.

3) 일본과 특수부대. 스피어헤드/노르트리히트 전대, 기동타격군, 외인부대, 베른트.

사실 3번 이거 쓰려고 글 쓴 거긴 함. 갤에 아무도 이 이야기 한 게 없길래 그냥 갤러들 재미삼아 보고 가라고.

애니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노르트리히트 전대 + 레나 + 86 생존자 기타 이것저것 다 더해서 연방은 86 기동타격군을 만든다. 여단급 규모니까 기동타격여단? 뭐 이렇게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는데 하여튼 이 친구들은 명확하게 '특수부대'다. 숙련도가 높은 인원들을 몰아넣었기 때문에 특수부대가 아니라 특수한 임무를 띠기 때문에 특수부대인 것. 나는 아직 그 뒤의 소설을 안 읽어봐서 모르긴 하는데 갤 대충 보니까 일반 정규군 부대로는 전선을 유지하고 86으로는 하기 빡센 것들을 몰아 맡는 모양이던데, 그렇다면 정확히 특수부대라고 볼 수 있겠음.

사실 연방쯤 되는 국가가 뭐 이제 와서 특수부대를 창설하나 싶기도 할 거다. 왜냐면 현대를 살아가는 갤러들에게 군대 내의 특수부대는 사실 당연하게 있어야 하는 거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뭣 이제와서 특수부대를 창설한다고? 여태까지 뭐한거야' 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데...작가가 일본 사람인 걸 생각하면 이 사실이 좀 재미있다. 왜냐면...일본은 21세기가 되어서야 각군에 현대적인 특수부대라 할만한 것들이 생겼다. 참고로 우린 이미 1950년대~60년대에 육군 특전사 창설함.

뭣? 할 사람들이 많을텐데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심지어 내가 알기론 얘네 아직 항공자위대 특수부대는 없음. 해상 자위대는 2001년에 생겼고, 육상자위대 특수부대가 2004년인가에 생겼다. 꽤 오랫동안 일본 내에서 정예부대나 특수부대의 이미지는 우리처럼 특전사, UDT/SEAL 이런 게 아니고 북부방면대 7기갑사단이나 제1공정단(정규군 공수부대)이 가져갔음 ㅋㅋㅋㅋㅋ 공정단이 특수부대처럼 북치고 장구치고 다 했다는 이야기다. 근데 얘네 근본은 특수부대가 아니고 정규군이다.

자, 이 사실들을 머릿속에 넣고 다시 애니로 돌아가서 보자. 연방군 장성들이 에이티식스를 모르포 참수작전에 동원하는데 있어서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건 단순히 에이티식스가 소년병, 자국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외지인 뭐 이런 거여서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왜? 이건 기본적으로 특수임무고, 이럴 땐 특수부대를 동원해야 하니까. 근데 연방군은 특수부대가 없어서 (특수한 임무를 수도 없이 수행했지만 본질적으로 정규군이고, 특수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여러 방법론을 배우지 않은) 정규군 에이티식스를 특수임무에다 보내야 한다. 에이티식스가 나흐체러르 타고 기겁하는 거? 얘들도 저공침투라는 미친 짓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기겁하는 거다. 당장 내일 육군에서 복무 중인 갤러 아무나 잡아다가 뜬금없이 특전사들 하는 것처럼 수송기 태우고 공수작전 내보내면 똑같은 반응 나올걸?

특수정찰 임무 받고 떠밀려서 국경 바깥으로 나가기 전까지, 주인공급 인원들은 철저하게 정규군으로 훈련받고, 싸우고, 죽었다. 다른 86 전대들도 마찬가지고. 1쿨 후반부에 스피어헤드 전대한테 던져지는 특수정찰 임무는 명령 세부사항이 그지같아서 그렇지, 귀환 가능성을 전제로 명령을 수정한다면 공화국이 처음으로 전대한테 하달하는 '특수임무'다. 자살하러 가라는 의미로 특수임무라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특수부대가 수행해야 하는 장거리 정찰 임무(LRRP, 자세한 건 베트남전 참고)라는 뜻. 이걸 씨발 정규군한테 시키니 잘 될 리가 있나. 명령 자체도 거지같은 게 맞지만.

근데 어떻게 해냈다. 알게 모르게 스피어헤드 전대 잔존 인원 5인방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특수임무를 수행한 거임. 근데 연방 들아와서 뭐했더라? 그런 특수 임무 수행하는 법 가르쳤나? ㄴㄴ. 특사교 들어가서 단기사관 과정 밟고 장교로 임관했지. 그리고 훈련 과정도 묘사되는 거 보면 정규군 소위 뽑아내는 과정에 가깝다. 얘들이 특수임무를 전제로 한 훈련을 받았을리가 만무하다.

그렇게 겨우 소위 계급장 달아줘 놓고는 정규군 병력을 특수부대나 돌아다녀야 할 법한 전장에 던진다고 하면 이건 86이 아니라도 장성들 입장에서 미안하다 소리 골백번은 넘게 나온다. 근데 심지어 투입 방법이 저공침투 + 강습이네? 제1공정단의 향기가 강하게 풍긴다. 정규군, 정예부대, 특수임무도 제한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공수강하 & 헬리본' 부대.

이거 대놓고 제1공정단이다. 제1공정단이 모르포 참수작전하러 간거다 ㅋㅋㅋㅋ

그리고 제1공정단에서 인원이 차출되어 2004년 육상자위대 최초의 현대적 특수부대인 특수작전군이 탄생했다. 86기동타격군이랑 뭔가 비슷한 거 같다면 기분 탓일거임 아마도 ㅇㅇ...

외인부대 이야기는 짧게만 하자면, 베른트가 작중에서 상사던가? 나는 소설은 안 읽어서 베른트가 외지인인지 연방사람인진 잘 모르겠음. 근데 외인부대 + 노르트리히트 전대로 굴러가는데 5인방은 장교고 베른트가 부사관인 거 보니까 디테일을 잘 넣었구나 싶었음. 현대에 외인부대를 운용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살펴보면 장교는 자국민, 부사관/병사는 외인부대원으로 채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장교는 시민권 없으면 안 된다. 그래서 외인부대에서 장교들은 처음부터 해당국가 시민이었거나 외인부대원으로 복무하고 시민권 딴 다음 장교 코스 다시 밟아서 재입대하는 케이스다. 바꿔 말하면 외인부대는 본질적으로 병사와 부사관들의 집합일 수밖에 없다. 장교들이야 뭐 순환복무 하겠지.

이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에이티식스가 알게 모르게 연방군 내에서든, 시험 부대 내에서든 시선이 많이 갈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아무리 대통령과 장관선에서 결정했다지만 이거 뭐 특별귀화 형태로 다섯 명이나 전직 군인들을 시민권 주고 장교로 재입대시킨 거잖아. 사람 하나 하나가 소중한 전시라 할 지라도 말이 안 나오면 이상한 거다. 위에서야 뭐 스파이일리가 없다!고 결론 내렸지만 밑에서 그런 사실까지 다 신경 써줄 것도 아니고...당장 내일 저 어디 폴란드에서 온 사람이 귀화시험 하나 안 치고 특별 귀화로 한국인 되었는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학사장교 코스 밟고 소위로 임관해서 옆 부대에 왔다고 생각해보자. 그냥 존재 자체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어그로 덩어리 그 자체임. 더군다나 구내식당 이용하면서 오고 가며 마주치는 양반들이 외인부대원 & 타 부대 연방군 장교/부사관들일텐데 '쟤넨 뭐길래 오자마자 시민권+장교임?'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안 들면 이상하지 않을까? 외인부대원들은 외인부대원들대로 '우린 복무 수 년간 고생해서 시민권 따고 난 다음에야 장교로 재입대할 각이라도 노리는데 얘넨 뭐임?' 싶을 거고.

아무튼 복습하면 할 수록 디테일에 미소짓게 되는 86이었음. 밀리터리 측면에서도 단순히 병기의 현실적인 묘사, 작중 내 핍진성 등을 챙기는데 그치지 않고 조직/편제/군수 등의 측면도 묘사하고, 일본의 사정도 잘 녹아들어간 (위에서 말한 특수부대 창설 같은 거) 것들을 알게 모르게 집어넣는 작가의 필력, 그리고 그걸 애니화하면서 놓치지 않고 묘사한 감독이 뭐하는 인간들인가 진짜 궁금하더라. 이게 작가가 여자라고? 싶은 순간이 한 두개가 아니었음. 병기 묘사 같은 것도. 요격포 쏘는데 포탄에서 자탄(초코파이처럼 생긴거) 분리되는 거 보고 와 씨 이거 뭐임 ㅋㅋㅋ 했음.

밀리터리나 메카 쪽으로는 '뭐 어차피 다족보행병기는 그냥 로망이니까, 현실성 그런건 신경 쓰지 말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이랑 서사에 집중하면서 보자~' 하고 봤었는데 밀리터리 쪽을 상상 이상으로 자세하게 챙겨놔서 정말 좋았다. 여태까지 본 것 중에 이 정도로 밀리터리 쪽도 세세하게 챙긴 게 있나 싶을 정도임. 대부분 밀리터리 냄새가 가미된 일본 애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명작 취급 받는 것들도 병장기 묘사는 그럭저럭 대부분 다 챙기고 넘어가는데, 자세하게 조금씩 까보면 군생활 묘사라거나 조직의 생리 묘사라거나 뭐 하나씩 나사빠진 게 있어서 보면서 불편했는데 86은 처음으로 그런 걸 못 느꼈음. 작가랑 감독이 자위대에서 군생활이라도 한 건가 싶을 정도로 군대 냄새가 풀풀 남.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2기...언제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