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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팬픽] 번역/ 에반게리온 제노사이드 2-4

ㅇㅇ(14.6) 2021.06.08 01:46:06
조회 895 추천 26 댓글 7
														

시간대상으로 바로 이어지는 신지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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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밝고 따뜻한 날이었다. 뜬지 얼마 되지 않은 해는 아직 동쪽 하늘에 낮게 걸려 있었다. 도시의 소음이 주변에 가득했다. 경적을 울리는 차량들, 굉음을 내뱉는 기차, 공사장, 길을 오가며 생을 영위하는 사람들. 신지는 전철역까지 가는 동안 전부 무시하기 위해 애썼다.


한적한 전철에 올라탄 직후 신지의 눈을 끈 것은 레이의 부재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최근 레이는 결석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제 했던 대화 때문일까, 레이가 보이지 않는 것은 오늘 아침 아스카에게서 받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불편한 느낌을 줬다.


레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걸까? 일정이 앞당겨져서 벌써 영호기 실험을 하는걸까? 그랬으면 미사토가 말해줬을 것이다.


아니... 그럴까? 미사토는 아직도 신지가 화나있는줄 알고 있는 상태다. 굳이 그런 세부사항을 시시콜콜 전달해줄 상황은 아니다. 미사토쪽에서도 신지를 피하고 있을 수도 있고.


신지는 레이를 확인해보자고 재빨리 결심했다. 최악의 경우에도 학교에 지각해버리면 그만이었다. 레이가 신지를 그렇게 도와준 이상 신지도 레이를 도울 의무가 있었다. 최소한 그정도는 해줘야한다. 신지는 다음 역에서 전철을 환승했다. 


레이는 제3 신동경시에서 가장 낙후된 구역에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살지도 않는, 거의 감옥 같이 생긴 아파트. 예전에는 올때마다 주변에서 공사 소음이 들려왔었지만 오늘은 아침 공기에 기묘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402호의 벨은 여전히 고장나 있어서, 신지는 대신 문을 두드려봤다. 처음 왔다가 알몸의 레이를 만났던 때의 데자뷰를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애쓰며. 안에선 대답이 없었다. 신지는 다시 한번 더 크게 두드려봤다. 잠시 또 시간이 지난 다음, 문이 열렸다.


신지는 놀라움에 숨을 들이켰다.


그냥 피곤해보였던 아스카랑 다르게, 레이는 정말 어딘가 많이 아파보였다. 반쯤 감겨진 눈에는 핏발이 서있었고 주변에는 창백한 피부에 더 극명하게 대비되는 다크 서클이 짙게 져있었다. 머리카락은 난장판이었고, 어깨가 축 늘어진채로 문간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옷이라곤 교복 셔츠와 속옷만 입은채였다.


"왜 그래?" 레이가 약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레-레이?" 신지는 한 걸음 물러서며 더듬거렸다. 목소리에 걱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아카기 박사님이 실험 할 일이 있었어. 난 명령 받은대로 했을뿐이야." 레이의 목소리는 너무 낮아 간신히 들릴 정도였다. "밤새 머리가 아팠어."


실험? 무슨 실험? 아카기 박사가 뭘 했길래 이렇게 된단 말이야? 


"약 같은건 없어?"


레이는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개 있어. 근데 뭐에 쓰이는건지 몰라."


"내가 봐줄게." 신지는 이제 학교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 나 의사는 아니지만 아스피린 같은건 알아볼 수 있으니까."


레이는 조용히 비켜주며 신지를 맞이했다. 레이의 집은 제3 신동경시 기준으로도 휑한 편이었다. 침실 하나에 화장실과 주방. 끝.


신지는 신발을 벗고 들어섰다. 바닥엔 값싼 체크무늬 타일이 깔려 있었는데 색깔이 희미해지고 핏자국처럼 보이는 것을 포함한 얼룩이 군데군데 있었다. 신지는 최대한 더러운 것들을 밟지 않으려 노력하며 조심조심 걸었다. 맨발의 레이는 발에 뭐가 밟히는지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레이는 원래 집을 깔끔하게 관리한다는 관념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대부분은 비닐 봉투, 음식 포장용기, 학교 프린트물이었다.


레이가 가진 가구는 둘뿐이었다. 얇은 매트리스가 얹혀있는 작고 더러운 침대에 피투성이 붕대로 꽉 찬 봉투가 걸려있는 서랍장 셋트. 구석에 있는 냉장고. 냉장고는 수납 장소도 겸하는 듯 위에 식기가 놓여 있었다. 집 전체에 딱히 눈에 띄는 물건 하나가 없었다. 모두 투박하고 회색조일뿐.


착의 상태에 대해선 별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인지 레이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뒤따라온 신지를 올려다봤다. 신지는 아침 햇살 속에 빛나는 레이의 속살에 시선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색하게 침이 꿀꺽 넘어간다. 신지가 서랍장 앞에 쭈뼛거리며 서있으니 레이가 서랍 하나를 가리켰다.


"저기."


신지는 레이가 가리킨 서랍을 열어보고... 말을 잃었다.


서랍 전체가 약으로 가득차 있었다. 몇개는 그냥 서랍 안에서 나뒹굴고 있었고, 투명한 플라스틱 약통도 여럿 있었고, 하얀 불투명 통들도 눈에 띄었다. 조금 망설이며 신지는 통 하나를 집어들고 라벨을 읽어봤다. 진통제였다. 다른걸 들고 읽어봤다. 또 다른것도.


서랍 전체가 진통제로 가득차 있었다. 열개가 넘는 통. 수백개의 알약.


신지는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속에 레이를 쳐다봤다. 말이 목구멍 위로 잘 나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레-레이?"


"왜?" 레이는 신지의 당혹감엔 신경쓰지 않는듯한, 아니 어쩌면 이해하지 못하는듯한 모습이었다. 몸을 일으키다가 마치 보이지 않는 뭔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듯한 모습으로 머리를 감싸쥔다.


"이거 전부 네거야?" 신지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아니." 레이는 머리를 감싸쥔채 조용히 말했다. "그 아이거였어. 뭐에 쓰는건지 왜 있는건지 난 몰라. 그냥 거기 있었어. 아마 ... 알 것 같기도 해. 아파."


신지는 손에 든 약병을 내려다봤다. 아야나미 레이가 이런 고통속에 사는줄은 정말 몰랐었다. 그런 얘긴 신지에게 해주지 않았었다. "레이, 아카기 박사가 대체 뭘 한거야?"


"명령을 ..." 레이는 고개를 젓다가 고통스러웠는지 신음을 내뱉었다. "말하지 말라고 명령 받았어."


신지는 눈을 찌푸렸다. 맘에 들지 않는 말이었다. 왜 레이가 말할 수 없다는걸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뜻일까? 아님 신지에게만 말할 수 없다는걸까?


이 문제를 더 밀어붙이고 답을 얻을때까지 계속 질문할 수도 있겠지만, 레이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니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신지였다. 그게 신지가 알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레이가 숨길 것 같지도 않았다. 설령 명령이 있었더라도. 최소한 신지는 그렇게 믿었다.


신지는 서랍을 뒤진 끝에 가장 최근의 약처럼 보이는, 뚜껑이 제대로 닫혀 있는 통을 집어들고, 확실히 하는 김에 날짜도 확인해본 다음 뚜껑을 열었다. 수도에서 물을 한 잔 받아온 다음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 약병에서 붉은색 흰색 반반인 알약을 두 알 꺼낸다.


"이거면 될거야. 강한 약이니까 하루에 두세개 이상 먹으면 안돼."


레이는 스스로 일어나 앉으려 했지만, 너무 고통스러워 보였기에 신지도 나섰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최대한 아프지 않게 주의하며 돕는다.


레이는 신지에게서 약을 받아 물 한모금에 넘기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신지는 레이가 베고 누운 베개를 정리해주며,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았을거라고 생각했다.


"아야나미..."


"난 그 아이가 아니야." 레이는 마치 뭔가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위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이름에는 그 사람의 많은 것이 담겨있어. 단순한 호칭이 아니야. 생각이야. 느낌이야. 나는 그 아이랑 호칭은 공유할지 몰라도 그런 다른 것들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아. 난 다른 사람이니까."


신지는 우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것은 신지도 이미 모두 알고 있는 것이었다. 눈 앞의 레이가 예전의 레이와 다르다는 것은 신지도 잘 알고 있었다.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 난 어떻게 느끼면 되는걸까. 내 앞에 있는 아야나미를 아야나미라고 부를 수 없으면? 너는 생긴것도 완전히 같은걸."


"슬퍼하면 된다고 생각해. 난 그러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걸.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야."


신지는 그런건 전혀 행운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레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경험이 한정된 그녀가 상실의 고통 같은 것을 알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 고통은 신지 혼자 짊어가야 할 것이었다. 레이가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내게도 그런 감정들은 있어." 레이의 목소리가 묘했다. 마치 딱히 누군가를 대상으로 하는 말도 아닌 것처럼. "그래도 뭔가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 뭔가 예전에 소중하게 여겼던걸 다른 곳에 놔두고 잊어버린 그런 느낌. 내 감정이 아니었던건 알아. 그런데 동시에 그게 내 감정이란 것도 알아. 아니, 느껴. 그 아이가 느꼈던 감정도 모두 내거라는 것. 난 대체 뭐가 문젠걸까?"


신지는 입을 열기도 전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아야-... 미안해."


아스카 말이 맞아. 신지는 속으로 생각했다. 난 바보야. 아야나미라고 부르지 말라고 몇번이나 말했는데 아직도 이래?


"미안해하지마." 레이가 말했다. "그 아이 그리워하는거 알아. 널 위해서라도 내가 걔가 될 수 있으면 좋을건데.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일이 너무 많아."


조금 부끄러워진 신지는 예전에 한번이라도 아야나미가 이런식의 말을 한적이 있는지 생각해봤다. 혹시 진통제의 효과인건가 하는 생각도 해보는 신지였다. 약통에 든게 뭔지 몰랐다는건 한번도 먹어보지도 않았다는 뜻일거니까. 약에 내성이 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레이의 목소리는 갈수록 멍해지고 있었다. "난 ... 세컨드 칠드런이 왜 날 좋아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네가 왜 우는지 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도망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나도야."


"너는 ..." 레이는 거기까진 말을 이었지만, 눈의 초점이 흐려지는게 이미 생각이 흩어진 상태인게 명백했다. "너는 ... 원하는게 있어?"


신지는 말없이 기다렸다.


레이의 팔이 축 늘어졌다. 눈을 감고 몇분이 지나자 잠에 들었다. 손이 침대 시트를 꽉 쥐고 있어서 신지가 손가락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펴준 다음, 그 창백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봤다. 자기 피부만큼 하얀 리넨 이불보에 늘어진 모습이 평화로워보였다.


그제서야 레이는 조금 편해진 모습이었다.


신지는 일어서며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아야나미. 이 이름으로 불리는거 싫어하는거 알지만 마지막 한번만 허락해줘." 신지는 레이가 듣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야나미 네가 그 선택을 하지 않았길 원해. 차라리 내가 너 대신 죽게 해줬으면."


신지는 서랍장으로 가 약이 든 서랍을 닫고, 다시 레이쪽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야나미 말이 맞아. 계속 내 생각만 하고 살 수는 없어. 아야나미한텐 내가 필요하니까. 그러니까 ... 그러니까 나도 다시 에바를 조종할거야. 난 내 의무를 받아들여야해. 네가 그러는 것처럼. 아스카가 그러는 것처럼. 내가 결국 남을 돕는데 실패하더라도, 최소한 노력만은 해야하는거니까."


방은 조용했다. 신지는 잠시 자리에 서서, 혹시 레이가 완전히 나을때까지 같이 있어줘야하는거 아닌가 생각해봤다. 학교는 별 상관 없었다. 수업은 매번 똑같은 지루한 내용이었고 혹시 따라갈 내용이 있다면 켄스케에게 도움 받으면 될 것이다.


위원장이 아마 난리를 피우겠지만, 아마 호라키도 아야나미 레이를 간병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신지가 남아 있었다고 하면 이해해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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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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