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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팬픽] 번역/ 에반게리온 제노사이드 15-13

ㅇㅇ(14.6) 2022.01.03 00:16:50
조회 574 추천 16 댓글 8
														

1일에 작업 못 끝내서 못 올린거 2일 낮에 올라간거라 하나 더 추가로 올라가는거


GOWR 완결 난 이상 속도 올려서 제노사이드랑 A&T 끝내고 GOWR이랑 차기 번역 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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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화)







흩날리던 불씨들도 모두 잿가루가 되어 바닥에 흩어졌지만 레이의 몸엔 여전히 이상이 없었다. 옷이 모조리 타올랐지만 그 밑의 피부는 여전히 유령 같이 창백한 모습 그대로였다. 미동도 하지 않고, 레이는 머리 위의 검은색 어둠을 바라보다, 오른손을 들어올려 찬찬히 뜯어봤다.


"그래, 넌 죽지 않았어."


레이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기사 카오루처럼 생겼지만 나기사 카오루가 아닌 소년은 아카기 박사의 시신이 있었던 장소에 몸을 굽히고 있었다. 아카기 박사의 마지막 흔적인 잿더미 사이에서 반쯤 녹은 PDA를 찾아낸 그는 잠시 그것을 들여다보다 허리를 펴고, 레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때, 난 껍데기 속에 갇힌 의식 정도에 불과했어." 그의 눈이 마치 내부에 불이 붙은 루비처럼 붉게 빛났다. "공정을 기하자면 너도 별로 다를게 없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내 의문에 답을 내놓을 수 있었을거니까."


레이는 팔꿈치를 이용해 몸을 일으켰다. 뜨거운 공기에 노출된 하얀 맨살에 눈이 잠시 머무른다. "내 에바 속에 있었던거지."


"그때 난 네 에바 그 자체였어." 그가 답했다. "나는 너 자체였어. 우리의 정신이 싱크로된 그 짧은 순간 동안 우리는 하나가 됐던거야. 하지만 넌 공허했어. 껍질만 있고 아무것도 없었어. 그런걸 어떻게 받아들이란 말이야? 내 본성은 타인으로부터 학습하며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야. 너에게선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으니 넌 내게 아무 쓸모가 없었어."


그는 PDA를 들어올리곤, 마치 거기서 뭔가를 찾아내려는 것처럼 장갑낀 손가락으로 반쯤 녹은 플라스틱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 얼마 되지않아, 난 다른 정신을 찾아냈어. 관심과 애정을 절망적으로 갈구하면서도 자신의 소망을 혐오하던 정신을. 울면서 내게 간청했지.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을 구해달라고. 내 이해의 영역을 벗어나 있을만큼 큰 상처를, 그녀의 의식 전체를 규정해버릴만큼 깊은 상처를 준 사람인데도, 제발 구해달라고 내게 부탁했어. 상처 때문에 마음이 굳게 닫혀 에바와도 싱크로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나만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었지."


레이는 앉은채로 조심스럽게 그를 살펴봤다. 맨살에 와닿는 바닥이 뜨거웠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레이를 잠시 돌아봤다.


"내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어." 그가 반복했다. "그녀도 동의한 사안이야.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을 위해 동의했어. 난 그녀의 마음을 열어젖히고, 그 머릿속에서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섰지. 난 그녀를 능욕했어. 계속해서, 반복해서. 싱크로할때마다 매번.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 상실과 상처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이미 부서져 있었던 마음이니까. 그 과정에서 난 마침내 답을 얻었어."


그는 오른손 장갑을 벗더니, 엄지를 입에 넣고 깨물어 피를 냈다. 입술에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그녀의 고통 속에서 나는 내 사명의 완수를 보았다. 단순한 수단의 파악을 넘어서, 왜 그래야 하는지도."


레이는 분노를 느꼈다. 영호기에 처음으로 싱크로 했을 때의 경험을 떠올려보고, 세컨드 칠드런이 어떤 일을 겪었을지 생각해본다. "그 아일 고문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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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스스로 한 일이야. 내가 한 것은 그녀가 자신에게 가하고 있던 고통을 풀어서 설명해준 것 뿐이지. 더는 부정할 수 없도록. 그녀의 정신을 받는 대가로, 나는 진실을 알려줬다. 진실은 언제나 고통스러운 법이야."


"언제나 그렇진 않아."


"그렇다면 넌 인간을 여전히 알지 못하는거야." 그는 피가 흐르는 엄지를 PDA의 가장자리에 문지르며 말했다. "인간이 아는 것은 고통 밖에 없어. 그들의 종으로서의 짧은 역사 동안 상존했던게 고통이야. 넌 인간의 몸을 하고 있을지언정 인간의 정신은 갖고 있지 않아. 그러니 이해할 수 없을 수밖에." 그러곤, 그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만약 이해해놓고도 그녀를 돕지 않은거라면 넌 대체 어떤 존재인걸까."


레이의 가슴을 찌르는 것 같은 말이었다. "나는 몰랐어."


"그건 핑계야."


레이는 가슴속에 차오르는 죄책감에 맞서 싸우며 고개를 저었다. 세컨드 칠드런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여태껏 얼마나 봐왔던가. 레이는 신지의 고통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신지가 겉으로 상처를 드러내고, 감정을 공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씩은 신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을때도. 하지만 세컨드는, 레이가 아스카라고 부를 권리도 받지 못한 그 아이는- 레이에겐 수수께끼 그 자체였다.


"난 알았지." 백발의 소년은 십자가에 못박힌 하얀 괴생명체를 올려다봤다. "난 그녀의 고통을 공유했어. 그곳에 나도 같이 있었으니까. 두려움을, 꿈을, 희망을, 모두 알아. 영혼의 보완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절대적 공포(Absolute Terror)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도. 그게 바로 인간의 원죄인거지. 서로 절대로 이해할 수 없고, 절대로 하나될 수 없는 상태."


레이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인류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쉽게 내다버리기엔 레이는 이미 겪은게 너무 많았다. 아스카를 돕는데 실패한 것은 정말 영원히 후회할 일이지만, 그래도 게이코를 돕는데는 성공했다. 흠결이 없지 않음에도 결국엔 공감을, 사랑을, 남을 이해할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레이는 주변에서 이미 여럿 보았다. 공포에 의해 생겨나 개인을 가르고 있는 AT 필드를 유지하면서도 저들은 레이를 받아들여줬다. 영혼이 이어질 수는 없어도, 손짓으로 말로 감각으로 레이를 받아주고 서로를 받아줬다.


이제는 정말 옛날 일 처럼 느껴지는, 전철에서 이카리 신지와 자신의 인간성에 대해 대화했던 때를 레이는 떠올린다. 레이가 그의 레이가 아니었기에 몇 달을 회피해왔던 신지는, 그 날 레이를 깊이 감동시켰었다.


아야나미 레이는 이카리 신지에겐 인간이었다.


그 이후로 레이는 자신의 모든 과업을 짊어지고도, 자신의 유대를 확장시키고 자신의 인간성을 남들에게 공유해주며 지금 눈 앞에 선 소년이 원죄라 부르는 일을 해왔다. 개인의 구분이 공포에서 기인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세상에는 공포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 원래 많은 법이고 그 모두를 원죄라고 칭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공포는 누구든 느끼는 것이다. 인류는 공유와 개별성 사이의 균형속에 존재하는 무언가였다. 고통을 경감하는 기쁨. 외로움을 경감하는 동지의식. 상처를 경감하는 치유. 두려움과, 남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그 불가능할 정도의 용기.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양면성을 모두 받아들이고 짊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기에, 레이는 지금 자신이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눈을 감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에 게이코에게 작은 사과를 읊조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넌 틀렸어." 레이의 단호한 목소리엔 분노마저 깃들어 있었다. 곧게 선 몸 너머로 십자가에 못박힌 괴물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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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PDA를 슬쩍 내버렸다. "타락한 사도의 공허한 외침이다. 넌 인간보다 악질이야. 저들과 달리 선택권이 있는데도 스스로 그런 운명을 택했으니. 대체 뭘 얻겠다고 그러는거지? 지금 이 순간에도 내 형제들이 오고 있다. 종말과 함께."


"그렇게 두진 않겠어."


그는 미소지으며 다시 장갑을 꼈다. "무슨수로 날 막겠단거지?"


'어떻게'는 지금 중요한게 아니었다. 중요한건 '그래야한다'는 것이었다. 레이는 두렵지 않았다.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는 싸움도, 심지어 죽음도 감수할 수 있었다.


레이는 심호흡하고, 맨발이 바닥에 찰박거리는 소리와 함께, 알몸으로 돌격했다. 팔각형 빛의 장벽을 향해.











전략자위대 4 산악사단의 사단장 미나모토 장군은 의자 등받이에 느긋하게 몸을 기댔다. 네르프가 잠깐 방어 시설을 가동시켜 항공기 몇대를 격추한 일이 있었지만, 그 외에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전개였다. 클루게의 말처럼 작전이 무탈하게 진행될거라고는 사실 믿지 않았기에 그도 나름 최대한의 대비를 해둔 터였다.


그가 있는 숲속 공터는 꽤 북적거렸다. 주변에 여섯 대의 통신차량이 큰 원을 그리며 배치된채 전선의 부대들에게서 실시간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2여단과 3여단이 큰 저항 없이 센트럴 도그마를 장악해나가고 있었고, 1여단은 시가지에서 민간인들을 끌어내 소개하고 있었다.


네르프 요원들은, 경비병력 포함, 모두 센트럴 도그마에 고립될 것이니 별다른 저항은 없을거라고 클루게가 약속해둔 터였지만, 하다못해 마지막 발악조차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지금 현재 그의 병력이 보고해오는 최악의 저항은 기껏해봐야 잠긴 문이나 플라스틱 비슷한 무언가로 틀어막힌 복도들 정도였다.


가장 기쁜 소식은, 물론, 아직까지 에반게리온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미나모토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계급까지 올라온 사람들의 고질병인 자의식 과잉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 퍼부어도 에바에 흠집 하나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들의 작동 원리는 그의 인식의 경계 바깥에서 놀고 있는 물건이었다.


물론 클루게측에서는 에반게리온이 나올 가능성이 없다고 약속해놓은 상황이었지만 그런 것만 믿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클루게는 에바를 확보하고, 가능하다면 심문을 위해 그 파일럿들을 생포하기 위해 손수 뽑은 특작대원들과 함께 센트럴 도그마에 침입한 상태였다. 그 뒤 이 사태의 원흉인 이카리 겐도를 클루게가 확보하는 것이 작전의 목표였다. 4 산악사단의 임무는 네르프가 본격적인 방어에 나설 수 없도록 조공을 실시하고 민간인들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미나모토는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슬슬 우려가 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클루게에게서 더이상 소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에바, 그 파일럿들, 그리고 이카리의 현황에 대해선 일절 들어오는 정보가 없었다. 수백대의 전차와 포와 수천의 인원들이 제3 신동경시를 물샐틈 없이 포위하고 있었지만 모두 깜깜한 정보의 공백 속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미나모토는 기다리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고 정보가 없는 상황은 더더욱 싫어했다.


미나모토는 손목시계를 확인해봤다. 마지막으로 확인해본 뒤 또 5분이 지났다. 고개를 돌려보자 마침 정보장교 하나가 차량 뒤에서 걸어나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클루게 소식은?"


젊은 중위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아직 없습니다."


"인내심에도 한계가 오는구만. 이건 임무 방기 수준이야. 마지막 보고 언제였나?"


중위가 소매를 살짝 걷어올리고 자신의 시계를 확인해봤다. "이제 두시간째입니다."


미나모토는 욕설을 내뱉으며 일어났다. 이쯤되면 오래 참았다. 너무 많은 것들이 이미 걸려있다. 지금쯤이면 클루게에게서 연락이 왔어야 정상이다. 그가 죽었고 침투조가 실패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내무대신쪽에 연결 넣어." 중위가 통신차량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러곤, 근처의 녹색 험비에 기대어 서있는 인원쪽으로 몸을 돌린다. "거기, 대위. 클루게의 침투로에 수색조 편성해서 투입해. 그자식 어떻게 됐는지 알아볼 때가 됐다."


대위는 경례하고 황급히 뛰어가기 시작했다. 왜 클루게 무사시는 이렇게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수 없는걸까? 펜대나 굴리는 백면서생이 이런 복잡한 작전을 지휘하는게 어불성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미나모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통신 연결됐습니다." 아까 보냈던 정보장교가 소리쳐왔다. "내무대신께서는 회의 참석 중이시라 비서실장쪽으로 연결됐습니다."


일본 본토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예산이나 그따위 비슷한 문제로 회의나 하고 있다는 얘긴가하는 말을 구시렁거리며, 미나모토는 공터를 가로질러 통신차량에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에 발을 올린 그 순간 사이드미러에 뭔가가 번득이는 것이 그의 시선을 잡아챘다. 파란 하늘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었다. 몸을 돌려 따가운 햇살을 가리기 위해 눈 위에 손을 갖다대고 고개를 들어올려본다.


하늘에 태양이 둘이었다. 하나는, 둥글고 노란 진짜 태양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작고 번뜩이는 물건으로 생각해보면 태양이 아니라 별에 가까운 뭔가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쪽 방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기이한 광경이 뇌에 제대로 인식되는데도 잠시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자신이 뭘 보고 있는지 깨닫는데 또 1초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지오프론트의 중심부 방향으로 떨어지고 있는 섬광은 태양도 별도 아니었다. 저것은-


"대공포들 뭐하고 있어!" 그는 딱히 누군가를 지목하는 것도 아닌채 소리쳤다. "저거 당장 떨어트려!"


너무 늦었다. 그가 목격한 인공 별이 제3 신동경시의 옛 시가지를 채우고 있는 호수 바로 북쪽 지면에 낙하했다. 다음 순간 하늘을 향해 끝도없이 뻗어져나가는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눈이 멀 것 같은 섬광이 사방천지를 채우는 것을 미나모토는 잔뜩 커진 눈으로 쳐다봤다.


그는 N2 폭뢰의 폭음도 듣지 못했다. 그가 서있던 공터에 음파가 도달했을 무렵 그와 주변의 모든 것은 이미 먼저 도달한 충격파에 깔끔히 쓸려나간지 오래였다.











지오프론트 천장이 안쪽으로 휘다가 결국 증발하자 지령실도 마구 뒤흔들렸다. 바닥이 갑자기 위로 치솟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후유츠키는 균형을 잃고 근처의 콘솔로 쓰러졌다. 화면들이 지직거리고 일부는 깨져나갔다. 주 디스플레이도 잠시 잡음으로 채워졌다 점멸하며 복구됐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쓰러지며 비명을 질렀다.


앞의 콘솔을 손으로 붙잡고 후유츠키는 몸을 일으켜세웠다. 지령실의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시선이 주 디스플레이로 향해 그곳에 못박혔다. 지오프론트의 천장과 그곳에 거꾸로 달려 있는 제3 신동경시의 마천루들이 있었어야 할 자리엔 이제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아시노 호수가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오며 곳곳에서 수증기가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지오프론트가 소멸했다. 도시는 완파되고 이제 센트럴 도그마가 외부에 완전히 노출됐다.


그렇게 드러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원형을 그리며 활강하는 새 같은 형태가 보였다. 하지만 크기가 이상했다. 이 거리에서 새가 날아다니는 것이 보일리가 없었다. 새들은, 또한, 거대한 양날검을 들고 다니는 일도 없다.


에바 시리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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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제레가 무슨 생각으로 에바 시리즈를 투입했을까? 여덟기만 가지고는 인류보완을 발동시킬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건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롱기누스의 창도 저쪽엔 없다는 것이었다. 모종의 수를 써서 의식의 첫 부분을 성공한다고 해도, 창이 없이는 그 결과를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 아마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말살하고 어떤 구원의 희망도 없게될 것이다.


어쩌면 네르프가 에바를 투입해 자위대를 격퇴하는 것에 대비한 조치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도 합리적인 전술적 판단이었다. 에바를 상대할 수 있는건 에바뿐이었으니까. 아니, 그래야만했다.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후유츠키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만약 제레가 모종의 이유로 인류보완의 과정을 통제하는걸 포기했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터미널 도그마행 출입 터널이 개방되고 있습니다!" 벌써 자기 자리로 돌아간 누군가가 밑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후유츠키는 한창 혼란스러운 하부 덱을 향해 말했다. "당장 폐쇄해!"


"불가능합니다!" 휴우가가 소리쳐왔다. "방폭문들이 신호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터미널 도그마가 완전히 노출됐습니다!"


"또 해킹이 들어온건가?" 총 여섯개의 터널이 모두 개방되었다. 후유츠키는 저 터널들이 어느 지점에서 합류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릴리스가 거치되어 있는 동굴. 제레가 서드 임팩트를 노리는거라면 지금 가장 빠른 지름길이 열린 셈이었다.


휴우가가 자신의 화면 위로 몸을 기울였다. 다른 기술진들도 모두 비슷한 자세로, 마기 메인프레임의 코드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모르겠습니다." 휴우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마기의 논리 구조 내부에 이전에 없던 재귀 코드가 생겨났습니다. 함수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습니다. 판독 작업 들어가겠습니다!"


위에서는 여덟기의 에반게리온이 여태 하얀 장갑을 상아색으로 번뜩이며 유지하고 있던 대형을 해체하고 하강하기 시작했다. 날갯짓도 거의 하지 않고 활강하며 고도를 줄이는 모습에서 거의 우아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모두 이전 8호기의 자매기들로 똑같이 좁은 머리와 날카로운 주둥이, 그리고 여윈 몸을 하고 있었다. 어깻죽지에서 뻗어나온 날개가 길게 펼쳐져 있었다. 8호기의 경우에는 파일럿에게 비행 교육을 시킬 수가 없었기에 비행 기능도 동결되어 있었지만, 아마 제레측에서 설치한 더미에 의해 기동되고 있을 이들 기체들은 그런 제약도 없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방폭문 통제에 관여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코드 패턴을 마기가 찾아냈습니다, 이건 .." 하루나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됩니다! 아카기 박사가 2호기 OS를 개량할때 사용했던 코드와 패턴이 유사합니다.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는 것 중엔 그나마 가장 가까운 사례인데, 몇 주 전에 완전히 삭제된 프로그램입니다!"


하루나는 그게 대체 뭘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었지만, 사정이 다른 후유츠키쪽은 눈이 번쩍 뜨였다. '아카기 박사가 2호기 OS를 개량할때 사용했던 코드'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같은게 아니었다. 인간의 정신과 에바 사이의 가교가 되려면 간단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것은 또한 중국에서 건조된 A호기를 침식한 것과 같은 코드였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2호기는 그 프로그램을 삭제해버리는데 성공했지만, 어떤 경위에선지 그것이 살아 돌아온 모양이었다.


후유츠키가 지켜보는 가운데, 양산형기들은 마침내 급강하 궤도로 전환해 터널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침내 상황을 이해했다.


"초호기와 2호기를 당장 터미널 도그마로!" 그는 난간을 붙잡고 아래쪽으로 소리쳤다. "작전목표는 에바 시리즈의 파괴다. 그 외에는 어찌되든 좋아! 놈들이 헤븐즈 도어를 돌파하게 허용해선 안된다! 칠드런들이 도착하는대로 마기도 차단해! 정 안되면 아예 마기의 전원을 차단해도 좋다!"


그 말에 혼란이 퍼져나갔다. "마기의 전원을 뽑으라는겁니까?" 휴우가가 물어왔다.


"코드의 확산을 막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저지에 실패했다간 우리 기술에 우리가 당할거야."


"부사령관님?"


후유츠키는 여덟기의 양산형기와 초호기, 2호기가 각각 하강하고 있는 현황이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것을 지켜봤다. 에바 시리즈쪽이 훨씬 앞서가고 있었다. "통신 연결하도록. 칠드런들과 직접 대화해야겠다."


















"에바 시리즈?"


오른쪽의 작은 통신창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스카는 목소리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통신창에는 Sound Only란 글자만이 떠서 양쪽 모두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이 오갔다.


아스카가 에바 시리즈에 대해 알게된 것은 독일 시절이었다. 2호기 외의 다른 기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사실 반쯤 사고 같은 경위로 알게된 것이었다. 2호기는 생산형 모델이었지만, 에바 시리즈는 그보다 더 값싸고 부담없이 소모할 수 있도록 설계된 물건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2호기가 최고급 결전병기라면 양산형기들은 값싼 복제품 비슷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아스카는 그 중 하나를 큰 무리 없이 파괴해본 경험도 있었다. 나가라 게이코가 안에 탄 채였지만.


하지만 그건 무능한 파일럿이 타고 있는 단 하나의 기체였다. 지금 이곳에 접근 중인 양산형기는 숫자가 여덟이었다. 신지와 아스카가 각각 넷을 한번에 상대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렇다." 부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터미널 도그마 방향으로 이동, 놈들을 중간에 저지해야한다. 그보다 더 깊게 침입을 허용해선 안돼."


"왜요?" 아스카는 앞으로 몸을 숙이며 물었다. 슈츠가 몸을 당겨오는 감각도 거의 없었다. 노출도가 끔찍하긴 했지만 착용감만은 슬슬 좋아진다고 느끼는 아스카였다. 2호기와 연결이 시작되자마자 전면부의 초록색 판들이 빛을 내고 있었고, 모든게 가볍게 느껴졌다. 자신의 팔다리마저. 잔잔한 진동음 비슷한게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터미널 도그마에 뭐가 있길래요?"


"설명할 시간은 없다.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테니.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은 단 하나다. 에바 시리즈가 그곳에 투입된 이유는 서드 임팩트를 발동시키기 위해서라는 것. 놈들을 막아야해."


아스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을 구하라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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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에겐 중요한 역할이 있었다. 비밀 같은걸 숨겨대는 어른들 중 누구도 감히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것이 아스카의 가슴을 자부심으로 채웠고 에바 시리즈의 소식을 듣고 피어나기 시작한 두려움을 잠재웠다.


무의식적으로 아스카는 조종간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2호기도 마치 자신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다고, 몸 주변의 LCL이 포옹하는 것처럼 따뜻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아스카였다. 숱한 것들을 견뎌오고 여기까지 온 지금, 이것은 너무나 안락한 느낌이었다. 이곳이 아스카가 있을 곳이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그래도 .. 에반게리온 기체들인거지?" 신지가 말했다.


"그래. 8호기랑 같은 모델이야."


아스카는 일렁이는 LCL에 떠있는 신지의 잘생긴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손을 뻗으면 이마에 흩어져 있는 갈색 앞머리를 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아스카는 이제 신지에겐 어쩔 수 없이 그럴때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짜증이 치솟지 않게 아스카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물론, 지금 신지가 걱정하는 것은 싸움 그 자체가 아니란걸 아스카는 알고 있었다.


"파일럿들은?" 신지가 물어왔다.


"파일럿 같은건 없어, 바보야." 아스카는 애가 어쩌면 이렇게 뻔히 예측이 될까하는 생각에 살짝 신경질이 났다. "대충 쓰다 버리기엔 인간 파일럿은 훈련이 너무 힘들어. 에바 시리즈는 처음부터 자동화를 목표로 설계된 물건이야."


신지는 아직 납득한 기세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게이코는-"


"소류양의 말이 맞다." 부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8호기는 나가라양을 위해 특수히 개조된 경우였다. 지금 상대하게 될 기체들에는 파일럿이 탑승하고 있지 않아." 그러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본부에서 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 것 같군. 마기가 노출된 상태다. 그래서 시스템을 정지해야해. 당분간은 연락할 수 없을거다."


아스카는 몸을 들썩였다. 머리카락이 LCL 안에서 흐느적댔다. "무슨 말이에요? 그쪽에 무슨 일 있어요?"


"소류양, 우린 충분히 자구책을 강구할 수 있으니 명령에만 집중하도록. 에바 시리즈를 파괴하고 나면 남는 시간은 자유롭게 보내고 있어도 좋아. 이쪽에서 접촉할 방법을 찾아보겠다. 행운을 빌지."


통신창이 꺼지고, 남은 침묵 속에 신지와 아스카만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지는 아까보다 더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아스카는 정말 진심으로 지금보다 더 나은 여자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 신지를 달래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마 신지쪽에서도 그건 바라지 않을 것이다. 지금쯤이면 그정돈 알겠지.


아스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숨만 내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시선을 밖으로 돌리자 2호기와 초호기가 함께 하강중인 어둑어둑한 터널의 광경이 보였다.


사령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건간에, 부사령관이 숨기고 있는 사실이 무엇이건간에,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스카는 자위대를 때려부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아무래도 일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진 않을 모양이었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아스카의 인생에 쉬운 일 같은건 없었다.


지금이라고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게 바보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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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끝



여담인데 본편 ~24화까지의 전개에 그 이후 이어진 제노사이드 시간선을 다 합쳐봐도 이 장면은 후유츠키가 신지, 아스카와 유의미한 대화를 나눈 유일한 케이스임


본편 이스라펠전때는 한마디 했다가 에휴씹ㅋㅋ 하고 가버리는게 끝이라


중간 전략자위대 파트는 웬일로 작가가 인물들 계급이나 보직 같은거 구체적으로 묘사 안했음. 몬가 어설퍼도 내 잘못 아니라고 면피하고 있는거 맞음. 사단장 계급도 모르고 그냥 제너럴이라고 나와. 사실 찐 밀리터리쪽으론 약한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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