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물음에 아비의 얼굴은 살짝 굳어졌다.
십 수년간 가족은 내팽게치고 검만 수련했던 자신에 대한 원망이 담긴 질문처럼 느껴졌다.
무슨 얘기를 해야할까 고민하는 사이 소년의 입이 다시 열렸다.

"무공을 닦을 토대인 몸을 만들고 형(形)을 익히기 시작한 이를 삼류라 하셨습니다."
"그랬지."
"자신이 익힌 무공의 형을 완숙히 펼쳐내는 자를 이류라고 하셨고요."
"맞다."
"마음가는대로 몸을 휘둘러도 형을 따라가는 것이 일류, 형에서 벗어난 움직임 속에서도 식(式)을 잃지 않는 자는 무공이 절정에 이른거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어디에 서 계신것입니까?"

어디에 서 있는걸까.
반평생을 검만 바라보고 살았던 자신은 어디에 있는걸까.
멍하니 생각을 하다 소년의 굳건한 눈과 마주하고 깨달았다.
좋은 아비도, 좋은 부군도 되지 못했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나는 삼류도 되지 못했구나."

한탄과 함께 아비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덜덜 떨리는 무릎이 그의 남아있는 생이 얼마 되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버지."
"마지막으로 보여줄게 있다."

마당까지 힘겹게 나온 아비는 소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검을 다오."
"아버지..."
"어서 다오."

소년이 입술을 꽉 깨물며 건네는 검을 받아든 아비는 알듯말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성인남자의 팔뚝 길이정도 되는 어중간한 길의 검.
한때는 자신에게 있어 전부였던 물건이었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감촉을 느끼다 검을 뽑아들었다.

"검 한 자루로 영원에 도달할 수 있다면."

언제나 되뇌였던 말과 함께 아비는 밤하늘을 향해 천천히 검을 찔러들어갔다.
마치 이 순간이 영원할것처럼 느리고 또 느리게.
그렇게 정점에 도달하는 순간 그 자리에 서있는건 사람이 아니라 한자루의 검이었다.
별빛과 달빛을 받아 영원히 빛날.
허나 검은 영원할지 몰라도 사람은 그러지 못했다.

"미안했소. 미안하다."

그 소리와 함께 아비는 서서 잠을 자듯 눈을 감았다.
삼류 아버지이자 삼류 남편, 그리고 신화경(神化境)에 다다른 이름 모를 무사의 마지막이었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