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년에 들어서 그간 본적 없는 장르를 보게됐다.
선협
6월에 이르기까지 짬짬히 시간을 내서 봐오던 선협물이 총 4개, (그외에도 50화 언저리까지 읽다 덮은 소설이 5개 추가로) 정도 쌓였다. 이 정도면 선협에 대해 얼추 알만큼 다 아는거 아닐까 싶던차에
읽으며 든 생각을 한번 리뷰나 해보며 정리해볼까 한다
특징-악한 신선
평생 무협만 처먹던 내게 생소한 순간들이 여러번 등장했다.
신선이라는 작자들이 사악하다는 것
본디 신선이라 함은 어느 장르든 정해진 그 컨셉이 있다
일단 다 착하다
구태어 도교나 불교의 종교적인 의미를 담지 않아도
사람을 초월했고, 인간계의 대부분은 하찮은 것이기에 초연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기에
벌레의 것을 탐내는 인간은 없다, 그게 대부분의 창작물에서 공통되어 표현되는 초월자의 시선이다
근데 선협물에서는 굳이 벌레를 짖밟으며 신나게 웃는 인간의 면모를 강조한다
자칭 영생을 추구한다던 신선들 꼬라지가 그 꼴이니, 보는 내내 위화감을 지울수가 없었다
하는 짓이 지나치게 인간답지 않나?
신선들의 행동은 초월적인 힘을 가진 인간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선협물의 나온 종자들에게는 대단한 대의나 깨달음, 무언가가 없다
그냥 본인 보신이 목적이다
물론 때때로 문파나 가문에 희생하는 이가 없지는 않으나 그건 본인이 영생에 닿지 못함을 자각하고 자신이 남긴 유전자를 보존하려는 선택, 여기에 대단한 선의와 충의는 없다
그러니 이런 경우에는 이 희생조차 자기보신이였다
중국 본토의 선협물을 먹고 있자면, 이 소설이 대륙사람들이 바라는 내적충족감을 얼마나 체워줬을까 생각하게 되더라
야만스럽다 해야할까, 아니면 죽음을 회피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 인간답다고 해야할까
생명이 오래 살아가려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다. 모든 인물이 그것에 충실하다.
살아가는데 있어 빼앗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사냥감을 사냥하는 포식자가 그러하듯
하지만 이건 야만의 법칙, 짐승의 방식이다. 법과 규율로 구속된 문명의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개인이 한 문명의 모든 이를 초월하는 경우가 잦은 선협 세계이기에, 그곳의 방식 역시 약육강식이 된다.
패한 이는 죽고, 살아남은 이는 산다.
이게 선협의 규칙, 단순명료하다
장점-단순함이 강점
선협물은 위에 말했듯, 모든 인간이 영생을 위해 살아가니 전체적인 구조는 선형적이다.
선협물에서의 모든 신선들, 수련자들은 더 오래살기 위해 노력한다. 이건 수준이 높든 낮든 관계없이 같다. 각 수련에는 여러 단계가 있는데, 단계를 높히면 수명은 늘어난다.
일종의 레벨업이라 봐도 무방하다.
수명뿐만이 아니라 마나통, 스킬 위력, 스킬 종류, 등등 역시 상승하는데, 때문에 낮은 단계의 수련자는 높은 단계의 수련자를 이기기 매우 어렵다.
단순한 수치의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베인이 구르기를 써도 누구는 5칸 이동하고 누구는 50칸 이동하면?
베인이 평타를 써도 누구는 사거리가 5칸이고 누구는 50칸이면?
베인 평타 데미지가 누구는 한칸 줄어들고 누구는 즉사면?
물리적 격차가 크고, 심지어는 존재하지 않았던 마법 데미지라는 새로운 개념들도 등장한다(환술, 진법, 정신계열). 물리방어가 높다고 마법방어가 높지 않은 것처럼 수준을 높히기 위해서는 마법방어에 대한 대처도 필요해지는 것이다.
수준을 상승시키는 방법은 제각각인데, 익히는 술법을 완성시키거나, 영약이나 단약을 먹거나, 특이한 공법을 익히거나 하면 된다.
공통점으로는, 시간을 쓴다는 거다. 수련을 하던, 단약재료를 모으던 간에.
그러니 선협에서는 시간을 소모해 수명을 늘리고, 그 과정의 반복이나 마찬가지다. 수명에 따라잡히면 죽는 것이다.
500년 수명을 가진 수련자도 여유가 없다. 정상적으로 다음 단계의 수련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500년의 시간을 전부 써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단약과 공법, 여러 방법을 써서 수련경지를 상승시킨다.
선협물의 모든 이야기가 이러한 과정의 반복이다.
단순하고, 보기가 쉽다. 무언가 이득을 얻으면 직관적으로 들어오니, 몬스터를 죽이면 부산물과 경험치가 들어오는 것처럼, 신선을 죽이면 보패와 영물이 들어온다.
이건 레벨업과 상태창과 유사한 방식의 재미다. 성장, 정말 말초적인 재미 아닌가.
선협물은 내게 그런것을 직관적으로 꽂아주는 장르다.
단점-질린다.
대강 화신기 다음의 단계, 그러니깐 선계로 넘어가고 육체적인 수명한계에 구애받지 않는 지경즘 되면 질리는 것같다. 초조하게 등뒤를 찔러오던 수명의 압박을 드디어 넘어서고, 새로이 올라온 선계!
좆도 없다….
그냥 여기서도 하계랑 똑같이 죽이고 빼앗는다, 수련한다, 원툴이다.
그건 너무 많이 봐서 질리지 않았던가.
그래서 내가 학사신공이랑 선역을 그쯤에서 하차했던 것 같다.
바뀌지 않으니깐.
다른 환경과 다른 인물, 다른 수준이 튀어나오면 어쩌란 말인가.
이름만 바꾸고 같다.
탐욕하는 강자들, 나약한 약자들, 음모 꾸미는 가문들.
바뀐게 없으니 질리는건 당연하다.
선계라고 이름만 그럴듯하고 변한게 없으니 진부할 수밖에.
결론-자위는 좋다 하지만 새로워야한다
선협물은 말초적 쾌감을 추구하는 작품이다.
대단한 대의나 깨달음은 필요성이 적으나, 그래서 깊이가 없다.
장르소설에 뭔 병신같은 깊이가 필요하냐, 너 이새끼 순문충이나 싶겠지만.
근데 난 장르소설에도 깊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기준은 대단한 뭔가가 아니라, 그냥 간단하다.
감동.
얼마나 내게 감정의 흔들림을 주느냐, 얼마나 내게 몰입감을 선사하느냐가 기준이다.
분노시키든, 슬픔이든, 만족감이든, 강한 감정을 글로써 내게 주게한다면, 내 기준에서는 그게 깊이있는 작품인 것이다.
소설보면서 독자를 울면서 자살하게 만들면 그게 명작이다.
철저하게 짜올린 떡밥과 반전으로 독자를 놀라서 집안에서 비명지르게 만들면 그게 명작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대사로 독자를 캐릭터와 사랑에 빠져서 부모님에게 소개 하게 만들면 그게 명작이다. (음?)
기준은 제각각이다. 아무튼 몰입하게 만들면, 독자의 마음 깊은 곳을 글로써 흔들면, 그 사람에게만은 명작이 되는 것이다.
그런 내 입장에서는 적어도 나는 선협물 원탑이라는 학사신공을 보며 과몰입 한적은 없다.
난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일종의 자위라고 생각하는데,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자위는 기분 좋지 않은가.
난 하루에 5번 자위하고 부족하면 두번 더한다.
다만 자위도 같은 야동을 반복해서 보면 질리기 마련, 새로운 체위와 새로운 배우와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컨셉이 필요하다.
그런데 선협물은 그걸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선협물이 재미없다는 건 아니다. 처음 본다면 정말 재미있게 볼수있는 작품이다. 난 하차신공을 700화 에서 하차했고, 모르는 이가 보면 거의 완결까지 다본거 아니냐, 그게 뭔 하차냐 미친년아 싶지만, 학사신공은 2000화 넘어서 완결이 났다.
같은걸 계속보는게 힘들다는 이야기지, 처음 보는 거면 얼마든지 즐길수 있다. 난 선협 입문으로 학사신공을 여전히 추천하고는 한다.
그리고 난 여기서 최근에 다시 본 두가지 종류의 작품에 말해보고자 하는데, 각각 선협의 진부함을 극복해보자 한 시도들 중 하나다.
수선회귀전
선협물과 범재의 무한회귀라는 신박한 조합이 만들어낸 작품.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재미있다.
존나게 넓은 선협세계관에 무한회귀라니, 보기만 해도 군침돌지 않겠는가.
나는 전생검신을 봤을때부터 누군가 이걸 쓰겠다고 생각하며 기다렸는데, 기어코 나왔다.
이 작품에서는 선협을 극복하려는 핵심적인 시도는 총 두가지 정도로,
1.무한회귀하는 현대인
일단 주인공이 현대인이다. 현대 대한민국의 교육을 초중고대까지 받아 회사에 들어간 지극히 정상인이며, 마인드 역시 정상인 답다.
판타지에 현대인이 등장하거나 무협에 현대인이 등장해서 미개함에 경악하는 소설은, 이제와서 보면 아주 많다.
여기서 오는 장점은 선협물 특유 무자비한 주인공이 아니라는 점. 이건 단점일수도 있겠다.
스승의 대가리를 쪼개면 단약이 나오는데 스승에게 받은 은혜 때문에 망설이다니, 이 무슨 고구마 주인공인가, 싶을수도 있겠으나 이미 그런 류의 선협물을 많이 봐온 나로써는 선량한 신선이라는 시도 자체가 신박한 시도였다.
정확히는 무한회귀와의 시너지가 좋다고 해야할까, 얼마나 실수를 하든 고칠수 있는 무한회귀자는 도무지 손해보고는 화를 침지 못하는 사이다 독자들의 마음을 넓게 만든다.
잔혹한 선협 세계관에서 인간성과 도덕성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를 현실을 모르는 머저리가 아니라 무한한 기회를 가졌음에도 타인을 배려하는 초인으로 만든다.
2.무인의 길
보통 선협에서 무술은 쓰레기다. 칼질 주구장창 해봐야 수련좀 높은 수련자가 와서 부적 딱딱 하면 수천명이 폭발사산하는 세상.
어떤 선협물에서도 무인을 강조하는 작품은 없다.
심지어는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무인은 버러지 수준이고, 주인공이 거의 500년 넘도록 칼질만 했는데도 결단기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기조원….오오!! 이러겠는데 통상적인 선협의 기준으로 결단기는 개미와 동의어다. 지금 우리는 주인공이 개미가 되었다고 감탄하는 중인 것.
그럼에도 이 소설에서는 무인의 길을 포기시키지 않게 하고 있다.
선술을 익히면 검술역시 익히는 것으로, 주인공의 동료의 도움을 받아 무술 경지를 개척해 나가는 중이다.
작가 고유 감정영역이라는 것도 흥미도 있고, 나는 이런 시도 자체가 재미있다.
물론 그 외에도 주인공과 함께온 직장동료들은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하게 만드는 떡밥이며, 보통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던 말든 인간성이랑 지능은 달라지지 않는 다른 선협의 수련자들과 다르게 고등급의 수련자는 신과 다를바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라던가.
여러모로 선협 세계관에 크툴루 처럼 초월적이고 미지의 무언가를 은은히 비추는 전개가 아주 재미돋는 작품이다.
언어의 주인이란
언어의 주인이란은 선협이였는 지도 몰랐던 작품이다.
말하자면, 선협의 판타지화 라고 할까. 여기서는 수련자는 마법사로 부르면 되고, 법술은 마법으로, 보패는 보물로 이해하는 식.
이게 다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난 내가 본 선협중에서는 이게 제일 재밌었다.
그 이유로는 설정.
작가 고유 설명과 설정이 치밀하게 짜여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왜 승급을 하면 강해지는가? 수명이 느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법은 무엇인가?
당연히 생각해 보면 궁금해 할 선협의 의문들, 단약좀 처먹는다고 수준이 오르는게 말이나 되나 같은 것들.
선협을 보면서 코런갑다 하며 보던 것을, 여기서는 확고하게 이해시켜줬다.
선협물을 보면 강해진게 아니라 힘을 얻는다는 느낌이 든다. 수명이 이뤄낸게 아니라 수명을 얻는 느낌, 지식을 학습한게 아니라 지식을 얻는 느낌.
술법, 영력, 영물, 보패.
이뤄낸게 아니라 마치 물건처럼 ‘얻어낸’ 느낌이다.
가지고 난 후 가지기 전과 달라진게 없다. 변화가 너무 적어서, 반드시 그 물건 혹은 힘을 주변에 쓰고 반응을 확인해야지 이해하게 된다. 반드시 매번 빠지지 않고 관객의 반응을 집어넣는 싸구려 공연장 처럼.
선협작품에서 묘사하는 장면 역시 대부분 그런 형태다. 사람이 없으면 그 강함과 위엄은 증명되지 않는다.
‘결단기의 강자를 초살내는 원영기의 강자.’ ‘결단기의 강자가 벌벌떠는 원영기의 강자'
여기에 더해서 경지가 성장하든 말든 변함없는 인간성과 지능까지. 때문에 묘사가 비슷하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단순히 힘이나 능력을 과시하는 것만이 아닌, 감각의 우월함, 위엄의 드높음, 고귀함, 이해력, 관측능력, 해석력, 등등 여러 방법과 방향으로 ‘높은 경지' 를 보여준다.
단순히 마법사가 ‘강한 인간’이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는 구태여 크툴루 같은 압도적인 무언가도 필요없다. 그냥 철저하게 짜여진 설정과 공식 앞에 그 위대함과 우월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장점은 많다만, 나중에 각잡고 리뷰 써볼까함.
요약하면, 언어의 주인이란은 수준이 높아질수록 재밌어 지는 소설로, 단순히 강함이 늘어나는게 아니라 점점 더 수준이 높아질수록 알게되는 세계의 비밀과 이해하지 못했던 마법들 등 매력적인 인물과 설정, 캐릭터 여러모로 볼거리가 매우 가득한 소설이다.
선협의 장점을 추려서 써내린 작품이다.
거의 700화 가까이 쌓였으니 보는 것을 격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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