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총을 들고, 바닥에 쓰러진 누군가의 위에 올라타 총을 겨누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일그러진 채로 짙은 안개가 드리운 것 같았다.

그는 숨을 헐떡이다가 방아쇠를 당겼다.

탕!

뚫린 목에서 울컥, 하고 피가 솟아올랐다.

그는 죽은 자의 옆에서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곧이어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우욱.

이 행동에 대체 무슨 소용이 있지?

구토감은 신체의 이상이 아니라 정신의 이상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통제되지 못하는 기프트마냥 머릿속을 때리는 것들이 더욱 그를 자극했다.

모멸감과 자기혐오, 환멸이었다.

우웩!

끝내 입에서 토사물이 튀어나왔다. 전신이 얕게 떨렸다. 한 차례 게워냈음에도 혼란은 멈추지 않았다. 눈을 통해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엎드려서 목을 부여잡고 있음에도 자신 앞에 서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영이 선명하게 보였다.

모두 내가 죽인 자들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그들을 죽였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예전에는 그 답을 알고 있었으나, 현재는 잊어버렸다. 안다 해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사실이 그것을 지워버렸다.

텅 비어버린 것이 그 무엇보다 버틸 수 없었다.

  머릿속을 흔드는 소용돌이가 환영을 지우고,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얼굴의 다섯 구멍에서 무언가 흘렀다. 이대로 놓아버린다면 미쳐버릴까.

그는 한쪽 무릎을 펴고 일어나 관자놀이에 총을 가져다 댔다.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리고 목소리가 울렸다.

냉엄한 진실의 목소리였다.

정신 차려라. 번스타인.

이 곳에 더 이상 정의란 없다.

이제 그만 깨달아라.

여기 남은 것은 악과, 또 다른 악 뿐임을.

감당할 수 없는 큰 것을 마주하기라도 한 듯, 그는 쓰러졌다.

그리고 깨달아 미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