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을 시간이 되자, 아야카 상은
방에 있는 날 부르러 왔다.
후루데 아야카
…저녁밥 준비가 다 됐습니다. 거실로
오세요.
키미요시 카즈호
네, 넵…
오늘 밤도 한 마디 말도 없이 준비된 식사를 묵묵히 펼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항상 이런 흐름이겠지.
하지만 그래선 안된다. 조금이라도,
다소 억지를 부리더라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 아무 변화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애초에 아야카 상이 얼마나 나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지
불명확하다. 이 상황을 방치해도 아무 진전이 없겠지.
키미요시 카즈호
(미래에서 온 인간이라고 생각할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겠지…)
어제는 저쪽의 완고한 태도에 압도당했었다.
하지만, 명확히 『히나미자와 증후군』이라는
단서를 쥐고있는 지금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키미요시 카즈호
(…해보자!)
뺨을 두드리며 기합을 넣고 일어선다.
분위기가 무겁다는 약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이 찬스를 어떻게든 잡아야해…!
키미요시 카즈호
(그렇게 생각한 건 좋은데… 역시
말을 꺼내기 힘들어.)
식사를 반쯤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후루데 아야카
…….
한편, 아야카 상은 묵묵히 젓가락을 움직이며
저녁밥을 입안으로 옮기고 있다.
다 먹으면 그녀는 어제처럼 목욕 준비를 하겠지.
키미요시 카즈호
(그렇게 된다면 내일 아침까지 얼굴을 볼 일이 없어…)
아니, 그녀의 방을 찾아가서 『할 얘기가 있다』고
말하면 될 일이지만… 혹시 거절 당하면
어떻게 해야될지를 생각하면 움츠러들고 만다.
키미요시 카즈호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아야카 상과 이야기를 해야 돼…!)
저, 저기… 아야카 상…?
후루데 아야카
왜 그러시죠?
키미요시 카즈호
히… 『히나미자와 증후군』에 대해 알고 있어요?
후루데 아야카
-----……
방금까지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이던 아야카 상의 젓가락이
그 말을 듣고서는 뚝, 하고 멈춘다.
이어서 살며시 고개를 든 아야카 상의 눈동자에는
마치 날붙이와 같은 날카로운 빛이 깃들어 있었다.
키미요시 카즈호
…윽…
똑바로 바라보자니, 그 눈빛에 압도 당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눈을 피해서는 안 돼.
나는 자신의 약한 마음을 열심히 격려하며,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정면에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깨문다.
후루데 아야카
…어디서 그 이야기를 들은거죠?
키미요시 카즈호
그, 그건…
무시당할 수도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세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렇게
크게 반응한다는 건
그녀가 숨기고 있는 『수수께끼』에 가까워질 수 있는 요소겠지.
…그렇다면, 여기선 좀
더 밀어부처야해.
키미요시 카즈호
타카노 클리닉의 타카노 선생님께 들었어요…
이 마을에 만연한 풍토병이라고 알려주셨어요..
후루데 아야카
…그렇군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멈춰있던 그녀는
젓가락 끝을 감자조림에 천천히 뻗는다. 하지만,
키미요시 카즈호
……
내가 손을 멈추고 침을 삼키는 동안에도
아야카 상은 식사를 계속 한다.
식사 속도가 평소보다 빨라진 것 같지만… 그것 뿐이었다.
키미요시 카즈호
(…역시,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는걸까)
포기한 채, 맛이 느껴지지 않는 식사를 다시 먹으려
나는 오이장아찌를 향해 젓가락을 뻗는다.
…그러자 모든 식사를 뱃속에 다 넣은
아야카 상이 젓가락을 놓고, 고개를 들고 말했다
후루데 아야카
제가 모른다고 말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키미요시 카즈호
뭐…?
그 대답에 놀라며, 장아찌를 젓가락에서 떨어진다.
장아찌가 밥 위에 떨어져서 다행이다…
이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해버린 건
질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겠지.
키미요시 카즈호
…그러면, 으으음… 어…
후루데 아야카
…질문을 바꿀게요.
제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이후에 당신은 어떻게 하실건가요?
포기하실건가요? 아니면, 혼자서
조사하실건가요?
키미요시 카즈호
그, 그건…
후루데 아야카
조사하지 않으실건가요?
키미요시 카즈호
…조, 조사…
나를 보는 아야카 상의 시선이 너무나도 강해서
『조사할거에요』라는 말을 솔직하게 입에 담을 수 없었다.
그렇게 긍정도 부정도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자…
그 태도에 애가 타는지 아야카 상은 문득 한숨을 내쉰다.
후루데 아야카
…아마 제가 입을 다물고 있더라도 당신 혼자서 조사하려 들겠죠.
안된다고 말해도, 분명 듣지 않을거라고 생각해요.
키미요시 카즈호
……
역시 내 생각은 훤히 보이는 것 같다. 이럴 때
숨기는 걸 잘 못하는 내 성격이 싫다고 생각했다.
키미요시 카즈호
그, 그렇다면… 어떡하실건데요?
허세를 쥐어짜서 대답한다. 그러자 아야카 상은 질린듯
크게 한숨을 쉬고, 머리를 가볍게 흔들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후루데 아야카
…잠시만 시간을 주세요. 지금
바로는 어렵지만,
당신의 열의를 봐서 제가 『히나미자와 증후군』을 설명해 드릴게요.
키미요시 카즈호
(어…?)
그 대답이야말로 내가 가장 기대하던 절대 『있을 수 없다』며
포기하고 있던 것이었는데… 한 순간 나의 머리속은
새하얘진 상태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키미요시 카즈호
어, 그러니까…
후루데 아야카
……
키미요시 카즈호
저…정말로? 정말 알려주는거야?
후루데 아야카
네, 약속할게요.
키미요시 카즈호
고, 고마워 아야카 사---
후루데 아야카
…다만.
들뜬 나를 아야카 상은 냉정한 목소리로 빠르게 억누른다.
이쪽을 보는 눈빛은 마치 날붙이처럼 날카롭다…
꼼짝 못하게 만드는 눈빛에 질식할 듯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후루데 아야카
조건이 있어요. 당신도 제게 약속해주세요.
키미요시 카즈호
약속이라니… 어떤?
후루데 아야카
마을 사람들이나 연구자에게 『히나미자와 증후군』에 대해서
부주의하게 물어보거나, 관련 문헌을 찾아다니지 마세요.
아무튼, 혼자선 절대로 조사하려 하지 마세요.
그리고… 어떤 소문을 듣더라도, 보더라도,
그들이 입에 담는 근거가 부족한 정보나 언행에
결코 현혹되지 말아주세요.
더욱이, 쓸데 없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겠죠… 그래도 괜찮나요?
키미요시 카즈호
…그건 『히나미자와 증후군』에 대해 조사하지 말고,
묻지도 말고, 누군가에게 듣더라도 내용을 믿지 말라는거야…?
그런 걸로도… 괜찮아?
후루데 아야카
네. …지켜주실 수 있나요?
키미요시 카즈호
……
아무 말도 하지말라는, 아니, 말하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아야카 상의 말 속에 숨겨진 의미를 앞에 두고서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내게 쓸데 없는 호기심을 갖지 말라고
경고하는 거겠지만… 그녀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경고를 하는 것일까.
게다가 설령 내가 약속을 지키더라도, 아야카 상이
제대로 약속을 지킬거라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키미요시 카즈호
(어떡하지…)
거절하고 자신이 직접 조사하는 게 확실하겠지.
하지만, 그럴 경우, 아야카
상은 『히나미자와 증후군』에 대해
두 번 다시 이야기 해주지 않겠지.
게다가 아야카 상이 약속을 지킨다는 보증은 없지만
역으로 지키지 않을거란 보증도 없다…고 생각한다.
키미요시 카즈호
(혼자서 조사하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
나도 젓가락을 놓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괜찮아. 설령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잡아 먹히거나 하진 않겠지.
키미요시 카즈호
…아야카 상도 약속해주시겠어요?
알고 있는 건 제대로 알려주겠다고.
후루데 아야카
후루데 가문의 이름을 걸고 약속은 절대로 지킬게요.
당신이 신뢰를 배반하지 않는 이상,
제가 먼저 약속을 깰 일은 없을거라 맹세할게요.
키미요시 카즈호
…알겠습니다.
그러면, 『히나미자와 증후군』 말인데요…
후루데 아야카
기다려주세요.
몸을 내밀기 시작한 나의 초조함을, 아야카 상은 싹둑
날카롭게 잘라버린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간다.
후루데 아야카
아까도 말한 것처럼, 알려드린다고 약속할게요.
…하지만, 어디까지 알려줄지는
제 판단으로 정할게요.
게다가 당신의 앞으로의 처우도 포함해 상담해야 되니까…
조금 시간을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키미요시 카즈호
(앞으로의 처우…?)
나를 어떻게 할지를 상담하는건가..?
그리고 어떻게 이야기할지를 상담한다고…?
….그걸 대체 『누구』랑 상담하는거지?
후루데 아야카
안심하세요. 많이 기다리게 하진 않을거에요.
그리고, 그 다음엔—
키미요시 카즈호
……?!
스윽 하고 아야카 상의 얼굴이 가까워져서… 숨을 멈춘다.
눈 앞으로 다가온 아야카 상의 눈동자는 겁먹은 내 모습조차
비치지 않을 정도로 깊고 농밀한… 무거운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은 어디까지나 무표정.
아무 감정도 읽어낼 수 없다.
사람의 형태를 한, 완강할 뿐인 빈 상자…
문득 그런 말이 떠올랐다.
키미요시 카즈호
저, 저기…?!
후루데 아야카
…후루데 가문의 이름을 걸고 약속은 절대적입니다.
혹시, 약속을 깨시면--- 어떻게
될진 알고 계시죠?
키미요시 카즈호
………?!
같은 연령… 아니, 인간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중압감에
어떤 『츠쿠야미』를 퇴치했을 때보다도
온 몸을 죄는 듯한 감각이…!
키미요시 카즈호
(맞아… 이거랑 비슷한
걸… 난 알고 있어…)
그 『세계』에서 싸웠던 레나 상… 그리고 뿔이 달린
리카 쨩과 지금의 아야카 상은 조금 닮은 것 같다…
후루데 아야카
…..
스륵… 옷이 스치는 소리만을 남기고
아야카 상이 내게서 떨어진다.
후루데 아야카
잘 먹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을 모은 그녀는
먹은 식기를 쟁반에 올린 채 일어선다.
언제나와 똑같은 몸짓, 같은 전개.
키미요시 카즈호
……
몸은 커녕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남겨두고
아야카 상은 쟁반을 한 손에 든 채 나가려한다.
그리고, 나가던 도중에 뒤를 돌아보더니—
후루데 아야카
…목욕물은 이미 데워놨습니다.
저는 내일 일을 준비해야 돼서, 먼저 들어가주세요.
키미요시 카즈호
네, 넵…
쥐어짜내듯 대답을 하자
장지문을 열리고… 다시 닫힌다.
키미요시 카즈호
……!
순간 온몸의 힘이 빠져, 그 자리에서 머리부터 쓰러진다.
키미요시 카즈호
하아, 하아, 하아……
특유의 먼지 냄새를 담은 낡은 다다미에
볼을 딱 붙이고 깊이 심호흡한다.
키미요시 카즈호
(무서웠어… 엄청 무서웠어…!)
아직도 손 끝이 떨리고, 시야가 깜빡이며 점멸한다.
호흡도 아직 불규칙적이고, 목은 바싹바싹 말라간다.
키미요시 카즈호
하지만… 이걸로 알려주겠다는 약속은 받았어…
문제는 그 시기가 언제인가 모른다는 건데…
그게 언제라고 해도, 지금은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겠지.
그런 결론을 내리고 몸을 일으키려하자…
키미요시 카즈호
…어라?
시야의 끝에 뭔가 반짝이는 잔상이 비친다.
눈을 돌린 그곳은 TV와 서랍의 사이.
키미요시 카즈호
『조각』…? 아니, …혹시…?!
지금까지의 피로가 한 번에 날아가는 듯한 느낌에
기어가듯 TV 앞으로 이동한다.
다행이, 내가 발견한 건 손을 넣고 손가락을 뻗으면
간단히 잡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키미요시 카즈호
잡았다!... 앗, 이건…?
손 안에 있는 건,
내가 찾고 있는 『조각』특유의 강한 빛이 없다.
하지만, 생명의 숨결 같은 게 맥박을 치듯 전해져 온다.
…이 기척은, 그 『세계』를
탈출하기 직후의 감각과 닮았다.
키미요시 카즈호
이건…
『조각』과 닮은 그것은 쌀알 정도의 크기.
하지만 그 형태는 마치—
『숙명의 계시』 그 자체였다..
=================================
1부 8장 마지막에 나왔던 숙명의 성물→숙명의 계시로 명칭 수정.
카즈호의 존댓말, 반말이 왔다갔다 하는 건 실제 스크립트에서도 저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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