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광로의 보수 공사가 마무리되었고, 님프의 ‘용광로 후유증’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녀는 이제 긴 사다리가 공중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이지도 않고, 눈앞의 철판 집이 갑자기 새하얀 전당으로 바뀌어 보이지도 않는다. 카즈델의 건설이 정상 궤도에 오르며 이어진 잡다한 일들이 레버넌트가 들려준 기묘한 환상을 밀어낸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결국 용광로 속에 남겨졌다.
하지만 님프는 가끔씩 이상한 꿈에 시달린다. 님프는 그 꿈속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다이아볼릭, 리치, 웬디고 기사, 그리고 꿈에만 존재했던 쌍둥이 왕. 하지만 그들은 예전과 다르게 그녀가 끝없이 ‘카즈델’에 빠져 있도록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오리지늄 분진을 뒤집어쓴 채 묵묵히 서 있었다. 그 외에도 막 없는 날개를 가졌거나 하늘을 찌를 듯한 뿔을 가지고 있는 등, 님프가 처음 보는 기이한 살카즈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높은 건물의 폐허에 모여있었는데,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는 것 같았고, 폐허 속에서는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들은 오래되고 잊혀진 살카즈의 언어를 거듭 속삭이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마치 귓가에서 외치는 것처럼 울려 퍼졌다. 님프는 그 외침의 문장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 외침의 의미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이야기는 끝날 것이고, 마지막 결말이 다가올 것이다. 마침내 먼지 쌓인 살카즈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녀는 검은 왕관을 쓰고 있었으며, 흰 옷을 입고 있었다. 살카즈들은 무언가를 갈구하듯이 그녀에게 손이나 발톱을 뻗었지만, 공중에서 갑자기 멈춰버렸다.
살카즈의 외침은 뚝 그쳤고, 그 형체가 말했다. “천만의 백성을, 추억으로 만든다.”
그 때마다 님프는 놀라며 꿈에서 깨어난다. 깨어났을 때는 한밤중이었고, 카즈델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암나남’은 여전히 용광로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으며, 노드 용광로에서 간간이 불빛이 튀어나올 뿐이었다.
님프는 이것이 ‘용광로 후유증’의 일부가 아닐지 의심했고, 그 레버넌트의 잔불이 아직도 그녀의 마음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더욱 걱정되던 것은, 그녀가 레버넌트들과 너무 많이 이야기를 나눠서 그들이 자신의 머릿속을 집으로 삼아버리지는 않았는가였다.
“나을 수 없는 걸까......” 님프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네 머릿속이 정말 레버넌트의 새로운 거처가 됐다면, 그건 거기 빈 공간이 너무 넓다는 뜻이겠지. 헛소리 하지 마!’라고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너무 바쁘던 프레몬트는 에르망가르드에게 전달을 맡겼다.
로도스 아일랜드가 카즈델에 잠시 머물렀을 때, 님프는 의료부의 지원을 구할 기회가 있었는데, 로도스 아일랜드의 의사조차 이렇게 말했다. “요즘 너무 피곤하셔서 그런가봐요. 어딘가에 기분전환을 하러 가보신 적은 있나요?”
님프는 의료부를 떠났지만, 그 예언같은 꿈이 사라지지 않아서 그녀는 다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이야기는 결말을 맞이해야 할까? ‘추억으로 만든다’라는 말은 무슨 뜻이지? 그 말을 꺼낸 인물은 분명 님프에게 익숙했지만,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었다. 그 이름이 입가까지 올라왔고......
“님프 씨?” 그녀는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님프 씨, 괜찮으세요?” 님프가 돌아서자 카우투스 소녀가 서 있었고, 박사도 그녀의 곁에 있었다.
“아, 아미야, 박사! 돌아왔구나?” 카즈델에서 아미야와 다시 만난 것은 님프에게 확실히 감격적이었다.
“그래, 바벨과의 추가 협력 사항을 논의하고 왔어.” 박사가 먼저 님프에게 답했다. 그 태도는 여전히 진지했다. “건축 자재에 대한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 카즈델로 이주한 살카즈의 수는 예상 이상이었지. 약품의 공급도......”
“카즈델로 옮겨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아미야가 박사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저번에 왔을 때는 아주 초라한 구역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박사님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복잡해졌죠.”
박사는 반박하지 않고 그저 후드 너머로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의 카즈델은 길을 잃기 쉽긴 해.”
디얄은 어느 순간부터 아미야가 박사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는데, 곧 힘이 느슨해졌다.
“앞으로는 카즈델에서 길을 잃지 않게 잘 따라오세요!”
아미야는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운을 주려는 것 같았다.
님프는 또다시 조금 멍해졌다. 그녀를 괴롭혔던 꿈이 다시 떠올랐지만, 조용히 서 있던 레버넌트들과 그 무서운 외침들은 이제 멀게 느껴졌다. 님프는 아미야가 방랑 수도사가 되고, 그 뒤에서 검은 로브의 견습생이 따라가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그녀는 별들 사이의 함선이 푸른 화염 속으로 들어가고, 뱃머리의 마주보는 두 얼굴이 밝게 비춰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두 사람이 새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전당에 드나들며 소리높여 토론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두 사람이 별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을 보았고. 아미야가 손을 들어올리자 별들 사이의 어둠은 그녀가 든 렌즈에 의해 밝혀졌다......
모든 순간에 아미야는 혼자가 아니었다.
레버넌트의 잔불이 마침내 꺼졌다. 잠꼬대는 산들바람이 되어 날아갔고, 님프의 귀에 맴도는 것은 선실에서 들리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기계음, 그리고 아미야가 조용히 부르는 소리였다.
“......님프 씨?”
“님프 씨, 괜찮으세요?”
님프는 정신을 차렸다. 아미야는 여전히 그녀의 앞에 있었고, 박사도 여전히 아미야의 곁에 있었다.
“아직 용광로 후유증이 있나요? 괜찮으시다면 제 능력으로 그 기억들을......”
“그러지 않아도 돼. 이상한 생각을 했을 뿐이야, 그냥 이상한 생각을.”
그 후로 님프는 그 악몽에 시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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