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정조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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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잘 알아보지도 않고 건낸 제 잘못이네요. 미안하게 되었어요, 루데우스."
엘리나리제는 나름 최선을 다한 미안한 표정과 함께 나에게 사과를 했다.
나는 뭐, 불의의 사고에 대해선 진심으로 화를 내는 성격도 아니었고, 록시의 말을 믿는다면 일시적인 증상일테니 그 사과를 순순히 받아주었다.
하지만 실피에겐 영 성에 차지 않았나보다. 오체투지에 자해까지 해서 만신창이가 되어 기절한 자노바에게 힐링을 걸던 그녀의 볼이 뾰로퉁 튀어나와 있었다.
"그나저나 참 큰일이군요. 아무리 수백년을 살아온 저라도 하루아침에 성별이 바뀌어버리는 저주는 듣도 보도 못했어요."
"내 식별안에도 특별히 감지되는건 없군. 마계대제도 이런 사태는 모르는 모양이다."
클리프가 한마디 거들었다. 자칭 수천년을 살아온 그 꼬맹이 대제도 모른다니. 이거 어쩌면 제대로 똥 밟은거 아닌가?
"하지만 출처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답니다. 어쩌면 수출 경로를 거꾸로 밟아가다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 출처가 어디인지 혹시 알 수 있나요?"
"그런 종류의 희소하고 강력하고 뭔지 모를 효과까지 딸려있는 미약을 적극적으로 수입, 수출할만한 곳이라면 한 곳밖에 없지요."
"아, 하아..."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와버렸다.
얼씨구, 또 그 변태왕국이냐. 아슬라의 변태성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내가 그런데다가 내 자식을 한 명이라도 장가든 시집이든 보내기만 해봐라. 손에 장을 지진다.
"그나저나 루데우스. 그 증상. 한시라도 빨리 고치고 싶나요?"
"당연하지 않나요? 저도, 제 아내들도 듬직한 남자인 저를 사랑한다구요. 어색하고 불편한 건 당연지사고,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돌아가지 못할까 불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때. 내 시야 한 구석에 아직 어린 클라이브가 돌아다니는게 비쳤다.
난 조용히 눈짓으로 클리프에게 사인을 보냈고. 클리프는 잠시 얼을 타다가 퍼뜩 뭔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클라이브를 안아들고 다른 방으로 사라졌다.
"...무엇보다 이제 곧 에리스 차례거든요."
"어머나~ 확실히. 에리스는 순진하지만 성욕만큼은 왕성하죠. 저보다도 성욕이 센 사람은 이토록 오래 살아봤지만 에리스 외엔 거의 보지 못했어요."
범상치는 않다고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엘리나리제가 저런 평가를 내릴 정도인가.
무섭다. 우리 바깥양반.
하지만 만약 내가 이 증상을 빨리 고쳐서 내 아들을 원상복구해놓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 내에 욕구불만이 한계까지 쌓인 그녀가 어떤 발광을 일으킬지 모른다.
최근 여러 일이 쌓이고 쌓여서 에리스 차례가 꽤 미루어졌기에, 지금 그녀는 굶주린지 꽤 됐다.
"하지만, 저라면 너무 빨리 고쳐버리면 좀 아까울지도요."
"예?"
"전 기본적으로 남자만 세이프지만, 만약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남자로 바뀐다면? 하고 가끔씩 호기심이 들긴 하거든요... 솔직히 루데우스도 흥미가 생기지 않나요?"
"예?"
"까놓고 말해서 궁금하지 않아요? 잠자리에서 여자들이 느끼는 감각이, 넣는 쪽이 아닌 받아들이는 쪽의 기분을..."
"아아아니요? 설마요? 제가 그럴리가 없잖습니까. 떡고물같은 아내가 셋이나 있는데."
그래, 당연히 흥미가 없다. 오히려 무섭다. 아까 자노바에게 가...슴을 붙잡혔을때 느낀 기분으로 공포가 극대화 되었다.
그냥 남자에게 가슴을 붙들린것 만으로 그런 생전 처음 느끼는 이상한 감각에 정신이 왔다갔다 했는데,
만약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버린다면 진짜로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안 된다. 최대한 남자로서의 정신을 유지하도록 해야된다. 난 남자다. 사나이다. 마누라가 셋이나 되는 씹상남자다. 여자데우스라니 당치도 않아.
"아뇨. 여자가 된 거랑 아내가 있는 거랑 별개죠."
엥? 이건 또 무슨 소리?
"여자라고 꼭 남자하고만 짝이 되어야 한다는 규칙은 없잖아요?
도구의 힘을 빌리면 여자와 여자간의 관계라도 충분히 비할 데 없는 쾌락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답니다.
아슬라 귀족 중에도 남색을 밝히는 남자 귀족 만큼이나 여색을 밝히는 여자 귀족도 많으니 전혀 이상할게 못되죠."
"하지만 그건 아슬라 귀족이잖아요."
"음, 하긴. 예시가 좀 이상했나요.
하지만 비단 아슬라 귀족에만 국한하지 않아도 세상엔 여성끼리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많아요.
비록 지금 루데우스가 여성이라도, 세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실피, 록시, 에리스도 그런 당신을 모습에 관계없이 깊이 사랑하고 있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을거에요.
그렇지 않나요, 실피?"
"엣? 어? 나?"
갑자기 지목된 실피는 순간 화들짝 놀라며 당황하더니 곧 내 얼굴과 엘리나리제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꼭 대답 해야돼?"
"실피의 의견도 듣고 싶거든요. 아니, 들어놔야되요. 루데우스를 위해서라도."
실피는 내 얼굴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가 귀를 빨갛게 물들이며 조심스럽게 얘기를 시작했다.
"아, 하긴, 그, 나도 확실히 처음에는 루디가 잘생기고 멋있는 남자인 점에 빠져들어서 반한게 맞아. 하지만..."
실피는 들뜬 가슴을 진정시키고 숨을 골랐다.
"...하지만. 지금의 난 루디가 그저 멋진 남자라는 이유로만 좋아하는게 아니야. 성격이라거나, 좋은 점이든 아쉬운 부분이든, 그런 내적인 부분들까지 크게 포함해서, 난 루디라는 사람 그 자체가 좋은 거라고 생각해."
"그건 즉?"
"즉?"
"즉..."
실피는 눈을 감았다 뜨면서 자신있게 대답했다.
"난 루디가 설령 여자여도 상관없이 좋아."
"아니 잠깐만!?"
그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 루디가 언제까지라도 여자로 있어도 변함없이 사랑할거고, 잠자리에서도... 어... 힘낼게!"
실피는 자신있는 어조로 주먹을 꼭 쥐어보이며 나에게 웃어보였다.
물론 내 머리는 지금 상당히 얼얼하다.
"하여간 실피는 참 나를 안 닮은 듯 똑 닮았다니깐요. 부끄러움도 없이 그런 소리를 하고."
"아"
실피의 얼굴이 귀끝까지 빨개졌다. 아마 분위기에 도취해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귀엽구나.
"그, 그, 그래도 루디는 빨리 치료가 될거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일 뿐이니까! 오해하면 안돼? 절대 루디가 여자로 쭉 있는게 좋다거나 그런 소리가 아니니까."
"지당하신 말씀."
그래도 아내의 사랑이 듬뿍 담긴 선언을 들은 입장에선 나도 인생 참 잘 살아왔다고 절로 흐뭇해지게 된다.
역시 난 복 받은 놈이군.
"뭐. 잡담은 이 정도로 하고, 실피가 그렇다 쳐도 록시나 에리스는 만에 하나 납득을 못할 수 있으니, 고치는 건 시급한 문제일테죠. 특히 에리스가 걱정이에요."
"그건 저도 그래요."
"하긴 에리스는 참을성이 좋진 않으니까..."
"어쨌든 제 할 말은 여기까지. 자노바는 나중에 잘 달래서 돌려보낼게요. 꼭 원래대로 돌아오길 빌죠."
생긋 웃으면서 우릴 배웅하는 엘리나리제를 뒤로 하고 우린 클리프의 집을 떴다.
"...그나저나, 정말 제니스를 쏙 빼닮았네요."
마지막에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것 같지만, 기분 탓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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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스테드가 날 무섭게 쳐다보고 있다.
노크를 하니까 "들어오..." 까지만 말했는데 사장실에 입성한 날 보고 정지화면마냥 거의 30초 넘게 말도 없이 보고만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가 화난 줄로 알겠지.
하지만 오랫동안 올스테드 사장님을 보좌해온 난 알고 있다.
저 표정은... 그거다.
당황이 7할, 상황 판단이 3할 정도?
"......그 꼴은 뭐냐, 루데우스 그레이랫."
드디어 말문이 트인 올스테드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평이한듯 당혹감이 녹아있었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너무 정황이 없어서 통신 석판으로 보고를 하는 것을 새까맣게 잊어먹었다.
심복 실격이다.
"사실은..."
".........."
경위를 다 들은 올스테드의 손이 찡그려진 미간을 짚었다. 아마 사장님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정의 동요의 표출이다.
"...사장님도, 이런 건 본 적이 없으신가요?"
"......처음이다. 들어본 적도 없다."
아아, 절망적이네.
딴 사람도 아닌 무려 사장님조차 이런 말을 한다면 이건 진짜 전대미문의 사태인게 틀림없다.
"혹시... 제가 전생자인 탓에?"
"...아마도 그럴 확률이 높겠지. 너가 사용했다는 미약의 효과는 나도 알고 있다. 육체의 신진대사를 마력으로 조작하여 쾌감을 이끌어내는, 마도구의 일종이다. 아마 그 독특한 마력이 전생자인 너의 경우에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방향으로 작용한 모양이지."
"하지만 전생자라고 해도 영혼의 문제이지 육체는 엄연히 이 세계 사람의 것인데, 그건 또 별개 아닌가요?"
"마력으로 인한 저주는 확실히 영혼이나 마력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저주로 인해 영혼이나 마력의 변질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육체가 변화하는 부류의 신의 아이나 저주의 아이도 많이 봐왔다. 자노바 실론도 그 일종이다. 마물들도 평범한 짐승이 마력에 노출되어 세대를 많이 거치긴 해도 육체가 큰 폭으로 변한 경우이고.
여하튼 그런 작용도 아주 불가능한건 아니다."
"...고칠 수 있겠죠?"
"너희 어머니, 제니스 그레이랫이나 엘리나리제 드래곤로드의 저주의 경우,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마력 결정에 갇혀 고농도의 이상 마력을 몸으로 받아들인 끝에 신의 아이의 능력이 정착한 사례다.
하지만 너는 미약 하나 분량의 조그만 마력을 받아들인 것 만으로 단숨에 빠른 변화가 일어났다. 영구적인 효과는 결코 아니다."
"역시 그런가요?"
"장담하지."
휴우. 역시 사장님은 모르는게 없으시군. 이걸로 일단 한 시름 놨...
"하지만 그 상태를 계속 방치해 놓으면 추후에 어떻게 될지는 또 모른다. 최대한 빨리 해결책을 찾아서 원상복구를 하는 편을 권장하지."
어구, 망했다. 마음 놓을 때가 아니었구나.
"말씀 감사합니다. 일단 아슬라 왕국으로 출발해서 그 곳에서 방도를 찾죠."
"음."
"그런데..."
사장님의 설명에서 딱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
"미약같은 것의 효과는 대체 왜 아시는지?"
"......."
올스테드는 누구보다도 무서운 눈으로 날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실언입니다. 용서해주세요."
"아니다. 설명해주지. 히토가미 타도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인물의 탄생을 조정하기 위해서 미약같은 수단을 활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
"약물로 의도하는 반강제적인 관계 진전. 엄연히 인륜에 반하는 짓이다. 절박했을 시절에 매달렸던 방법 중 하나이지만 역사를 의도적으로 조정하는 요령을 배우고 곧 그만두었다. 하지만 추후 유용할지도 모른다 여겨서 지식만큼은 남아있다. 오해하지 마라."
"넵. 실례했습니다."
"그래."
이렇게 난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실피, 록시, 에리스와 함께 지하의 전이 마법진을 타고 아슬라 왕국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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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피. 제발. 나 안 그래도 너무 힘들어. 오늘 아침부터 정신적으로 너무 많이 깎여나갔어. 그니까 딴건 몰라도 이건 제발 눈 감아주면 안될까? 이렇게 빌게."
"안. 돼.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이번 건 양보 못해. 자. 착하지? 얼른..."
"실피. 지금 즐기고 있지? 평소보다 엄청 신나보이는데?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계시는데?"
"으응? 그게 무슨 소리일까? 잘 모르겠는걸? 난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루디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자, 루디는 아내 말을 잘 듣는 착한 남편이랍니다~ 우쭈쭈~"
"즐기고 있잖아! 완전 즐기고 있잖아!! 록시랑 에리스도 말려줘! 제바아알!!"
...사건은 몇 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슬라 왕국에 도착한 나와 세 사람.
평소처럼 왕궁에 들어서려다가 입구에서 제지를 받았다.
뭔가 했더니 오늘은 아슬라 왕국의 연례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현재 아리엘도 파티에 참가해서 귀족들과 친목을 다지고 있고, 그렇기에 입구의 위병들도 까다롭게 방문객의 드레스 코드를 살피던 것이었다.
지금 내 차림은 올스테드가 하사한 쥐색의 마력부여 로브를 걸친 외출복 차림.
즉, 후줄근하다.
생전에도 드레스 코드에 민감한 물장사하는 가게같은 걸 많이 봤으니 이런 고집도 납득이 간다고 생각한다.
"그럼 뭐 어쩔 수 없네. 별장에 들러서 갈아입고 갈까."
...
큰 문제가 생겼다.
별장에서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남성복이 하나도 안 맞았다.
남자일때의 내 신체 사이즈에 딱 맞게 주문제작된 맞춤복이라서
키는 키대로 줄고 들어갈 곳은 튀어나오고 나올 곳은 또 들어간 몸매가 된 나한테 전혀 들어맞질 않았다.
방금도 셔츠 하나를 억지로 걸치려다 단추를 한 세개 날려먹었다.
...이렇게 되면 나라도 어떤 방법이 남아 있는지는 당연히 안다.
하지만.
하지만.
죽어도 싫다.
절대 싫다.
내 생쥐 터럭만큼 남은 남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게 고뇌하고 있던 도중, 실피가 수상할 정도로 생글생글 웃으면서 록시, 에리스를 대동하고 내 탈의실에 들어왔다.
...양 손에 화사한 드레스를 한 벌씩 들고.
"루데우스 씨?"
"...무슨 일입니까, 실피에트 씨?"
"옷을 꽤 오랫동안 갈아입고 계시네요?"
"......"
"역시 맞는 옷이 하나도 없나요?"
"아냐. 지금 입을려고 하는 이거, 잘만 하면 걸칠 수 있"
파앙!
억지로 채운 단추 대여섯개가 암석포 샷건마냥 우수수 터져서 날라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록시는 눈을 의심했고, 에리스는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
"루디."
"네."
"둘 중에 골라."
... 그렇게 해서 지금 이 상황까지 온거다.
난 지금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흔들면서 어떻게든 나를 여장시키려는 실피와 혼신의 토론 대결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실피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서 구원요청을 날렸고,
록시와 에리스는 차가웠다.
"루디. 겨우 드레스 하나 걸치는게 뭐가 대수라고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고집을 피우나요.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도 겪는거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얌전히 실피 말을 들어주세요.
"그래! 나 지금 슬슬 짜증날려고 하니까, 빨리 갈아입기나 해!"
하지만 난 현실을 부정하며 완강하게 고집을 부렸다.
이것마저 실피가 마음대로 주무르게 냅두면 진짜로 마음이 꺾일것 같았다.
하지만 실피는 가차 없었다.
마치 FPS 게임에 나오는 독재국가의 장군처럼 절도있는 동작으로 팔을 치켜들더니 나를 향해 팟 휘두르며 지령을 내렸다.
"록시."
"예, 실피."
"루디 좀 붙들어줘."
"기꺼이."
"에리스?"
"말만 해."
"...벗겨."
"좋아! 일로 와, 루데우스!"
"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난 유린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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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피는 정말로 영악했다.
날 붙들은 록시는 여자의 몸이 되버린 내 근력으로도 충분히 뿌리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다름아닌 록시다.
신이다.
강림하신 신께서 친히 그 신성한 두 팔로 날 온몸을 다해 끌어안는 것을, 신의 사자 되는 자로써 어찌 거부할 수 있으리?
결국 난 유의미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아담한 록시에게 붙들린 와중에 실피와 에리스의 옷입히기 인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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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 실피... 이거 느낌 엄청 이상해..."
"나도 처음에 그랬어. 익숙해지면 돼."
"하지만 등도 훤히 뚫려있고, 아랫도리도 허전하고, 어어..."
"예쁘니까 상관없어."
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거울의 자신을 마주하면서 내 몸의 이곳 저곳을 둘러봤다.
머리는 제니스가 소싯적에 했던 땋아올린 말총머리에, 목에는 딱 달라붙는 진주 목걸이를 찼고, 무엇보다 입은 드레스는 옷감이 산들바람에도 휘날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얇고 가벼운데다가
등이 훤히 뚫려있고 치마 안쪽에는 여성용 속옷 말고는 아무것도 입지 않아 엄청나게 휑한 느낌이었다.
심지어 발에도 평소에 신던 부츠가 아닌 굽이 낮은 여성용 구두를 껴서 내 발같지가 않은 느낌이었다.
치욕스러웠다.
만천하에 알몸뚱이로 내던져진거같은 부끄러움이 온 몸에 엄습했다.
마음만 같아선 당장 벗어던지고 싶었지만, 만약 그런다면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에리스의 불같은 손바닥이 내 엉덩이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루디, 지금 어어엄청 예뻐~!"
실피가 묘한 미소로 박수를 치면서 놀리듯이 말했다.
"오오... 살짝 기대를 하긴 했습니다만. 역시나 상상 이상이네요."
록시가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흥."
에리스가 '됐고 빨리 가기나 하자'고 하는 듯한 성난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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