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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묘지기2

금딸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04.01 15:47:26
조회 275 추천 3 댓글 2
														


오랜만에 세상밖으로 나온 그는 쌀쌀한 아침바람에 코끝을 찡긋거렸다.

산맥줄기를 기준으로 오른쪽은 그가 사는 숲속이었고 왼쪽은 사람들이 사는 동네로,

 내려오자 시끌벅적하고 활력이 도는 도심이 나왔다.

 신세계 이전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과일들도 보이고

 하느님을 숭배하는데 쓰이는 여러 물건들도 보였다.

 하늘 위에는 수레바퀴가 달린 상징물이 떠다니고 있었다.

 기원년의 인간이 해석하고 그린것과는 차이가 있는 독특한 물체였다.

 주변의 사람들은 유일신을 찬양하며 즐거운 만찬을 벌이고 있었다.

 그가 시장입구로 들어서자 흠칫흠칫 놀라는 사람들과

 이방인을 보는 듯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흰머리와 주름진 손을 가진 자는 그 사내밖에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왼쪽 모퉁이로 돌자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사내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말을 걸었다.

 "이게 얼마만이죠? 정말 오랜만이구만요, 허허 고생을 얼마나 한거요, 그새 더 늙었어,"

 ".........."

 "정어리 조림이죠? 요즘은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어요, 죽으면 먹을 수 없게 되니깐,

 요즘은 녀석들을 양식해보고 있어요."

"................응"

 "아참, 오늘 빵 파는 자매님은 오지 않으셨소,

근데 걱정은 하덜 말아요, 나한테 남은게 좀 있거든요, 몇개 가져가도록 하세요."

"..................응"

남자는 펄떡대는 정어리를 소금에 버무리고 곧바로 병안에 넣었다.

그리고 빵 몇조각을 건네주었다.

그는 먹을것을 건네받고는 돌로 조각한 평화의 비둘기4마리를 내주었다.

".................선생"

".............................응"

"제발, 후회할 짓은 하지 말고 살아요. 과거에 얽매혀 사는 것만큼 바보같은

짓도 없으니 말이요. 이곳은 낙원입니다. 행복하게 사셔야죠."

아마 예전에 이 남자에게 괜한 얘기를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에겐 그저 앞으로 묘에 새겨야 할 이름이 얼마나 남았는지 얼마나 더 걸릴지가 가장 중요했다.


오랜만에 어머니가 보고싶었다.

어머니의 젊었을 적 모습은 어떻게 생겼는지 신세계에 와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아주 곱고 아름답고 고고하신 분이었다.

이런 고급스런 어머니한테서 똘추같은 놈이 태어날 수 있었는지 웃기기도 했다.

어머니는 과거 기원년의 불완전한 삶속에서 아버지와 결혼한 뒤 자녀들을 낳고

기르는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았다.

언제나 자식들에게 헌신적이고 남편을 존중하고 사랑하던 어머니,

힘들고 절망적일때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하느님께 매달리며 찬양과

순종을 하던 어머니를 보면 낙원에 가서 그녀의 삶을 보상받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언젠가 낙원에서 다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을땐 신에게 없던 감사한 마음이 들기까지도 했다.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와중에 찬양의 울타리에 다달았다.

남성과 여성들의 아름답고 몽환적인 목소리가 유일신을 찬양하며 노래하고 있었다.

몽롱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어머니와 아버지, 누나와 여동생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한 그였다.

발견한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 나이가 비슷해보이는 두 여자가 있었다. 행복한 표정으로 찬양을 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신기했다. 그보다 더 신기한건 여기있는 모두가 기원년 20세라는 나이에서 멈춘듯한 얼굴과 육신을 가지고

긴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은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으며 그저 화목한 형제 자매들로 이루어져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 사내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고위장로로 보이는 형제가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묘지기 형제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그는 한참동안 가족을 바라보다 말했다.

"찬양소리가 아름답더군요."

 "당신이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닙니다. 나가주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한적한 호숫가 근처의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아, 얼마만의 제대로 된 식사인가!

묘지기는 빵안에 정어리를 가득 쌓고 입안가득 우겨넣었다.

정어리는 입안에서 살려달라며 펄떡대었다.

낙원이 오기전에, 그러니까 기원년의 세상에만 해도

정어리를 비롯한 고기들은 매우 접하기 쉬웠었는데 이제는 신세계의

규제와 함께 사육용으로 겨우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낙원의 땅에서 육식을 금하신 신께 벌을 받거나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웠지만 묘지기는 과거의 세상을 잊지 않으려는지 가끔

정어리를 먹으며 지금의 세상이 오기전을 추억하곤 했다.

호수엔 백조와 오리떼가 떠있었고 하마의 머리 위에 작은 여우 한마리가 앉아있었다.

"그래, 요놈들 본능은 신이 이래라 저래라는 대로 다 바뀌었지 참 ㅋㅋ,

 아주 뒤죽박죽이구만 그래,"

풀 뿌리를 사이좋게 뜯어먹는 과거의 포식자들을 보고 있자니 웃겨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묘지기 앞으로 표범 한 마리가 다가와 아양을 떨기 시작하자 묘지기는 팔을 내밀어

표범의 아구창을 건드렸다.

"이 한심한 녀석아, 니 조상님들처럼 팔 좀 뜯어보지 그래?

 이거 별미야 별미."

표범은 다가와 살을 핥을 뿐이었다.

신의 스윗한 권능덕인지 포식자들의 혓바늘은 전혀 아프지 않게 변했고

발톱과 송곳니는 단지증 걸린 손가락처럼 변했다.


오후의 햇살을 피부로 받아들일때 약간의 활력을 얻을 수 있었다.

묘지기는 잔디를 긁었다.

길게 자란 손톱 사이로 때가 끼었다.

먹기를 그만두고 정어리 한마리를 땅에 묻었다.

신세계 이전에는 이러한 관습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죽은 시체는 곧 신의 권능으로 흙으로 되돌아갔다.

죽음이라는게 있기는 하련지 그저 생명은 끊어진 순간부터 땅으로 되돌아가려는

강한 욕망을 품는듯 보였다.

더 이상 동물의 사체를 보는 일은 흔하지 않다.

묘지기는 입에서 흙을 뱉어냈다. 

정어리가 신의 권능에 따라 흙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하늘의 아버지... 고기 맛 좀 봅시다,"

그렇기에 낙원의 모든 이들은 나무의 열매와 과실, 곡물과 약간의 채소, 해조류를 통해 양분을 얻고 살아간다.

 동물은 그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자연의 조화로움을 더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묘지기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세상이 불완전한 시절에만 볼 수 있었던 끝내주는 야경을 떠올렸다.

육지와 육지 사이를 잇는 빛나는 대교와 멀찍히 보이는 아파트들의 반짝임,

일정하게 이어진 반짝이는 가로등, 번화가의 간판 불빛과 움직이는 사람과 자동차들은

또다른 아침을 시작하는 듯 보이기도 하였다.

묘지기는 찬란했던 20살을 기억한다.

그가 막 20살이 되었을때,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한 수염처럼 혈기가 끌어올랐음을 기억한다.

매일 뛰고 공부하며 바쁜 삶을 살고 잘때 만큼은 편안해지고 싶었지만

매일 밤 두근 거리는 가슴과 여러 생각들이 멈추질 않고 머릿속을 파고들며 

불안하지만 흥분되는 미래를 두손 두발로 흐르는 땀처럼 그저 머릿속을 휘저으며 흐르게 두었다.

그는 모태종교인이었다.

그러나 성경의 종말론과 낙원은 오든 말든 상관 없었다.

그저 오늘 입으로 들어가는 밥과 고기는 얼마나 맛있을지 생각하는 것이었다.

미래를 준비하는 학교에 가선 미래의 미래를 내다보며 상상하고 걱정하느라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가끔 아리따운 같은 과 여학우를 마주칠때 그런 상상의 연결고리를 끊을 순 있었지만 고간이 부풀어 올랐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그 나이때 사내들이 다 그러하듯, 모두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고

영웅적인 삶을 살며 더 나은 인류의 한걸음으로 나아가는 그러한 세상을 꿈꿨다.

그 어느때보다 그 어느 인류의 시대보다 찬란하며 발달한 문명의 중심에 있었지만

욕구는 끝이 없었다. 그때의 인류는, 아니 묘지기는 그랬다.

먹어도 먹어도 구멍이 뚤린 뒷구녕으로 빠져나갈 뿐이었다.

한때 묘지기는 어머니께 이리도 살기 좋은 세상이 더 나은 세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았었다.

아니 정확히는 세상이 낙원으로 바뀔것이라 확고하게 믿는 어머니의 믿음의 깊이가 궁금했었던것 같다.

 어머니는 답이 정해져 있다고, 곧 신세계가 오고 더 이상 고통 받는 이는 없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예언이 맞을까, 아니 애초에 맞는 말을 하는 종교가 있기는 할까, 신이 존재하고 그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존재라면

예언이 성취되던 말던, 인류가 얼마나 노력하던 말던, 그게 의미가 있기는 한걸까?

그때의 묘지기는 복잡한 생각을 하길 멈추고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달았다.

물은 그 흐름을 바꾸지 않는다. 물고기가 물을 거슬러 오를 순 있어도

물은 그 흐름을 바꾸지 않는다. 물의 흐름을 바꾸는 물고기는 없다.

 더 전능한 자가 알아서 하겠지,

묘지기는 기원녕의 세상을 생각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대장장이 아이가니유스의 집에 다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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