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에게는 랭겜은 마냥 살기 좋은 곳이 아닙니다.  

노루는 오늘도 랭겜에서 겨우겨우 존재감을 유지할 딜을 챙깁니다. 하지만 그 일조차도 자꾸 매워지는 눈이 쓰라려 힘겹기만 한 조건입니다.  

그러나 노루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힘차게 노루는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 소박한 평타 한대에도 보람을 느끼며 노루는 신중히 사슬을 던집니다. 1단계 2단계 늘어나는 존재감을 보며 잠시나마 미소짓는 노루는 정말 기쁩니다.  

'기뻐양! 기뻐양!'  

노루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봅니다.  

마침 이 구역의 불량배인 선지자들이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선지자들은 착하고 선량한 노루를 이유 없이 관음합니다. 노루에게는 항상 있는 일상입니다. 왜 이럴까.. 노루는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유도 없이 그들이 이 랭겜을 찾아오기 시작한 것도 벌써 몇달째입니다.  

반쯤은 놀러온듯이 하지만 명백한 악의를 담아 노루를 고통스럽게 하는 선지자들에게 노루는 크게 화를 낸 적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을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폭력을 통해 그들의 울분을 토해낼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랫집 공장장마저 그들에게 무차별 판자빵을 당하는 장면을 두눈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파양! 아파양!'  

노루가 울부짖습니다.  

'노루도 공장장도 정말 아프단 말이에양!!'  

그의 꿈도 희망도 산산조각 부서집니다.  

한껏 판자를 맞고 차가운 바닥에 비참하게 누운 노루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노루가 힘겹게 눈을 뜹니다.  

힘겹게 뜬 그 눈에는 1티어를 꿈꾸는 우산의 소망, 티라노 미치코의 슬픔, 일용직 노동자 공장장의 허탈한 웃음이 비칩니다. 장원의 귀염둥이이자 마스코트인 하스터의 모습도 아른거립니다.  

노루는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 눈에 모두의 모습이, 모두의 희망을 가득 품은 채로 노루는 힘겹게 눈을 뜹니다.  

선지자들은 그런 노루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경멸의 웃음을 담은 채, 그 분노를 비웃으며 마냥 기다립니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갑니다.  

어쩌면 힘겹게 들어올린 그 눈꺼풀에 랭겜의 고달픈 하루도 함께 걷혀나갔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짧은 분노의 뒤에는 선지자들의 티배깅만이 그의 거구에 가해질 뿐입니다.  

노루는 정신을 잃기 전에 잠시 뇌리에 그려봅니다.  

갈고리를 풍족하게 던진 하루, 장원 사람들이 모두 모여 간소한 잔치를 여는 그런 광경이 펼쳐집니다. 그 곳에서는 생존마들도, 공장장도, 씹미도, 좆퍼도, 하스터도 함께 웃습니다. 그런 광경을 잠시나마 그려봅니다. 그런 꿈 같은 꿈을 꿈꿔봅니다.  

노루는 눈을 감습니다. 굳게 닫힌 그 눈 속에 희망도 함께 사라져갑니다.  

노루는 눈을 뜨지 않습니다. 천천히 감기는 그 두 눈은 다시 띄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노루는 감겨오는 눈꺼풀을 들어올리지 못합니다. 천천히 장원 속으로.. 하지만 포근하게 느껴지는 붕 뜬 기분 속에서 노루는 눈을 감습니다.  

노루는 좋은 꿈을 꾸고 있을까요?  

그 곳에서는 우산도, 미치코도, 공장장도, 귀염둥이 하스터도 모두 좋은 꿈을 꾸고 있을까요? 그 곳에선 그토록 염원했던 그의 영웅 말퓨리온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노루는 눈을 감습니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듭니다.  

잘자요 노루.  

그 곳에서는 아프지도, 힘들지도 않고...  

계속해서 좋은 꿈 꾸도록 해요.  

다시는 아프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그 곳에서 좋은 꿈 꾸도록 해요.

네다통(chaikd) 2019.01.24 13:23:14

원본: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identity5&no=169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