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논리, 면죄부 안 된다
베트콩과 양민을 구별할 수 없었다는 논리는 왜 억지에 불과한가
한국군이 저지른 베트남 양민학살에 대하여 참회와 사죄로 부끄러운 과거사에 용서를 비는 움직임이 우리 사회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노근리 양민학살에 대하여 진정한 뉘우침 없이 또다시 역사를 덮어버리려는 미국의 반역사적인 모습에 울분을 토하던 우리에게 베트남에서 부끄러운 우리 자신의 과거사에 진정한 용서를 비는 우리 시민사회의 모습은 한결 자긍스럽다. 노근리의 원한과 고통이 밑바탕이 되어 베트남학살에 대한 참회라는 숭고한 발돋움으로 진전되기를 바란다.
북한군과 민간인도 구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의 진전을 위해서는 정부와 참전군인 일부의 옹졸한 몇몇 역사인식과 논리가 극복되어야 한다. 첫째는 상황논리이다. 곧, 베트콩과 양민을 구별할 수 없는 특수상황이었고 어차피 전쟁에서 어느 정도의 양민학살은 불가피하였고, 그래서 우리의 과거사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논리이다. 둘째는 ‘사죄’는 참전군인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므로 사죄하지 말고 어정쩡한 ‘화해’를 모색하여 어물어물 넘기자는 인식이다.
첫째의 상황논리는 적군과의 직접적인 교전중 의도하지 않게 양민이 희생되는 경우가 있고 따라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상황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치 과실치사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실치사도 지구상의 모든 나라에서 형사처벌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베트남학살은 과실치사 수준이나 직접적인 교전중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체계적이며 조직적인 수준에서 대거 이루어졌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곧, 농사지으려 가는 농부, 노인, 임산부, 스님, 아내와 어린 자식 등 무장을 하지 않은 이들이 대거 학살의 대상이었다. 학살 유형은 작전을 나온 한국군이 마을에 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음식을 나눠줘 안심을 시킨 뒤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것이었으며 적과의 교전중에 양민들이 사살된 것이 아니라 작전지구 근처나 교전과는 상관없는 마을이 통째로 학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베트콩인지 아닌지를 제대로 확인하는 절차없이 집단적 처형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행위는 상황논리의 불가피성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더이상 전쟁이 아니라 무차별 살인행위로 평가되어야 한다.
또 베트콩과 양민과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상황논리는 억지에 불과하다. 한국전쟁에서도 북한군과 민간인은 인종적으로 전혀 구분되지 않았다. 민간인 대열에 북한군이 썩여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미군이 한국양민을 살상하는 행위를 우리는 상황논리라고 면죄부를 주는가? 노근리학살 등에 우리 자신이 그토록 분노하면서 우리가 저지른 비슷한 행위에 대해서 우리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이중 잣대를 댈 수는 없다. 민간인 대열에 적군이 잠입해 있을 가능성은 어느 전쟁에서나 있는 일이지 베트남전쟁에만 해당되는 특수 상황은 아니다.
우리는 또한 한국전쟁에서 북한군과 민간인, 남한군과 민간인이 인종적으로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미군에게나 중국군에게 모두 해당되는 경우이었지만 중국군의 양민학살은 한번도 제기된 적이 없다. 또 스페인내전에 참전한 인민전선 의용군들은 수십 종의 인종으로 이루어졌는데도 양민학살은 없었다. 이는 양민학살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상황논리가 경험적으로 반증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참전한 전쟁의 성격에 대한 이해와 참전명분을 뚜렷하게 가졌기 때문에 학살을 저지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파월장병은 민족해방전쟁이고 통일전쟁인 베트남전쟁의 성격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한 몰이해는 파월장병을 위문한 바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도 잘 나타난다. “한국헌병이 비행장 안까지 들어와 앞뒤로 요란스럽게 호위하고… 경적을 울리며 거리를 질주하면 다른 차들은 운행을 중단하고 기다려야 했다.” 베트남주권을 짓밟는 이러한 한국군 아니 박정희독재와 세계의 깡패국가인 미국의 오만은 원천적으로 양민학살을 잉태하였던 것 같다. 이 결과 게릴라전쟁인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은 아군 전사 5천여명에 적군사살 약 4만7천명이라는 무려 10배 가까운 전과를 올리는 이해되지 않는 전쟁기록을 남겼다. 무릇 게릴라전쟁에서는 게릴라군보다 정규군의 피해가 높은 것이 보편적 현상인데도 불구하고 10배가 넘는 한국군의 전과를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이 예외적인 전과와 베트남 양민학살이 직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정쩡한 ‘화해’는 안 된다
일제의 야수적 식민지배에 대하여 ‘금석의 정’과 같은 어정쩡한 일본의 화해에 분노하여 우리는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고 이를 발뺌한 일본에 대하여 원초적 적대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가 어불성설인 상황논리를 들먹이며 어정쩡한 ‘화해’를 모색하는 것은 제2의 베트남학살을 저지르는 것과 진배없다. 베트남학살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역사청산이 있었다면 80년 광주의 학살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미래사에서 제2의 광주를 막기 위해서도 또 새로운 21세기 문명사회의 진정한 일원이 되기 위해서도 베트남학살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역사청산이 요구된다. “
강정구/ 동국대 교수·사회학
강정구(姜禎求) 약력
진주(晉州)사람이고 박사공(博士公)-진원군(晉原君)파 28세손이며 구(求)에 물(水)에 대응되는 돌림이름이다. 강상중(姜尙中) 교수의 손자뻘이다.
조부 강신혁(姜信赫 돌림이름인 信이 둘쨰 이름에 와야 하는데?)이 파리강화회의 독립청원서 서명자이니 강정구는 화족(華族 국가유공자의 자손)이다.
월간조선은 부친이 강정출(姜貞出 貞≠禎이니 범휘가 아니므로 오해 ㄴㄴ 다만 본명은 아닐 거다.)이 남로당원이라고 주장하는데 증거는 못 제시했다.
서울대 학사, 템플대 석사, 위스콘신대 석사, 위스콘신대 박사다. 합리적 보수로 알려진 유승민과 같은 학교에서 박사가 되었다.
미국박사도 국가보안법 유죄면 학계에서 얄짤없이 쫓겨날 수 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한편으로 국가보안법 유죄에 국군의 월남 민간인 학살 참회 주장도 괘씸죄로 적용된 게 아닌지 억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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