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전, 불꽃처럼 피었다가 들꽃처럼 지어간 독일의 한 혁명가의 이름을 딴 갤러리가 개창되었습니다. 그저 범좌익 성향 갤러들의 컨셉 놀이터로 시작했던 자그마한 갤러리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갔습니다. 디씨 곳곳에 흩어져있던 진보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 동지들이 모였으며 수 많은 담론과 주장이 전개되었습니다. 여태까지의 로자 룩셈부르크 갤러리가 이상적이고 건전한 담론의 장이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이름 아래 모인 수 많은 동지들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저 좌익 관련 떡밥을 주고받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찾아왔던 갤러들은 어느샌가 현실을 향해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동지가 되어갔습니다. 점점 우경화 되어가던 사회에 대한 한탄만을 내뱉던 이들은 인민대중과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몇몇은 햇빛이 작렬하는 날 거리에 나가 부르주아 정권에 의해 탄압받는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대오를 만들어 전진했으며, 자유주의자들이 좌파를 참칭하는 정세에 실망하여 현실정치로부터 눈길을 돌린 몇몇은 정치적으로 각성하여 자신의 신념과 이념을 위해 조금의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각기의 신념과 일치하는 단체나 정당에 들어가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드립과 욕설, 잡담만이 충만할 것 같았던 컨셉충들의 놀이터에는, 뜨거운 불씨가 피어올랐습니다.
현재,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비관적입니다. 개혁 세력을 자청하던 자유주의 정권은 공안 탄압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대중들 사이에서는 연대 의식보다는 상호에 대한 증오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증오가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적 물신성은 이 사회를 온통 장악했고, 시대의 전위가 되어왔던 청년들은 대안우파와 TERF의 영향을 짙게받아 더욱 상호배타적인 성향을 짙게 띄게 되었습니다. 허나, 비관적인 정세일지언정 결코 절망적인 정세는 아닙니다. 영원히 컨셉 놀이터로만 남을 것만 같던 이 갤러리에 연대와 투쟁의 불꽃이 피어났듯이, 언젠가는 이 세대의 청년들이, 그리고 세대와 성별을 넘어 이 나라의 노동자들이,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 나아갈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사태에서, 저는 자신보다 힘 없고 약한 자들을 짓밟고 증오하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허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을 응원하는 동지들 또한 수 없이 보았습니다. 사회주의라는 이름의 불씨는 인민의 분열을 책동하는, 부르주아 계층의 선전과 책동의 맹풍에 당장에라도 꺼져버릴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 얼마 남지 않은 불씨를 지키려 피와 땀을 흘리는 이들은 남아있습니다. 더욱이, 맹풍은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전세계적인 불황은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되어왔고, 코로나 19의 충격파로 인해 불황은 공황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이번 공황은 현 국제 자본주의 시스템의 취약성을 여과없이 보여주었으며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국제 질서의 붕괴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시스템으로 세계가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지금 당장은 사나운 맹풍을 견디기 힘들지라도, 작금의 맹풍이 불길을 옮겨붙게 하는 순풍으로 변화하는 날은 반드시 옵니다. 당장의 투쟁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몸부림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우리의 피와 땀으로서 꺼질 것만 같은 불씨를 지켜내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 불씨를 다음 세대에게, 그리고 그 다음 세대가 또 다시 다음 세대에게 온 몸 다 바쳐 전해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승리합니다. 그 어떤 잔혹한 탄압과 강력한 분열 책동이 빗발쳐 온다 하더라도 우리의 투쟁은 멈춰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쳐 쓰러진다면 우리의 다음에 설 이들이 우리가 쥐고 있던 불씨를 계승하여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 한다면, 불씨를 이어나갈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그 불씨가 횃불이 되고, 횃불이 들불이 되어, 온 벌판을 붉게 물들일 날이 오고 말 것입니다.
패배는 병가지상사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절망치 않고자 합니다. 또한, 동지들에게도 절망치 않을 것을 권하고자 합니다.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웁시다. 허나, 맞서 싸운 결과가 패배라 하여도, 최저임금의 실질적 동결을 막아내지 못한다 하여도, 용역들에게 철거 현장을 내어주고 만다 하여도, 자칭 좌파정당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고 계급협조주의에 매몰된다 하여도, 패배를 뒷받침 삼아 다시 한 번 나아갈지언정 절망하지는 맙시다. 투쟁과 저항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 우리를 보고 자랄 이들에게 한 줄기 희망으로서 기억될 수 있다면 우리의 승리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은 아이들이 배우고 자라서 우리의 뒤를 이어가준다면 우리의 분명한 승리입니다.
동지들에게 고합니다. 그 엄혹한 시절에도 기죽지 않고 싸워나갔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희망이 되어주기 위하여 조직하고 실천합시다. 학습하고 투쟁합시다. 로갤의 동지들 중 많은 이들은 실천에 나섰으리라 믿으며, 또한 많은 이들은 아직 실천을 망설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실천과 행동을 강요할 마음은 없습니다. 허나, 망설임의 이유가 무기력감 내지, 투쟁에 나서보았자 현재의 정세에서는 무의미한 발버둥일 될 뿐이리라는 생각이라면, 저는 더욱 강력하게 실천을 권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짓밟힌 들풀이 금새 다시 일어나듯이, 죽어가는 민들레가 수천의 씨앗을 남기듯이, 패배에 굴하지 않는다면 패배마저 승리일 것입니다.
저들은 우리를 짓밟을 수 있습니다. 저들은 우리를 죽일 수 있으며, 저들은 우리를 분열시키고 선전과 음모의 늪에 빠져들게 할 수 있습니다. 허나, 우리가 굴종하지 않고 싸워나간다면, 우리의 불씨마저 빼앗지는 못할 것입니다. 공안 탄압은 계속될 것이고, 자본가들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성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저들보다 많습니다. 언제나 저들보다 많을 것입니다. 투쟁에 참여합시다, 동지들이여. 당장의 싸움이 패배로 점철될지언정, 우리의 행위는 모두 남아 언젠가는 반드시 노동계급의 영원한 승리를 이루어낼 것입니다 !
잃을 것은 사슬 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일지니, 아무 것도 아니었던 자들이 모든 것이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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