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 이용자들이 하는 갤러리 활동이란 궁극적으로 텍스트 (재)생산
이다. ‘디시’ 커뮤니티에서 나온 용어로서 ‘짤’ ‘드립’ 등은 모두 사진을 동반하며, 이는 모든 붓싼문학 사례들에도 해당된다.
가령 ‘붓싼 재래시장에
서 오뎅먹은 이야기’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부산에 놀러간 서울 사람이 시장에서 오뎅을 먹는데, 부산 남성들이 대여섯 명이 모여서 오뎅 국물에 간
장을 부어서 섞어 다 같이 먹었다는 내용이 중심이며 여기에는 포장마차
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용기에 담긴 오뎅 국물의 사진이 함께 동반
된다.
그 밖에는 ‘스까 듭밥’, ‘스까 타피오카’ ‘우(동)짜(장)’ 등 다양한 음
식들을 ‘스까’(섞어) 먹는 방식을 소재로 하여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유통되었다. 2017년에 ‘다시 보는 붓싼문학’이라는 제목으로 이제까지
나온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디시’를 비롯한 여타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유
되기도 하였다. 음식 소재를 중심으로 나열한다면, 주로 타피오카, 오징어
덮밥, 삼겹살, 우동, 오뎅 등 다섯 가지이다.
실제로 이 중 어느 하나도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부산의 지역 음식으로서의
‘돼지국밥’ 편도 있으나, 이는 “부산역 앞의 돼지국밥집이 잘 되는 이유”
라는 제목의 이야기로서, 부산 남성들이 부산행 기차를 타고 가다가 부산
에서 내려 돼지국밥에 간다는 이야기이며, 화자와 부산 남성들 간의 상호
작용은 없고, 단지 관찰된 내용만 포함된다. 이 중 타피오카와 오징어 덮
밥 편은 만화로 재생산되기도 하였는데, 이들은 ‘디시’ 내 댓글에 의하면
소위 ‘레전드’라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스까 덮밥은 ‘붓싼문학 1탄’으로
타피오카편은 ‘붓싼문학 2탄’으로 불리기도 하며, 오뎅, 우동 등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은 이후 나온 이야기들이다.11)
‘붓싼문학’으로 분류되는 이야기 사례들의 서사 구조를 요약하면 다음
과 같다.
기: 이야기의 화자가 부산의 한 식당/카페/포장마차에서 음식 주문 및 식음
시작
승: 주인공을 제외한 여타 고객들이 ‘스까 먹기’ 진행
전: 식당 내 몇몇 남자들이 화자에게 접근, 위협적으로 ‘스까 먹기’에 합류
요구
결: 억지로 ‘스까’ 음식을 먹고 나서 나오거나, 변명을 하고 그 장소에서 도망 나오거나, 혹은 공포에 질려서 그 자리에서 기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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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례에서 화자가 혐오의 감정을 유발하기 위해 묘사하는 것은 음식
을 섞어 먹는 방식이며, 이것이 공포스러운 정황으로 발전하는 계기는 여
러 명의 부산 남성들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행위와 큰 소리로 윽박지
르는 행위를 경험하면서부터이다. 이와 같이 혐오, 공포와 같은 감정을 불
러일으키는 이야기는 붓싼문학이 유포될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히스, 벨,
스턴버그(Heath, Bell, & Sternberg 2001)는 도시괴담과 같은 이야기 장르가
성공적으로 전파되는 연유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보았다. 그 중 하나
는 진실 혹은 도덕적 교훈을 담은 ‘정보’를, 또 다른 하나는 분노, 공포, 혐오와 같은 ‘감정’을 담은 내용이다. 이 중 특히 어떠한 것이 효과적으로 전
달, 전파되는가를 보기 위하여 정보와 감정을 적절히 혼합하거나 그 중 한
요소만 두드러지는 유형의 도시괴담이 인터넷에서 얼마나 전파되었는가
를 고찰한 결과, ‘감정’적 요소가 주가 되는 도시괴담이 전파력이 강하다
는 것을 파악하였다. 결론적으로 단순히 ‘맛있는 음식의 종류’와 같은 정
보 보다는 ‘오염된 음식’과 같이 혐오와 공포를 자극하는 내용이 전승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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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특히 ‘섞인’ 음식이라는 소재가 타자화에 상징적으로 활용되
었을까? 음식의 상징적 의미에 관한 연구들 중 특히 음식을 공유하는 행
위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논의가 빈번히 되어왔다(Counihan 2018). 특히
음식 나눔의 한 유형인 ‘식사 함께하기’는 음식을 매개로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친밀감을 형성해가는 중요한 사회적 행위로 간주되어 왔으며 축
제와 같은 의식을 통한 의식 소비는 집단의식을 형성하는데 기여한다고
보고되었다(Jones 2007). 왓슨(Watson 1987)은 중국에서 음식을 따로 요리
하지만 결국 섞어서 개별 그릇에 분배하여 먹는 음식 공유 행위를 기술하
였는데 중국 사회에서 이러한 음식 공유 행위는 동등한 지위를 가진 사람
들끼리 가능한 것이라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붓싼문학에 묘사되는 ‘섞어’
먹는 행위는 등장인물인 부산 사람들은 물론 방문객인 서울 사람도 모두
동등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 간의 유대감 형성 행위가 될 수도 있다. 그러
나 가족이나 친구 등의 관계가 아닌 낯선 사람들과의 공식(共食)이라는 점
에서 혐오를 유발할 수 있는(‘숟가락을 빨고는, 그 숟가락으로 퍼먹는 것이었습니
다.’) 행위로 묘사된다.
쿠겔매스(Kugelmass 1990)에 따르면 음식이야말로 ‘이국적인 타자
(exotic Other)’를 경험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다. 대개 민속 축제 등과
같은 이벤트에서 관광객으로서 ‘토속 음식’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이국적
인 타자를 경험한다. 그러나 실제로 부산 사람들이 먹는 장소에서의 음식
은 안전하고 이국적 타자의 것이 아니라, 위험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메
리 더글라스(Douglas 1966)는 음식이 ‘더럽게’ 혹은 ‘오염된 것’으로 감각
되는 이유는 ‘무질서(anomaly)’라는 요소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이 무질
서는 다시 ‘위험’으로 인지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더글라스
의 구조주의적 논의를 따르자면, 이분법은 단순한 인지적 분류가 아니라
감정이나 도덕이 개입되어 ‘성스러운 것’은 아름답고 좋으며 선한 것으로,
‘속스러운 것’은 추하거나 금지된 것으로 여겨져 양자는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섞일 수 없는 적대적이며 이질적인 관계로 경계를 형성한다. 그러
므로 낯선 곳에 대한 공포가 낯선 사람들과 음식을 공유해야 한다는 점에
서 극대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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