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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번역] 산업사회와 그 미래

FC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1.19 16: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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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사회와 그 미래

2016년 개정

원제: 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

저자: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Theodore John Kaczynski)

저술년도: 1995년

전문 링크


서문


1. 산업혁명과 그 결과는 인류에게 재앙이었다. 산업혁명 덕분에 “선진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평균 수명이 대폭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는 불안정해졌고, 삶은 무의미해졌으며, 인간은 비천한 존재로 전락했다. (제3세계의 경우에는 육체적 고통과 함께)심리적 고통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으며, 자연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었다. 앞으로 기술이 계속 발전할 때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아예 사라져 버릴 것이고, 자연은 더욱 극심하게 파괴될 것이다. 또한 추측컨대 사회적 혼란과 심리적 고통1도 훨씬 더 극심해질 것이며, “선진국”에서도 역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2. 이 산업-기술 체제는 살아남을 수도 있고 붕괴될 수도 있다. 이 체제가 살아남을 경우, 어쩌면 마침내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낮은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길고 몹시 고통스러운 적응기를 거친 후의 일일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인류와 수많은 생물들은 기계적 생산품 또는 사회라는 기계의 톱니바퀴에 불과한 존재로 격하되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만일 이 체제가 살아남는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체제를 개혁 또는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며,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이 박탈당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3. 이 체제가 붕괴될 경우에도 그 결과는 여전히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체제가 거대해질수록 그 붕괴로 인한 결과도 더욱 참혹해진다. 그러니 이 체제가 어차피 붕괴될 것이라면, 그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4.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산업 체제에 항거하는 혁명을 주장한다. 이 혁명에선 폭력을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혁명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날 수도 있고, 수십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우리는 산업 체제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체제에 항거하는 혁명의 길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수단들을 아주 대략적인 수준에서 제시할 수는 있다. 이 혁명은 결코 정치적 혁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혁명의 목표는 정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 사회의 경제적, 기술적 토대를 제거하는 것이어야 한다.


5. 이 글에서 우리는 산업기술사회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측면들의 일부에 대해서만 관심을 둘 것이다. 다른 측면들은 간단히 언급만 하거나 아니면 전부 생략한다. 이것은 우리가 그런 측면들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우리는 논의의 범위를 공공의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한 부분이나, 아니면 새롭게 논의되어지는 부분으로 한정시켜야한다. 예를 들면, 이미 잘 조직된 환경보호 운동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환경, 야생자연의 파괴에 대해서는 거의 논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그것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현대 좌파의 심리


6.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병들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우리 세계가 품고 있는 광기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드러난 광기가 바로 좌파 이념(leftism)이다. 좌파의 심리를 먼저 검토하는 것은, 현대 사회가 지닌 문제를 개괄하는데 그것이 길잡이 역할을 해 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7. 그런데 좌파란 무엇인가? 20세기 전반에 좌파는 보통 사회주의로 여겨졌다. 오늘날의 좌파는 분산되어 있어 누굴 좌파라 해야할지 분명하지 않다. 우리가 좌파라고 할 때는 보통 사회주의자, 집단주의자, 정치적 올바름, 페미니스트, 동성애자와 장애인 권리 운동가, 동물보호 운동가 등을 의미한다. 하지만 저런 운동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좌파가 되는건 아니다. 우리가 좌파에 대해서 논할 때는 운동이나 이념, 또는 연관된 집단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좌파"가 무엇인지는 좌파의 심리에 대해 논하는 과정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문단 227~230을 참고할 것.)


8. 그래도 여전히 좌파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아주 모호한 상태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어떤 해결책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우리가 여기서 시도할 수 있는 것은, 현대 좌파를 이끌어 가는 주된 원동력이라고 생각되는 두 가지 심리적 경향을 대강이나마 밝혀내는 정도다. 물론 우리가 좌파의 심리에 관한 모든 진실을 밝혀 낼 수는 없다. 또한 우리의 논의는 오로지 현대 좌파에만 국한된다. 19세기와 20세기 초기 좌파에 까지 우리의 논의가 적용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9. 현대 좌파의 저변에 깔려있는 두 가지 심리는 '열등감(feelings of inferiority)'과 '과잉 사회화(oversocialization)'이다. 열등감은 현대 좌파 전반에 깔려있는 특성인 반면, 과잉 사회화는 일부의 특성이다. 하지만 그 일부는 대단히 영향력 있다.


열등감


10. 우리가 '열등감'이라고 할 때 그것은 문자 그대로 열등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비하, 무력감, 비관주의, 패배주의, 죄책감, 자기 혐오 등과 같이 열등감과 관계 있는 모든 속성을 포괄적으로 뜻하는 것이다. 우리가 볼 때 현대의 좌파들은 (억압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그런 감정들을 지니고 있으며, 그런 감정들이 현대 좌파의 방향을 결정한다.


11. 누군가가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칭하는 거의 모든 단어를 비하적 표현으로 여긴다면, 우린 그 사람이 열등감이나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다고 본다. 이 경향은 (본인이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소수자 집단에 포함되있던 아니던 간에)소수자 권리 운동가들 사이에 만연하다. 그들은 소수자를 지칭하는 단어에 대단히 민감하다. 아프리카인, 동양인, 장애인, 여성을 뜻하던 "흑인종(negro)", "동방인(oriental)", "불구자(handicapped)", "계집(chick)"이라는 단어에는 원래 비하적 의미가 없었다. '계집'이라는 단어는 그저 남성의 '사내'에 해당하는 여성형 단어였을 뿐이다. 이런 표현에 비하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운동가 그 자신들이다. 어떤 동물 보호 운동가들은 지나치게 멀리간 나머지 "애완동물(pet)"이라는 단어를 거부하고 "반려동물(animal companion)"을 대신 써야한다고 주장한다. 좌성향 인류학자들은 원시인들이 부정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표현을 피하기 위해 대단히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원시(primitive)"를 "비문자(nonliterate)"로 교체하려고 한다. 그들은 원시문화가 자칫 우리의 문화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겨질까봐 편집증적 행태를 보인다.(우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정말로 원시문화가 열등한 것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린 그저 좌성향 인류학자들이 얼마나 예민한지 지적했을 뿐이다.)


12.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은 흑인 빈민, 동양인 이민자, 학대당한 여성, 장애인들이 아니라 활동가들이다. 이 활동가들은 대부분 그들이 '억압당했다'고 주장하는 집단에 속해있지도 않다. 이 활동가들의 대부분은 사회적 특권층에 속해있다. 정치적 올바름은 안정된 직장과 충분한 월급이 보장된 대학교수, 그 중에서도 백인-이성애자-남성-중상류층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13. 많은 좌파들은 약하고(여성), 패배했고(아메리카 원주민), 미움당한(동성애자) 이미지를 갖고 있는 집단에 스스로를 동일시한다. 좌파들 스스로가 이 집단들이 열등하다고 느낀다. 좌파 스스로는 절대 자신들이 그런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할 테지만, 분명히 이런 집단을 열등하다고 보고 있기에 자신의 문제점을 이런 집단에 투영하는 것이다.(우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서 정말로 여성, 인디언들이 열등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린 그저 좌파들의 심리상태를 지적했을 뿐이다.)


14. 페미니스트들은 온 힘을 다해 여성이 남성만큼이나 강하고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분명, 그들은 어쩌면 정말로 여성이 남성보다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있다.


15. 좌파들은 강하고, 좋고, 성공한 이미지를 지닌 것이라면 무엇이든 증오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은 미국을 증오하고, 서구 문명을 증오하고, 백인 남성을 증오하고, 합리성을 증오한다. 좌파들이 말하는 자신들이 서구와 그에 비롯된 것들을 증오하는 이유와, 그들이 실제로 그것을 증오하는 동기는 분명히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서구가 호전적이고, 제국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이고, 자국민 중심적이기 때문에 서구를 증오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나 원시 문화권에서 똑같은 결함이 나타날 경우, 좌파는 그들을 위한 변명거리를 찾아내고, 기껏해야 그런 결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마지못해 인정할 뿐이다. 서구 문명에서 그런 결함이 보일 때는 열광적으로 (때로는 엄청나게 과장하며)지적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좌파가 미국과 서구를 증오하는 진짜 동기는 그 같은 결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좌파가 미국과 서구를 증오하는 이유는, 바로 미국과 서구가 강하고 성공했기 때문이다.


16. '자신감', '독립성', '자주성', '진취성', '낙관주의' 등의 단어들은 진보주의자, 좌파의 사전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좌파는 반-개인적이고, 친-집단적이다. 좌파는 사회가 모든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 주고, 모든 사람들을 보살펴 주기를 바란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며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채울 수 있다는, 내적 자신감이 없는 인간이다. 좌파가 경쟁이라는 개념을 거부하는 것은, 그가 마음 속 깊이 스스로를 패배자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17.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 예술 작품들은 흔히 더러움, 패배, 절망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는, 합리적 계산에 의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으며,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순간적인 감각에 자신을 던져버리는 것뿐이라는 식으로, 이성적 통제의 가능성을 아예 포기하고 온통 미친 짓거리로 가득 찬 난장판만을 보여줄 뿐이다.


18. 현대의 좌파 철학자들은 이성, 과학, 객관적 현실을 부정하고, 모든 것이 문화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누구나 과학적 지식의 토대에 대해, 그리고 객관적 현실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고 진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좌파 철학자들이 지식의 토대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냉철한 논리학자들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진리와 현실을 공격할 때, 그들은 감정적으로 심한 흥분 상태에 빠져 있다. 그들이 이 개념들을 공격하는 것은 자신들의 심리적 욕구 때문이다. 그들의 공격은 그들이 지닌 적개심의 표출이며, 공격이 성공할 때 그들의 권력욕도 충족된다. 더욱이 좌파들은 과학과 합리성을 증오한다. 과학과 합리성에 의해 참된 신념들(즉 성공한 것, 우월한 것)과 거짓 신념(즉 실패한 것, 열등한 것)이 구분되기 때문이다. 좌파의 열등감은 점점 깊어져 어떤 것을 성공한 것이나 우월한 것으로, 그리고 나머지를 실패한 것이나 열등한 것으로 구분하는 것조차도 참을 수 없게 된다. 많은 좌파들이 정신질환이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IQ측정의 유용성을 거부하는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심리가 깔려 있다. 좌파들은 인간의 능력, 행동을 유전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그런 설명이 어떤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좌파들은 개인의 유능함이나 무능함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설명을 선호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열등'하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이다. 사회가 그를 올바르게 양육하지 않은 것이다.


19. 좌파는 열등감 때문에 거만을 떨거나, 이기주의자가 되거나, 잘난척하거나, 깡패, 무자비한 경쟁자가 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자신이 나약함을 알고, 자부심도 약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강자가 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스스로를 강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그런 불쾌한 행동들이 나오는 것이다.2 하지만 좌파는 거기에서 한참을 더 나간다. 그의 열등감은 너무나 깊어서 그는 스스로가 강하고 가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여기서 좌파의 집단주의가 생겨난다. 그는 자신을 동일화시킬 수 있는 거대 조직, 또는 대규모 사회 운동의 일원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강하다고 느낄 수 있다.


20. 좌파의 전략이 지닌 피학(被虐)적 성향에 주목하라. 좌파들은 자동차 앞에 누워서 저항하는가 하면, 경찰이나 인종주의자들을 일부러 자극해 자신들을 학대하도록 유도한다. 가끔씩 그런 전략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좌파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그것이 '좋아서' 그런 피학적 전략을 사용한다. 자기혐오는 좌파의 특징이다.


21. 좌파들은 자신들의 운동이 동정심 또는 윤리적 원칙이라는 동기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과잉 사회화된 좌파의 운동에서 윤리적 원칙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정심과 윤리적 원칙은 결코 좌파 운동의 주된 동기가 아니다. 좌파의 행동에서는 호전성이 너무나 뚜렷하게 드러난다. 권력에 대한 욕망 역시 그렇다. 게다가 좌파의 행동 상당 부분은, 좌파들이 돕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계산된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흑인들을 위한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가 흑인을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호전적이고 교조적인 용어들을 사용하며 요구하는게 적절한가? 적극적 우대조치를 얻어내려면, 적극적 우대조치가 자신들을 차별한다고 여기는 백인들로부터 그저 빈말로라도, 또 상징적으로나마 양보를 얻어낼 수 있도록 조금 더 외교적이고 타협적인 접근 방법을 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좌파 활동가들은 그런 접근 방법을 취하지 않는다. 그런 접근 방법으로는 자신들의 감정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진정한 목표는 흑인을 돕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인종 문제는 좌파가 자신들의 적대감과 좌절된 권력 욕구를 표출하기 위한 좋은 핑계거리다. 그렇게 좌파는 오히려 흑인들에게 피해를 입힌다. 활동가들이 다수 백인에게 보이는 적대적 태도로 인해 인종 간의 증오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22. 만일 우리 사회에 문제가 없다면, 좌파들은 분쟁을 일으킬 핑계를 얻기 위해 문제들을 발명해 낼 것이다.


23. 강조하지만, 앞에서 한 설명은 결코 좌파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 다만 좌파의 일반적 성향이 그렇다는 것을 포괄적으로 지적했을 뿐이다.


과잉 사회화


24. 심리학자들은 '사회화'라는 단어를 어린이들이 사회의 요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말하고 생각하도록 훈련시키는 과정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다. 누군가가 사회의 도덕률을 잘 따르고 사회의 일부로서 적절히 기능할 때, 그가 잘 사회화되었다고 한다. 보통 좌파들은 반항아로 여겨지기에, 많은 좌파들이 과잉 사회화되었다고 말하는건 언뜻 보기에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충분히 근거있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좌파들은 반항아가 아니다.


25. 우리 사회의 도덕률은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기에, 거의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도덕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활동할 수 없다. 예를들어, 사회는 우리에게 누군가를 미워해선 안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당사자가 그걸 인정하는지와는 상관없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서 누군가를 미워한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심하게 사회화되어 있어, 이런 방향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심각한 짐이 된다.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동기를 속여야하며, 자신의 비도덕적 동기에서 비롯된 감정이나 행동을 도덕적인 것으로 포장하기 위한 핑계를 찾는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두고 "과잉 사회화 되었다"고 말한다.3


26. 과잉 사회화는 자기비하, 무력감, 패배주의, 죄책감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사회화할 때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어린이가 사회의 기대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보일 때 창피를 주는 것이다. 이것이 지나칠 경우, 또는 어떤 어린이가 수치심에 유난히 예민한 성격을 지니고 있을 경우, 그 어린이는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하게 된다. 게다가 과잉 사회화된 사람은 항상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에,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가볍게 사회화된 사람들보다 훨씬 심한 제약을 받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된 행동을 밥먹듯이 저지른다. 거짓말, 좀도둑질, 교통법규 위반, 근무 태만, 타인에 대한 증오, 악담, 남을 앞지르기위한 교묘한 속임수... 과잉 사회화된 사람은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설령 어쩌다 그런 행동을 저지른다 해도, 이번엔 스스로 만들어 낸 수치심과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과잉 사회화된 사람은 기존의 윤리에 어긋나는 것을 현실에서가 아니라, 단지 생각과 감정으로 경험하는 경우에조차 죄책감에 빠진다. 그는 “더러운” 생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윤리가 사회화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갖가지 비윤리적인 행동들에 대해서도 순응하도록 사회화된다. 결국 과잉 사회화된 사람은 끝까지 윤리라는 심리적 쇠사슬을 벗어날 수 없으며, 사회가 그에게 제시한 윤리적 삶을 따라 평생을 지낸다. 과잉 사회화된 사람들 대부분은 그 결과, 구속감과 무력감이라는 심각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과잉 사회화야 말로 인간이 타인에게 저지를 수 있는 그 어떤 잔혹 행위보다도 무서운 잔혹 행위라고 생각한다.


27. 현대 좌파 내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큰 영향력을 지닌 한 분파가 과잉 사회화되어 있으며, 그들의 과잉 사회화에 의해 현대 좌파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과잉 사회화된 좌파들은 흔히 지식인 또는 중상류층 출신들이다. 대학 지식인들4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도로 사회화된 분파를 구성함과 아울러 대부분의 좌익세력을 이루고 있음을 주목하라.


28. 과잉 사회화된 좌파는 자신의 심리적 구속감을 벗어 던지려 애쓰며, 저항을 통해 자신의 자율성을 내세우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에 저항할만한 힘을 갖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현대 좌파의 목표는 기존 윤리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좌파는 기존의 윤리적 원칙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한 다음, 주류 사회가 그 원칙을 위반한다고 비난한다. 인종 평등, 성 평등,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 전쟁반대, 비폭력 운동, 언론의 자유, 동물에 대한 사랑 등이 그런 윤리적 원칙들이다. 보다 근본적인 원칙으로는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하는 개인의 의무와, 개인을 보호해야하는 사회의 의무도 있다. 이 모든 원칙들은 우리 사회에서(아니면 적어도 중상류층5 사이에서) 오랫동안 깊게 뿌리내려 온 가치들이다. 주류 언론과 교육 시스템에 의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자료들 대부분에는 그런 가치들이 명시적으로 표현되어 있거나 암묵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좌파, 특히 과잉 사회화된 좌파들은 그 원칙들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다. 대신에 사회가 그 원칙들을 지키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적대감을 정당화한다.


29. 과잉 사회화된 좌파들이 실제로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를 따르면서도, 마치 사회에 저항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사례를 보이겠다. 많은 좌파들이 흑인들이 좋은 직업을 주고, 흑인들의 교육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도록 하는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을 요구한다. 그렇게 흑인들이 좌파들 스스로가 수치스럽게 여기는 "하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려고 말이다. 좌파들은 흑인들을 체제의 일부로 만들고자 한다. 흑인들을 마치 중상류층 백인처럼 기업가, 변호사, 과학자로 만들려고한다. 여기에 좌파들은 자신들은 결코 흑인을 백인의 복사본으로 만들려고 하는게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 증거로 자신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를 보존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화를 보존한다는게 무엇인가? 그저 흑인들의 음식, 흑인들의 음악, 흑인들의 패션, 흑인들의 교회와 모스크를 보존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흑인 문화의 보존이란건 결국 이렇게 피상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중요한 측면에서 봤을 때, 과잉 사회화된 좌파들은 흑인들이 백인들의 이상향에 복종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좌파들은 흑인이 이공계 과목을 전공하고, 기업의 오너 또는 과학자가 되어, 평생을 계층 사다리를 올라 흑인들도 백인만큼이나 뛰어나다는것을 증명하길 원한다. 좌파들은 흑인 아버지가 "책임감 있고", 흑인 깡패들이 비폭력적으로 변하길 원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정확히 산업-기술 체제가 원하는 가치이다. 이 체제는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업을 갖고, 계층 사다리를 오르고, "책임감" 있는 부모가 되기만 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음악을 듣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종교를 갖든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상, 과잉 사회화된 좌파들은 그들이 얼마나 부정하던, 결국엔 흑인들을 체제에 통합시키고 체제의 가치에 복종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30. 우리는 과잉 사회화된 좌파를 포함해서, 좌파들이 우리 사회의 근본적 가치들에 대해 절대로 저항하지 않는다고는 주장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그들도 때로는 저항한다. 일부 과잉 사회화된 좌파는 심지어 물리적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현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원칙들에 저항하기도 한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그들에게 있어 폭력은 '해방'의 한 형태다. 다시 말하자면, 폭력을 저지름으로써 자신들에게 내재화된 심리적 구속을 깨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잉 사회화된 탓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훤씬 심한 심리적 구속에 얽매여 있다. 이 지점에서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그들의 욕구가 생겨난다. 그런데 좌파들은 흔히 주류 가치를 담고 있는 용어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저항을 정당화한다. 가령 폭력을 행사할 경우, 그들은 인종차별 같은 것들에 저항해 싸우고 있노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31. 우리는 엉성한 스케치 수준에 불과한 좌파의 심리에 관한 우리의 설명에 반론의 여지가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실제의 상황은 매우 복합적이며, 그것을 완벽하게 설명하려면, 설령 필요한 자료를 다 구할 수 있다고 해도, 몇권의 책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다만 현대 좌파의 심리 안에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성향이 자리잡고 있음을 극히 대략적이나마 지적하려 했을 뿐이다.


32. 좌파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낮은 자존감, 비관적, 패배적 성향은 은 좌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좌파에게서 유난히 눈에 띈다는 것뿐이지, 이런 성향은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는 과거 어느 사회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우리를 사회화시키려 한다. 심지어 사회는 무얼 먹을지, 어떻게 운동할지, 어떻게 연애할지, 어떻게 자녀를 키울지에 대해서까지 전문가들을 통해 지시하려 든다.


권력 과정6


33. 인간은 우리가 앞으로 '권력 과정'이라 부르는 어떤 것에 대한 (아마 생물학적인)욕구를 갖고 있다. 이 욕구는 (널리 알려진 대로)권력에의 욕구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 동일한 욕구는 아니다. 권력 과정은 네 개의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그 중에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세 구성 요소를 우리는 목표, 노력, 목표 달성이라고 부른다. (모든 사람에겐 노력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필요하다. 목표를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달성해야 한다.) 네 번째 요소는 정확히 규정하기 어렵고,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자율성이라고 부르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거론할 것이다.(문단 42~44)


34.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은 권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심각한 심리적 문제들을 키워가게 될 것이다. 처음에야 모든 것이 신나겠지만, 그것도 잠깐, 그는 급속히 권태에 빠지고 타락해 간다. 그러다 마침내는 병적인 우울증에 빠지게 될 것이다. 역사는 유한(有閑) 귀족들이 대체로 퇴폐하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전투적 귀족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야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안정된 유한 귀족들은 권력을 쥐고 있어도 보통 권태에 빠지고, 쾌락에 탐닉하다가 결국 타락해 버린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권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사람에겐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표가 필수적인 것이다.


35. 누구에게나 목표가 있다. 다른 목표가 전혀 없다 해도, 음식과 물, 그리고 기후에 따라 필요한 옷과 주거지 등 생필품을 구한다는 목표는 남아 있다. 그런데 유한 귀족은 이런 것들을 아무런 노력없이 획득한다. 여기에서 그의 권태와 타락이 생겨난다.


36.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만약 그 목표에 목숨이 걸려있다면 그 실패의 결과는 죽음이다. 목숨과 상관없는 목표라면 그 결과는 좌절이다. 평생을 계속해서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패배주의, 자기 비하,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37. 따라서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인간에게는 노력을 쏟아 달성할 수 있는 목표들이 필요하며, 그 목표들을 납득 가능한 비율로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대리 활동


38. 하지만 모든 유한 귀족이 권태에 빠지고 타락하는 것은 아니다. 한 예로 일본 황제 히로히토는 퇴폐적인 쾌락에 빠지는 대신, 해양생물학 연구에 전념했고 그 분야에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신체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자신을 내던질 필요가 없을 때, 사람들은 흔히 인위적 목표를 세운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했던 것과 똑같은 에너지를 쏟아 가며, 자신의 전부를 바쳐 목표 달성을 추구한다. 그런 식으로 로마 제국의 귀족들은 문학에 열정을 쏟았고, 몇 세기 전의 유럽 귀족들은 고기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었음에도 사냥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던 것이다. 어떤 귀족들은 정교한 방식으로 부를 과시함으로써 신분 경쟁을 계속했다. 그리고 히로히토 같은 소수의 귀족들은 과학으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39. 우리가 “대리 활동”이라고 할 때, 그것은 사람들이 단순히 어떤 목표를 갖기 위해, 또는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충족감'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 인위적 목표를 지향하는 활동을 뜻한다. 어떤 활동이 대리 활동인지 알아보는 간단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X’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붓는 사람이 있다고 치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생각해 보자. 만약 그 사람이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자신의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바쳐야만 했다면, 그리고 그런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가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여러 가지 다양하고 흥미로운 방법으로 활용했다면, 목표 X를 달성하는데 실패했을 때 그가 심각한 박탈감을 느끼겠는가? 만약 대답이 ‘아니오’라면, 그 때 목표 X를 추구하는 것은 대리 활동이 된다. 히로히토의 해양생물학 연구는 분명히 하나의 대리 활동이 된다. 히로히토가 생필품을 얻기 위해 과학과 무관한 일에 모든 시간을 바쳤다 해도, 그가 그 일에서 재미를 느꼈다면, 그는 자신이 해양생물의 해부학과 습성을 모른다는 이유로 박탈감을 느끼지는 않으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반면에 (예를 들어) 섹스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은 대리 활동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과의 성적 관계를 전혀 가지지 않고 평생을 보내야 한다면, 설령 그 문제만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 해도, 여전히 박탈감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 과도하게 섹스를 추구하는 것은 역시 대리 활동이 될 수 있다.)


40. 현대 산업사회에서 신체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는 최소한의 노력만 있으면 된다. 간단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훈련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충분하며, 직업을 계속 가지고 있으려면 그저 제 시간에 출근하고 적당히 열심히 일하면 되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적당한 지능,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순한 복종이다. 사회는 그런 사람들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살펴 준다. (물론 생필품조차도 보장받지 못하는 최하층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주류 사회이다.) 그러니 현대 사회가 대리 활동으로 가득차 있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과학적 연구작업, 스포츠 기록 경쟁, 인도주의 활동, 예술 및 문학 창작, 회사 내에서의 직위 상승, 신체적 필요를 한참 넘어서는 돈과 물질적 재화의 획득, 그리고 비백인 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하는 백인 활동가처럼 활동가 자신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슈를 떠들어대는 사회 운동이 포함된다. 이런 활동들이 언제나 순수한 대리 활동으로 머물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단순히 추구해야 할 목표가 필요하다는 욕구 이외의 다른 욕구들이 활동의 동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과학 연구는 부분적으로 특권층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유발될 수도 있고, 예술 창작은 감정을 표현하려는 욕구에 의해서, 민병대 운동은 적대감에 의해서 유발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활동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활동의 상당 부분은 대리 활동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아마 자신들의 연구를 통해 얻는 “만족감”이 돈이나 특권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41. 대부분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대리 활동은 진짜 목표(즉, 권력 과정에 대한 욕구가 이미 채워졌을 경우에도 여전히 달성하기를 원하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에 비해 만족감이 떨어진다. 이는 대리 활동에 깊이 몰두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코 만족할줄 모르며,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그래서 돈에 눈이 먼 사람은 끝없이 더 많은 부를 향해 질주하는 것이다. 과학자는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곧바로 다음 문제로 달려간다. 장거리 달리기 선수는 언제나 보다 멀리, 보다 빨리 달리기 위해 자신을 몰아친다. 대리 활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지루한” 활동에서 얻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만족감을 그런 활동에서 얻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사회가 생물학적 욕구를 채우는 데 필요한 노력을 아주 미미한 수준으로 축소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생물학적 욕구를 자율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고, 그 대신 거대한 사회적 기계의 부품으로서 기능함으로써 만족시킨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사람들은 자신의 대리 활동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엄청난 자율권을 누리고 있다.


자율성


42. 권력 과정의 한 부분으로서의 자율성은 모든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표를 향해 노력할 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자율성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노력은 스스로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스스로 정한 방향과 통제를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이 같은 주도권과 방향 결정권, 통제권을 반드시 행사해야 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경우 작은 집단의 구성원으로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만약 여섯 명의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 서로의 노력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다면, 권력 과정에 대한 욕구가 채워질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일체의 자율적인 결정권과 주도권을 허용치 않는 엄격한 상부의 명령에 따라 일한다면, 그들이 지닌 권력 과정의 욕구는 채워지지 않는다. 집단적인 결정 방식을 채택할 경우에 그 집단이 너무 커서 각 개인의 역할이 무의미해지는 집단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7


43. 어떤 개인들은 자율성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어 보이기도 한다. 권력욕이 원래 약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속한 강력한 조직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권력욕을 충족시키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한편 오직 물리적인 권력에만 만족하는 거의 짐승 수준의 바보들도 있다.(뛰어난 군인이 그 사례다. 그는 상관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며 전투력을 향상시키는데서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다는 느낌을 얻는다.)


44.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표를 설정하고, 자율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목표를 달성하는 권력 과정을 통해서 자존심과 자신감, 권력을 쥐고 있다는 느낌을 얻게된다. 어떤 사람이 이 권력 과정에 참여할 정당한 기회를 갖지 못했을 때, 그 결과는 (개인에 따라, 그리고 권력 과정이 붕괴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지지만) 권태, 타락, 자기 비하, 열등감, 패배주의, 절망, 불안, 죄책감, 좌절, 적대감, 배우자 또는 자녀 학대, 탐욕스러운 쾌락주의, 변태성욕, 불면증, 과식 또는 거식증 등으로 나타난다.8


사회 문제들의 근원


45. 앞에 열거한 증상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이런 증상들이 대규모로 만연해 있다. 오늘날 세상이 점점 미쳐가고 있음을 지적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 사회에서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원시 인류가 스트레스와 좌절로 인한 고통을 적게 겪었으며, 현대인보다 자신의 인생에 더 만족했으리라고 믿는 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물론 원시 사회라고 해서 모든 것이 편안하고 쾌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호주 원주민 부족에서는 여성학대가 흔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일부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에서는 성 전환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우리가 앞 문단에서 열거했던 것과 같은 문제들은 분명 현대 사회에서처럼 흔하게 나타나는 문제는 아니었다.


46. 현대 사회의 사회적, 심리적 문제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현대 사회가 지금까지 인류가 진화해 왔던 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도록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또 과거 환경에서 살면서 발전시켜 온 행동 양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현대 사회가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온갖 비정상적인 환경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권력 과정에 제대로 참여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것만이 사회 문제의 유일한 근원은 물론 아니다. 사회 문제의 한 근원으로서의 권력 과정 붕괴를 다루기에 앞서 우리는 몇 가지 다른 근원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47. 현대 산업사회가 안고 있는 비정상적 환경으로는 과도한 인구 밀도, 자연으로부터의 인간 소외, 지나치게 빠른 사회 변화, 대가족이나 마을, 부족 등과 같은 자연스러운 소규모 공동체의 붕괴 등을 들 수 있다.


48. 인구 과밀이 스트레스와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인구 과밀과 자연으로부터의 인간 소외는 기술 발전의 결과로 빚어진 현상이다. 산업화 이전의 대부분의 사회는 농경 사회였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도시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졌으며, 도시에 사는 인구 역시 엄청나게 늘어났다. 한편 현대적 농업 기술 덕분에 지구는 이제껏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과밀한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게되었다. (또한 기술로 인해 인구 과밀의 부정적 효과는 더욱 강화되었는데, 이는 기술이 사람들의 손에 더욱 더 강한 파괴력을 쥐어 주었기 때문이다. 전동 잔디깎이, 라디오, 오토바이 등등 저 수많은 종류의 소음 발생 장치들을 생각해 보라. 만일 이런 기계들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평화와 고요를 바라는 사람들은 소음으로 인해 좌절에 빠지게 될 것이다. 반면 기계들을 규제한다면, 이번에는 기계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규제로 인해 좌절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런 기계들이 애초에 발명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갈등도 좌절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49. 원시 사회에는 (아주 서서히 변화할 뿐인) 자연이 안정적인 생활기준을 제공해 주었고, 사람들은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반대로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 사회가 자연을 지배하고 있으며, 기술의 변화에 따라 현대 사회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안정적인 생활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50. 보수주의자들은 바보다. 그들은 전통적 가치들이 망가지고 있다고 불평하면서도, 기술의 발전과 경제 성장을 열광적으로 지지한다. 한 사회의 기술과 경제의 급격한 변화는 사회의 다른 측면들의 급격한 변화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런 급격한 변화가 필연적으로 전통적 가치들을 붕괴시킨다는 자명한 사실을 보수주의자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51. 전통적 가치의 붕괴는 전통적인 소규모 사회 집단을 묶어 주고 있는 유대 관계가 붕괴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마련이다. 현대의 환경이 개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새로운 지역으로 옮겨가도록 요구하거나 유혹한다는 점도 소규모 사회 집단의 와해를 촉진한다. 그런 이유를 제쳐놓더라도, 우선 기술 사회가 효율적으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족 간의 유대와 지역 공동체를 약화시켜야만 한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체제에 최우선으로 충성해야 하며, 소규모 공동체에 대한 충성은 부차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소규모 공동체의 내부적 충성도가 체제에 대한 충성도보다 더 강력할 경우, 그 공동체는 체제를 희생시키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52. 고위 공무원이나 기업 임원이 어떤 자리에 능력있는 사람이 아닌, 자신의 사촌이나 친구, 같은 종교의 신도를 앉힌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체제에 대한 충성보다 사적인 충성을 우선시한 것이고, 이는 곧 '족벌주의' 또는 '차별'이 되는데, 둘 다 현대 사회에서는 끔찍한 범죄 행위다. 사적 또는 지역적 충성을 체제의 충성에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한 채 산업사회를 지향하는 사회는 대부분 몹시 비효율적이다. (라틴 아메리카를 보라.) 따라서 선진 산업사회는 오로지 거세되고, 길들여진, 그리고 체제의 도구가 되어버린 소규모 공동체들만을 허용할 수 있다.9


53. 인구 과밀, 급격한 변화와 공동체의 붕괴는 그 동안 사회 문제의 근원으로 널리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만으로는 오늘날 볼 수 있는 광범위한 사회 문제를 설명하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믿는다.


54. 산업화 이전의 도시들 중 몇몇 도시는 매우 큰 규모와 높은 인구 밀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도시의 주민들이 현대인들처럼 심리적 문제들 때문에 고통을 겪었던 것 같지는 않다. 오늘날에도 미국에는 여전히 인구 밀도가 낮은 농촌들이 남아 있으며, 우리는 그런 농촌들에서도 도시에서 일어나는 것과 동일한 문제들을 발견한다. 물론 농촌 지역에서는 문제들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차이는 있다.10 그러니 인구 과밀이 사회 문제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55. 미국 개척자들이 서부로 나아가던 19세기, 당시에도 인구의 이동으로 말미암아 대가족과 소규모 사회 집단은 붕괴되었다. 그 붕괴의 정도는 오늘날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았다. 사실, 수 마일에 걸쳐 이웃이 전혀 없으니 도저히 공동체에 소속될 방법이 없는 고립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핵가족을 선택했다.11 하지만 그렇다고 개척민들이 공동체의 붕괴 때문에 사회 문제들을 겪었던 것 같지는 않다.


56. 아울러 미국 개척자 사회에서의 사회 변화는 매우 빠르고 심오하게 이루어졌다. 법률과 질서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상황에서, 통나무집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야생 동물의 고기를 주식으로 먹으며 성장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다가 노인이 되어서야 그는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일하게 되고, 법률적 제재가 효력을 발휘하는 질서 잡힌 공동체에서 살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사회 변화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삶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오한 변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회 변화가 사람들에게 심리적 문제들을 일으켰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여 19세기 미국 사회에는 오늘날과는 달리 낙관적이고 자신만만한 분위기가 펴져 있었다.12


57. 우리가 볼 때 두 사회가 다른 점은, 19세기의 개척자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냈다고 느낀 반면(이는 상당히 정당한 논리다.), 현대인은 변화가 자신에게 강요되었다고 느낀다는(이 역시 상당히 정당한 논리다.)점이다. 개척자는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땅에 정착해 자신의 노력을 통해 그 땅을 농장으로 만들어냈다. 그 시절의 어느 군(County)에는 군을 통틀어 고작 수백 명의 거주자만이 있었고, 현대의 군보다 훨씬 더 고립되고 자율적인 집단을 이룰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개척자는 비교적 작은 집단의 일원으로서 질서 잡힌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는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공동체의 창조를 과연 진보로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개척자는 그런 공동체 창조 작업을 통해서 권력 과정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58. 급격한 사회 변화와 공동체의 친밀한 유대 관계의 상실을 겪으면서도, 현대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광범위한 이상 행동을 보이지 않는 사회는 그 밖에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권력 과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통과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우리는 현대 사회의 사회적, 심리적 문제들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바로 이것이라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에서만 권력 과정이 붕괴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문명 사회에서 권력 과정은 심하게든 약하게든 항상 방해를 받아 왔다. 그런데 유독 현대 사회에서는 권력 과정의 붕괴라는 문제가 특히 극심하게 벌어지는 것이다. 좌파, 적어도 최근(20세기 중반부터 후기까지)의 좌파는 권력 과정이 붕괴되면서 나타난 박탈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내용은 <산업사회와 그 미래> 전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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