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생을 대상으로 함.

처음이라 긴장했다. 그런데 애들이 생각보다 순수해서 놀랐다. 지방에서 와서 그런건가? 서울 태생인 내가 보기엔 지나치게 순수하다.

야간 안전요원이 하는 일은 서울의 호텔 방에 숙소를 잡은 이 지방 아이들이 밤중에 복도를 돌아다니거나 다른 방에 놀러다니는 것을 단속하는 것이다. 어렵지 않고, 군대 야간 당직을 서는 것과 비슷하다. 오히려 이쪽이 사건도 많고 하니 재밌고 시간도 더 빨리 갔다.

과연 내 말을 과연 잘 들을까 걱정했는데, 대놓고 반항하는 애들은 한 명도 없었다.

약간 통통한 학생이 복도를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너 원래 방이 어디야?"

이렇게 물으니,

"저기, 나올려고 나온 게 아니라요, 실은요, 솔직히 말할게요. 친구랑 놀고 싶어서 나왔어요. 죄송합니다. 들어가서 잘게요."

하고, 술술 자백을 한다.

혹은 거짓말로 둘러대는 애들도 있었다. 그런데 저들끼리 말을 맞췄는지 레파토리가 다 똑같다. 충전기를 친구 방에 두고 왔다 던가.. 물건을 빌리러 간다던가..

한 번은 여학생 세 명이서 복도를 돌아다니길래 물어보니 클렌징 폼을 빌리러 친구 방에 간다고 말했는데, 보니까 이미 세수도 다 하고 보송보송한 얼굴이었다.

"그럼 두 명은 방 안에 들어가고, 한 명만 빌리러 가. 그리고 한 명은 나랑 같이 가자."

그러자 우왕자왕했다.

결국 그 중에 한 명은 친구 방까지 가서 폼클렌징을 손에 짜 묻히고 도로 원래 방으로 돌아갔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자꾸 나에게 잡혀서 눈에 익은 2인조가 있었는데, 이젠 머리 모양만 봐도 알 것 같았다. 복도를 지나다 인기척에 뒤를 확 돌아보니 머리 2개가 빼꼼 벽에서 날 바라보다 휙 사라졌다. 그 쪽으로 걸어갔다. 이런 곳이 있었나, 생각하며 걸어가는데 복도 벽 움푹 들어간 곳을 흘겨보니 그곳에 그 2인조가 납작 바닥에 몸을 눕히고 숨어 내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쿡쿡 웃음을 참는 소리에 나도 실소가 나왔다.

"얘들아 뭐하니."

그러자 지들끼리 빵 터지고 죄송해요, 하고 도망가는 것이다.

친구를 복도에 내보내고 나한테 잡힐 때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는 아이들도 있고, 내 눈만 마주치면 갑자기 자백부터 하는 애들, 혹은 나에게 친구한테 하듯 스스럼없이 말거는 애들도 있었다. 그런 순수한 애들을 대하니 나도 덩달아 순수해지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잠깐 뿐이었다.

역시 나에게는 기본적인 인간의 소양, 중학생들조차 모르지 않는 의사소통의 기본이 결여돼 있나 보다. 솔직히 친근하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도무지 다가갈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괜히 엄하게 대하고, 있는 척 목소리를 깔고, 익숙한 무서운 조교의 모습을 모방하게 된다. 게다가 어울리지 않는 배역을 연기하니 그것도 자꾸만 삐걱거린다. 아마도 중학생정도 되면 눈치도 빠르고 알거 다 아는 나이니, 이미 내 본질을 간파하지 않았을까. 이 되다 만 인간이 성인 연기를 하는 게 딱해서 모른 척 순응해 준 건 아닐까. 아니, 그랬던 게 틀림없다. 아마 뒤에서는 저녀석 가오나 잡는다고 욕한 것이 틀림없다. 앞에서는 딱한 놈이니 말은 들어주자, 하고. 순수하다기보다는 마음이 따뜻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아이들을 좋아한 까닭은 어렸을 때 원없이 순수해 보지 못한 박탈감의, 일종의 욕망이 가미된 그리움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저 시골 아이들처럼 순수할 수 있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