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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뫼르소의 집행 대사에 대한 개인적 생각

ㅇㅇ(221.151) 2023.08.16 06:43:41
조회 5430 추천 57 댓글 8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인 HE 집행 대사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할 것이니, 너는 반드시 부서진다."

"너만큼은··· 나를 용서하지 말라."


내가 해석한 바로는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히 읽으면 집행 대사는 그의 사형집행을 앞두고 신의 뜻을 말하는 신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으로서 초연한 인간의 관점을 벗어난 이방인으로서 뫼르소에 대해 알아보려면 먼저 몇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기록의 천재 사마천의 사기 백이열전을 보면 이러한 구절이 있다.


“하늘의 도는 공평 무사하여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고 한다. 하지만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인가? 그들은 이와 같이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이렇게 굶어 죽었다. 또한 공자의 뛰어난 일흔 제자 가운데 중니는 오직 안연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표창하였다. 그러나 회는 가끔 쌀뒤주가 비어 있었으며,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끝내 요절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셈인가? 도척은 날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람고기를 회를 쳐서 먹으며, 포악한 짓을 멋대로 저지르고 수천 명의 패거리를 모아 천하를 마구 휘젓고 다녔지만 결과는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이것은 무슨 덕을 따랐단 말인가? 이런 것들은 크게 드러난 예들이다.

근세에 이르러서도 평소의 행실이 도를 벗어나 오로지 악행만을 저지르고도 일생을 마치도토록 편안히 놀기만 하여, 부귀가 자손 대대로 끊이지 않기도 한다. 이와는 달리 정당한 땅을 골라서 딛고 정당한 발언을 해야 할 때만 말을 하며, 항상 큰 길을 걸으며 공명 정대한 이유가 없으면 성내지 않고, 줄곧 근면하고 정직하게 행동하면서도 오히려 재앙과 화를 당하는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하늘의 도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악인의 죽음을 천벌, 선인을 향한 천운은 하늘의 보답이라고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 사마천도 그 당시 종교와 사상 그 자체인 하늘의 도를 부정하는 듯한 악인의 천수무강과 의인들의 무가치한 죽음을 보면서 약간의 감정적인 모습을 모인다. 


우주의 관점에선 개미의 죽음과 인간의 죽음은 동일한 아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필연적인 사건중에 하나이지만 그와 반대로 죽음까지 여정 그리고 죽음마저도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이 사실에 부조리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스로 우주의 관점에서 진리를 사색하다보면 우리는 인간의 종교와 사상 이데올로기는 믿음으로 유지되고 있는 인간의 관점 중 하나인 것을 깨닫게 되고 각종 사상과 종교로부터 인간의 관점을 벗어나 존재할 수 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죽음을 초연한 듯 받아들이는 뫼르소의 이방인 첫 구절은 처음엔 그가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인가 싶지만 더 읽어보면 그가 죽음은 피할 수 없고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방인의 줄거리를 보면 좋을 거 같다.


 인간의 관점을 벗어난 뫼르소는 자신의 사형 집행의 앞둔 순간 계속 면회를 와서 신에게 용서를 통해 구원받으라는 신부를 보면서 그의 가치관을 부수려는 신부에게 거대한 분노를 느낀다.


“그의 신념이란 건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한 올만 한 가치도 없어.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그에게는 없지 않느냐? 보기에는 내가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이 있어. 나의 인생과, 닥쳐올 이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어. 그렇다, 나에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것이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굳게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다. 나는 이렇게 살았으나, 또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하고 저런 것은 하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그러니 어떻단 말인가? 나는 마치 저 순간을, 내가 정당하다는 것이 증명될 저 신새벽을 여태껏 기다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뫼르소의 대사를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필연적 죽음을 인간의 나약한 마음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회피하고자 신에게 의지하는 신부(인간의 사후세계사상)에 대해 격렬한 분노를 느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집행의 대사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할지니 너는 반드시 부서진다"는 는 어쩌면 신부의 대사일지도 모른다. 뫼르소가 죽음의 공포 앞에서 끝끝내 나약한 인간으로 회귀하여 인생의 무가치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신에게 빌며 회피하라고


그렇다면 침식 대사 “너 만큼은 나를 용서하지 마라”인생이 무가치하다는 진리를 크게 신경쓰지말고 스스로 가치를 찾는 인간의 삶을 살라는 뫼르소 아니 이방인의 작가 카뮈의 대사로 느껴진다. 뫼르소는 다른 인간이 만들어낸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모두 벗어나 기존 사회를 지배하던 모든 관념과 관습, 제도와 종교를 부정하고 느낄 수 있는 실체만을 본질로써 확신하지만 

또 다르게 살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일은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일을 했다. 등등 부정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실체와 본질에 대해 심도있게 나아가진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사마의는 기록을 하면서 수많은 반례를 통해 하늘의 도를 의심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열정적이고 신념에 가까운 기록을 통해 무가치한 의인들의 죽음을 기리고 악인들의 죽음을 비평하면서 그가 느끼는 실체와 본질을 구체화하였다. 이것은 무가치한 어쩌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이러한 행동을 통해 적어도 자기자신에게는 구원받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삶은 무가치하다는 진리를 받아들일 없는 인간이 나약한 마음에 만들어 놓은 사상과 환상에 맹목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본질과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자신에게 구원받는 삶에 집중해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1줄 요약 : 사상과 이데올로기에 점철된 사람이 아닌 본인 스스로의 본질과 가치를 정립해 스스로의 사상을 발현시키는 사람이 되자
반박시 니말이 다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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