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직 의사이자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는 단행본을 낼 때마다 대사나 그림을 고치는 버릇이 있어 단행본과 그 이하 전집에 실린 에피소드들은 잡지 연재판과 내용이 다른 경우가 대부분인데 <블랙잭>은 그 정도가 제일 심각했다.
특정 질병을 앓는 환자나 장애인에 대한 용어가 시간이 흐르며 비하적 의미를 내포하게 되어 수정을 가한 경우, 해당 질병 및 장애를 소관하는 협회나 기관에 의해 명칭이 바뀌었을 경우, 의학적 고증을 좀 더 염두에 두고 텍스트나 연출을 보충한 경우, 그리고 블랙 잭 전반의 몰입성을 늘리고 이해를 돕기 위해 데즈카 오사무가 자의적으로 에피소드 순서를 뒤바꾼 경우 온갖 변인들이 블랙 잭을 새로 찍어낼때마다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의료만화의 특성상 연재 초반부터 에피소드의 소재가 되는 질병이나 그 병을 앓는 환자에 대한 묘사가 문제가 되어 관련 단체의 비판과 항의를 받아왔다. 이 항의로 인해 단행본에 실리지 못한 에피소드들이 있었는데 연재 도중이던 1981년, 블랙잭을 드라마화 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큰 사건이 발생하였다.
1. 제22화 피가 멈추지 않아 <血が止まらない>
첫 단행본: 아키타 쇼텐 챔피언 코믹스 3권
현황: 봉인 해금(블랙잭 대전집 2권)
봉인 사유: 혈우병 환자에 대한 묘사
줄거리: 아오모리에서 상경해 온 히로시는 시마네에서 상경한 유키와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결혼이야기를 꺼내는 히로시에 유키는 좀처럼 승낙을 하지 않는다. 유키는 혈우병이라는 것.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히로시는 블랙 잭을 방문한다. 그러나 블랙 잭도 유전 질환을 치료할 수는 없다. 거절하는 블랙 잭에게 히로시는 ‘거짓 수술을 해서 완치되었다고 생각하게 해 주세요’라고 의뢰한다. 혈우병은 여성에게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유키 자신은 안전하기 때문이다.
히로시의 부탁으로 수술을 완치했다는 연극을 하게 된 블랙잭. 그런데 블랙잭은 히로시의 혈액검사 결과를 보고 그가 악성 빈혈에 걸려 있음을 알게 된다. 전화연락한 히로시의 모친으로부터는 그가 1년 반 가량의 수명만 남아있다고 전해듣게 된다. 히로시 본인도 이를 알고 있다면서.
유키의 거짓 수술은 성공하고 그녀는 퇴원하지만 히로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유키에게 편지를 남기고 짧은 생을 마감한 것이다.
↑ 항의 서한 전문. 일본어로 되어 있으니 번역기로 돌려볼 것.
- 1981년 드라마판 블랙잭의 방송사에 한 통의 항의 서한이 발송되었다. 발신인은 일본 혈우병 단체로 혈우병 환자에 대한 잘못된 차별을 부를 수 있는 정보가 들어간 22화를 각색한 드라마가 방영된것에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이를 계기로 데즈카 오사무는 새로 출간되는 코단샤 만화전집에 특정 질병과 환자들의 묘사로 인해 항의를 받아왔던 에피소드들을 잘라내었고 이 에피소드들은 최초의 단행본에 실린 이후로 먼 훗날 복간닷컴판 블랙잭 대전집에 대부분 실릴 때까지 단 한번도 단행본에 실리지 못하고 봉인 되었다.
코단샤 만화전집이란 이 책을 말하는데 이 책은 연재순서를 제대로 못지켰을 뿐더러 미수록본이 22개나 되는 최악의 문제작이다. 앞으로 설명하는 에피소드들은 앞서서 설명한 22화를 포함한 관련단체들의 항의로 인해 봉인된 9개의 에피소드들이다. 왜냐고 나머지는 코단샤가 멋대로 누락시켜서 실리지 못했지 항의가 빗발쳐서 잘린게 아니니까.
2. 제36화 가라앉는 여자 <しずむ女>
첫 단행본: 아키타 쇼텐 챔피언 코믹스 4권
애니화: 데자키 오사무 12부작 OVA - KARTE 10 가라앉는 여자 (2000년 작)
현황: 봉인 해금(블랙잭 대전집 3권)
봉인 사유: 공해병 환자에 대한 차별 묘사
줄거리: 바다에 잠수하는 게 특기였던 요코는 천애 고아. 시의 인근 공장에서 방류한 폐수가 원인인 공해병인 미소카시 병에 걸려서 다리 상태는 점점 나빠져가고 정신박약 증상이 나타났다. 그 때문에 보상금도 구제위원에게 속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시가지의 의사로부터 미소카시병 치료에 도움을 요청받은 블랙 잭이지만, 그는 불청객이었다. 빵집에서 빵을 받고 있는 요코를 보게 된 그는 집에까지 따라간다. 블랙 잭은 요코를 치료하기로 하고 회사에 300만엔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신박약은 선천성이라고 우기는 회사에 대하여 요코가 글자를 쓸 수 있을 경우 치료비를 지불하는 것으로 조건을 건다. 수술 후 걸을 수 있게 된 요코는 문자를 쓴 편지를 남기고 바깥으로 외출한다. 블랙 잭은 요코를 찾아 서둘러 바다에 나가지만 요코에게는 죽음이 찾아와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물고기. 잡아 와요. 선생님에게. 먹을 수 있는 것으로"
OVA KARTE 10의 한 장면. 이 에피소드는 애니화된 블랙잭 에피소드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데 이거 꼭 보는거 추천드림.
3. 제76화 수두증(水頭症)
유혈묘사로 인해 자체 검열 (묘사하자면 환자가 자신의 머리에 못을 박았다.)
번역본 못찾음.
첫 단행본: 아키타 쇼텐 챔피언 코믹스 6권
현황: 봉인 해금(블랙잭 대전집 5권)
봉인 사유: 지적 장애인에 대한 차별 묘사
줄거리: 요이치는 뇌수종에 시달려 수술을 하게 되면 평생 백치인 상태로 지내야 한다. 그러나 수술을 하지 않으면 2년 정도의 생명이 남아 있다.
채플린을 존경하는 그는 죽을 때까지 사람을 웃기는 것이다이라고 달관한 심경을 블랙 잭에게 이야기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 침착한 그에게 화가 난 블랙 잭은 피노코의 사소한 행동에서 수술법을 고안해 낸다. 친구인 의사에게 처방을 가르치고 스스로는 메스를 쥐지 않는 블랙 잭에게 요이치는 특기인 흉내내기로 블랙 잭을 병원까지 호출한다. 그리고 예능인이 될 자신은 평생에 걸쳐 수술비를 지불하겠다고 하면서 수술을 부탁한다.
- 이 에피소드는 지적 장애인이 등장하는데 블랙잭의 초기의 판본에는 주위 사람들이 태연하게 이들에게 차별적 용어를 구사한다. 블랙잭도 태연히 쓴다. 아마도 당시에 사회적으로 만연한 가치관, 즉 장애를 안고 있으면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라는 우생학적 사고관이 은연중 배후에 깔려 있지는 않은지. 그런 점에 대해 항의가 있어 아마도 봉인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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