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맞고만 있었냐?”

“그야, 당연히 이겼죠.”

“왜 때리든?”

“제가 먼저 때렸는데요? 농사꾼들은 죄다 매국노라는데 머리통 좀 깨줘야죠. 국영식료품점 안 가고, 시장판 토마토값 오를 때마다 우리한테 지랄인데. 그리 불만이면 자기네가 무능한 내무부 대신 유통 마피아 잡던가.”

“다 식었지만, 밥이나 먹자···.”

안 그래도 인식이 안 좋던 농민에 대한 여론이 지금 와서 나락을 갔다.

집단농장 대부분은 곡물 파업에 동참하지 않았고, 식자재값을 흔든 건 유통 마피아와 민간유통업자, 투기성 사재기에 동참한 다차(별장)이었을 텐데. 

아무래도 일반 인민들과 정치인들에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닌 듯했다.

현시점에서 농민이란 것은 이익에 눈이 멀어 농산물을 시장에 빼돌리고, 마피아와 손잡아 연방을 병들게 하는 병균 이하의 존재가 된 것이랴.

···그런데 그게 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면서 보니까 그 양복쟁이 아저씨들 또 트럭 끌고 와서 창고에서 곡물 빼가던데.”

“······.”

“마피아죠?”

“···민간업자야.”

“진짜 민간업자들 다 쫓아내면서 우리가 국가에 납품하고 남은 농산물들 독점하는 인간들이 마피아지 무슨.”

표트르가 속해있는 협동조합이 마피아와 손을 잡은 것은 사실이고. 대부분 집단농장도 그렇게 돈을 더 벌고 있으니까.

쉬쉬하고 있지만, 그들이 연방을 병들하고 있는 것은 여지없는 ‘사실’이었다.

프랜차이즈(협동조합) 혹은 스탈로바야(국영식당)에 따로 납품하는 농장들은 몰라도, 민간시장에 냅다 싸게 던져주면 남는 것도 없었으니.

부패한 관료들이 마피아의 뒷사정 또한 봐주고 있으니, 실상 동종업계인 사이에서는 ‘마피아랑 손 안 잡고 돈 안 버는 놈이 호구.’라는 잘못된 인식마저 쫙 깔린 상황이었다. 

표트르네 집단농장 또한 잘못됐음을 알면서도 예외는 아니었고. 

“아부지, 진짜 이게 맞아요? 예···?”

“정 마음에 안 들면 신고를 해라.”

“진작에 신고했는데 출동한 경찰 놈들은 그놈들이랑 농담이나 하다가 돌아가잖아요. 이게 맞아요? 고르바초프 그 병신새끼가 눈감아주고 있다고, 우리 농민들이 좋다고 이러는 게 맞냐고.”

“···서기장 동지한테 말꼬라지가 그게 뭐냐.”

“집에 돈 없다고 불 끄고, 이렇게 식탁에 양초 올려둔 거 이해해. 자라면서 남들 농사꾼들 손가락질하는 거 참으면서 살아왔어. 왜? 자랑스러우니까. 아가리 털든 말든 시발, 나 소비에트 농민이니까. 애비가 젊을 적 그 어렵다던 노동적기훈장을 탄 훌륭한 농민이었으니까.”

늦은 저녁, 식탁에 수프가 담긴 접시와 양초 하나만 덩그러니 올려두고 마주한 부자는 시선을 맞추지도 않았다.

“이럴 거면 그냥 노동적기훈장 반납하시죠?”

“······.”

”돈을 왜 그리 버는데요? 뭐가 부족한데요? 우리 농장은 비상환채권도 다 갚았다며. 양초 하나 바꾸자고 이러는 건 아닐 거 아니에요.“

표트르는 ‘너 대학 보내야 하니까.’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아 내었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더러운 돈으로 대학은 안 가겠다’라며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

사회의 풍파 앞에서도, 돌봐줄 아내가 없음에도 그의 아들은···정의롭게 너무 ‘잘’ 자라고 말았다. 당연히 자랑스러울 일일 테지만.

”그래, 나도 한탕하고 농사꾼 때려치우고 싶어서 이런다. 아니꼬우면 너도 공부나 해서 이 집 나가···!!　그 정도 돈은 챙겨줄 테니까.“

-부패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

한편으로는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현실을 직시하고, 적당히 썩어야 이 사회에서 아무쪼록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러니까 그의 아들은 좀 더 좋은 곳으로 가야지, 이딴 썩어빠진 농장에 있어선 안 됐다.

쨍그랑-!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아들은 일어나면서 그대로 접시를 초상화가 걸려있던 벽에 던졌다.

”새삼 살면서 내가 농사꾼인 게 이렇게 부끄러운 건 처음입니다···. 저, 당분간 집에 안 들어올 줄 아세요.“

모든 게 엉망이었다.

농가책임제 이후의 삼 년간의 짧았던 수익이 환상이었다는 듯이.

필요 이상의 노동량을 요구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끝났을 텐데. 하물며 80년대 내내 농사를 망치던 고온과한발 이상 기후도 끝났을 텐데. 그냥 모든 게 엉망이 되었다.

* * *

농민들 잉여농산물 전통시장(암시장)이었던것에 팔게 해주니까 마피아 기승하는거 너무 알잘딱하게 나왔다

내무부는 뭐하냐고요? 기대하는게 바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