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잠이 안 와서 대충 적어보겠음
97 - 99년 카투사로 군복무 했음
대충 그때 분위기 얘기함
1. IMF로 나라 경제가 씹창나서... 미군 애들에게는 좋은 시절이었음
환율이 한때 1달러 2,000원을 돌파했고 꽤나 내려간 뒤에도
1,500원대 정도에서 한동안 유지되었던 터라 다들 빵빵하게 외식 가고 그랬음
당시 강남역에 까르네 스테이션이라는
고기 무제한 뷔페가 있었다는데
애들이 거길 간다고 하더라
우리 부대 식당이 상당히 맛이 없어서
1주에 2번 이상 거길 가던 놈도 있었지
끽해야 E4 Specialist(상병)이었던 녀석이 말야
카투사는 상황이 케바케였는데
사정이 안 좋은 사람은 집이 은행에 저당잡혀 날아갔네
어쩌네 하는 상황이라 많이 힘들었지...
2. 카투사는 96년까지는 중앙선발은 시험을 봤음. 과목이 영어, 국사 뭐 그랬던 것 같음
97년부터 토익으로 선발 방식이 바뀜. 97년 커트라인이 765점이었나 그랬음
대부분은 800점 넘었고. 지금 보기에는 낮은 점수지만
당시에는 상당한 점수여서 높으신 분들이 꽤나 놀랐다고 함
(그래봐야 영어 스피킹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래선지 98년까지만 순수 토익 점수로 뽑고 이후부터
일정 점수(한 700점대 중반) 이상을 기준으로 삼고
추첨제로 바뀌었던 것으로 기억함
3. 그리고 소선발이라고 논산에서 그냥 훈련병을 뽑아서
올리는 방식도 있었음. 99년까지 있었던 것 같네
일단은 영어 시험을 거쳐서 뽑았다는데
거의 요식행위나 다름없었던 것 같음
카투사 지원해서 온 애들이 아니니까 영어 실력은
중앙선발보다 딸렸음
그리고 이쪽은 빽으로 들어온 애들이 좀 있었다지
나도 하나 의심가는 녀석을 본 적이 있음
고딩 시절에 아버지가 해외 주재원이라
일본에서 국딩(그쪽에선 소학교지?)
입학부터 거기서 살았다는 애가 있었는데 같은 반이었거든
근데 일본말은 잘해도 영어 하나 제대로 못하던 일본식 날라리였던 인간이
내가 KTA(카투사 후반기 교육대)에 왔을 때 상병 계급장 달고 있더라고
그러니까 당시로는 최소 1년 앞선 이른바 내 아버지 군번 이상인 고참이었던 거지
논산에서 어쩌다 뽑혔을 수도 있지만 당시 사회상을 생각하면
빽이었을 가능성도 꽤 있음
1990년대까지는 카투사 = 빽으로 미군 가서 양놈들 빨아주는 놈들이란 밈이 있었음
사회 나와서 카투사였다고 하니까 무슨 빽을 써서 들어갔느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꽤 있었지
이젠 좀 졸리네. 틀딱 얘기도 괜찮다면 나중에 좀 더 쓸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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