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에는 전작 <도쿄대학 살인사건>과 본작에 관한 스포일러가 많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두 작품을 먼저 읽고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몇 달 전, <도쿄대학 살인사건>을 고통스럽게 다 읽고난 후, <터부>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책을 펼치기까지 반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다른 작품들을 읽느라 그런 것도 있었지만,

이 작품을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이렇게 다 읽고 리뷰를 쓰게 되었는데,

뭔가 큰 숙제 하나를 끝냈다는 기분이 든다.

<터부>의 광기는 <도쿄대학 살인사건>보다 더 강렬하다. 전작에서는 살인에 대한 묘사가 비교적 평면적이었고

살인방법도 다른 미스터리물에 많이 나오는 방법이었지만, <터부>에서는 무려 피에 대한 성도착증이 있는 흡혈귀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살인이 실시간으로 자세하게 묘사되는 충격적인 장면도 여러번 등장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500 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에 각 페이지마다 결코 두 권으로는 나눌 수 없다는 듯이 활자를 꽉꽉 우겨넣었고,

또다시 인물관계도를 그리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꼬이고 꼬인 인간관계, 독사의 독처럼 끈적끈적한 문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주인공 콤비와 등장인물의 위태로움 등이 뒤섞여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는 것이 참 고통스럽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전작에서 재수없음의 끝을 보여줬던 탐정 가쓰라기 게이타는 이 작품에서는 놀랄 만큼 인간적인 풍모를 보여주는데,

그 이유가 결말 부분에 가서 공개된다. 사실 읽다보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말의 카타르시스가 약해지지는 않는다.

전작에 비하면 결말과 진상은 그래도 어느 정도 많이 명확해졌다. 사실 이것도 다른 미스터리물에 비하면 애매모호하기는 하지만,

전작이 너무나도 놀라웠기 때문에 이정도 쯤이면 받아들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부>에서는 전작에는 없던 '이인증'에 관한 서술이 등장한다. '이인증'이란 과도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이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마치 다른 사람처럼 객관화해버리는 정신질환을 뜻한다. <터부>의 결말에서 작가는 위로를 받았을까,

아니면 여전히 큰 고통만을 남겨놨던 걸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지만 이 작품으로 작가가 마음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냈기를 바란다.

점수 : ★★★★★★★★☆☆ (8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