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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정보] 스포)진홍빛 속삭임 리뷰

ㅇㅇ(210.111) 2021.12.07 12:00:06
조회 158 추천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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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이미지




가냘픈 체구에 신비한 눈빛을 지닌 소녀 이즈미 사에코는 어느날 무나카타 가문의 딸로 입양되어, 가정, 학교, 고향 등 이전까지 당연하게 생각하던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낯선 생활 환경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모 무나카타 치요의 손에 이끌려 찾아간 곳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지만 자칫 냉혹하게 여겨질 정도로 엄격한 교풍을 고수하는 세이신 여학원. 이모는 이 학원의 교장이었죠.

입학 첫 날부터 사에코는 그녀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세이신 학원의 이질적인 분위기에 당황하는데요.

'B사감과 러브레터'의 B사감을 연상시키는 괴팍한 교사가 그녀의 머리를 쥐어채며 멋대로 짐을 뒤지는가 하면, 학원의 학생들 또한 괴이한 건 마찬가지라 마치 가면을 쓴 한 무리의 인형들처럼 그 나이대 소녀들의 생기라곤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런 학원에 대해, 그녀와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소녀 타케토리 케이는 시니컬하게 말하죠. "이 학교는 미쳤어. 머지않아 너도 알게 될거야."

그녀는 또한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너, 당분간은 나하고 친하게 지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중략)...난 말이지, 마녀거든."

사에코가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도 전에, 이후 학원에는 참혹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35년 전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폐쇄되었던 기숙사 2층 외진 곳의 '특별실'. 한밤중, 관리인이 윗층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를 듣고 조사해보니, 소리는 분명히 아무도 없었어야 할 특별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고... 항상 잠겨있던 특별실의 문이 그날 밤만은 기이하게도 열려있고, 그 안에는 등유를 뒤집어쓰고 새카맣게 불타죽은 시체가 한 구 발견됩니다. 시체의 정체는 이전에 사에코에게 충고를 건넸던 외톨이 소녀, '마녀' 타카토리 케이라는 것이 밝혀지는데요.

사건은 이걸로 끝나지 않고, 이후 세이신 학원 곳곳에서 소녀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이어집니다. 희생자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살해당하기 전 사에코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되어있었다는 거죠.

**

'신본격'의 기수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소설답게, 처음부터 도면이 등장합니다. 세이신 기숙사의 1,2층의 평면도죠. 개인적으로 이렇게 서두에 도면을 소개하며 시작하는 소설은 읽을 때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등장인물의 동선이나, 건물의 구조가 사건의 중요한 포인트가 되겠다 싶으니까요.

...그런데 이 소설의 경우 도면이 크게 중요하진 않았습니다. 읽는데 도움은 돼요. 사에코가 어디의 복도를 어떻게 달려서 갔겠구나, 이런 것들이 머릿속에 상상이 가니까요. 하지만 뭐 없어도 그만이었겠다 싶습니다.

**

등장인물의 대부분은 좋게 말하자면 캐릭터성이 강한 인물들입니다. 다소 인공적이고 작위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어쨌든 덕분에 기억하기는 쉽습니다.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그닥 중요하지 않다 싶은 인물들은 스포트라이트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으니까요. (간간이 나올 법한 엑스트라의 대사조차도 최대한 덜어낸 느낌입니다.)

**

작가는 이 소설을 영화 '서스페리아'의 영향을 받아 집필했다고 말하고 있기도 하고, 작중에서 아예 대놓고 '서스페리아'를 언급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때문에 저도 읽으면서 영화의 전개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요.

기억도 불완전하며 몽유병에 걸렸는지 가끔 의식없이 돌아다니기도 하는 사에코는 누가 봐도 수상하고, 범인인가 의심이 가기도 하지만, 읽다보면 도리어 너무 대놓고 의심스럽기에 작가가 미스리딩을 유도하고 있다는 심증이 강하게 듭니다.

그래서 아마 영화와의 관계도 그렇고, 학원을 관리할 권한을 쥔 입장에서 이것저것 몰래 꾸미기도 좋은 교장이 범인일까-했어요. 아니면 조연인듯 싶으면서도 은근히 사건의 외곽에서 주의를 환기시키며 들락날락거리는 도서실 소녀 이츠코도 범인 후보에 들어있었고요.

헌데 진범이 관리인 토요코였다니 꽤 예상 밖이었네요. 다시 읽어보니 사에코가 처음 기숙사에 들어와 토요코를 만났을때,

문득, 처음에는 왠지 공허해보였던 토요코의 눈에 뭔가 신비한 빛이 깃들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크고 동그란 눈동자다. 바라보고 있으면 점점 안으로 빨려들 듯한 그 눈동자를 그녀는 사에코의 얼굴에서 조금도 떼려 하지 않았다.

-p.27

...라며, 일개 관리인에 대한 서술치곤 꽤 의미심장한 묘사가 있었죠. 작중에서 계속 언급되는 것이 사에코의 '신비로운 눈빛'인 것도 있었고요. 나름대로 작가가 신경써서 심어놓은 복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

타카토리 케이, 이 소녀 개인적으로 취향인 캐릭터였는데 얼마 안가 허무하게 죽어버려서 아쉬웠습니다. 저는 아, 얘가 탐정역의 캐릭터구나. 사에코는 왓슨역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

다 읽고 나서 돌이켜보면 어쩐지 구성이 이후 아야츠지 유키토 선생의 '살인귀' 시리즈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의문의 살인마가 정체를 숨긴 채 배회하며, 살인방식에 딱히 특별히 정교한 트릭같은 건 없고 그저 본능과 충동에 따른 살인의 연속일 뿐이며, 살해씬에는 피해자 시점에서 묘사하는 것(두 번 세 번 반복되다보면 시점이 바뀔 때 아, 얘 죽겠구나 하고 사망선고 비슷한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살인귀 시리즈와 달리 여기의 살인마는 필요 이상의 고통을 준다든지 시체를 걸레짝처럼 훼손하지도 않고, 상당히 얌전(이후의 살인마들과 비교하면)한 편이라는 차이는 있지만요. 뭐 딱히 괴력같은 것도 없는 평범한 아줌마가 살인마니 그런 것도 있겠죠.

**

모든 진상이 밝혀지고, 사건이 해결되었지만 에필로그에서 사에코는 찝찝한 암시를 남깁니다.

저 멀리 펼쳐진 풍경의, 눈부시도록 선명한 색채를 향해....

어쩌면

어쩌면 저렇게나 붉을까.

붉은

진홍빛......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피.

소녀는 황홀한 듯 눈을 반짝이며 장밋빛 입술로 엷은 미소를 지었다.

-p.407

전 이 묘사에 대해, 결국 어머니 토요코-카요의 광기는 친딸인 사에코에게도 어느정도(어머니처럼 억제되지 않는 폭력 충동을 동반하는지 여부까진 알 수 없지만)유전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했는데요.

덕분에 호러무비에서 흔히 나오곤 하는, 결말에서 찝찝한 뒷맛을 남기는 효과를 자아내네요.

쓰다 보니 드는 잡생각이지만 주인공의 이름 사에코가 사이코와 유사한 발음으로 읽히는 것도 어쩌면 우연일까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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